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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사각지대를 어떻게?

LNCK 2012. 2. 21. 22:50

 

◈영적 사각지대를 어떻게?       눅16:19~26, 막10:21~22      12.02.19.설교스크랩


 

▲도입

운전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사이드 미러에는 사각지대가 있어서 안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사각지대는 차를 운전하는 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우리의 믿음 생활에도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문제만 잔뜩 늘어놓고, 끝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들의 문제 가운데는

속 시원한 해결책 없이 드러내놓기만 해도 좋은 사안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손 쓸 수 없지만, 드러냄 자체가 환기가 되고,

장차 그것이 우리들의 소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문제가 우리 주님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마음 쏟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데 그렇게 어렵게 말씀을 꺼내느냐 하실 텐데,

이제부터 그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크리스천의 사각지대


▲복음전파보다 더 급선무가 있습니다.

언젠가 아프리카의 선교사님과 통화 중에,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는 지금 선교사로 파송이 되었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사역 하고 있는데,

실제 현장에는, 더 급한 문제가 있더라는 겁니다.


자기는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는 명령을 받고 아프리카에 왔는데,

와서 보니 다른 문제는 둘째 치고

다들 가난으로 죽어가고 있으니 ..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겁니다.


자기가 받는 선교비 라는 건,

겨우 자기네 가족 생활하기도 빠듯한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거예요...


선교 현장에 있는 분들은, 결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 배가 고파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그런 그들에게 <영혼의 굶주림>을 걱정하라느니,

육체는 썩어질 것이므로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라느니.. 하는 얘기가 통하겠습니까?


따라서 땅 끝까지 주를 전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할 방법 뿐 아니라

그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줄 방법까지도 연구해야 합니다.


즉 영적으로 시급한 과제를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들의 육신적 필요에 대해서도 관심 가져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태껏 그런 사실을 외면해 왔습니다.

사실상 무시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겁니다.


상대는 한없이 가난할 뿐 아니라, 비명조차 지를 힘도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무지는.. 세월이 지나도 깨지지 않고 그대로 이어졌던 겁니다.

(비명조차 들리지 않으니까요)


문자 그대로 수백만 명에 이르는 목숨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마치 그런 이들이 지상에 없다는 듯,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지낸 겁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영적 사각지대입니다.   ←설교제목


오늘날 전세계에서 무려 10억 명이 넘는 이들이

극심한 빈곤 상태에서 생활하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하루에 1유로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5유로 미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가 20억 명에 육박합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햄버거 하나 값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음식과 식수, 주거를 해결하느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지금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손을 쓰지 않고 있고, 어쩌면 생각조차 담기 싫어합니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해서지요.


문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신다는 겁니다.


잠언은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는 무리를 향해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거라고 경고합니다.


선지자들 역시, 가난한 이를 외면하면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재산을 믿고 으스대는 부자들을 매섭게 꾸짖으셨고,

야고보는 돈을 잔뜩 쌓아두고 제 몸만 생각하는 이들을 향해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이웃의 현실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멸시한 자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고 말씀하셨습니다.

듣기만 해도 오싹한 말씀 아닙니까?



◑나눔은.. 내 믿음의 진정성의 증거


물론 성경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는데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뿐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토대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즉 가난한 자들을 돌봄으로써,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는다든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돌봐야겠다는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이 설교를 듣고 나타낼 수 있는 최악의 부작용이 될 겁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게 대속의 전제조건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물질의 사용과 구원 사이에 아무 연관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 내면의 변화를 불러오고, 그것은 다시 외적인 열매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삶의 열매를 보면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신약성경 기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예수를 따르는 믿음의 한 표현으로 봤습니다.


따라서 빈자들을 돌보는 것은, 예수님을 모신 이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이고, 또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가난한 이들을 돌아볼 마음이 생기기 않는다면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신지 여부를 스스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부자와 나사로의 얘기>를 통해서, 나의 영적 사각지대를,  살펴봅시다.


▲여러분께 한 번 여쭤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들려주신 이 얘기에서, 여러분은 어느 쪽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사로입니까, 아니면 부자입니까?


내가 어느 편에 가까운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저 자신은.. 내가 부자와 훨씬 더 비슷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의 사각지대를 알게 됐습니다.


물론 저는 한 번도 제 스스로를 '부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현실을 똑바로 보십시오!


수도꼭지만 틀면 맑은 물이 콸콸 나오고,

더위와 추위, 이슬을 막아 줄 집이 있고,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과 타고 다닐 교통수단 – 대중교통 수단이라도- 까지 있다면

여러분은 세계를 통틀어 상위 15% 안에 드는 부유층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와 아주 비슷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마다 수만 유로가 투입됐을 안락한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다 같이 가난한 이들의 한달치 식량에 해당하는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모든 순서가 끝나면, 다들 수 만 유로 어치의 자동차를 타고

또 가난한 이들의 셈으로는 환산이 안 되는 값비싼 집으로 돌아갑니다.

