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행할 길 잠22:6 설교스크랩, 편집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22:6
▲자녀를 잘 키운 권사님의 비결
제가 아는 권사님은, 아주 그 자녀들을 반듯하게 잘 키웠다.
자녀들이 신앙도 그렇게 좋고, 사회적으로도 다 성공했다.
그런데 그 권사님 어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밖에 못 다녔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어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자녀들을 잘 길렀는지...
그 어머니가 어떻게 자녀들을 훌륭하게 길렀는지 ‘그 비결이 뭡니까?’ 물어보면
‘저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도 못 마쳐서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자녀들이 스스로 잘 자라 준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비결이 있었다.
그 어머니 권사님은,
자녀들이 공부를 하면, 꼭 그 곁에 앉아서 성경을 펴놓고 읽었다.
자녀들이 새벽 1~2시까지 늦게 공부를 하더라도, 결코 어머니가 먼저 자는 법이 없었다.
꼭 그 곁에서 성경을 펴놓고 읽었다.
성경 읽다가 눈이 아프면.. 뜨개질을 했다.
뜨개질을 했다가, 풀었다가, 했다가, 풀었다가 했다. 뜨개질이 원래 목적이 아니니까.
그렇게만 했는데도, 이것이 자녀들에게 큰 교육이 되었다.
그래서 그 모든 자녀들을 반듯하게 잘 기른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았다.
여러분, 보시라.
부모는 TV보면서, 자녀들보고 ‘공부해라!’ 그런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적어도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집에서 TV연속극을 보지 마시라.
부모는 거실에서 TV연속극 보고 있는데, 자녀는 방에서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공부에 집중이 되겠는가?
초등학교도 못 나온 어머니였지만,
공부하는 자녀 옆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성경을 읽기만 해도,
자녀들에게 큰 교육이 되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부모의 등 뒤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그렇다. 부모가 열 번 ‘공부해라. 신앙생활 열심히 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부모가 먼저 본을 보이는 것.. 그러면 말이 필요 없다.
그 권사님이 본을 보이신 것은.. 공부하는 자녀 옆에서, 함께 있어주고,
늘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잠22:6
요즘 우리 자녀들은, 배우는 게 너무 많다.
피아노, 웅변, 태권도, 수영, 스키, 서예, 컴퓨터, 미술, 학교 공부.. 등 정말 다양하다.
그것들 중에 ‘마땅히 행할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는데,
그게 과연 뭔가?
- 저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본다.
성경 속에, 자녀들이 ‘평생을 살아가며 마땅히 행할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아이들이 커서, 글을 읽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성경을 읽게’ 했다고 한다.
링컨도 대통령이 된 후에 고백하기를
‘오늘날 내가 있게 한 것은, 9살 때인가 어머님이 임종하면서 물려주신 성경책 때문이었다!’고 했다.
성경교육은, 어릴 적부터가 좋다는 것이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가면,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위에 새 발자국이 있다.
여러분, 바위 위에 어떻게 새 발자국이 새겨질 수 있는가?
아마 그 바위위로 무거운 코끼리가 지나가도, 발자국이 새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가벼운 새가 바위 위에 앉았는데, 발자국이 새겨졌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 단단한 바위도, 한 때는 무른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위가 (화산의 용암이 뿜어져 나왔든지) 물렁했을 때, 한 번 새겨진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의 마음이, 물렁물렁할 때가 있다.
어릴 때이다.
그때 말씀을 새겨야 한다. 그러면 그 말씀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22:6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어느 유명한 교육 심리학자에게, 젊은 엄마가 물었다.
“선생님, 저희 아이는 이제 세살이 되었는데, 언제부터 교육을 시켜야 할까요?”
그러자 그 교육학자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하였다.
“세살이나 되었다고요? 안 됐습니다만, 3년이 늦었습니다.”
동양에서는 태교(胎敎)라 하여, 배속의 있는 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해 왔다.
요즈음에는 서양에서도 이 방면의 연구가 활발하여
외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재미난 보고가 실려 있다.
지휘자 보리스 브로트의 신기한 경험
언젠가 그는 미국의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 초대받아 지휘하게 되어,
처음 보는 악보를 넘기면서, 바짝 긴장하여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첼로가 독주를 하는 부분에 다다르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곡이 아주 잘 아는 곡조일 뿐만 아니라
악보가 눈에 익어, 자연스레 감정을 넣어가며 연주를 마쳤다는 것이다.
