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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통곡, 믿음의 손익분기점

LNCK 2012. 2. 22. 21:33

◈베드로의 통곡, 믿음의 손익분기점      마26:69~75         출처


 

▲내용 요약

설교 제목이 <베드로의 통곡, 믿음의 손익분기점>입니다.

‘손익 분기점’이란.. 투자금을 다 회수하고, 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3번 부인한 베드로가, 닭이 운 뒤에 심히 통곡합니다.

바로 이 순간이 베드로 신앙의 손익 분기점입니다.


이때부터 베드로가, 예수님을 신앙하는 일에 이익이 발생합니다.

(그 이전에는, 베드로의 신앙에, 어쩌면 진정한 이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 통곡의 지점을 통과해야.. 신앙의 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이 지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신앙 하면 할수록, 손해로 끝나버리고 마는 거예요.


자, 베드로의 통곡이 신앙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이유가 뭘까요?

로 이 통곡의 순간에.. 베드로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 바로 직전까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순간이라는 겁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 베드로가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눅22:60~61


이제부터 신앙의 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왜? 진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순간들은 다 뭐였나요?

그건 예수님을 만난 순간이 아닌가요?’


네, 그 때는 아직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니에요.

그저 자기 장래에 도움이 된다고.. 예수님을 쫓아다닌 겁니다.

과거에 출세하려고, 정치인 무작정 쫓아다닌 사람들처럼요!


지금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과정에 참여해서, 멀리서 관망하고 있다가,

‘너도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말하는 계집종의 질문으로부터

3번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게 됩니다.


이게 지금 예수님을 진짜로 만나기 위해.. 가고 있는 과정이에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이 단계가

진짜 예수님을 만나기 바로 직전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예요.


지금 베드로가 어떤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습니까?

3년 동안 베드로가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것은, 진짜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베드로 자기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고 비즈니스였습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시간을 다 바쳐서, 생업과 재산을 다 뒤로 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예수님만 쫓아다녔습니다.


베드로 자신으로서는,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한 겁니까?


그런데 오늘 공회에서 예수님이 재판받으시는 이 순간,

진정으로 배반한 쪽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배반하신 겁니다.


좀 심하게 말씀하자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기 치신 거예요.


한 번도 그런 약속을 공식적으로 해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얼마든지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간접적으로 그런 약속을 받아낸 것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르게 될 경우,

집도 버리고 생업도 버리고 하루 24시간 365일 전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 내 인생을 다 투자했을 때


내 인생의 미래가 확고한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기적적인 능력과, 그분의 메시아 칭호 되는 그 정황을 볼 때,

제자들은 간접적으로 뭔가 미래를 약속 받은 겁니다.


그런 ‘미래의 청사진’ 없이,

누가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나섰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공회에서 재판을 받게 되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장부를 놓고 손익계산을 하다보니까
그렇게 3년 동안 투자한 모든 것이.. 다 무효가 돼버리고..

심지어는 손해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자기 인생의 미래를 위해서는,

예수님이 쓸모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이유는

그분의 능력/ 그분의 지혜/ 그분의 리더십/ 그분이 메시아라는 사실,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인생 투자를 했던 것이에요.


그런데 공회 재판 장면을 통해서, 예수님의 유죄 판결 기미를 보니까,

베드로가 보고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 사라집니다.

베드로가 알고 있는.. 메시아 칭호가 사라집니다.

베드로가 알고 있던.. 예수님의 리더십이 사라져 버립니다.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그 능력들이..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바다 위를 걷고 파도를 잠잠케 하던 신적인 권세가.. 예수님에게서 사라져버립니다.


능력도 없고, 권세도 없고, 지혜도 없고, 메시아적 리더십도 없는..

그런 무능한 예수님을.. 베드로는 이제껏 믿어본 적도.. 따라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해버립니다.

단순히 베드로가.. 자기도 체포될 것이 두려워서 만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솔직한 거예요, 그런 예수님은, 자기가 모르는 거예요.

저렇게 침 뱉음을 당하고 뺨 맞고 무력하게 재판 받고 있는 저런 예수님을

베드로는 알았던 적이 없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내면적으로 굉장히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답을 한 겁니다.

‘저런 분을, 나는 모른다!’고요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아버지가 연탄 리어카 끄시면

어떤 아들은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잖아요!

