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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이유

LNCK 2012. 4. 20. 17:35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이유          막6:1~6             출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두루 전도활동을 다 하시다가

고향으로 귀향을 하십니다.


그래서 거기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는데,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면서 예수님을 배척했다는 이야기가.. 본문입니다.


자! 이 이야기를 통해서, 도대체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인가요?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주 유명한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이 말씀이,  막6:4 

예수님의 이 사건과 어울려 가지고, 아주 유명한 말씀이 되지 않았습니까?


자! 이것이 어떤 내용을 말하는 것인가 한번 우리가 살펴봅니다.


여러분, ‘마리안 스퇴거’ 수녀님과 ‘마가렛트 피사렉’ 수녀님의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각각 1959년과 1962년에, 고향 땅 오스트리아를 버리고,

우리나라 저쪽 전라남도 끝에 있는 소록도로 오신 분들입니다.


1959년 1962년에 들어오셨는데, 그 당시는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를 비교하면

천국과 지옥 정도의 차이가 날 것이에요.


아직도 한센병이 치명적인 저주처럼 여겨지고 있던 그런 시대에,

소록도로 들어가셔서, 43년 동안 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장갑도 한번 끼지 않고 그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본국에서 지원비로 오는 모든 생활비까지, 절약해서 다 그들을 위하여 사용하며 살다가,

이제 연로해서, 자기들이 오히려 주민들에게 짐이 될까봐

2005년 11월 어느 새벽에

낡은 가방하나 달랑 들고(짐이 없는 청빈한 삶) 공식적인 환송예식 하나 없이

소록도 주민들이 다 잠자고 있는 새벽에, 몰래 빠져 나와 본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참 가슴이 뭉클한 이야기이지요.

근데 이 이야기를 만약에 이런 관점으로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수녀님들을, 소록도 주민들이 바라볼 때에,

오스트리아의 발전된 문명과 문화생활을 가지고 온 자로 본다..든지,

그래서 1960년대 한국, 소록도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로서는,

너무너무 선망의 대상인 오스트리아의 문화를 그대로 가져와서,


집도 그분들이 사는 집은 주민들과 다르게 오스트리아에서 살았던,

그런 아주 잘 꾸며진, 서구문명이 잘 배어들어 있는 그런 집을 지어놓고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주민들로 하여금 그런 발전된 문명을 꿈꾸게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만약 이런 각도로 바라본다면..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겠지요.

요지는, 두 수녀님은, '천국을 전해 주신 것'이지,

'서구 문명을 전해 주신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런데 미군들은 그랬어요.

그 당시의 미군들은, 캠프 안에서, 모든 음식과 물까지 다 미국에서 공수해서

그 캠프 안과, 대한민국 땅을 비교해 볼 때,

마치 천국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발전된 미국 문명을

한국에 그대로 다 옮겨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군인이니까, 이게 정상적입니다)


자, 이 두 가지 비교되는 그림을 갖고

본문을 이해해야 이해가 바르게 됩니다...


주님이 고향 땅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셔서, 늘 그랬듯이 가르치시고 능력을 행하십니다.


반응은 뻔합니다, 고향 사람들이 놀라 자빠집니다, 

이 사람들의 놀람 속에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어요.


왜냐 하면 30년 동안 예수님께서 태어나서 목수 일을 하시고,

그의 형제들과 함께, 그 부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던 모습을..

다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예수님의 그 지혜와 그 능력의 출처를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예수님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자기들이 환하게 다 알고 있는데

도대체 이 능력과 이 지혜는 어디에서 생겼느냐는 겁니다.


잠깐 고향 땅을 떠나서 밖에 외지에 나가 있다가 돌아왔는데,

지금 그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는 걸 보고.. 기절하는 겁니다.


근데 이상한 것은

그 지혜와 능력을 봤으면 칭찬을 하거나, 놀라도 긍정적으로 놀라야지,

왜 예수님을 배척합니까?


