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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화살을 멀리 날려 보내자

LNCK 2012. 3. 9. 17:49

 

◈자녀의 화살을 멀리 날려 보내자      시127:4      12.01.29.설교녹취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시127:4

 

※통찰력이 스며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것을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듭시다.



◑자녀가, 부모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본문에, 자녀를 화살에 비유한 것은, 아주 적절한 비유이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mighty man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다.


힘센 장사가 쏘면, 화살은 멀리 날아간다.

쏘는 사람보다도, 앞서 날아가는 것이 화살이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다.

화살을 쏘는 궁수와 비슷하다.

미래를 향하여, 멀리 날아가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가, 부모가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부모가 해보지 못한 것을 하기를 바란다.

멀리 멀리 창공을 날아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왜냐하면 많은 부모의 마음은,

자녀가, 자기(부모)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내가 이런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내 자녀가 당연히 그 학교를 나와 주어야 하고’

‘내가 이런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자녀도 당연히 그 직업을 계승하게 되기를 바라고,’

‘내가 이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내 후손도 당연히 그렇게 살아주기를 바란다.’


즉 자기 자녀를.. 부모의 복사판으로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리라.


과연 부모가 스스로를 얼마나 위대하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성공의 기준, 삶의 기준으로.. 자녀가 똑같이 살아주기를 바란다는 것인가?


자녀가 자기 삶을 그대로 되풀이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가?

자기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자녀는 자식대로 자기가 갈 길이 있다.

부모가 그것을 찾는데 도움을 줄 필요는 있지만,

부모의 길을 반복하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내가 그렇게 위대한가?

내가 그렇게 행복한가?

나는 자녀가 나처럼 되어주기를 바라는가?’


만일 이 질문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왜 다들 자녀가 자기처럼 되지 못해서 야단법석인가!


저는 제 자녀가, 아버지인 저처럼 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건 어떻게 보면 징그러운 일이다.

그건 교만하고, 미련하고, 불필요한 것이다.


저는 자녀가

화살처럼 더 멀리 날아가기를 원한다.


제가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제가 가 보지 못한 지점을 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길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최고의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부모 본인을 위해서도 유익하고,

내 자녀를 위해서도 유익하다.


그래야 발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래를 향해 ‘화살’을 날려 보내야 할 때


지금 우리 사회는 IT사회로 전환과 더불어 고비(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교회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고비라는 말의 의미는,

이전에 먹히던 방식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되는데,

그냥 조금 나아져서 되는 게 아니고,

창조적인 파괴 (또는 radical change)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 개인적 바램은 올해 대선에서 승리할 미래의 지도자는

국가의 미래에 대하여, 더 나은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해 주는 분이 되기를 바란다.


그냥 자신의 지지층을 결속하려는 정당과 지도자보다는,

나라가,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어떻게 해야 더 ‘잘’ 살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미래형 지도자가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


그저 자기 지지층 결속에만 애쓰면서, 무조건 당선에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기반으로, 더 나은 미래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방향이냐?’

 

이런 점을, 오래 도록, 깊이 고민하며 관심을 가지신 분이, 이런 게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즉, 미래의 비전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시는 분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 바람이다.

 

교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개신교에 대해서, 실망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교계지도자들은 구태의연한 것 같다.


제일 변화가 더딘 곳이 교회요, 목회자인것 같다.


이런 식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

구태의연한 모습뿐이라면,

우리는 좀 더 급진적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제 개인적 바램이 있다면,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선구자적 정신으로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어서,

그 분야를 계발하고 개척해서

우리 국가의 경제를 발전시킨 것처럼,


그 후손들도, 동반성장을 염두에 두면서,

대기업들이 할 수 있는, 좀 창의적이고, 미래적인, 미개척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기업이, 지방 중소기업들과 경쟁을 하는 것보다는

‘장사의 수중에 들린 화살이 한껏 당겨져서, 멀리 창공을 날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분들의 수고와 노고에 감사드린다.


      (대기업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모두는, 이제 창의적으로, 래디컬하게

미래를 향하여.. 필요하다면 과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더 멀리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들이 되자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든지..

그런 급진적 변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비니까!



◑전통의 화살을 멀리 날려 보내려면


비판은 쉽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려운데..

우리 다음 세대가, 전(화살)통의 화살과 같아서

멀리 날아갈 수 있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모두가 기도하며 고민해야 되는 부분이다.

저는 나름대로 이렇게 3가지를 생각해 본다.


▲1. 나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나 처럼 되라’라든지

‘왜 나처럼 생각하지 않느냐?’ ..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적어도 다음 세대가

나보다 낫기를 바란다면,

나를 버려야 한다.


내 시대까지는 이렇게 살았지만,

‘너희는 더 나아져야 한다..

너희는 나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네 생각이 내 생각보다 더 옳을 수 있다..’

부모 세대는, 이런 개념을 가져야 한다.


‘너는 나보다 더 의롭도다!’

‘너는 나보다 더 옳도다’는 말이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한 말이다.


