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와 담으로 막으시는 하나님 호2:2-7 출처보기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호2:6
◑서론 및 배경지식
▲남편과 아내의 이미지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며 진행해 오신
구속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 안에는 무수한 상징(symbol)과 이미지(image)가 사용되고 있어서
하나님의 신령한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본문 호세아서의 <아내와 남편의 이미지>는
‘양과 목자의 이미지’와 함께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의 관계를 상징하는 구약의 양대 이미지입니다.
호세아서는 선지자 호세아가 실제 결혼 생활을 통하여
직접적, 개인적으로 체험한 삶을 기반으로 삼아 예언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세아의 메시지는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처절한 삶의 체험에 바탕을 둔
살아있는 한 영혼의 간증이자 권면이기도 합니다.
▲호세아와 아모스의 균형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치세 말기에서
왕국의 멸망 직전까지(B.C.755-723) 사이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의 바로 앞에 활동했던
아모스 선지자(B.C.793-750)가
주로 사회 정의 와 여호와의 공의의 상실에 집중하여
이스라엘의 타락 양상을 지적한 반면,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등 영적 신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백성의 범죄를 지적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아모스는 형식적 선민의식에 빠진 백성을 향한 질타와 준엄한 심판을 선언하고,
반면에 호세아는 백성의 죄악상을 열거하면서도
그들을 향한 간곡한 각성의 촉구와 부성애적 회개의 권면에, 보다 무게를 둡니다.
그래서 흔히 아모스를 공의(The Justice)의 선지자라고 부르고
호세아는 사랑(The Love)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특히 호세아는 율법적 공의가 보다 중시되던 구약시대에
신약시대의 복음적 사랑에 가장 근접한 메시지를 전한 구약 선지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본문 설명 주1)
▲궁극적으로 화해와 재결합이 목적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정죄와 심판의 법정이
여호와께서 아내 이스라엘과 이혼을 목적으로 하여 열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화해와 재결합을 목적으로 열리는 법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위협적인 구절 속에 하나님의 자비가 빛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완고한 죄인들을 돌이키게 하려고 애쓰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시로 막으며 담을 쌓아’(호2:6) 우리를 고치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2,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음행을 제하게 하라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어미(고멜).. 이스라엘 전체를 2:2
자녀.. 그 국민 개개인을 가리킵니다. 2:4
▲...그(고멜)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음행을 제하게 하라
구약의 선지서들에서 일관하여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음행을 저질러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 음란, 음행은 일차적으로 우상 숭배를 뜻하는데,
그것은 성적 음행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원문에는 모두 복수로 되어 있는데,
문자적으로는 ‘그녀의 음란한 것들’과 ‘그녀의 간음의 행위들’ 이라는 의미입니다.
복수형은 음란과 음행의 정도가 매우 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문란한 성생활은 고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오늘 죄인들의 성품이 너무 완고하여 고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2:3,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죄의 삯은 사망’ 또는 사망의 고통임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탄식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
◑2:4, 내가 그(고멜)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자녀.. 고멜의 자녀인데, 이스라엘의 개개인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악을 행하는 자를 결코 용납지 않으십니다.
호세아 선지자 시대의 선민의 자손들은
북이스라엘의 타락한 우상숭배 문화 가운데서 태어난 세대로서,
그 기존 문화를 통해 탐욕과 부도덕과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 이상 당신의 자녀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로루하마, 로암미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호1:6, 9)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다시 루하마, 암미로 부르십니다.(호2:1)
*히브리어 ‘로’는 부정not을 의미하는 접두어
그런데 호2:4에서 다시 ‘로루하마(긍휼히 여기지 않음)’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막 교차되고 있는 것입니다.
1:6 no mercy → 2:1 mercy → 2:4 no mercy로 하나님의 마음이 막 교차됩니다. (셋 다 같은 단어 '라함')
(이게 다 사랑의 표현이겠지요?)
◑2:5,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이것은 북이스라엘(고멜)이 바알신을 따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왜 이처럼 나라 전체가 바알을 사랑하고 바알을 따르고자 했습니까?
그것은 거짓에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본문에는 바알을 통해 거저 받는 것으로 나열된 것이 6가지입니다.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떡과 물은 건강에 필요한 기본 식품이고
양털과 삼은 의복을 위한 재료이며,
기름과 술들은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사치스러운 물품들입니다.