더할 나위 없이 호화로운 삶입니다.

 

한편 가난한 이들은 문 밖에 버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늘 굶주려 있습니다.


주일 아침,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수 천 명의 어린이들이, 매일, 단지 못 먹어서 죽어 갑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끼니를 거르고 있다면

아마 축도가 끝나기 전에 예배당을 뛰쳐나갈 겁니다.


우리 중에 배가 고파서 울고 있는 자녀들을 외면한 채로

노래하거나 즐거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비참한 상황에 몰린 이들 중에, 제삼세계의 믿음의 형제자매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양실조와 그로 인한 발달 지체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지금도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넉넉한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느냐?

자기들 삶을 즐기는데 빠져서, 기껏해야 남은 부스러기 정도나 던져 주고 맙니다.

(‘부자’쪽이 맞지요?)

 

한 번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다!

이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짓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일 아침에 모여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노래를 부르고, 뭘 공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난한 이들을 모른 체하는 부자들은.. 주님의 백성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짐짓 하나님 백성처럼 흉내 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소름끼치는 일 아닙니까?


정상적인 시력을 잃은 탓에, 성경에 엄연히 기록된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뛰고,

풍요로운 기독교와 넉넉한 교회 모델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화는 그런 모습을 ‘성공’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외형을 꾸미는데, 수 십, 수 백 억씩

척척 쓸 수 있는 것을 성공과 성장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과연 그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까요?’


“그 교회가 얼마나 커졌는지 봤어? 내부 시설이 대단하던데!”

그러면서도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지금 일부 미국 교회와 그 영향을 받은 한국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세상적인 성공을 하나로 생각하는 신학을

공공연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절대 속지 마십시오!

문 밖에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시하고

시간과 돈을 엉뚱한 데 써버리는 모습이야말로..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엉뚱한 곳에 교회의 자원을 낭비하는,

그런 시대의 트렌드를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막10장의 본문도 유심히 봐야 합니다. ←하이라이트


예수님은 여기서 부자 청년이 ‘가진 것을 다 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정말 우리 가진 것을 다 포기하길 원하시는 걸까요?

그건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닙니까?


▲우리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두 가지 극단적 태도를 가집니다.

①예수님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줄 것을 명령하셨다는 겁니다.


그건 오류입니다.

신약성경의 전체 맥락은, 그런 (무소유적) 주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곧 개인 재산과 소유물을 모조리 잃어버린다는 의미일 수는 없는 겁니다.


②하지만 한숨을 돌리기 전에 이 부분을 해석하면서

쉽게 범하는 두 번째 실수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소유를 다 포기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오류입니다.      


때때로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저와 여러분께도, 똑 같은 요구를 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정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마음이 있으신가요?

그게 주님의 뜻인지, 서슴없이 묻고 그 대답을 기다려 볼 의향은 없으신가요?


눅14:33 말씀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대로라면 주님을 따르길 원한다면

자기의 모든 소유는 버리는 게 정상이고.. 당연한 일인 겁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의 얘기 가운데, 꼭 알아야 될 게 있습니다.

주님은, 청년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안정감을 직접 공격하셨습니다.


사실 가진 재산을 다 처분해서 그걸 거저 주라고 할 때

그 말씀을 덥석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지? 어디서 먹고 자지? 예상 못한 어려움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우리의 안정감은 마구 흔들립니다.


하지만 21절 말씀을 보면 빛나는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막10:21


예수님은 그 청년이 미워서, 또는 그를 비참한 지경에 몰아넣으려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를 사랑하셔서 모든 재산을 나눠주라고 하신 겁니다.


▲병행구절인 눅12장에, 이 부분의 진짜 뜻을 유추할 수 있는 말씀이 나오는데,

제자들에게도 지금 이 청년에게 내리셨던 명령을 똑같이 내리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전에 하신 말씀이 뭐냐 하면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하십니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바로 이런 얘기가 됩니다.

‘양떼를 아끼는 목자처럼, 자식들을 기르는 아버지처럼, 

너희를 돌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게 있는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고,

장래 일에 대해 염려하지 말거라. 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부자 청년은, 그의 재산이 장벽이 되어서, 하나님이 절실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보물을 위해, 그 세상 풍요를 바꿀 것을 원하셨지만

불행히도 청년은 그 보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대로

오늘의 이야기는 거론했다는 것 자체만 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급진적이고 과격한 문제에 대해

여러분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마치는 말

각자의 사각지대와 우리교회의 사각지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십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십시다!


그러면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마구 드러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와 우리 자신을 달리 볼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를 가까이, 친근히 대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해 질 것입니다.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런 삶을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믿음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 딛는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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