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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멀리 내다본다.

LNCK 2012. 3. 16. 14:55

◈믿음은.. 멀리 내다본다         히11:1          11.12.18.설교녹취

 

◑믿음은.. 멀리 내다보게 한다.


저는 성도님들을 접할 때,

성도님들이 왜 스스로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자신의 신앙의 가능성과 능력에 대하여.. 좀 더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못할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왜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자신의 믿음의 가능성과 결과(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은 합당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도님들이.. 자기 신앙을 너무 근시안적으로 내다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신앙을 멀리 보자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한다.

 

저는 기독교 신앙을.. 장기투자에 비유하고 싶다.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주식에 투자할 때,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투자’를 하라고 조언한다.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나온 과거를 보면, 그 말은 사실이다.

우량주에 10년~20년~30년 투자한 투자자들은.. 상당한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


원래 제대로 된 투자는 장기적인 것이다.

단기투자(단타)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장기 투자를 하지 않고, 단기 투자를 한다.

주식시장에 투자해서, 대부분 손해를 보는 사람은, 단기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장기 투자의 원리는, 주식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 적용된다.

포도주도.. 오래 될수록.. 값이 나가는 게 포도주다.


신앙도 장기적인 것이다.

신앙도 장기적으로 내다봐야 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사람이 예수를 믿어서, 당장 변화되는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저희 교회가, 창립된지 11년이 되었는데,

‘지난 11년 동안 과연 성도님들이 얼마나 변화되었을까?’

그건 쉽게 말할 수 없다. 11년은 짧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더 장기적 안목으로 보고, 판단해야 되기 때문이다.


신앙은 적어도 30년, 50년, 아니 백년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

여러분, 예수님이 2천년이란 세월을 투자하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2천년이 되었는데,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놀라운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기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예수를 믿어서, 우리 집이 교회를 다녀서.. 당장 뭐가 달라졌느냐..

당장 보면 달라진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좀 더 장기적으로

50년, 100년을 보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예수 믿은 지 50년, 100년 지난 가문에, 또는 교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가문이나 교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신앙은 적어도 30년, 50년, 아니 백년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은 단기 투자가 아니다.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시고,

‘누룩’에 비유하셨는지.. 저는 조금 이해가 된다.


그 결과가, 아주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변화가, 거의 눈에 안 띈다.

그러나 변화는..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다만 멀리 볼 때, 오래 지나서 볼 때.. 그 결과가 눈에 보인다.


예수님이 왜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맡기시고,

(무책임하게) 승천해 버리셨는지..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가능하다.


만일 예수님께서 장기적인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믿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은 떠나가지 못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두 다 맡기지 못하셨을 것이다.


당신은.. 오래 살아서.. 내가 모든 것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3년 반만 목회하시고.. 떠나가 버리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물론 그래야 성령님이 대신 오셔서, 역사하시는 면이 있지만

그 외에도 이런 면도 있다고 본다.)


예수님은 장기적으로 멀리 내다보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언제까지, 백년, 이백년 붙잡고 계실수도 없는 일이었다.


멀리 내다보실 때는,

빨리 빨리 제자들에게 전권을 맡기시고, 그들에게 위임하고,

예수님이 떠나가시는 것이.. 더 유익했던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겨자씨 한 알처럼, 반드시 복음은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타이밍을 놓치면, 지금 당장은 더 잘 될 것 같지만..

결국 나중에 결과가, 더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저는, 기독교가 지난 2천년간, 이처럼 부흥할 수 있었던 비결이

‘제자들의 능력에 있었는가? 제자들의 인격에 있었는가? 그들의 헌신에 있었는가?’


아니라고 본다.

제자들이 어떠한 사람이었던 간에,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사람일뿐, 제자라고 다르지 않다. 그들도 사람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도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특별했기 때문에..

지난 2천년동안, 교회와 기독교가 이처럼 부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에는, 누룩과 같고, 겨자씨와 같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땅에 심겨지면, 그 누룩이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야만인이든지, 문명인이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말씀이 사람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당장은 변화가 별로 없어 보이지만, 두고두고 보면,

그것이 나무가 자라나듯이, 누룩이 밀가루반족을 부풀게 하듯이

전체가 변화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회 2천년 역사가 증명하는 교훈이다.


문제는 우리가 장기적으로 보고 기다려야 한다..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알고 계셨고, 이것을 말씀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일찍 떠나가신 것은, 예수님의 실패가 아니요,

예수님의 의도하신 것이요, 예정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선교 역사만 봐도.. 그것이 여실히 증명된다.

120년 전에, 미국, 캐나다, 호주 선교사들 중에

누가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처럼 부흥할지..’ 내다보았을까?

다들 절망 가운데, 선교했을 것이다.


