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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한 삶

LNCK 2012. 3. 30. 12:03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한 삶       계3:1~3, 암7:7~8           설교스크랩, 일부녹취

 

성도가 회개할 때는, '하나님의 다림줄'을 기준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하나님의 다림줄'을 기준으로 심판하시니까요..


◑1. 사데 교회를 향한 편지


살아있다는 소문을 가졌던 사데 교회


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진 교회란..

‘살았다 하는 명성을 가진 교회이다. NIV는 살았다는 명성을 가졌다고 번역했다.

                                                                a reputation of being alive

여러분, 어떤 교회가 ‘살아있다’는 명성이 난 교회인가?

그 사데 교회에,

사람도 많이 모였을 것이고,

많은 활동도 있었을 것이고,

많은 교회의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데 교회는 살아있다’는 소문이 날 정도니까.


2천년 전에는, 사데 지역에 교회는, 딱 1개 ‘사데 교회’뿐이었다.

 

그러니까 이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로 소문이 났다는 말은,

사데 교회의 크리스천들은, 자기들이 살아있다고 자부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인근 지역, 다른 교회의 크리스천들 역시

사데 교회를 보고 ‘살아있는 교회’라고 극구 칭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는 실상은 죽은 자라’고 평가하신다.

오 마이 갓! 이다.   *너무 놀랄 때 나오는 감탄사


주님이 판단하실 때는, 절대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서 판단하지 않으신다.

오직 주님의 다림줄 Bible standard을 가지고서 판단하신다.


주님은,

당시 팽배하던 사람들의 신앙적 가치 기준

즉, ‘저 정도면 살아있는 교회야!’라는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주변의 평판이 좋고,

주위로부터 ‘살아있는 교회다’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이것도 쉽지 않지만)


주님의 다림줄은, 주님의 주권적 기준에 의해서 엄격하게 재어지는 것이지,

사람의 평판과 주님의 평판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가 평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평가기준은, 주위의 입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림줄 Bible standard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다림줄의 기준에 미달되면,

빨리 빨리 허물고,

다림줄을 재어서, 다시 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기준을 무시하고, 그 위에 계속 건축을 강행하면,

결국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1달 지은 것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과,

1년 지은 것을 허물고 다시 새로 짓는 것은..

빨리 허물고, 새로 지을수록.. 이득이다. 언젠가는 허물어야 하니까!

(이 말은, 건축을 해 보신 분들은, 무슨 뜻인지 금방 아실 것이다.)


계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남은 (조금 살아 있는) 것이라도 추스르라..는 뜻이다.


▲계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사데교회에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복음의 말씀, 그 길과 기준을

생각해보고, 지키어 회개하라.. 다림줄의 기준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위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사데 교회는

사역도 많았고, 활동도 많았던 것을 볼 수 있다. 내려오는 신앙전통과 유산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사데 교회는,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사실만 오늘날 정말 깨달아도,

머릿속으로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깨닫는다면,

우리 신앙은, 근본부터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기준(다림줄)만 통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지 않으면, 내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2.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해 똑바로 세워진 교회이다.

 


암7:7~8,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물으셨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 벽 옆에 드리운, 다림줄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내 다림줄을 내 백성 가운데 드리우고, 다림줄을 기준으로 해서,

그 기준에 어긋난 자들은, 용서치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위 구절에 ‘벽’이 나오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춰 똑바로 세워지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벽이 세워져 있기는 한데, 삐뚤삐뚤하게 세워져 있으니까,

심판하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심판하실 때도, 하나님의 다림줄을 기준으로해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내 생각을 기준’으로 해서 심판하지 않으신다.

-사람들의 의견을 기준으로 해서, 심판하지 않으신다.

-내려오는 전통을 따라 심판하지 않으신다.

-당시 팽배한 신앙적 기준을 따라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하나님의 다림줄을 기준으로 삼아서, 심판하신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들이 실패하자,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합하여

한 새 백성을 만드셨는데.. 신약의 교회이다.


그러니까 암7장에 나오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로 보여질 뿐만 아니라,

보다 궁극적으로 새 이스라엘인 교회(오늘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교회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춰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우리 개인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춰, 우리 신앙이 올바로 세워지기 원하신다.


     그래야 나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과 복이 넘친다.

 

     이 사실이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교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신앙생활을 꽤 충실히 하면서도, 

     자기 삶이 근본적으로 <불신자의 답답함>과 다르지 않아서.. 의아해 한다.

     하나님의 생명, 성령의 생기가 자기 속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경건하지만(이것도 쉽지 않지만).. 속으로는 막7:21~23과 비슷하게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다림줄이 중요한데

오늘날 심각한 것은,

우리 성도들 삶 가운데, 심지어 교회지도자들의 삶 가운데도

하나님의 기준(다림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예배를 예로 들면,

여기 이 자리에 오늘 몇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느냐.. 그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다림줄(기준)에 합한 예배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사역만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다림줄)에 합한 사역인가? .. 그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 생기, 능력, 임재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데(기준, 다림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관심조차 없다.

우리의 기준은, 사람만 많이 모이면 되고, 예산만 많이 나오면 되고,

개인적으로 사업만 잘 되면 되고, 자녀만 성공하면.. 그것이 기준인 줄 알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관심과 기준조차, 심각하게 삐뚤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추어, 똑바로 세워진 교회이다.



