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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보지 말고, 예수를 보라

LNCK 2012. 2. 17. 21:20

◈바람을 보지 말고, 예수를 보라     마14:22~33     12.02.11.설교녹취



▲도입 일화/ 졸업여행 이야기

제가 목회하면서 평생 공부하는 차원으로 신학교에 다닐 때, 졸업여행으로 중국 북경에 갔다.

중국 여행을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가이드가 꼭 한약방에 데려간다.


그날 일정에 따라, 이제 다음 코스로 한약방에 들리게 되었다.

그때 버스 안에서, 일행 중 한 목회자가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제 한약방에 도착하게 되는데, 절대로 현혹되어 물건을 사시면 안 됩니다.

제가 과거에 중국 한약방에 들러서 약을 사 봤는데, 별로 효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사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버스 안에서, 어떤 물건도 사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마침내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데리고, 어떤 약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 나이 드신 분들이, 흰 가운을 입고, 앉아계셨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양팔을 벌리고, 일렬횡대로 서 보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그대로 했다.


그랬더니 ‘우리 몸 안에 전류가 흘러갑니다’라고 말하면서,

한쪽 끝 목회자 머리에, 자기 손을 대고 ‘여러분 이제 기다려 보십시오..’ 하더니

반대쪽 끝 목회자의 머리에다 조수가 전구를 딱 대니까.. 그 전구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어째 이런 일이..’ 우리 일행은 깜짝 놀랐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니까,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어떻게 사람 머리에 불이 들어오는가!’

깜짝 놀라면서 ‘절대로 약을 사지 않겠다’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다 사라져 버렸다.


그때 연륜이 느껴지는 점잔은 흰 가운 입은 분들이, 한 사람씩 진맥을 하면서,

이런 저런 진단을 해 주자.. 우리 일행은, 너도 나도 약을 하나씩 사게 되었다.


웃기는 것은,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절대로 사시면 안 됩니다!’고 말한

그 목회자도, 약을 샀다.

현찰이 없는 분들은, 카드를 긁어서 샀다.


사람들은, 자기 머리에 전구의 불만 들어와도,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데,

예수님께서 5병2어로,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시자..

그 장소의 분위기가 과연 어땠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왕이 되지 않으시고..

     대신에 이런 행동들을 취하셨다... ↓



◑1. 주님은.. 거기 모인 무리들을 흩으셨다.


마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왜 예수님은 거기에 모인 무리를 흩어 보내셨는가?

그들이 지금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영생을 얻으려 함도 아니요,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아, 변화된 삶을 살려고 함도 아니었다.


자기들의 불순한 동기와 목적만을 실행하려고,

오병이어 기적 후에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계속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도, 앞서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 버리셨다.

본문에 ‘재촉하다 constrain’는.. ‘억지로 가게 하다’라는 뜻이다.


사실 거기에 모여 있던 그 많은 무리들은 물론이요,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도

다들 그 놀라운 기적의 현장에.. 오래 머물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억지로/constrain/재촉하셔서, 그들을 다 흩으셨다.

그 현장에서 빨리 떠나가도록.. 파장 분위기를 연출하셨다.


그들이 분위에게 휩쓸려서 ‘허망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 자신은

무리들을 흩어서 집에 보내시고, 제자들은 배에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예수님 자신은,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소리가 들려올 때,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여,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


▲적용

사람은 누구나, 군중의 환호와 함성소리에 약하다.

사람들이 언제 무너지는가?

고난의 순간에는 거의 안 무너진다. 그때는 오히려 강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리들로부터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을 때.. 차츰 무너져 내린다.

승리 그 이후의 순간부터.. 점점 무너진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홀로 산으로 기도하러 가신 이유는,

오병이어의 기적 때문에 들려오는, 세상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이겨 내시려고

(사람들을 다 흩으신 후에) 혼자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신 것이다.


▲내가 기도해야 할 때


사람들은, 뭔가 성취하려 하고, 뭔가 얻어내려 할 때.. 산에 올라가서 간절히 기도한다.

그런데 본문에 예수님은, 반대로 얻은 것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


나는..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기 위해서.. 기도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낮아지고, 부인하기 위해서.. 기도하셨다.


나는.. 성공하고, 채우고, 유명해지려고.. 기도하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환호를 피하시려고.. 기도하셨다.


여러분, 스스로 낮아지기 위해서, 기도해 보셨는가?

여러분이 세상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피하기 위해서.. 산기도 해 보셨는가?


아니면 반대로,

세상이 나를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낼 때..

