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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순종의 발걸음

LNCK 2012. 3. 14. 12:19

 

◈엘리야의 순종의 발걸음        왕상17:1~9       설교녹취,

 

▲도입/ 엘리야의 갈멜산 승리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한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하늘을 향해 하루 종일 부르짖고,

나중에 칼로 자기 몸을 자해까지 했지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다음에 엘리야가 기도했다.

엘리야의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보여주십시오!’ 라는 것이었다.


그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제단의 모든 제물을 다 불태워버렸다.


백성들은 일제히 ‘하나님이 참 신이시로다!’ 소리 높여 고백했고,

거기서 바알 선지자들을 처단하면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바로 이런 갈멜산 승리와 같은 역사가, 우리 신앙생활에도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문자적으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이 알려지는..’ 그런 영광을 돌리자는 뜻이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저 교회를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알려지는 그런 교회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갈멜산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 꿈이요, 목표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로 가는 과정이다.

 

 

◑1. 갈멜산 승리까지는.. 과정이 있었다.


여러분, 엘리야의 갈멜산 승리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step by step, 순종의 계단을 차곡차곡 밟아 올라가서,

마침내 <갈멜산의 영광스런 승리>에 이른것이다.


과정에서 적어도 3차례의 <엘리야의 순종>이 있었다.

그것을 아래에서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오해가 있다.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보면,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처럼 오해한다.


그 어떤 하나님의 역사도,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반드시 거기까지 온 과정이 있었다.

 

엘리야의 갈멜산 승리도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갈멜산까지 오는 과정이 있었다,

 

과정을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1. 아합 왕에게,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선포함


왕상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가 사역을 시작할 때, 제일 처음 한 일은

아합 왕에게 가서 ‘앞으로 비가 오지 않으리라’는 재앙을 선포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처음에 엘리야에게, 아합 왕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하라고 했을 때

그것은 분명 순종하기 쉬운 명령이 아니었다.


아합은 이미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경력이 있었다.

엘리야가 이 말을 전하면, 아합에게 잡혀 죽을 수도 있었다.

 

엘리야는 분명히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어보았을 수도 있다. ‘하나님, 제가 이 말을 전해도.. 안전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가서 전하라’고만 말씀하셨다.

그 다음에 될 일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만약에 엘리야가 ‘하나님, 제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가르쳐 주세요!’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면,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아합에게 가지 못했다면, 그에게 <갈멜산의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순종했다.


순종해서 아합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더니,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하여서,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지내라고 말씀하셨다.

(한 가지 명령에 순종하면, 비로소 그 다음 지시를 주신다.)


▲2.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지내라


왕상17:2~4,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아합에게, ‘수년 동안 비는 커녕, 이슬도 안 내린다’고 선포하고 나니까

3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해서

‘너는 요단 앞 그릿 시냇가로 가서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엘리야는 또 그 말씀에 순종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시켜서,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날라서 먹게 하셨다. 17:6


그러나 비가 오지 않아서, 시냇물이 말라서, 마실 물이 없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한다.  ↙


▲3. (세 번째 지시)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라


왕상17:8~9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엘리야가 또 하나님께 순종했다.

그래서 이방 땅으로 가서, 그곳 과부의 집에서 얻어 먹었다.


그렇게 하기를 3년이 지난 다음에,

왕상18:1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해서

엘리야가 아합 왕으로 가서 비가 내릴 것을 선포한다.

 

이렇게 해서 엘리야가 아합 왕을 만나고

그때 아합에게 갈멜산 대결을 요청하게 된다. 18:19

 

※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다'는 표현이

왕상17:2, 17:8, 18:1에 나온다.


▲정리하면,

그러니까 엘리야가, 그 영광스런 <갈멜산 승리>로 가는 과정에는,

1. 아합에게 가서,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재앙을 선포하고

2.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는 일에 순종하고,

3. 사르밧 과부 집에서 지내는 것에 순종한 후에

비로소 <갈멜산 승리>로 이어진다.

그 중간에 그런 3번의 순종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개인적으로, 또는 우리 교회적으로

<영광스런 갈멜산의 승리>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 아침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엘리야는, 성경에 나타난 바로는, 적어도 3번이나 철저히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다.


세 번 다, 자기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결코 순종하기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거기에 순종했더니

그 다음에 <놀랍고 영광스런 갈멜산의 승리>가 따라왔다.

 

놀라운 승리로 가는 길에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놀라운 승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저 놀라운 결과만 보고,

그 놀라운 결과만 내게 나타나기를 기대하는데.. 그렇지 않다.

과정을 성실하게 순종한 사람만.. <갈멜산의 승리>같은 놀라운 결과를 거둘 수 있다.



◑2. 하나님은 한 걸음씩만 보여주신다. (인도하신다.)


얼핏 보면, 이 과정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기에 아주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엘리야를, 한 번에 한 걸음씩 인도하셨다는 사실이다.


한 번에 한 걸음씩!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두 걸음을 보여주신 적이 없다.


하나님이 왕에게 내 말을 전하라고 하셨을 때,

그 다음에 어떻게 될 지를 말씀하지 않으셨다.

단 한 걸음만 보여주셨다.


엘리야가 한 번에 한 걸음씩 순종했더니

그 마지막에 마침내 갈멜산의 승리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릿 시냇가로 갈 때도, 엘리야는 질문이 많았을 것이다.

'거기가 안전한 곳인지..'

'이제 가뭄으로 시냇물이 마르게 될 터인데, 물이 마르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점이 여러 가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묻지 않고, 그냥 순종해서 거기로 갔다.

