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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님이 중보해주신다

LNCK 2012. 4. 2. 16:30

◈사랑의 주님이 중보해주신다            욥9:32~35              출처



▲도입 일화

구소련이 70년 동안 공산주의 연방국가(USSR)로 승승장구하다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소수민족들과의 네트워크가 와해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처럼 강성대국이었던 소비에트 연맹은

이제 ‘독립국가 연합(CIS)’이라는 지금은 유명무실한 연합국가로 약화된 것입니다.


이처럼 거대한 소련체제가 붕괴되는 긴장된 변화의 상황에서

중국은 소수민족들의 반란이나 독립을 막으려고 시도한 전략 중 하나가

전국에 고속도로망을 구축한 것입니다.


그처럼 광활한 중국 땅 어느 변방지역까지도 고속도로를 연결하여

하루 생활권이 되게 했습니다.


중국 전 지역에 길을 뚫어주니 산 속에 사는 소수민족들이

산 아래 마을과 도시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길의 힘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길이 잘 뚫린 나라는 드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산간오지 외딴집까지도, 포장도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남해와 서해 일대의 섬들도, 거의 대부분 연육교로 이어져있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최근 개통된 완도대교가 그렇습니다.

다리 하나가 생활환경에 대혁명을 일으켜줍니다.


이처럼 ‘길을 내주고 다리역할을 해주는 것’(중재)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중재자.. 다리 역할을 해 주는 사람

인간관계에서도 ‘길을 내주는 사람’이 매우 필요합니다.

누군가 중재자가 되어 서로를 연결해주고, 관계를 맺어주면.. 삶의 폭이 넓어집니다.


내가 비록 인간관계가 넓지 못해도,

훌륭한 중재자가 있으면,

여러 좋은 분들과 네트워크를 이루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중재자가 되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리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가교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본문 설명


이것이 욥기 8장과 9장의 메시지입니다.

욥은 끊임없이 자기를 공격하며 몰아붙이는 친구들과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악 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변론하거나

더 이상 가까이 나갈 수 없다는 좌절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절대자 하나님께 접촉access할 수 없기에,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과 인간의 다리역할을 해주는, 중보자가 개입해주시기를 염원한 것입니다.


우선 욥기 8장에 등장하는 빌닷은, 욥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비난하며 책망합니다.


-심판자로서 책망합니다. 8:1~7

-교만하게 책망합니다. :8~10

-무시하며 책망합니다. :11~22


저는 여기서 가슴 깊이 깨닫습니다.

우리는 차가운 이성보다, 따뜻한 감성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훈장형 상담자’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매정한 충고자가 되지 말고, ‘다정한 위로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개똥 철학을 주입시키려 들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 빌닷은, <옛 성현들의 교훈>까지 동원하여, 일침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슴 답답한 상황에서, 욥은 ‘진정한 중재자’가 개입해주기를 소원합니다.

욥은 더 이상 자기 스스로 변명하거나 방어하는 대신에

중재자께서 자기를 변호해주시기를 염원합니다.


본문 33절입니다.

『만일 우리 사이에 손을 얹고 중재할 자가 있다면

모든 것이 원래의 상태로 회복될 텐데』라는 식으로 탄원합니다. (새번역)


35절에서는

(중보자가 도와주신다면) 자기는 더 이상 두려움 없이 담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염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욥기에 나타난「중보자 신학」을 알게 됩니다.

그는 중보자 예수님의 은총을 대망하며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는 중간 중간, 중보자의 은총을 갈망합니다.


욥이 대망하고 있는 ‘중보자’는『구속자』이십니다.

구속자는, 히브리어로 ‘고엘’인데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잘못 을 용서해주시는 대속자이십니다.

②잘한 일을 칭찬하시는 위로자이십니다.


중보자는 대속자요, 대변인입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래서 욥은 중보자의 은총을 대망했던 것입니다.


19:25,『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 (구속자, 고엘)가 살아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아래 구절엔, 구속자 ‘고엘’이 나타나지 않지만,

  ‘중보자, 대변인’의 뜻을 가진 단어가 쓰였습니다.

  크게 보면, 구속자(고엘)도, '중보자'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16:19~21,『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대변자 advocate가 높은 곳에 계신다.

나의 친구들이 나를 조롱하니 내 눈이 하나님께 눈물을 쏟는구나.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서 변호하듯, 누가 나를 위해 하나님께 변호해주었으면 좋으련만!』


33:23~24,『만일 이때 하나님의 수많은 천사 중 하나가

그 사람의 중재자 interpreter로 나타나서, 그에게 옳은 길을 보여준다면,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천사에게 ‘그를 살려주어라.