그 자리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무르려고.. 기도하며 아등바등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2012년에,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한 단계 upgrade하기 원하신다면,

-과거에는.. 내가 높아지고, 내가 출세하기 위해서.. 기도했다면

-금년에는.. 내가 낮아지고, 나를 부인하기 위해서.. 기도드려 보자.


-과거에는 내가 성공하고, 박수 받는 것을 위해.. 기도를 드렸는데,

-금년에는 내가 잘 되고, 박수 받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기도를 드려보자.



◑2. 예수님은 단순한 믿음을 요구하신다.


▲1. 예수님께 순종했는데.. 풍랑이 올 수 있다.

지금 제자들이 바다 건너편으로 가는 것은, 예수님이 보내셔서,  :22

순종의 길을 가고 있는데도.. 풍랑이 닥쳤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로,

성경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데도.. 풍랑은 얼마든지 닥친다. 그게 현실이다.


우리 상식은, 풍랑 치던 바다도,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면.. 잔잔해져야 하는데,

본문에, 잔잔하던 바다도,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나가니까.. 오히려 풍랑이 불었다.

이래저래, 풍랑은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목적으로, 피할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풍랑을 아예 없애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풍랑가운데서 어떻게 살 것이냐.. 이 점을 유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2. 주님은, 풍랑 가운데로 찾아와 주신다.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산에서 다 보고 계셨다. 막6:48

그렇다. 오늘도 예수님은, 나의 풍랑으로 인한 고통의 현장을 다 보고 계신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풍랑을 없애 주신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풍랑을 만나서, 고생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로.. 찾아와 주셨다.

그렇다. 오늘도 예수님은, 나의 풍랑의 현실 가운데로.. 나를 찾아와 주신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모르는 것 같지만.. 주님은 보고 계신다.

보고 계실뿐만 아니라, 그 절망의 순간에.. 반드시 나를 찾아와 주신다.


예수님은 나의 절망의 때에.. 반드시 찾아와 주신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은 해질 무렵, 초저녁에 배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시간은, 밤 사경인데, 새벽 4~6시다. 동트기 직전이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밤새도록 풍랑과 사투를 벌인 것이다.


밤 사경은, 제자들에게, 절망의 때였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그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

인간의 한계상황에 도달해서,

신기하게도 주님은, 꼭 이런 시간에 찾아와 주신다. 일찍 오시면 더 좋을 터인데..


여러분, 내 인생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인줄 믿으시라! (성도 일동 큰 소리로 “아멘!”)

지금 우리 가운데,

‘나는 이제 끝장났다!’ 라고 생각되시는 분, 계시는가?


금요기도회 때 보면,

한 달에 적어도 두 세 분 정도는,

‘자기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사물함도 다 정리하고,

마지막에 교회에 찾아오는 분들’이 계신다.


아마 ‘최후결단 自殺’만 남겨두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꼭 ‘마지막으로 목사님께 기도 받고’ 뭘 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라!

‘사람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인 것을!’


지금 여러분 가운데도, ‘밤4경’을 지나시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시라! 주님이 찾아오시는 시간이다.

이 한계상황(밤 사경)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주님이 나를 찾아와 주시면.. 신기하게 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신기하게 ‘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어!’ 한다.


당장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고, 금방 병이 낫지는 않더라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며, 오뚝이처럼 우뚝 일어서게 된다.

어제까지 죽을 인상으로 살았지만, 오늘은 인상을 펴고, 하늘을 쳐다보며 소망을 갖게 된다.


▲3. 문제 해결보다, 두려움 제거가 우선이다.


: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제가 만약 주님이라면, 우선 풍랑부터 잠잠케 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풍랑을 잠잠케 하시기 전에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다.

문제의 해결보다, 두려움을 먼저 제거하신 것이다.


여러분, 나는 주님께.. ‘문제부터 해결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주님은 나에게.. ‘문제보다 두려움부터 제거하라, 안심하라!’고 하신다.


여러분,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려움부터 해결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한 바로도, 문제는 고작 5%라면, 그 두려움이 95%라고 한다.

사실 풍랑보다 더 무서운 것은, 풍랑으로 인해 떠는 두려움인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해결하는 순간..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두려움을 없앨 것인가?

‘주님을 만나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된다.'

 

주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나에게도 똑같이 말씀해 주시고,

바로 그 때 나는.. 정말 안심하게 된다.


▲4. (우리가 본받아야 할) 베드로의 단순한 믿음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얼마나 황당하고 당돌한 제안인가?