이 배척한다는 말의 뜻은 ‘스칸달론’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거예요.

‘스칸달론’이라는 단어는 아시는 대로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왜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지혜를 보고

그들의 마음에 걸려 넘어지고, 예수님을 배척합니까? 이상하다는 거예요. ←문제 제기


그리고 이렇게 배척하는 이 사람들의 행동을 보시고,

예수님도 똑같이 이상히 여기는 겁니다.

‘그거 참 이상하다 왜 나를 배척할까? 참 이해가 안 간다’


자~ 그 이유를 한 번 풀어보십시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돌아오셨을 때,

유대사회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금의환향, 버젓하게 출세하셨다는 것이 분명한 증거들을 갖고 돌아오셨다면..’

사람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능력과 지혜가 보였을 때

출세하신 예수님, 출세했다고 인정 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면,

즉, 금의환향하셨다 그러면

그 능력과 지혜는.. 고향사람들에게 높이 칭송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향에 돌아오신 모습은,

(아마 가버나움) 시골구석에서 날마다 농사나 짓고, 목수일이나 하고

고기나 잡고 있던 자기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능력과 지혜가 나타납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그냥 ‘떠돌이 김삿갓’처럼 받아들였지, ‘메시아’로서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왜 꼭 배척했을까요?

즉, 행색이 초라하다고.. 꼭 예수님을 무시한 겁니까?


그 가르침과 표적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할 수도 있었는데..

왜 꼭 배척했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니까> .. ‘떠돌이 가난뱅이 선생’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 관점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셨는데>

세상적인 관점이 바뀌지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떠돌이 방랑선생은 (김삿갓 같은 이는) 크게 믿고 따를 인물은 아니다!’ 면서요...


자기들도 세상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기들이 선망하고 있는 출세한 모습으로, 예수님이 금의환향하셨다 그러면

그 지혜와 능력이 칭송받았을 터인데,


지금 자기들의 꼴과 똑같은 행색을 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오셨는데

어울리지도 않는 능력과 지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꼴 같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 당시에, 갈릴리에 안 살았기에 망정이지,

우리가 당시에, 가버나움에 살았더라면.. 아마 예수님을 못 알아봤을 거예요.


여러분 제가 독일에 가서 제일 이상했던 게 뭔지 아십니까?


하수도 구멍에서 공사하다 나오는 그 독일 아저씨가,

TV 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장동건 만큼 잘생긴 거예요.


깜짝 놀란 거예요, 아니 저 얼굴을 하고

왜 하수도에 들어가서 일을 하느냐 이겁니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하수도에서 막노동 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제가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니까) 그 사람이 괜히 ‘더 못나’ 보이는 거예요.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정말 초라하고 못생긴 사람이, 세상적으로 출세한 지위에 올라가면

그 사람이 달리 보여요, ‘와, 저 사람 겉보기와는 다르네!’


어쨌든 예수님의 외모와 행색이

도대체 그 능력과 그 지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죠.

보통 ‘매치가 되지 않는다’고 얘기하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그 사람들보면서, 또 이상하게 여기셔요.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선지자라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선지자는 보냄을 받은 자에요.


그러니까 그의 배경, 그의 출신은 하늘나라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그 고향 사람들은,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이, '옆집 총각'이었기 때문에,


그 총각이 선지자라고 나타날 때, 그 총각의 배경인 천국을 보지 않고,

선지자로서의 배경인 천국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난 가정을 배경으로 봐 버립니다.

이 얘기는, 예수님 자신에 관한 얘기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자신이 천국에서 보냄을 받았고,

지금 현재 여기서 말로만 듣던 천국이, 예수님과 직통으로 연결되어서,

천국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주어지는 말씀과 능력을 가지고

이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스트리아에 있던 수녀님들이,

1960년대 한국 땅 그것도 소록도로 오셨어요.


소록도에 있는 주민은 그 누구도 이 수녀님들에게

앞서가는 문명의 오스트리아를, 소록도에서 재현시키기를 원하지를 않아요.