그를 죽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그의 몸값을 찾았다.’하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것이 욥기의「중보자 신학」입니다. 그는 중보자의 은총을 목말라합니다.

욥은 전능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중보자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중보자」Mediator의 역할을 중요시합니다.  *세상 말로는 '에이전트, 브로커' 라고 합니다.

중보자의 역할은 두 사람 사이에 개입하여

그들을 좋은 관계로 화해시키거나 증진시켜줍니다.


구약에서 제사장과 선지자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중보사역을 담당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대변하는 일을 했고, (상향식)

선지자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대언하는 일을 했습니다. (주로 하향식)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약속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인간을 새로운 관계로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중보자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로 피흘려주신 은혜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현하는 지성소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히9:12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뿐이시니

그분이 바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약속을 이루신 증거입니다.』딤전2:5~6


     그러면 중보자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시나요?


1. 중보자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십니다. 주1)

 

※성경에 <문>이란 표현이 종종 등장하고,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하십니다. 요10:7

천국(새 예루살렘 성)에도 12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계21:12

 

<문>은.. 성도가 그 문을 통해서, 천국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어떤 <소통의 통로, 교제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자신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요14:6의 <내가 곧 이요> 만 잘 알고 있는데,

      '길'뿐만 아니라, 같은 의미로

      요10:7 <나는 양의 이다>라는 '문'도 있습니다.

      '길'이든지, '문'이든지.. 예수님의 중보적 사역을 잘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오늘날 같은 '종교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다른 '길', 다른 '문'을 통해,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다른 '길' 또는 '문'은 모두 '절도'나 '강도'입니다. 요10:8

 

2. 중보자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주2)

 

3. 중보자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도록 도와주십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중보사역을 다양하게 설명합니다.

특히 <새 언약의 중보자>이심을 여러 곳에서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히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히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언약, 새 언약(복음)을 이루어주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중보자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을 우리에게 내밀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의 손길이 우리에게 미치도록 중재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손과 우리의 손이 맞닿도록 중보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라면

중보자 예수님은 그 전력을 공급해주는 <송전선>과 같습니다.


능력을 공급해주십니다. 사랑을 공급해주십니다.

은혜를 공급해주십니다. 새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손과 연결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치는 말 / 오늘도 예수님이 중보해 주십니다.

캠벨 몰간이나 찰스 스윈돌 같은 신학자는

욥이 왜 그처럼 중보자 예수님의 개입을 절실하게 소원했는지 매우 쉽게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욥은, 하나님의 크심과 위엄에 놀라서,

자신의 상대적 왜소함에 위축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사이에 중보자가 개입을 호소하고, 중보자의 은총을 목말라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8:3~4절에 보면, 다윗은 오히려 낮고 천한 우리를 찾아와주시고

돌보아주시는 중보자의 은총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돌보아주십니까?』


중보자 예수님은 우리의 대변인이십니다. 변호자이십니다.

위로자이십니다. 축복자이십니다.


중보자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상황과 사정을 변호해주십니다.

심판으로부터 방어해주십니다. 우리의 입장을 하나님께 호소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주시도록 보좌 우편에서 간구해주십니다.


오늘 당신에게 그 사랑의 중보자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당신 곁에서 도와주십니다. 사랑의 손으로 붙잡아주시고, 돌보아주십니다.

옹호해주십니다. 변호해주십니다. 위로해주십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도 이길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십니다.

욥처럼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중보자이십니다. 할렐루야!

 

..................................

 

주1)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소개하실 때, 이런 웅장한 선포를 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한다.』요14:6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선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야말로 막힌 담을 헐어주셨습니다. 눅23:34, 롬3:21~26


그래서 네비게이토 선교회에서는 <브릿지 전도법>을 개발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죄라는 큰 강이 놓여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리를 놓아주셔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을 설명하는 전도법입니다.


한 마디로 십자가는 하나님께로 가게 하는 사랑의 다리입니다.

구원의 다리입니다. 생명의 다리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얼마든지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주2)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롬8:34


히7:25처럼『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며

때를 따라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히4:16


그리므로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놀라운 응답을 받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 어떤 형제는 회사 업무로 과로하여

오른쪽 눈의 시력을 실명하는 위기를 당했는데도

사랑방 식구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므로 회복의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오늘도 중보자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기도를 대변하며 돕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