사실상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인데(신 8:18),
그들은 그 모든 것들을 바알로부터 받는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그 이름을 모욕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찌 과거 이스라엘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죄인들의 완고한 성품은 여전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해져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회로 모이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세상의 유혹속으로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상 백성과 하나님의 선민의 구별이 쉽지 않은 때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양심의 담장을 뛰어 넘고
전통의 철조망을 가로질러 사랑하는 죄악으로 달음질하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외에는
죄인들의 완고한 마음을 정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간섭하셔야만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에 기대어
우리의 고집 센 성품을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2: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하이라이트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시와 담으로 막으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과 장애물을 통해 혹독한 징계를 주심으로
그들을 돌이키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hedge ...
앞길에, 가시 울타리, 가시 둔덕을 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길로 못가도록 막으시는 것입니다.
(과거에 탱자나무 가시로, 울타리를 친 것을 기억하시면 쉽습니다. 못 지나갑니다.)
이 말 속에는 이스라엘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완악한 짐승과도 같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호4:16에서는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호8:9에서는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시들로 그들의 길을 막으실 작정이었고,
이것은 그들이 쓰라린 아픔을 통하여, 돌아서게 될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하나님이.. 그의 앞 길에.. 담을 쌓아서, 막아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이 바알을 좇아 추구하는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의 가는 길에
효력 있는 장애물을 두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과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바알이 아닌 하나님 당신 자신을 찾아 바른 길로 행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로 부름받은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자, 소망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는 ‘길을 막는 가시들’ 과 ‘길을 찾지 못하게 하는 담’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2:7a,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좇지 않고 바알을 좇아
그 우상으로부터 행복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으로서, 그들이 아무리 정성을 들여서
바알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려도
그들이 기대한 결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멸망 받을 사람’에게는, 그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우상숭배를 하다가.. 영벌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 ‘바알’ 대신에 현대인들이 의지하는 것들을 대치시켜 보십시오.
그것이 ‘돈’ 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결과는 동일합니다.
주 예수님을 찾는 자는 생명과 풍성함을 얻어 누릴 것이지만(요10:10),
생명 없는 것들을 찾는 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결국 패망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혹독한 징계는
우리의 신앙생활 초기에 대단히 유용하게 자주 사용됩니다.
이것은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씨뿌리기 전에
묵은 땅을 힘들여 정성스럽게 기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징계의 손길을 차라리 달게 받으며,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 섭리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2:7b,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북이스라엘은 복을 얻기 위해 바알을 좇아 온갖 희생과 헌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 우상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본절은 ‘그제야’ 과거 여호와를 섬기던 때가
바알을 섬기는 현재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본 남편’ 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자기 백성들을 ‘가시로 막고 담을 쌓아’ 고치신 결과
그들에게 축복이 찾아오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깨달음과 뉘우침,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결심은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경우와 거의 흡사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굶어죽게 되었을 때에 그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15:17).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이켰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깨달음과, 탕자의 깨달음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물든 모든 인류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소중한 진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밖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누리고자 애쓰지만
주님과 연합할 때 누리게 되는 참 행복을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참 행복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잠28: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주1)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고멜은 급기야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따라
가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나가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를 향하여 아내를 용서하고 가정을 유지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아내를 용서한 호세아의 살아있는 체험 위에서
여호와께 배신을 자행한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심판 경고와 회개 촉구,
그리고 나아가서는 용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본문은 음란한 아내 고멜을 빗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법정의 재판 형식을 빌어서, 피고인 이스라엘을 정죄하십니다.
호세아가 아내로 맞아들인 고멜이 부정한 짓을 저질렀던 것처럼
여호와께서 언약 체결을 통해 아내로 선택한 북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배반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본남편인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우상들을 음란하게 섬김으로써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을 격노케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지적하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의 심판을 내리십니다.
<중략된 예화>
몇년 전 타임지에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와
그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에 대한 기사가 커버스토리로 다뤄졌습니다.
제목은 [돌아온 탕자] 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그 사모님은 얼마나 훌륭한 분들입니까?
그런데 그 큰아들은 열두 살 때부터 스물 두 살 때까지 완전히 곁길로 탈선하였었습니다.
독한 위스키 마시기를 좋아하고, 총 쏘는 것 좋아하고,
오토바이 폭주족에 완전히 비행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예루살렘 한 호텔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렇게 살수는 없지. 나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뛰쳐나왔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하는 생각이 계속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호텔 방안에 있는 기드온 협회의 성경을 펼쳤는데, 로마서 8:1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 말씀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아,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아버지 빌리 그래함의 후계자가 되어
전 세계를 순회하는 복음 전도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부산 해운대에서 20만명 이상 모였던 대부흥집회도
그가 이끄는 전도단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탕자의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지, 놀랍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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