만약 그렇게 하셨다면, 그러면 다 이상한 사람들이죠.


오히려 이 두 수녀님께서 소록도의 수준에 맞추어서

그들과 함께 지내신 겁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천국 시민의 삶'을 보여주신 겁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지금 오신 분이에요, 천국이 지금 연결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출세를 다 모아도

천국의 좋은 것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소록도와 오스트리아를 비교해보세요


예수님이 그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는 이유는 뭐냐 하면,

‘너희도 그 천국을 가지라’는 얘기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그 천국을 가질 생각은 하지 않고

이 땅에서 정한 기준을 따라,

예수님보고, 출세하라는 얘깁니다.


기가 막힌 노릇이지요,

이 땅에서 ‘예수님 출세를 하시라’는 거예요.


그래야 좀 신빙성이 있고, 좀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그 초라한 행색 갖고는.. ‘그 지혜와 능력’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는 겁니다.

(잘 생긴 남자가, 트럭 조수나, 배관공 일을 하는 것과 같지요.

또한 여배우처럼 생긴 여자가, 가사도우미 하는 것과 같지요) 물론 직업엔 귀천이 없습니다.


천국과 연결돼서 능력과 지혜를 받았다 그러면,

마땅히 그 지혜와 능력에 맞게

‘이 땅에서도 출세하고 성공하라’는 겁니다.


-고향 사람들의 관점이.. 지극히 세상적이라서,

  예수님과 서로 엇박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소록도 주민들이 두 수녀님께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을 따를 테니까,

당신이 소록도에서 면장도 하고, 소록도에서 군수가 한번 돼 봐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랑 똑같다는 얘깁니다.


기가 막힌 노릇이죠. 수녀님들은 소록도에, 보스가 되려고 오신 게 아닙니다.

이 소록도 안에서 면장하고, 군수 하시려고 온 게 아니에요.


소록도 주민들을 거느리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천국을 전해주고, 섬기려고 온 거에요.


◑적용 


우리가 예수님께 나오는 이유가 뭡니까?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주의 종들도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소유하신 분으로서, 천국으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천국 관점으로, 천국을 현실화해서> 살아야 합니다.

 

천국과 연결되어진 상태에서 주어지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출세하려고 사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출세는 끝났어요.


천국을 갖게 된 것보다 더 큰 출세는 없고,

천국을 현실화해서 사는 것보다, 더 큰 성공과 형통이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 무엇을 하더라도.. 천국과 바꿀 수 없다는 얘기에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서 주어지는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데 도구로 쓰겠다는 겁니까?


성령의 능력이 하늘에서 주어지면

그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목회에서 크게 성공한 목사 되겠다는 겁니까?

이게 정말 난센스 중에 난센스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기이 여기셨더라, 이상하게 여기셨더라’

‘아니 천국을 가졌으면 성공한 거고, 더 이상의 성공이 있을 수가 없는데,

그 천국을 가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혜를 가지고 능력을 가지고,

다시 이 세상에서 출세, 성공하라는 얘기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주러 왔는데,

도대체,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지 못했다고 나를 배척하고 있느냐?’ 하신 겁니다.


여러분! 아직도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

이 세상에서 내가 출세하고 싶으십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보시면서, ‘참!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왜 주려는 천국을 갖지 않고, 천국을 현실화 하려 하지 않고,

그 천국의 힘으로 그 잘난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려 하느냐,

정말 이상하기 그지없다’ 라고 말씀하실 것이에요.


기도/ 하나님, 천국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님과 성령님과 천사들이 볼 때,

정말 이상하다 못해 괴상하기까지 한 삶을,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왔습니다.

어찌 천국의 힘을 빌어서, 세상에서 출세를 하려 했습니까?


이제 우리의 이 모든 잘못된 괴상함이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중단되게 해 주셔서,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 천국에 대해서 산 자로 살며

천국으로부터 보냄 받아 산 자로서, <천국을 현실화해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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