그런데 장기적 안목으로 보니까,

그 절망 가운데 인내하며 선교한 것이.. 오늘날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 ‘선교 2위국’으로서,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에 임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처럼 여겨지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런 모든 것이.. 너무 단기투자 형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신앙이나 선교는.. 장기 투자이다.

멀리 내다보고, 100년을 내다보고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의 겨자씨가.. 반드시 놀라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목사님,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저는 그렇게 장기적으로 내다볼 여유가 없고,

저는 당장 임대료를 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다고 당장 급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예배 마치고 가시더라도, 당장 점심 요기를 하셔야 한다.

이렇게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이 인간이다.       *당장 밥 안 먹고는 못 산다는 뜻

 

그런데 생각해 보시라.

굳이 신앙과 관계된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많다.

(그렇게 삶의 모든 면에서, 장기 투자하면서, 왜 기독교 신앙은 장기 투자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를 들면,

①교육..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듯이, 백년을 내다보고 교육한다는 얘기인데,

꼭 백년이 아니더라도, 여러분의 자녀 교육은.. 모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②결혼.. 여러분, 인간이 장기적으로 내다보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뭐 하러 결혼하는가? 결혼 안 하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그러나 가정에 대하여, 자녀에 대하여, 가문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고 결혼을 하는 것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내다보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③친구.. 친구도 장기 투자이다.

당장 놀기 위한 친구가 아니고, 앞으로 살면서 두고두고 서로 벗이 되고,

도움이 되라고.. 우리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특히 노후에 친구가 없는 사람일수록..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장기적 안목으로, 친구에 투자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처럼 신앙에 관계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일들이 많다.

그렇다면 신앙은 더더욱 장기적 안목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은 그런 것이다.

신앙은 지금 당장 좋은 것을 그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에 지금 당장 좋은 것을 원한다면, 신앙처럼 불편한 것이 없다.

차라리 신앙 없이 내 뜻대로 세상 즐거움대로 사는 것이 낫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것은,

적어도 내세를 내다보기 때문이요, 영생을 믿기 때문이다.

이것만큼 장기적 안목이 없다.


또한 내 후손을 바라보더라도(장기적 안목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따르는 자는.. 천대까지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의인의 자녀는 걸식함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예수 잘 믿는 것이, 자녀 세대에 남겨줄 가장 큰 유산인 것이다.


실제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보시라.

부모 세대가 예수를 잘 믿어서,

그 후손들이 자자손손 대대로,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기적으로 유익을 주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다음 세대에, 그 다음 세대에..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만들어지고, 그 혈통을 좇아서 메시아가 태어나시고,

그리고 메시아를 통하여 온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것까지 아브라함은 멀리 내다보았다.   ☞묵상글 3편 중 <모세의 꿈>  (강추)

 

아브라함은, 수 천 년 전, 중동의 어떤 이름 없는 아저씨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믿음을 가진 것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유익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나도, 얼마든지 그 대열(믿음의 조상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다윗이 믿음으로 당대에 열매를 거둔 것뿐만 아니라,

그의 혈통이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혈통을 좇아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믿음의 효과를 당장에 결과로만 판단하려 하면 안 된다.

좀 멀리 내다보아야 된다.


‘내가 예수를 믿어서 당장 무슨 혜택이 있나?’ .. 이건 소인배의 생각이고

‘예수는 내가 믿지만, 혜택은 자손이 받는다. 내 후손들이 받는다.’

이런 식의 좀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된다.      후대를 위한 수고

 

.................. 더 읽으실 분 ......................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에 이끌려 산다.


‘목적에 이끌리는 삶’도 좋은 의미로 보면, 유익한 말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이리 저리 휩쓸리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제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이끌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다. 무엇에 이끌기기는 이끌리는데,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목적에 이끌리는 게 아니고,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두려움에 이끌려서 살아간다.


자녀 교육 문제에 있어서, 가장 현저하게 이것이 나타난다.

부모가 자녀를 닦달하는 이유는, 무엇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 안 되게 하기 위한 것(두려움)이다.


-실패자가 되지 않고

-낙오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남에 비해 뒤지는 것, 낙오되는 것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이

부모들의 심리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건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취업난도 아니고, 88만원 세대도 아니라고 저는 본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낙오자가 될까봐 두려워하고, 인생의 어려움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이다.


저는 한국 경제신문에, 며칠에 걸쳐서 국내 기업인, 문학인, 지도자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대화한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보았는데,

이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인생을 부딪혀 봐라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라

-동기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었다.


여러분,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좀 어렵다고 하더라도,

한국전쟁 직후보다도 더 어렵겠는가?

보릿고개, 오일쇼크를 겪을 때보다, 더 어려웠겠는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때도 많았는데, 그것을 우리가 극복해 낸 경험이 있다.

그런데 왜 이정도의 어려움을 갖고서 두려워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장기적 안목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두려움에 이끌려서 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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