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의 신비체험이란? 막9:2~8 09.10.12.설교스크랩
본문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신 장면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기도를 통해, 어떤 신비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까요?
◑1. 기도는 내면적 변화의 신비체험을 줍니다.
‘신비체험’이 필요한 것은, 그래야 내가 <확실히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비체험’ 없이, 성경공부만으로는.. <확실하게 믿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마가는 의도적으로 예수님께서 ‘용모가 변형되셨다’는 점을 부각시켜줍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막9:2
여기서 ‘변형’이란 말은
이것은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가면을 쓰는 외형적 변화, 옷fashion의 변형이 아닙니다.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밖의 변화입니다.’
transfigure의 뜻과 함께 transform의 뜻도 있습니다.
즉, 롬12:2절에서 말하는 <심령의 변화, 내면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이 ‘하얗게 빛처럼 변화’하신 것은.. 그저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내적 변화에서 우러나오는.. 외모의 변화인 것입니다.
만약에, 내적 변화가 없었다면.. 결코 외형의 변화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도하며 성령 충만할수록.. 나타나는 것은 내면적 변화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기도하고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난 것 같은
그런 신령한 변화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하늘의 천사처럼 빛나던
그런 영광스런 변형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도 각자 기도의 깊이에 따라..
신비한 내면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할 때는 외부 환경을 바꾸어달라고 부르짖었으나,
기도의 절정에 올라갈수록 내면세계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기도를 깊이 할수록 하나님 나라의 찬란한 영광이 보이고, 승리가 내다보이기에
혼란스런 마음에 질서가 잡히고, 영성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오늘 우리도 깊은 기도생활을 하므로
내면세계의 신비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기도는 영광의 극치의 신비체험을 줍니다.
▲기도의 극치에 오르셨던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모습이 얼마나 찬란한지 보십시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막9:3
영광의 극치입니다. 완전한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변화산상에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부활, 승천, 재림의 영광스런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은, 제자들로 하여금 놀라운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제자들은, 변화산에 오르기 전에, 예수님을 따르려면 많은 고난을 받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무거운 메시지를 들었었습니다. 막8:34
그런데 지금은 변화산상에서 메시아의 승리의 영광을 몸으로써
큰 용기와 담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과 희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찬란한 영광을 가져다준다는 소망을 갖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 저 너머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고 계십니다.(8:38, 9:1)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에 둘러싸일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권능을 떨칠 것이라'는
찬란한 승리를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승리가 보이고, 영광이 보입니다. 미래의 영원한 천국이 보입니다.
사명자의 길에.. 고난이 많지만.. 기도하는 사람에게.. 천국의 영광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 변화산의 영광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들의 고난이, 영광으로 보상받고 있음을.. 보여주신 계시적 환상입니다.
그리고 이날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며 변화산의 신비한 영광을 체험한 사람들은
모두가 영광의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훗날 베드로는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면서도
고난 다음의 찬란한 영광을 강조합니다. 벧후1:16~17
요한은 박해당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하늘의 영광과 승리자로 재림하실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심 단어 중 하나는 <보라>입니다.
승리와 영광의 왕으로 오실 어린 양 예수를 바라보며
고난을 이기는 자가 되라는 메시지입니다.
이처럼 고난 다음에는 찬란한 영광과 승리가 있기에 저는 찬송가 27장을 참 좋아합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같이 빛나네.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이처럼 기도할수록 <영광의 극치>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기도자만이.. 십자가의 고난을 능히 극복하는 것입니다.
◑3. 기도는.. 자기 정체성 확립의 신비체험을 줍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상에서 또 하나의 신비를 체험합니다.
하늘의 음성을 들으시므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체험입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내 사랑하는 아들’ - 이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이요, 오늘날 나의 정체성 (확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보통 아들이 아니고, 특별히 ‘사랑받는’ 아들입니다.
당신은 이런 ‘자기 정체성’이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의 과업성취를 위한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변화산에 올라가 착잡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음성을 사역초기에도 들으셨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동일한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1:11
하늘 보좌를 떠나서 이 세상에 내려와 메시아 사역을 출범하는 시점에서
하늘의 음성을 들었기에.. 예수님은 힘이 나셨을 것입니다.
그만큼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깊은 기도 시간을 가지므로,
고요한 중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를 깊이 할수록,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위로의 음성, 생명의 소리, 비전의 소리, 사명의 소리,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수록 주님의 음성을 들을 여가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끄러우면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조용해야 소리가 들립니다.
특히 분주하게 살수록 자기 소리만 들립니다.
