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복음전파의 동기 의식 고후5:18~21 11.12.11.설교녹취
▲사도바울이 엄청난 고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를 끝까지 완수할 수 있었던 동기의식은?
사도바울은, 복음 사역을 하면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난을 겪어내었다.
유대인들은 끝까지 그를 따라다니면서 그를 반대하고 핍박했으며,
그 유대인들의 선동을 받은, 각 성의 사람들은, 그를 때리고, 쫓아내기도 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기도 했으며.. 3번 태장으로 맞고 등등
보통 사람 같았으면.. 복음 사역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
그가 <극심한 고난의 복음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달려갈 길을 끝까지 계속 달려가도록
그의 마음속에 복음사역의 불타는 동기의식 motivation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오늘날 만약 우리가
사도바울이 가졌던 것과 똑같은 동기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어쩌면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모진 고난 속에서도..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음 자체가 너무 고귀한 것이었으므로.. 바울은 복음사역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3가지로 나누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1. 사도바울은 위대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 great message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상에서 들어볼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메시지이다.
고후5장에서, 바울은 그 메시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14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18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이것은, 지금까지 들려졌던 수많은 메시지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메시지다.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인인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주1)
▲비단 고후5장뿐만 아니라,
신구약성경 전체가,
또는 신약성경 전체가
위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것이 바울의 동기의식이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고귀하니까,
바울은 수많은 핍박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극심한 핍박을 받았지만,
그 핍박 때문에 복음사역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그 메시지가 너무 위대하여, 도저히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사도바울과 똑같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담당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너무나 위대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냥 머리의 지식으로 아는 복음’이 아니라,
‘성령의 계시로 깨달은 복음의 위대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과 복음을
사도바울처럼 위대하게 깨닫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바울처럼 ‘아라비아 3년의 경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갈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1:17과 연결하면 이때가 아마 아라비아 칩거 시절)
오늘날 이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한다.
사도바울이 깨달은 그 ‘복음의 위대성’을, 그 great message를
우리도 똑같이 깨닫게 해 달라고!
나도 똑같이 그 great message를 갖게 해 달라고!
그때 우리 가운데서도 사도바울이 배출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끔찍한 핍박도 뚫고 일어서서, 달려갈 길을 다 마치기까지, 계속 복음을 전할 것이다.
▲여러분, 십자가의 메시지는.. 정말 great message이다.
하나님이.. 내 죄 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메시지는.. 복음 중의 복음이다.
그런데 이 복음을 믿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선행을 쌓아서,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착각한다. 주2)
여러분, 로마 군인들은, 포로나 죄수를 아주 가혹하게 다루는 전문가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포로나 죄수들에게, 아주 정신적으로 최악의 수치를 가했다.
영화에 보면, 십자가의 높이가, 지상에서 몇 미터 이상으로 아주 높게 나오지만,
역사 고증에 의하면, 실제 십자가의 높이는, (그 발이) 지상에서 불과 0.5미터 높이였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보통 사람의 키높이와 별로 차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행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에게 다가가서,
저주를 할 수도 있었고,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있었다.
물론 뺨을 칠 수도 있었고, 주먹질을 할 수도 있었다.
원래 십자가는, 그렇게 행인들에게 저주와 수욕을 당하도록
고안된 도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네가 만약 그리스도면, 십자가에서 당장 내려와 봐라’는 조롱도
예수님의 코앞에서 이루어진 조롱이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모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수치를 다 당하신 것은,
바로 나의 죄를 대신해서 당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great message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겪으신 모든 고통과 수치가.. 내 죄 값을 치르신 것이기 때문이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 바울에겐 위대한 사명이 있었다. great mission
사도바울이,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난의 세월 가운데
끝까지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졌던 특별한 동기의식 motivation 때문이었는데,
그 동기의식이란,
그가 위대한 메시지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받은 그 위대한 사명 great mission 이란..
