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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덕분에 신앙

LNCK 2012. 3. 8. 20:45

◈'고난 덕분에' 신앙                   욥1:6~22                      스크랩, 출처 



▲1. 환란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본문에, 그처럼 유복하게 살았던 욥에게도 고난이 갑작스럽게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는 ‘하루는’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1:6

 

그리고 계속해서 ‘갑자기’라는 단어로 모든 상황이 전개됩니다.  :15, :17

     갈대아 사람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17


     ※욥의 10 자녀들이 죽었을 때, ‘갑자기’란 단어가 없더라도..

       그 정황은 갑자기, 예고 없이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19


그러므로 욥의 환란은「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사건보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강도떼가 나타나 목장의 양떼들을 강탈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번개가 쳐서 목장의 가축 떼와 일꾼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돌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사랑하는 아들딸 10명이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모든 일은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입니다.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한순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우리나라 연간 총 사망자 수는 25만 5천명으로 하루 평균 7백 명씩 죽습니다.

그런데 71%가 암과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돌발적인 사고로 죽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불시에 찾아옵니다.

고난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날벼락같이 옵니다.


인생의 고난과 시련은 복병이 한순간에 들이닥치듯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반갑지 않은 불청객으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뜻밖의 사고로 평생 고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치명적인 암 선고를 받고, 사투를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뇌혈관질환, 심장병 등도.. 정말 소리 소문 없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찾아옵니다.


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이유를 모르는 어려움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착하고 선한 사람일수록

이유를 모르는 고난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흔히 봅니다.


욥은.. 이렇게 갑자기 불현듯 닥친 환란들을

과연 어떻게 대처해 나갔나요?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2. 환란의 3가지 긍정적 효과


이것이 바로 신자가 당하는 고난의 수수께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의아스럽게 여기는 고난의 신비입니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악인은 떵떵 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데,

착한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모질고 험한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설명한대로 욥은 어느 날 갑자기 재산을 다 잃고, 자식도 잃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잃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머리 숙여 존경하는 청결한 믿음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혹독한 시련을 당면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는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그의 환난에 대하여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고난의 현실에 대하여 잘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가지로 조명해 봅니다.


첫째, 교정적 고통입니다. 우리를 바로잡기 위해 고난과 징계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둘째, 건설적 고통입니다. 우리를 성숙한 성도로 만들기 위해 시련과 연단이 필요합니다.


셋째, 섭리적 고통입니다. 어떤 고난은 하나님의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합니다.

 

‘고통과 환란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통과 환란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즉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방법을 통해

더 큰 유익과 축복을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과 의사들이, 아이들을 수술하기 전에 이렇게 달래주는 말을 참조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내가 너를 아프게 할지는 몰라도, 너에게 손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도 고난의 숨은 뜻을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고난 때문에’라기보다, ‘고난 덕분에’라고 고백하면

더욱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문제 때문에가 아니라, 문제 덕분에 입니다.

가난 때문에가 아니라, 가난 덕분에 입니다.

약함 때문에가 아니라, 약함 덕분에 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약함이 약간 고통스러울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서 손해를 입히시지는 않으심을 믿으십시오.


당신의 약함 덕분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작용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욥이 보여주는 성숙한 태도 


인생의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는.. 우리가 선택할 영역입니다.

 

욥은 예상 밖의 불행에 예상 밖의 반응을 보입니다.

 

욥은 땅에 주저앉아 어리둥절한 상태로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아마 밤새도록 혼절한 사람처럼 넋을 잃고 망연자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그것이 본문 욥1:20~22절의 내용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1:20


그는 드디어 땅바닥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자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어버립니다. 얼마나 처절한 모습입니까?


그러다가 욥은 다시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것은 중동지역에서 표현했던 예배관습입니다.

그는 인생의 절망적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욥은 엄청난 슬픔 중에서도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초점이 결코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절한 비통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예배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내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 없었으니 죽을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리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21


그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하는 신앙을 보여줍니다.

그는 인생의 숙제를.. 예배로 풀어갑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욥의 순전한 신앙은 부를 얻는 데서도 입증되었고,

부를 누리는 데서도 입증 되었으며, 부를 잃어버리는 데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욥에게서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 같아도 하나님은 남아 계셨습니다.

하나님만이 그의 인생의 전부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욥기 1장의 결론은 이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1:22


이것이 욥의 오뚝이 신앙입니다.

욥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일어나는 역동적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에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숙한 신앙인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4. 주님께서 나를 울타리로 둘러치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면 욥은 어떻게 이런 오뚝이 신앙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본문 10절이 그 대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능력과 사랑의 울타리로 보호해주십니다.』:10


10절의 원문에서는 『주님께서』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합니다.

주님께서 울타리를 쳐서 보호해 주시고, 주님께서 축복해주시고, 번성케 하신다’고..

사탄이 스스로 입증해줍니다.  10절은 사탄의 코멘트


오늘도 우리 인생의 어떤 돌풍과 소용돌이에서도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주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 만큼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는

오뚝이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잃더라도,

주님은 여전히 함께해 주십니다. :10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어나

예배하며 살아가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천안 낮은교회 홍혁기 목사님의 시를 읽으며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큰 확신을 얻었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희망을 품고 여기까지

왔더니 더 큰 것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아 아

이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주저앉고 싶습니다.


네 앞에 무엇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 이제까지

네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붙들고

내가 너에게 힘을 주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주여 쉬운 길은 없나요.

제발 쉬운 길로 가게 해 주세요.


왜 이렇게 어려운 길로

저를 이끌어 가시나요.


쉬운 길은 없단다.

넓고 편한 길은 멸망의 길이요


좁고 협착한 길은 생명으로 가는 길이란

내 말을 잊었느냐.(마7:13,14)


주여 굳이 이러한 길로

가야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길로 가지 않으면

네가 강해질 수 있겠느냐.


철이 들 수 있겠느냐.

겸손해 질 수 있겠느냐.


나를 의지할 수 있겠느냐.

네 힘으로 가려고 하지 않겠느냐.


고통과 시련을 당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정금 같이 될 수 있겠느냐.(욥기 23:10)


산을 하나 넘을 때마다

강을 하나 건널 때마다


언덕을 하나 넘을 때마다

눈보라와 사투를 벌일 때마다


비바람과 싸울 때마다

폭풍우를 견딜 때마다


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네가 얼마나 겸손해졌는지


네가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너의 모난 데가 떨어져 나갔는지


네가 얼마나 빛이 나는지

너는 아느냐.


저 눈 덮인 바위산 뒤에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 말라.

너를 위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란다.


나는 너의 방패요 네 영광이요

네 머리를 들게 하는 자니라.(시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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