하도 신기하여, 그는 첼리스트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경험담을 얘기하자
어머니도 신기해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참으로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실은 내가 너를 임신하였을 때
바로 그 곡 중의 첼로 솔로를, 내가 연주하게 되어
무거운 몸으로 매일 몇 시간씩 열심히 연습을 하였는데,
그 때 네가 뱃속에서 그 곡조를 다 듣고, 악보도 보았던 모양이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자장가도 알아듣는다.
어떤 엄마는 아기를 가졌을 때, 그 뱃속의 아기를 위하여 자장가를 불러주곤 하였는데,
아기가 태어난 다음, 다른 자장가를 불러주면 잠을 안 자다가도,
임신했을 때 부른 그 자장가를 불러주면.. 아기가 잠을 잘 자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말씀도 반드시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의 헨리 투루비 박사는, 6개월 이상 된 태아들은
분명히 음악을 들을 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며, 그의 연구 결과를 밝혔다.
즉 비발디의 음악을 태아에게 들려주면,
뱃속에서 마구 발길질을 하던 아기들이 모두 조용해지고,
락(Rock) 음악을 들려주면,
조용하던 태아들이 난폭하게 발길질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개의 경우 임신 2개월까지는 여자 자신도 임신한 것을 모르고 있는데,
그 기간은 태아는 가장 중요한 신체의 기본요소가 생성되는 중요한 기간인데,
이를 모르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한다면
태아가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 것인가?
▲아이에 대한 감정 다스리기 <글/윤화중>
잔소리를 하기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하라.
그걸 누가 모르는가?
아이에게 짜증내고, 신경질을 부리는 등 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내 보이지 말라.
그것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지시 명령조로 말하지 말라.
조급하지 말고 아이를 기다려라.
아는 것대로 된다면, 아마도 대한민국의 자녀들은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일등 자녀들이 될 것이다.
근데, 그게 왜 안 되는가?
지행합일(知行合一)이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아이에 관한 한 지행합일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평상시 사회생활에서
감정 조절이 잘 되는 사람이라도
아이에 관한 문제라면 감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아마도,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고 한다.
열 달 내 배 아파서 난, 어떤 진귀한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하디귀한 내 새끼,
어찌 그런 내 새끼를 남 보듯 할 수 있겠는가?
온갖 희망과 기대를 한 몸에 담고 태어난 내 새끼인데...
아니, 그 귀한 내 새끼가 하는 짓마다.. 맘에 안 드니
어찌 열이 치받지 않겠는가?
지 잘되라는 일은 거들 떠 보지도 않고,
지에게 좋다는 건 만지지도 않으니...
아니, 이 녀석이 누굴 닮아 부모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엇나가기만 하는가 말이다.
그러니, 어찌 잔소리를 안 하고,
신경질과 큰소리가 안 나겠는가?
맞는 말이다.
그 심정 골백번이라도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많은 선각자들이 그래도 그건 아니다 라면
바꿔야지 별 수 있겠는가?
방법은 있다.
어렵지만 쉬울 수도 있다.
그것은 기대를 버리고, 아이를 보라는 것이다.
아이는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듯
아주 조금씩 변화해 간다.
말을 배우는 아이, 걸음마를 배우던
내 아이를 생각해 보라.
아이는 내 말 한마디에 변화하겠지..
하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아직은 어린 아이니까 하는
미성숙을 특징으로 하는 아이의 모습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것도 안 된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라.
내가 아무리 모범생이었다 한들
지금 내가 바라는 그런 아이였을까
반문해 보면 답이 나오리라.
'자식을 키워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라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서 얻은 지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나 역시 30년 전에는 그토록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것이다.
아이를 보는 눈이 달라지면,
아이를 아이로서 인정하기 시작하면,
아이에 대한 기대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부모들의 실망스런 감정은
많이 수그러들지 않을까?
아이는 하루아침에 변화하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그러면서 어느 날 우뚝 선
아이로 거듭 나게 되는 것이다.
'분류 없음 >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와 부활 신앙 (0) | 2012.02.24 |
---|---|
친구로 초대받은 자들의 운명 (0) | 2012.02.23 |
감사는 내 영혼을 지켜준다 (0) | 2012.02.22 |
모리아 산 사건은 십자가의 예표 (0) | 2012.01.17 |
승리가 아니라 초월입니다 (0) | 2012.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