자기가 ‘화목케 하는 직책’을 맡았다는 것이다. ↓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인류의 대표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
이제 이 구원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하는데,
-더 많은 천사들을 보내지 않으셨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또다시 세상에 내려오시지도 않으셨다.
그 위대한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그 분의 제자들에게
전하도록 부탁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자기 임무를 다 하시고 승천하셨고,
이제 그 귀한 복음전파의 책임은.. 우리에게 great mission(위대한 사명) 으로 맡겨진 것이다.
이것을 너무 무겁고 힘겹게 느끼기보다는,
이 귀한 미션(임무, 사명)을, 부족한 나에게 맡기셨다는
특권의식과 뿌듯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가장 똑똑하고 믿을만한 학생에게, 항상 심부름을 시키신다.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는 학생은, 항상 기쁨과 자부심으로, 그 심부름을 수행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나에게 뭔가를 부탁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privilege이요, 정말 그 부탁은 great mission(위대한 사명)인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렇게 자신이 맡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즉,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사명을
great mission(위대한 사명)으로 여겼다.
그것을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으시고,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특별히 선택하시고,
자기에게 great message를 전파할, great mission을 맡기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도바울에게 복음전파의 동기의식 motivation이 되었다.
그래서 아무리 극심한 반대와 핍박을 받았지만,
그 반대를 능히/거뜬히 극복할 수 있는.. 더 큰 동기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great message를 전파할, great mission을 맡았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고후1:1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즉 화목케 하는 직책은.. 몇몇 성도나 사역자만 받은 것이 아니라,
고린도와 아가야 지방에 있는 모든 성도가 똑같이 받은 사명이라는 것이다.
당연하다. 자기가 죄악 가운데 헤매다가,
하나님과 화목케 된 것을 체험한 성도는.. 그 은혜가 너무 놀라고 감격스러워서..
반드시 화목케 하는 great mission을.. 자기 남은 생애에.. 감당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화목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바울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대사 ambassador for Christ’라고 불렀다.
고후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 ambassador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제 Dr. Phil Roberts가 과거에 벨기에 브레쉘에서 선교사로 5년간 섬겼다.
거기서 다국적 교인들이 모이는 International church를 섬기고 있었는데,
벨기에 브레쉘에는 여러 국가의 대사관들이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는데,
약 2백 개의 각국 대사관들이 산재해 있었다.
저희 교회는 시내에 있었으므로, 근처에 여러 대사관들이 있었다.
한 번은 주일 설교시간에 제가 이렇게 질문했다.
‘여기 브레쉘에 있는 여러 대사관들 중에, 가장 위대한 대사관은 어느 대사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국인 성도들은 ‘영국 대사관이 가장 위대하다’고 했고,
프랑스인 성도들은 ‘프랑스 대사관이 가장 위대하다’고 대답했다.
미국인 성도들은 ‘미국 대사관이 가장 위대하다’고 외쳤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하나님의 대사ambassador인 우리 크리스천들이 가장 위대한 대사들이며,
그 대사들이 모인 우리 교회가, 이 브레쉘에서 가장 위대한 대사관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 크리스천 각자는, 그런 바울과 같은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대사이며, 우리 공동체는 천국의 대사관이다!’
그냥 기분 좋아라고,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great mission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사 ambassador for Christ’인 것이다.
그런 great mission을 맡으신, 사명자로 살게 되시기 바란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그 동기의식으로,
자기 사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으며,
우리도 똑같은 동기의식을 가질 때, 사도바울과 같은 사명자들이 될 것이다.
◑3. 바울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갖고 있었다. great God
고후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여러분이 정말 세상의 각국 대사들처럼
큰 사무실이 없고, 큰 관용차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맡은 임무만큼은,
그들 세상의 대사들보다..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들은 각국의 나라와 수반을 대표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표/대신하는 대사인 것이다.
당연하다. 그리스도의 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대사요,
그래서 위 본문에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대사가)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한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대사’인 성도들이 가진 권위는
하나님의 권면을 대언하는 권위요,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신하는 권세라는 것이다.