과연 부모 중에 몇 명이, 자기 자녀세대에게

‘너는 나보다 더 옳도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그런 정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자란다. 성장한다. 믿고 기를 세워주어야 한다.

 

과연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대하여 그런 믿음(너는 나보다 옳도다)을 갖고 있으면..

미래는 잘 될 것이다.


여러분,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생각이 다르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은 젊기 때문이다.


‘세대차’는, 어느 시대에든지, 어느 나라에든지 존재해 왔다.

그게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왜 그래?’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이 더 옳을 수 있다는 사실,

그들이 더 의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인정해 줄 때,

정말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더 나은 세대가 될 것이다.

그들은 더 순수하고, 더 열정적이고, 더 창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 믿고 맡겼다가

‘그들이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런 염려할 필요는 없다.


기성세대인 우리 모두도, 과거에

실수를 통해서 배워서.. 오늘날 이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그들도 우리처럼 실수를 통해서 차츰 배워 나갈 것이다.


그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현실을 아는 젊은이들은.. 젊은 게 아니다.


현실을 잘 아는 젊은이들은, 벌써 늙은 구닥다리처럼 되어서,

그들에게서 뭔가 창의적인 것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저 늙은이 뒷바라지는 잘 할지 몰라도..


▲2. 그들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해 보도록 허락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

주도권을 맡겨야 한다.


여러분, 부모와 자식 간에 왜 대화가 안 되는가?

부모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자식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더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의견, 아버지/어머니의 의견만 말하지,

자녀 세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을 전통의 화살처럼, 부모보다 앞장세워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아니면.. 기성세대가 다 붙잡고 있으면..

지금 현재는 무난하게 잘 운영될지 모르나..

시간이 갈수록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길을 열어주셨다.

제자들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횡~하고 떠나가 버리셨다.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그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시고, 승천해 버리셨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길을 열어주신 의미도 있다고 본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것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14: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같기만을 요구하신 게 아니고,

당신이 하신 것을 되풀이하는 것만을 요구하신 게 아니다.


내가 한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말씀은, 내가 떠나버려야, 제자들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뜻도 된다고 본다.


실제로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해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로마까지 가서 전하고, 이방나라에 가서 전하고,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전했다.


아무 자격도 안 될 것 같은 제자들에게

믿고 맡겨버리고 떠나셨는데

결과는.. 더 잘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시고,

‘네 믿음대로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한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그들 제자들의 미래와 가능성을 열어주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턱없이 부족한 것 같지만, 다음 세대에 믿고 맡겨야 한다.


만약 지금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믿고 맡기지 못하면,

우리 가정, 공동체, 사회의 위기는 끊임없이 계속 되거나

아니면 침울한 ‘노인 중심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노인을 차별함이 아니라,

젊음의 패기, 역동성, 창의성, 미래성이.. 다 사라져버리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믿지 못하고, 그들에게 맡기지 못할 때.. 그러하다.


▲3. 활을 쏘는 것은 부모지만, 날아가는 것은 화살(자녀)이다.

부모가 대신 날아갈 수 없고, 같이 날아갈 수도 없다.


자녀가 결혼해서, 웨딩마치 할 때,

부모가 그 뒤를 졸졸 따라갈 수 없다. 가서도 안 된다.


이제는 두 사람만이, 자기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모가 계속 졸졸 따라다니면.. 그것은 자녀들의 삶을 가로막는 것이다.


화살은 멀리 날려서 보내주어야 한다.

이삭이 자기 아들 야곱을 축복한 다음에 하란으로 보낼 때..

아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야곱을 혼자 떠나보냈다.


자녀를 (결혼식 때) 축복했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 믿어야 한다.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본인들이 기도하고, 본인들이 개척해 나가도록 믿고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모가 졸랑졸랑 따라가면,

그것은 자녀의 미래를, 부모가 가로막는 것이다.


야곱은 요셉이 팔려갔다는 그 사실조차 몰랐다.

수 십 년 후에 그 아들 요셉을 상봉했더니,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다.


자녀를 멀리 떠나보낸 것이.. 결국은 더 잘 되더라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렇다.


한국에 오래 동안 특파원으로 주재했던 외국기자가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인의 특징에 대해 제일 처음 지적한 것은

‘한국인들은 과거지향적이다’ 라고 말했다.


한국인들과 만나면 ‘과거 얘기를 주로 하더라’는 것이다.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다’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부모가 자식이 자기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도

우리가 과거지향적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변화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와 있다.


이제야 말로, 정말로 믿음이 필요한 시대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 가운데 다음 세대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잘 쏘는 것으로 유명했다.

고구려의 시조는 고주몽인데.. 주몽이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말을 타면서 활을 쏘는 조상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결국 우리가 미래를 향하여, 활을 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믿음으로.. 미래를 향하여.. 다음 세대를 쏘아 올려야 한다.


다윗의 물매돌이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는 믿음을 갖고서, 자녀들을 미래를 향해 날려 보내야 한다.


다음 세대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

자녀들의 세대에 더 나은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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