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3편 스크랩 고전15:42~44 모두 스크랩 글
◑‘먹는 감자’ 와 ‘씨감자’ 출처, 정리
감자는 쓰이는 용도에 따라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먹는 용도고
-또 하나는 심는 용도(씨감자)이다.
대부분은 ‘먹는 감자’이지만,
그러나 다음 해 농사를 위해 준비된 감자를 ‘씨감자’라고 한다.
‘씨감자’는 먹어서는 안 된다. 큰 일 난다. 다음 농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감자를 놓고서
이를 ‘먹는 용도’로 보느냐, 아니면 ‘심는 용도’로 보느냐?,
이 관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심는 용도를.. 먹어 없애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인생은 어느 쪽일까?
‘먹는 즉, 소비하고 없애는 용도’일까.. ‘심는 용도’일까?
성경은 후자라고 말씀한다.
우리 인생은 ‘심는 용도’다.
성경은 "썩을 것으로 심고"
"욕된 것으로 심고"
"약한 것으로 심고"
"육의 몸으로 심고"
이렇게 반복해서 ‘심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해서, 부활 때에 무엇을 거두는가?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2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44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은 맞는 말이지만,
‘전적으로 현실적인 신앙’은 틀린 말이다.
기독교신앙은.. 현세를.. 순례자의 길이요, 본향을 향하는 길로 본다.
다시 말하면, ‘부활과 내세를 위하여 심는 삶’인 것이다.
현실이 전부가 아니요, 현실은 예고편이요, 본편은 저 천국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을 주실 때,
결코 ‘먹는 용도’, 즉 ‘소비하고 없애버리는 용도’로 주시지 않았다.
예수님도 달란트 비유에서 ‘장사를 하라’고 하셨다. ‘심는 용도’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먹는 감자’가 아니라, ‘씨감자’이다.
이것을 오해하는 것, 그것이 일생일대의 가장 심각한 오해다.
그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의 인생을 보나마나 실패다.
기복주의, 성공주의.. 이런 것이 잘못된 것은
‘현실에서 복 받고, 현세에서 성공해서
‘내세적 준비 신앙’을 무시하고, ‘현세적 몰입’을 강조하는 것이다.
커다란 배가, 큰 회전 반경을 그리면서, 방향을 바꾸듯이,
오늘날 우리의 기독교선船이, 크게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은 한걸음을 물러나서 내 인생을 쳐다보는 것이 어떨까?
너무나도 단순하고 근본적인, 인생을 보는 관점,
여기서부터 다시 점검해보는 것이 어떨까?
얼마나 심었는지, 주께서 물어보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 마음이 조금은 다급해지는 것을 감출 길이 없다.
‘씨감자’ 같은 인생을 살기를 기원해 드린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출처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무엇을 물어 보실까요?
이병욱 장로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은 것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재산을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나이를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학식을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외모를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신분을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국적을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질문은, 두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믿고 난 후에, 얼마나 변화 된 삶을 살았는가를, 질문하실 것입니다
세상보다 나를 더 사랑하였니?
너의 시간을 나를 위해 얼마나 드렸니?
너의 학문으로 나의 영광을 드러내었니?
너의 직업으로 나의 나라라 확장되었니?
너의 재능으로 나의 나라가 이루어 졌니?
너의 은사가 나를 위하여 사용하였니?
너의 건강을 나를 위해 드렸었니?
너의 재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니?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고,
손해 보면서도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애썼는지를 물을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래서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 왔는지를 물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얼마나 눈물을 기도하였니?
얼마나 시간을 드렸니?
재능을 드렸니?
물질을 드렸니?
욕을 먹었니?
손해를 보았니?
나를 증거 하였니?
삶으로 본을 보였니?
무조건 복음을 전하였었니?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했었니?
너의 전도로 인해서 구원받은 영혼이 있니?
주님이 질문하실 때
예, 저는 주님을 만난이후, 저의 모든 삶을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나의 최선을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 저는 주님을 믿고 난 후에, 아무개에게 전도를 하였고
그 중에 아무개를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헌신한 것과
내가 전도하여서 구원받은 성도의 이름을
당당하게 주님께 보고 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우리에게 문제가 없었던 때가 있었느냐? 출처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루터의 친구 멜랑히톤은 그에게 ‘어려운 문제가 없느냐’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자 루터는 ‘언제 우리에게 문제가 없었던 때가 있었느냐?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
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앨버트 허바드는 “삶에서 아무 문제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이미 경기에서 제외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전혀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수천 년 동안 대영제국 박물관에 누워 있는 미라였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인생이라는 항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시고 항해를 하는 신자에게도, 인생의 풍랑은 예외 없이 닥쳐옵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고난이 면제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빌1: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할 책임,
곧 그분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위해 고난도 받아야 할 책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의 풍랑을 인생의 바다에서 만납니다.
▶어느 날 참나무가 갈대를 보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자연을 원망하는 것은 당연해요.”
“내가 자연을 원망한다고요?”
“말은 안 하지만 그렇다는 거예요.
당신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고개를 숙여야 하잖아요.
하지만 나는 태풍이 불어도 까딱하지 않지요.
당신에겐 모든 바람이 태풍이겠지만
나에겐 산들바람이나 마찬가지예요.
만일 당신이 내 잎사귀 밑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보호를 받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데...”
갈대는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흔들면서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마음씨가 착하시군요. 이렇듯 저를 걱정해 주다니...”
갈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평선 끝에서 무서운 폭풍이 불어왔습니다.
참나무는 꿋꿋하게 참아냈고, 갈대는 몸을 굽혔습니다.
바람은 점점 힘이 세어져서,
머리를 꿋꿋하게 하늘로 향하고 있던 참나무를 뿌리째 뽑혀버렸습니다.
하지만 갈대는 의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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