◑3. 하나님의 다림줄과 영적 분별력


▲하나님의 다림줄은, 쉽게 말하면 ‘성경적 기준’이다.

성경 66권을 정경(캐논)이라고 말하는데,

‘캐논’은 원래 ‘자 ruler’라는 뜻인데, 풀이하면 ‘표준, 기준 standard’이란 뜻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수확을 예로 들면,

내가 수확한 쌀이나 열매가 1등급인지, 2등급인지.. 판별하려면,

뭔가 기준(캐논) 곁에.. 내 수확물을 나란히 둬 봐야 알 수 있다.

 

지금 내 신앙생활이 올바른지, 아니면 기준에 어긋나는지는

성경에 딱 비춰보고, 성경과 비교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잣대(캐논)가 있어야,

제대로 설계하고, 제대로 시공할 수 있다.

자(캐논)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성경을 캐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성경이 모든 사역과, 삶과, 신앙을 위한

하나님의 기준standard 이라는 뜻이다.


▲영적 분별력 이란

다림줄과 분별력은 깊은 연관성이 있다.


하나님의 다림줄은 성경에 나와 있는데, 그 다림줄이 내게 똑바로 보여지려면

내게 영적 분별력(즉,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


성경에 하나님의 기준이 아무리 정확하게 들어있어도

내 영적 분별력이 가리워지면, 내 이성만 갖고는, 

그 다림줄/기준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영적 분별력은, 성령이 주시는, 영적인 능력으로서

다림줄/기준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림줄을 올바로 알기 위해, 성경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성경도 안 배우고, 연구도 안 하고, 묵상도 안 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다림줄을 알기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 주일 오후에 있는, 많은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가서, 배우셔야 한다.)


물론 성경적 지식만 갖고는 안 된다.

영적 분별력(성령의 조명)이 같이 가야 한다.


그 대표적 예가 바리새인이다.

그들은 성경적 지식에 있어서는, 정말 뛰어났다.

일부 서기관들은 모세 5경을 통째로 암송할 정도였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었다.

또 교리적으로 그들은 나름 정통적이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인정해 주셨다. 


그래서 마23:2~3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must obey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만약 저들이 가르치는 바가 성경적으로 틀렸더라면,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에게 ‘저들이 하는 말을 반드시 지키라 must obey’고 말하셨을 리가 없다.

나름대로 교리적으로 그들의 가르침은 정통적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희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 (그러나 저희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문제는, 철저하게 영적인 눈이 가리워지니까

성경 지식은 (이성적으로) 정통하면서도, 하나님의 길이, 자기들 눈에 가리워져서

‘외식하는 신앙’으로 일관하고 말았던 것이다.

겉으로는 신앙적이었지만, 속으로는.. 회칠한 무덤이었던 것이다.


 

◑4.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다림줄(기준)만 통한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주권자 앞에서 내 기준을 들이댈 수는 없다.

오스카 탐슨 박사는, 미국 전역에서 전도를 많이 하시고,

사우스웨스턴 대학에서 ‘전도학’을 강의하셨는데,


이분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항상 이 얘기부터 시작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기준만 통합니다.’

- <당신의 개인적 기준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결혼에 대한 주님의 엄격한 기준이, 성경에 나와 있다.

그런데 오늘날, 문화가, 사회적 통념이.. 그런 기준을 허물어뜨리고, 무시한다.


그래서 ‘남들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문제가 없어!’

이런 생각은, 결혼과 신혼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이다.

주님의 축복과 은총을, 그 새 출발하는 가정이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


악담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축복과 은총을, 새 출발하는 가정이 꼭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린다.

만약 어그리진 부분은, 철저히 회개하고, 가정과 은총과 은총이 회복되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예배, 우리의 사역, 우리의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기준만 통한다. 그 분이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다림줄에 합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리고 교회는,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다림줄의 기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걸 모르는 신자들도 많으니까! 그리고 성경의 해석도 쉽지 않으니까.. 설교가 필요한 것이다.



◑5.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리워질(안 보일) 수 있다.


이게 심각한 것이다. 우리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한 삶이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서 예배를 드려야, 그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준이 가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예배를 못 드리게 된다.

참다운 기준이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참된 예배를 드리겠는가!


그럼 다림줄이 가려질 수 있다(안 보여질 수 있다)는 말은,

다림줄은,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기준인데,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져서,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의 기준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절대로 참다운 신앙생활을 못한다.

왜냐하면 참다운 신앙생활의 기준이 뭔지 모르니까!


자기들이 철저히 타락한 신앙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가 철저히 타락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을 모르니까!


이것이 이사야서의 주제(그 당시의 팽배한 문제)였고,

예레미야서의 주제였고,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문제이었고,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의 문제의 핵심이다.


교회 생활도 그럴듯하게 하고,

남들이 보기에, 평판이나 입소문도 좋은데..

그래서 (사데 교회처럼) 다들 ‘살아있다’고 인정해 줄지 모르나,

예수님의 기준으로 보니까 ‘죽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들의 평판, 인정, 칭찬을

좀 가산점을 쳐주시면 좋겠는데, 일절 무시해 버리신다.

그 사람들의 기준은, 기준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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