갔더니 물이 마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또 다시 임했는데,

시돈 땅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라고 명하셨다.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얼마나 머물러야 되는지,

거기서 뭘 해야 되는지 아무 것도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다만 '다시 떠나라'는 지시가 있을 때까지.. 무작정 거기에 머물렀다.

지나고 보니, 그 기간은 3년이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아합왕을 만나라, 갈멜산에 올라가라!'

이렇게 하나님은, 한 번에 한 걸음씩만 인도하셨다.


여러분, 시각 장애인을 인도해 보신 적이 있는가?

시각 장애인에게, ‘1킬로 밖에 장애물이 있다. 빌딩이 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 하면 오히려 헷갈린다.


‘지금 발 앞에 돌이 있습니다. 앞에 계단입니다. 발을 올려놓으세요.’

이렇게 한 번에 한 걸음씩만 인도해야 된다.

그것이 시각장애우에게 가장 안전하고 적절한 인도의 방법이다.


우리 각자는 미래에 관한한, 시각장애인과 똑같다.

우리는 십년 후를 모른다. 아니, 내일 일도 알지 못한다.

미래에 관한한, 우리는 시각장애우와 똑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한 번에 한 걸음씩만 인도하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섭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십년 후를 보여 달라’ .. 하면서, 십년 후로 바로 가겠다고 그런다.

갈멜산으로 바로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해 주세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요청한다.


그러면서 지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한 걸음은, 순종하지 않고 있다.

이 얼마나 답답한 모습인가!


여러분,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시라.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그는 이방 땅에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다.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너는 본토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한 걸음을 명하셨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은 순종해서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했다. 히11:8

그 순종의 발걸음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한 걸음씩’ 명령하셨고, 아브라함은 ‘한 걸음씩’ 순종했다는 것이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순종하고 갔더니,

어느 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

만약 아브라함이,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한 걸음’에 순종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에.. 아브라함의 그 다음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말씀의 지시를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또는 내 환경과 여건을 통하여

하나님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이 ‘한 걸음’에 순종해야 한다.


이 ‘한 걸음’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다음 걸음은 옮길 수 없다.

그러나 한 걸음 내 디디면, 하나님은 그 다음  ‘한 걸음’을 다시 보여주신다.

다시 그 다음  ‘한 걸음’에 순종하면, 또 한 걸음을 명령하신다.


이렇게 한 걸음씩 순종하며 나아갈 때,

마침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3. 그 첫 걸음은.. 은혜 받는 것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시라.

하나님께서 금년에 우리 교회에 주신 ‘한 걸음’은 과연 무엇일까?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명하고 계시는가?

<그것은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 라고 저는 생각한다.

모든 것을 제쳐 놓고, <먼저 은혜를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

여러분, 그동안 우리가 혹 조금 서로 부딪혔다면,

그 이유는 은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다른 현상이 있을지라도,

그 모든 문제의 공통적이며, 근본적인 이유는, 은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엔진도, 윤활유가 부족하면 시끄러운 마찰음 소리가 난다.

삐그덕 거린다. 계속 그대로 방치하면 망가진다.

 

은혜는.. 교회의 윤활유와 같다.

그래서 우리가 ‘첫 걸음’으로..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다음 한 걸음’을 보여주실 것이다.


▲멈춰서 서 있는 배

서해안에 가보면,

밀물에 들어와서.. 갯벌에 걸터 앉은 배를 많이 볼 수 있다.


동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배를 보지 못하지만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그 배는 썰물 동안에는, 갯벌에 얹혀서 꼼짝 달싹도 못한다.


저는 그 멈춰선 배들을 볼 때,

‘교회’를 떠 올리게 된다.


은혜의 바닷물이 풍성했을 때는.. 이리저리 자유롭게 다니며 항해했는데,

은혜의 바닷물이 빠져나가버리자.. 커다란 배가 꼼짝 달싹도 못하고.. 기우뚱 멈춰 서 있다.

쳐다보기에도 황량하기 그지없다.


자 여러분, 이 배는, 소망이 없는 것일까?

이 배는 끝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배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배를 포기하고, 이 배(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밀물이 들어오기만 하면,

이 배도 얼마든지 다시 바다를 항해할 수 있다.


간단하다. 은혜의 밀물이 밀려들어와야 한다.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그 커다란 배를, 갯벌을 가로질러

1킬로나 떨어진 바다로 내보낼 수는 없지만,

 

밀물만 들어오면,

그 배는 두둥실 떠서, 바다로 항해하게 된다.


은혜가 떨어진 교회는, 밀물에 밀려 들어와 갯벌에 얹혀버린 배와 같다.

우리가 잡음이 나고, 삐그덕 거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여러 가지 현상적 이유가 있겠지만, 실제로는 은혜의 밀물이 빠져버린 것이다.

그것이 문제의 근본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멈춰 선 배를,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은혜의 바닷물>만 들어오면 된다.


그러므로 금년에 우리 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은혜 받는 일’이다.

저도 그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은혜 받는 일은, 우리 개인적으로도, 금년에 해야할 ‘첫 걸음’이다.

우리 각자에게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그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어쩌면 은혜가 떨어져서 생긴 것일 수 있다.


각자 처한 현실에서, 각자의 문제가 다양하게  다르지만

공통점은, 그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의 해결, 하나님의 간섭은.. 은혜에서 시작된다.

은혜와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은혜 받는 일>은, 내 앞에 닥친 모든 문제 앞에서도

내가 내디뎌야할 첫 걸음이다.


우리 모두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으십시다.

은혜를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 개인 적으로도, 그 다음 걸음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러면 다시 순종하면 된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순종해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앞에

저 영광스런 <갈멜산의 승리>가 펼쳐지는 날이 속히 오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