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계3:5 스크랩글 정리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5
<주제 요약>
운동회 때, 모든 아이들이 달리기를 합니다.
한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자기가 벌떡 일어나서, 자기 힘으로 다시 달려야 합니다.
아이가, 부모 얼굴을 찾으면서, 대신 달려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안타까워서, 뛰어가서, 대신 달려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아이처럼 행한다는 것입니다.
부모 보고 대신 달려 달라고 부탁(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게 믿음인 줄 압니다만..
그러면 탈락(천국 낙방)입니다.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들을 줄을 모릅니다.
모두가 만사형통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마치 이와 같습니다.
장애물 경기를 하면서 ‘심판관님 저 장애물 좀 치워 주세요.’
지금 그는 자기가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애물 경기를 시켰습니다. <천로역정>을 보십시오.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신자들은 그것을 뛰어 넘을 줄 모릅니다.
다 심판관(하나님)이 치워 주셔야 되는 줄 압니다.
그리고 심판관에게 치워 달라고, 늘 부탁(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천국 가는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것을 뛰어 넘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기는 자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여자와 어린아이는 계수함을 받지 못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천국은.. 사탄과, 세상과, 육신을 이긴.. 강한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언약이 왜 할례에서 시작 되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할례는 육을 잘라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육체의 법’을 행했으나, 지금 복음의 시대는 ‘영의 법’을 말합니다.
안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훨씬 더 강화 되었습니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 돌려 대야 합니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줘야 합니다.
이것은 악한 자를 대하는 법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살인죄입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했습니다.
이것들은 형제 사랑에 관한 법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제에 관한 법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것들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 동행으로 가능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을 할 때, 상대편을 이기기 위해서는
법대로 경기하며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자기가 싸워서 이기지 않고
심판관에게 부탁해서 이겨 달라고 하면 됩니까?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름으로.. 마치 이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싸워 이길 생각은 안 하고, 자꾸 심판관에게 부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맷집을 기르고, 자기의 영적 실력, 즉 믿음을 길러야 하고,
자기의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길 수 있는 시험들입니다.
▲우리의 상대 선수인 적은 사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 이기는 자를 골라내기 위하여
상대 선수인 사탄을 두었습니다.
우리의 상대 선수인 적(사탄)을 물리쳐야 할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듯이
우리는 기도로서 힘을 얻고, 언약을 믿음으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싸워야 할 자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장애물 경기하는 자가 심판관에게 장애물을 치워달라고 하면 됩니까?
믿는 자의 기도와 사상이 이렇습니다.
운동선수가 심판관에게 부탁하여 상대선수를 이겨달라고 하면 됩니까?
여러분이 싸우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도,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4:1
하물며 우리에게, 어떻게 사탄의 시험이 없겠습니까!
▲오늘날의 믿는 이들은 하나같이 욕심을 품고 있습니다.
또 교회 직분이 높을수록 자만심이 높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자신은 잘 믿는 자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평소 삶입니다.
우리는 변화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신부로서 어린양을 죽기까지 따라간 정절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 수는 계시록에 십사만 사천 명 뿐입니다.
‘전부가 다 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셀 수 없이 많지만, 한정된 숫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역사상 살았던 전 인류의 숫자에 비교하면,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노아 때, 노아의 8식구만 구원을 받았듯이,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은.. 예수님 말씀처럼.. 찾는 이가 적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자 되고 성공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신부로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삶..
이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준비입니다.
자만심을 버리고 낮아지는 것이 준비입니다.
악한 자를 대할 때, 죽은 자가 되는 것이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켜 자기 목숨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준비입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사랑을 따라 행함으로 법을 성취하는 것이 준비입니다.
날마다 말씀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준비하십시오.
믿었어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진실로 믿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는 방법은.. 성장해야 맺을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승천하셔서,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내주하시는
예수님(또는 성령님)과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교제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선택의 문제가 있을 때, 내 목숨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신앙이란,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고 천국으로 달리기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달리기 하는 우리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자와 같습니다.
실력 있는 자와, 강한 자는.. 그 장애물을 뛰어 넘습니다.
그런 자가 장성한 자요, 강한자요, 계시록에 (8번 반복해서) 나오는 ‘이기는 자’입니다.
천국은 그들의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실력이 없어서 실컷 두들겨 맞고는.. 매 값(보상) 달라고 하면 됩니까?
오늘날의 믿는 이들이, 마치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난을 많이 받아도, 고난 값이라고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실력(믿음)이 없어서, 계속 고난을 당했을 경우에 그렇습니다.
이기는 자가 되었을 때.. 그 고난은.. 연단(성숙)을 주었기 때문에 유익한 것이지만
사탄을 이기지 못한다면.. 죽도록 고난 당하고도, 고난의 값은 없는 것입니다.
패배자에게 천국의 영광은 없다는 말입니다.
사탄에게 패배했으면서.. 고난 받았으니 천국 갈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천국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곳에 오물을 두지 않습니다.
성전인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고, 성전이 더러우면 멸하십니다(고전3:17)
▲하나님은 사탄 있는 세상에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유혹할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기는 자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탄 있는 세상에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 말은 곧 사탄이 우리 신앙의 가드라인(guard line, 바리케이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라는 가드라인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것을 뛰어 넘으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실력 있는 자를 가리기 위함입니다.
천국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변화 받지 못한 자에게는, 천국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불같은 시험이 오는 것은, 성도의 연단을 위함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단을 받아도.. 이기지 못하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에는 ‘이기는 자’라는 말씀이, 계속 반복해서 8번이나 나옵니다.
이겨야 천국에 간다는 뜻입니다. (믿는 자는, 곧 이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천국에 대한 약속> 하나 주시면서 믿으라합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보이는 세상 것들>로 유혹해서 우리 신앙을 빼앗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보이는 물질들을 복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은 사탄에 속은 것입니다.
이 세상 물질을 복이라고 쫓아가는 자들도 다 사탄에 미혹된 것입니다.
※참고로 가톨릭교회는 ‘물질을 복’이라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질은 가치 중립이지만, 자칫 탐욕으로 빠질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가르칩니다.
▲오늘날의 믿는 이들의 수준을 말하자면,
그것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오물이나 못 먹을 것들을 주워 먹는 수준입니다.
진리 아닌 누룩이 가득하지만.. 이것들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사탄이라고 하는 바리케이트는, 실력 있는 자를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달리기를 방해하는 장애물과 같습니다.
사탄의 방해를 뛰어 넘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육신의 욕심을 완전히 내어 버린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악한 자를 대할 때 죽은 자처럼 대항치 않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사랑을 따라 행하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계명을 이루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셨지만, 그 마음이 어떤지 시험해 보시려고
백세에 주신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드라인을 뛰어 넘어’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귀히 여겨 순종할 때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브라함처럼, 믿는 자의 마음이 어떤지 시험해 보시려고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도하시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며, 감사치 못하고 있습니다.
‘가드라인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출애굽)하시고, 가나안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후
그 약속을 믿는지.. 광야에서 그들을 시험하셨는데..
백성들은,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만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 대다수는, 광야에서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들 대다수가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보다는, 훨씬 비참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세상 복’을 두심은 (반대로 ‘가난’을 두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어떠함을 시험해 보시기 위함인데
사람들은 썩어질 세상의 복을, 참 복이라 여기고..
돈을 쫓아가면서.. 영원한 영생의 복을 팔아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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