▲천성적으로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사도바울처럼, 은혜가 임하여..
‘내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대사가 되었다’는 자각의식을 갖게 되면,
-수줍음을 잘 탄다든지
-학벌이 형편없다든지
-여러 핸디캡이 있다든지.. 사실 이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대사가 되었다’는 자각의식이
아직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성령의 충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내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대사가 되었다’는 자각의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는 일화
몇 년 전에 제 Dr. Phil Roberts가 선교대회에 참석 했는데,
한 젊은 선교사가 이렇게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어릴 적에 교회에 가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지금처럼 해외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는가..
하는 스토리를 여러분과 나누기 원한다.
제가 약 10살쯤 되었을 때,
부모님과 제 남동생, 여동생과.. 5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저희 집 현관문을 노크했다.
어머니가 나가보니,
‘저는 저 도로 아래쪽에 사는 사람인데,
내일 당신 자녀들 셋을 데리고, 교회에 가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저희 어머니는, 아이들 셋을 교회에 보내고, 집에서 혼자 쉬고 싶으셨는지
선뜻 좋다고 승낙하셨다. ‘데리고 가세요!’
그래서 우리 형제 셋은, 그 아주머니를 따라서
난생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을 가 보았다.
거기서 주일학교(성경공부)도 하고, 또한 주일예배도 드렸다.
그때 제가 처음으로, 복음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분은, 다음 주에도 또 데려가고, 매주일 우리를 계속 교회로 (자동차로) 데려갔다.
1년이 지나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 구주로 영접했다.
제 남동생도, 제 여동생도.. 우리는 다같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얼마 후에 뒤이어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도 따라서
모든 가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기독교 대학으로 진학했고,
졸업 후에, 이제는 선교사로 헌신해서, 복음을 전하러 해외로까지
(제가 결혼해서) 온 가족이 함께 나가게 되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은,
제가 10살 때,
우리 집 문을 노크한, 어느 낯선 여인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한 가지 있다.
나는 그분의 이름을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저는 그때 아직 어린 아이였고, 그래서 그분의 이름 같은 것은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저는, 그 분이 저희를 위해 해 주신 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하나님이 그 아주머니를 사용하셔서,
우리 가정을 다 구원하시고,
또한 내가 선교사까지 헌신할 수 있도록,
놀랍게 역사하셨던 것이다!”
▲기도/ 주님, 사도바울이 그토록 극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 사역을 감당했던
그의 동기의식 motivation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가 가졌던 위대한 메시지 great message 를 저도 갖게 하시고,
그가 가졌던 위대한 사명 great mission 에 대한 자부심이 있게 하시고,
그가 가졌던 위대하신 하나님을 great God
나도 똑같이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주님의 대사가 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저도 온갖 핍박을 겪더라도,
그것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동기의식을 갖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주1)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는,
‘네가 열심히 선행을 쌓으면.. 천국에 들어갈 지도 모르겠다’며
인간의 선행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셔서, 천국을 가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잘 하면, 천국에 들어갈 지도 모르겠다’는 모호성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나 공로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죽으셔서, 구원사역을 이루어주심으로써,
믿는 사람에게 이루어주신 구원사역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주2)
남아시아의 불교국가에 가 보면,
수 년 동안 ‘침묵 수행’을 하는 수도자들이 있다.
자기가 입을 열어 말을 하다보면, 말실수 하게 되기 쉽고..
그 죄 때문에 천국(극락)에 못 갈까봐.. 5년 10년 동안 침묵으로 그는 일관한다.
또 어떤 수도자들은, 작은 곤충이라도 살생을 금한다.
그래서 늘 맨발로 다니고, 자기가 걸어갈 길 앞을, 빗자루로 벌레를 쓸어내면서 다닌다.
혹시라도 벌레를 살생할까봐.. 그래서 천국(극락)에 못 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여러분, 그렇게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공로(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천국에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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