▲기도의 절정은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기도 안할수록 사람의 소리가 예민하게 들립니다. 사탄의 소리에 위축됩니다.그러나 기도할수록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의 속삭임이 들립니다.
이번에 리처드 포스터 목사님이 강조하신대로 ‘Be Silent and Listen!’입니다.
조용히 깊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갈수록..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의 속삭임이 들립니다.
이번 영성집회에서 Philip Yancey가 참 종요한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시고 말씀을 하시지만, 듣는 사람은 적다.”
기도의 고요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음성이 들리며,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내가 너를 선택하였노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내가 너를 잘 아노라.
너의 형편도 알고, 너의 상처와 아픔도 알고, 네 가슴의 소리를 알고,
네 모든 생각도 내가 다 아느니라. 그러니 내가 너를 치료할 것이며, 내가 너를 승리하게 하리라.’
개인적으로는 이런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OO에게 전화를 걸어서 위로를 하라. OO에게 찾아가서 격려/전도를 하라.
OO에게 가서 사과를 하라. OO의 힘든 사정을 네가 도와주어라.
네가 고쳐야 할 점은 OO점이다. 너는 지금 OO점을 잘못하고 있다.’
▲오늘 메시지의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록, 자기 정체성이 확립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며, 내 사명감이 견고해 집니다.
그러면,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사명의 길을 의연하게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수록 사람과 사탄의 소리로부터 초연해집니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집니다.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대로 Solitary Saint(고고한 성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성이 충만할수록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지금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동시에 나는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에 대한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너는 실패자가 아니라 승리자야. 너는 불행한 자가 아니라 복 받은 자야.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야! 너는 끝난 인생이 아니라, 미래가 보장된 자야!’
그래서 하늘의 소명에 따라 사명인생, 미션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단어는 두 가지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기도하는 만큼 영광스런 승리가 선명하게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초연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기도하는 만큼 신비를 체험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영광의 신학자’가 될 것입니다.
초연한 승리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만큼 하늘의 신비를 경험하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변화산의 신비한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 다음의 영광을 바라보므로, 영안이 열리고,
내면세계가 달라지는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당신의 가슴 속에 고요하면서도 분명하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내가 너를 선택하였노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내가 너를 잘 아노라. 너의 형편도 잘 아노라. 내가 너를 승리하게 하리라.’
하늘의 영광이 보이는 신비로운 은혜,
하나님의 음성과 속삭이심이 들려오는 신비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 전략된 부분 ....................
◑서론
▲음악가 헨델은, 한 때 질병과 파산으로 절망 속을 헤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20일 동안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다가, 성경 이사야서 53장을 읽으며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사53:3
헨델은 이 구절을 읽다가 무릎을 꿇고 한참 울고 난 뒤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나의 고통과 나의 절망을 다 겪으신 분, 과연 나의 주님이십니다.’
이처럼 그는 십자가의 주님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다가
메시아 예수님의 찬란한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작곡하게 된 것이 <메시아>라는 대곡 오라트리오 입니다.
그는 실의와 좌절의 가슴으로 골방에서 깊이 기도하다가
영광의 주님을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는
“나는 메시아의 영광을 보았다.”고 수없이 외쳤다고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는 만큼 신비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은 그의 기도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기도는 때때로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기도를 깊이 한 사람들은 신비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다니엘은 바빌로니아의 을래강 언덕에서, 단8:2, 8:16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요한은 밧모섬 유배지에서
기도하다가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늘의 찬란한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비 체험을 단계적으로 하십니다.
-일찍이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기도하시다가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수세 후에 광야에 나가서 기도하시다가
천사들이 자기를 시중드는 신비체험을 하셨고,
-본문에는 십자가 수난을 앞두시고, 세 제자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기도 하시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체험을 하신 것입니다.
여하튼 기도는 체험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알고, 기도하는 만큼 경험합니다.
본문은 이점을 강조합니다.
▲막9:3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기도를 전제로 하고 있는 서술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만큼, 하늘의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특히 본문을 자세히 보면, 두 가지 신비를 체험합니다.
-하나는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요, 막9:3
-또 하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막9:7
본문 3절에서는 하늘의 찬란한 영광을 보여줍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막9:3
그리고 7절에서는 하늘의 신비한 음성을 들려줍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얼마나 신비로운 광경입니까?
'분류 없음 > 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시와 담으로 막으시는 하나님 (0) | 2012.05.07 |
---|---|
현상유지를 거부하는 신앙인 (0) | 2012.05.05 |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0) | 2012.03.19 |
우리 가정에 장애아를 주신 이유 (0) | 2012.02.15 |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시라 (0) | 2011.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