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1

십자가와 부활 신앙

LNCK 2012. 2. 24. 12:06

 

◈십자가와 부활 신앙       요15:15               스크랩,   출처보기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본문에서 종과 친구의 차이는

하나님의 일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친구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알려 주시겠다고 합니다.

이는 성령이 오시면,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성도를 친구로 삼으신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리려고.. 친구를 삼은 것입니다.

이제 구원과 심판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뜰 신앙성소 신앙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막에 비유해 봅니다.


성막을 보면 성소로 구분을 합니다.  ※뜰(마당)과, 성소(장막)를 대비해서 보세요!

뜰은 오픈이 되어 있고, 성소는 숨겨져 있어요.


에선 성소 안을 몰라요.

성소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에서 안다고 하는 것은, 천막으로 덮여 있는 성소의 껍데기이지

그 안에 내용과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요.


성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면, 성소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성막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말해주고 있어요.

예수님은 성막의 삶을 사셨어요.

 

예수님을 일컬어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하지요. 계1:4, 4:8등

과거, 현재, 미래 시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제는.. 과거적인 의미로서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제는.. 현재적인 의미로서

성령으로 성도 안에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말해요.


예수님의 장차는.. 미래적인 의미로서 왕으로 신랑으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고 신부들과 천국에서 영원히 사실 것을 말합니다.


이걸 성막을 통하여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 있는 번제단에서 제물이 태워지는 것은, 예수님의 육체적 사역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상징합니다.  주1)


이건 예수님의 어제입니다.


성소 안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으로 일하시는 사역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성도 안에 오셔서 사역을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건 지금 현재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일하시고 계시는 현재입니다.


성소를 더 세분하면,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을 하는데, 하나님은 지성소에 강림을 하십니다.


지성소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은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말하는데

이는 장차 재림하시는 미래의 예수님을 말합니다.


우리 몸이 곧 성막과 뜰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옛 사람이 죽는 사건을 당합니다.

이건 어제이고, 뜰 신앙(단계)인 겁니다.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죽은 자에게

성령을 보내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나면.. 예수와 연합이 됩니다.

연합이 된다는 말은, 예수 안으로 들어간단 말입니다.


이걸 ‘내가 주 안에 주가, 내 안에 거한다’고 합니다.

이건 오늘이고 성소 안 신앙인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 마음속 성소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소 신앙(단계)의 신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성령님’과 동행하지요.

그러나 뜰 신앙(단계)의 신자는.. 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 찾습니다.

 

그러니 뜰 신앙이 있고 성소 안 신앙이 있어요.


뜰 신앙은 요한의 세례이고,

성소 안 신앙은 성령세례를 말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아볼로를 일컬어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뜰 신앙(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 뜰에 머물러 있는 자를 계시록 11장에선

‘성전 뜰에 있는 자’라고 하면서, 이들을 척량하지 말라고 합니다.

척량하지 말라는 것은 14만4천의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 자란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구원 얻은 무리를 14만4천명이라고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제한 된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뜰 신앙으로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뜰에는.. 번제단이 있었고, 거기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제물로 돌아가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신앙’이 중요하지만.. 거기에 머무르면.. 뜰 신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전 뜰에서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은

성전의 성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신약의 성전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즉 내 안에..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뜰 신앙에 머물지 않고) 성소 신앙으로 사는 성도입니다.


*지난 호에서,

이런 성소 신앙은.. 예수님의 친구, 예수님처럼 죽는 성도가 된다고 했고,

*이번 호에서

이런 성소 신앙은.. 주인이 하는 모든 일들을 다 아는 친구입니다.

주인과 교제하니까요! 종이 아니니까요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즉.. 뜰 신앙은..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는 자이고,

성소 신앙은.. 예수님의 친구로서 사는 자입니다.


 

◑십자가 신앙을 믿는다면서.. 제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십자가 신앙(뜰 신앙)을 믿는 신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기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죄를 다 대속했으니,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신학적 관점에서는, 신자의 방종을 묵인해 줍니다. 

제 멋대로 살아도, 결국은 구원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 신앙의 일면만 이해한 것입니다.


진정한 십자가 신앙은.. 성소 신앙까지 나아갑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다시 세상에 오셔서

성도 각 사람을 성전/성소 삼고, 그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각 성도는.. 그 내주하신 성령님/예수님과

늘 동행하며 삽니다. 교제하며 삽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이런 성도가, 제 마음대로 방종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집에 목사님이 몇일 묶고 계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목사님이, 내가 가는 곳마다 동행하며, 따라다닌다고 가정해 봅니다.

내가 제멋대로 방종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십자가 신앙은

뜰 신앙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 단계에서 결코 머물지 않습니다.

거기서 나아가서

성소 신앙 (부활 승천 예수님이, 성령으로 내 속에 오셔서, 나와 교제) 단계까지 나아갑니다.


‘뜰 신앙’은, 성경에선 육에 속하였다고 합니다.

육에 속한 자들은 그 안에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 육신적 크리스천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자기 안에 (동행, 교제하시는)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육신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안다고 해서, 다 아는 척하지 말란 말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이방인도 알아요.

귀신도 알아요.


육체로 오신 예수는 모두가 다 알아요.

그건 어제의 예수에요.  계1:4, 4:8등


그러나 성령으로 오신 예수는, 오직 자기백성들만 알아요.

자기 백성들은, 성령으로 오신 예수로 살아갑니다.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오늘의 예수, 현재의 예수님인 겁니다.

오늘/현재의 예수가 내 안에서 사시는 예수입니다.


이때 나는 종이 아니고, 친구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같이 의논하게 되지요. 요15:15 본문 


▶마치는 말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만 말하고

현재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예수님을 말하지 않는 것은

반쪽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지금/오늘/현재 우리 가운데 일하심을 부정하니까

성도의 삶이 ‘제 멋대로’가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십자가 신앙’으로

‘막 살아도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건 반쪽 신앙입니다.


진정으로 예수의 죽음을 알고,

내주하시는 예수님과 교제하면서 살면,

죄와 싸우고 멀리하고자 하는 성향으로 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해마다 더욱 더 성화된 진보/성숙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 짓는데 뭐 어때?’ 그러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겐 현재 예수가 없어요.

‘십자가에 죽은 예수’만 있어요.


그러므로 오늘/ 지금/ 현재 일하시는 예수님을 알아야 해요.

과거의 (십자가의) 예수가, 현재의 (내주하시는) 예수로 살아 계십니다.


성령 예수님이 나에게 오시면

종에서 친구가 되어요.


친구는, 성소 안에 들어가서 사는 자에요.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듯이,

내가 성소 안에, 주님이 내 성소 안에.. 계십니다.)


그러니 뜰에서 일어나는 것만 말하지 않고

성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

주1)

뜰에 있는 번제단은, 예수님에게 적용하면,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육체적인 죽으심은, 우리 옛 사람에 대한 죽음이에요.


예수님의 죽음은, 새 사람으로서의 살아남을 위한 수순입니다.

이건 마치 가나안을 가기 위하여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건너 온 것과 같아요.


번제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성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뜰에서 보면 성소 안은 미지(未知)의 세계에요.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가 본 사람만 알고, 그것을 증거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