아마 이런 측면도 분명히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실질적으로 배반한 쪽은, 베드로가 아니고 예수님이에요.

모든 기대를 다 저버리고 무력하게 죽음을 향해 가는 예수님이

베드로와 12제자를 배반한 것이죠.


아니 일제시대 때, 만주에서 일본군과 열심히 싸우던 독립군 지도자가,

하루아침에, 자기 스스로 혼자 걸어가서, 일본군에 투항(항복)해 버리면,

그거 나머지 모든 독립군에게 배신한 것.. 맞아요.


 

◑베드로의 손익분기점 시작 포인트


자, 이렇게 완전한 실패로 끝난 이 지점이

왜 이제 신앙의 손익분기점이 되어서

이제부터 예수님을 신앙하는 것이, 이익으로 전환되게 됩니까?


예수님을 부인하고 나서 통곡하는 이 순간에

베드로는 진짜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베드로는, 아직 한 번도

인격자이신 예수님 그 자체를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 인생을 위하여 능력으로 채색된 예수님,

-권세로 옷 입으신 예수님,

-메시아라는 칭호를 머리에 쓰고 계신 예수님을 만났지..


-인격자이신 예수님 그 자체를 만나본 적은 없었던 거예요.


마치 뉴스에서 가끔 보면,

돈 없고 나이 드신 부모님을, 자식들이 내다버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내 인생의 미래에 있어서.. 이제 부모가 더 이상 투자가치가 없어요.


부모님이 재산을 잔뜩 갖고 계시면.. 거기에 투자가치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만나는 게 아니에요,

부모와 비즈니스를 하는 거고, 부모자식 관계도 투자관계가 되지요.


부모가 완전히 돈이 없고 능력이 없고,

내 인생을 아름답게 설계해 가고 성취해 가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될 때가 되어야

비로소 부모님을.. 인격자로서 진실로 만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겁니다.


그전에 부모님이 능력이 있어서 부모님께 갈 때는.. 그건 투자고, 비즈니스예요.

진정한 의미에서의 효도는 아닙니다.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 상봉, 북한에 있는 부모님.. 아무 도움이 안돼요.

그런데 울며불며 그 부모님을 찾기 위해 난리를 합니다.


바로 부모님이기 때문에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되어도,

만나면 실제적으로 오히려 짐이 돼요.


그런데도 그 부모님을 찾는 마음이에요.


이 지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베드로의 신앙에

‘손익분기점’(이윤 시작점)이 시작되는 겁니다.

즉, 예수님을 아무 세상적 기대 없이 순수하게 따를 때..

비로소 참 신앙/참 믿음이 시작되는 겁니다.

 

자, 베드로가 이제 비로소 능력 없는 예수님, 지혜 없는 예수님,

침 뱉음을 당하고 뺨 맞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부인하고 나서 통곡하는 순간에

(아무 세상적 기대 없이) 인격자로서 예수님 그 자체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이 순간부터 이익이 발생합니까?


과거에는

베드로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예수님을 비용으로 투자하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고 싶어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집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다 상대를 이용하려 하고,

심지어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조차, 내 인생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의 지혜, 그 능력과 지혜 때문에

예수님이라고 하는 인격체 자체를 간과하면서

예수님을 완전히 내 인생의 성공을 위해 비용으로 지불한 거예요.


이것은, 예를 들면,

구리 1kg(내 성공)을 얻기 위하여, 금 1kg(예수님)을 투자/이용한 것과 같습니다.


내가 사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관계 맺는 모든 시간, 그 기도하는 모든 시간을

내 사업의 발전을 위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끌어들이려고 예수님을 불렀다면


내 사업이라는 구리 1kg을 위해서

예수님이라는 금 1kg을 투자/이용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내 사업이 잘 됐을 때, 내가 기쁘고 행복한 가치가 구리 1kg이라고 한다면,


그냥 예수님을 내 사업에 써먹지 말고,

예수님을 인격 자체로 만나서, 내가 예수님을 믿었을 경우에

금 1kg의 행복과 기쁨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이전까지는 자기 인생의 성취와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구리 1kg과 같은 자기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금 1kg과 같은 예수님을 투자해버렸다는 얘기에요.


이게 웬 바보 같은 짓입니까?