그런데 만약 내가 예수님이라면, 나는 이렇게 야단치겠다.

‘이 친구야, 내가 물 위를 걷는다고, 너도 물 위를 걷겠다는 거냐?

나는 하나님이고, 너는 피조물이야, 네 자신을 알아야지!, 너 제정신이냐?’


그런데 의외로 예수님은 ‘오라!’고 하셨다.

위풍당당 베드로는, 물 위로 자기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물 위로 걸은 사람이 되었다.


비록 몇 발자국이었지만, 이것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해서 몇 발자국 걸은 것보다,

어쩌면 더 위대한 발걸음이었다.


이렇게 도전하는 베드로의 단순한 믿음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①예수님이 처음 그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그때 베드로는,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다. 단순한 믿음이다.


여러분은,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즉시 주님을 따라나서겠는가? 그게 어디 쉽겠는가?

단순한 믿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4:18~22, 막1:16~20

 

②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밤새 그물질 했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런데 ‘깊은 데 그물을 던져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즉각 순종했다.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단순한 믿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눅5:1-11


※위 두 사건(베드로의 부르심)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②가 ①보다 더 자세한 설명이다.


베드로가 가졌던 단순함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바다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단순한 믿음이었다.


베드로의 단순한 믿음..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될 수 있기 바란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 한 가지 결여된 것이 있다면, 바로 ‘단순한 믿음’이다.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내가 이렇게 단순한 믿음을 나타낼 때, (단순한 호기심으로 뛰어들면 안 된다.)

주님은 이렇게 반응하실 것이다.

‘오라!’


베드로는 ‘오라!’는 확실한 응답을 받고, 물 위로 뛰어내렸다.

그가 단순한 사람이라서, 무작정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응답 받고 뛰어내렸다.


그런데 단순한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는,

주님은 ‘오라’든지,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지..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우리도 반드시 응답을 받고, 바다 위로/절벽 아래로, 뛰어내려야 할 것이다.


주님은, 너무 계산적이거나, 생각이 복잡한 사람과는.. 함께 일하실 수 없다.

주님은 오늘도, 베드로처럼, 단순한 믿음의 사람을 찾고/부르고 계신다!


▲5.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물에 빠지다.

그런데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파도를 보는 순간,

물 위에 서 계신 주님이 보이지 않았다.

큰 파도에 가려서, 물 속/위에 서 계신 주님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보면.. 무서움이 임하고,

무서움이 임하면.. 믿음이 식어지고, 믿음이 상실되어진다. 그 결과, 물에 빠진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31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단순한 믿음으로 바다 위를 걷더라도,

그 집채 만한 파도를 보는 순간, 나 역시도 두려움이 임하며.. 믿음이 식게 된다.

그러므로 풍랑을 보지 말고, 예수님만 꼭 주목해서 봐야 한다.


‘휘이잉’ 하는 바람소리도 강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소리를 듣지 말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어야 했다.


오늘날 ‘내 풍랑, 내 바람’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나를 두려워서, 믿음의 길에서 실족하게 하는가?


그것을 보게 되면.. 주님을 놓치게 되고

반대로 주님을 바라보면.. 바람과 풍랑을 보지 않게 된다.


주님만 주목하여 바라보는 것이란,

엘리야처럼 간절히 기도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기도할 때, 자기 머리를 자기 두 무릎 사이에 넣었다.

제 생각인데, 만약 엘리야가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했다면.. 기도를 중도 포기했을 것이다.

하늘은 맑고 청명하며, 비올 기미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늘(환경)을 쳐다보지 않고, 자기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서 그는 ‘물 위를 걸었던 것’이다.

환경을 쳐다보지 않고, 주님만 쳐다보고서.. 믿음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정리하면

주님은 이 고통의 현장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바라보시고, 직접 찾아와 주신다.

쓰나미, 집채 같은 파도가 찾아와도

주님이 바로 내 앞에 와 계신다.

내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하실 분이, 반드시 나를 찾아와 주신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은, 하나님의 시작의 시간이다!

이런 주님을 만나게 되려면.. 나에게 단순한 믿음이 필요하다.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28


그리고 반드시 ‘오라!’는 응답을 받고서, 액션을 취해야 한다.


물 위를 걸을 때에도,

절대로 바람을 바라보지 마시고, 주님만 똑바로 바라보시면,

풍랑이 보이지 않고, 물 위를 걷게 될 것이다!


※음성설교를 들으실 분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바람을 보지 말고, 예수를 보라’를 검색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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