지금 예수님이 누구세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눈앞에서 침 뱉음을 당하시고

이 세상 권세 앞에 무릎을 꿇고 계시고, 세차게 뺨을 맞으시고,

천하에 무력한 자의 모습으로 서 계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이, (명색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세상의 아버지도, 그 하나님의 백만분의 일밖에 안 되는 능력이 있어도

나를 이 지경으로 놔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근데 하늘의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고 하는데, 지금 내 꼴이 이게 뭡니까?


우리 아버지가 그 하나님의 백만분의 일의 재력만 있어도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아요,

내가 이 사회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살지는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아버지라면서

독생자까지 희생시키시면서

나를 아들과 딸로 삼았다고 하시면서

왜 나의 삶을 이 모양 이 꼴로 인도하시는 겁니까?


왜 아무것도 주시지 않는 겁니까?


왜 초기 베드로의 소원처럼,

내 인생을 향한 내 소원 인생에서 갖고 있는 내 꿈과 비전 중에

백분의 일도 이루어주시지 않는 겁니까? 왜요?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다이아몬드 1kg을

‘내 인생’이라는 지푸라기 1kg에 비용으로 지불하려고 합니다.


사업이 안 됩니까?

자식이 문제입니까?


자식이 문제라고 하는 관점조차도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자식에게 주어지지 않을까봐 겁나하는 것 아닙니까?


그 관점이

하나님으로 얻을 수 있는 다이아몬드 100kg 같은 그런 행복과 기쁨을

지푸라기 1kg과 같은 이 세상의 일을 위하여 다 꼬나 박고(투자하고) 있는 거예요.


◑베드로가 통곡하는 순간 


그런데 베드로가 통곡하는 순간이 뭡니까?

베드로는 지금까지,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예수님의 능력만 보고, 지혜만 보고, 권세만 보고.. 쫓아 다녔어요.


그러다가 무력한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비로소 예수님을 인격 자체로 처음으로 대합니다.


그리고 순간에 3년의 생애를 돌아봅니까,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머릿속이 돌아가는 거예요.


3년 동안 예수님이 나한테 뭘 잘못하셨나요?


나를 사랑만 해주신 분이었습니다.

나를 벼슬에 올리지는 못했고,

내 꿈을 이루어주시지는 못했고,

내 소원대로 움직여 주시지는 못했고,

내 인생의 미래에 대해서 쓸모없는 분이 되었지만


3년을 뒤돌아보면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주셨던 분이에요.


내 이 땅 위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아무 유익도 없이

결국은 투자한 모든 시간들이 손해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예수님으로서 비로소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능력도 제거되고, 지혜도 제거되고

권세도 제거된 예수님, 메시아라고 하는 정치적인 리더십도 제거된 그 예수님을

인격으로 만나면서.. 통곡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 통곡의 시간을 지나면서

베드로는 이제 이 세상의 지푸라기 1kg와 같은 자기 인생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은,

하나님 되신 예수님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그 하늘나라의 100kg의 다이아몬드의 무게와 같은 그 행복감에 겨워 있을 때,

이제 이 땅에서의 인생은.. 더 이상 베드로의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베드로를 통해) 실천해나가시는 거죠.


베드로의 인생은,

이제 하늘을 갖고 천국을 갖는 신앙의 이익발생의 방향으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이루면

주님 그 자체의 인격 되신 그분의 값을 넘어서는,

기쁨과 행복이 있겠습니까?


아직도 주님의 능력과, 권세와, 지혜와 주님의 인기를 도움 받아서(이용해서)

이 세상에서 내가 꿈꾸는 인생을, 한번 잘 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으로 사십니까?


아직 베드로가 부인하는 시점까지도 오지 못했고,

통곡하는 시점까지도 오지 못한 거예요.


그 예수님을 부인하세요.


그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것에 몸달아하는.. 나를 부인하는 겁니다.


그 예수님은 부인되어야 하고,


-권세 빠진 예수님

-능력 없는 예수님,

-침 뱉음 당하는 예수님,

  이 예수님을 사랑하세요!


지금 재판받고 있는 이 예수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예수님을 통해 주시려고 했던 다이아몬드 100kg에 해당되는

그 행복과 기쁨이 내 것이 되는

신앙의 유익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아직도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님 자체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권세 있는 예수님, 능력 있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해주시고,

아무 능력 없는 침 뱉음 당하는 예수님 앞에서 통곡하며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