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봇 삼상4:19~22 인터넷설교 일부녹취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영광스럽게 역사하실 때도 있지만,
어떨 때 (우리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를 떠날 때도 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본문이 그 해답을 주고 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믿음의 여인
▲법궤가 빼앗겼을 때,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
즉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으면서
이름을 ‘이가봇’이라 지었다.
여러분, 어느 날 갑자기 적군이 쳐들어와, 우리나라의 보물 1호 남대문(숭례문)을
해체해서 전리품으로 갖고 갔다고 생각해 보시라.
이스라엘이 법궤를 빼앗긴 것은, 그보다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여인의 눈에는 ‘아~ 우리 가문의 영광이 옮겨가고 있구나!’가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의 출산은 너무나 큰 기쁨에도 불구하고
산모는 ‘이가봇’이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이가봇 I-chabod .. ‘카보드’는 영광이고, 접두어 ‘이’는 부정 not을 나타내는 말.
즉 ‘영광이 없음, no glory’ 라는 뜻
우리도 마찬가지다.
평생 영광의 시간만 있지 않다.
평생 평안의 시기만 있지 않다.
우리 각자도, 때로는 ‘이가봇’이라 외칠 만한,
그러한 환란과 질곡의 때를 지날 때가 있다.
▲저는, 이 설교의 주인공 ‘비느하스의 아내’가 믿음이 있는 여인이라고 본다.
자기 가정이 지금 몰락하는 시련을 막 겪고 있는데,
그것이 집안 남자들의 불신앙 때문이라고 보았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졸지에 같은 날에 다 죽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예전에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을 출산하다가.. 자신이 죽게 되었는데.. 옛날에 출산 여성들이 많이 죽었음
아들(막내) 이름을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지은 것은,
어쩌면 재와 티끌을 뒤집어쓰는 ‘회개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서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 그러므로 저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런 뜻이 바로, 엄마(산모)가 죽으면서
자기 아들에게 붙여준 이름의 뜻이라고 본다.
비슷한 예를 들면, 옛날 우리나라에,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개똥이, 미나리’ 이런 식으로 붙였던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위생과 질병 등의 이유로 유아사망률이 워낙 높으니까,
‘개똥이, 미나리라고 지으면 장수한다’, ‘이름이 험악해야 귀신이 안 건드린다’
는 어떤 소문이나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흉한 이름을, 고귀한 자기 자녀에게 붙일 수는 없다.
그러니까 비느하스의 아내는
하나님의 심판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대단한 믿음의 행위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새로 태어나는 자기 아들에게 '저주의 이름(이가봇)'을
쉽게 붙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다.
그 결과, 엘리와 비느하스 시대는.. 하나님의 치심을 받았지만,
그 후손의 시대는
엘리→ 비느하스 →아히둡 → 아히멜렉 →아비아달까지
제사장의 직분을 계속 감당했다. 주1)
즉 다윗 시대까지, 제사장으로, 그 가문이 계속 쓰임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 아비아달이
솔로몬 편에 가담하지 않고,
아도니야 편에 가담하게 된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낙향시키고
대신에 사독을 제사장에 앉히게 된다.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왕상2:27
요지는,
비느하스의 아내가 ‘이가봇’이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니까
(자기 가문의 죄를 겸허히 시인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니까)
‘이가봇’은 막내라서 크게 쓰임을 받지 못했지만,
비느하스의 장자 (이가봇의 형) 아히둡으로부터 시작해서
아히멜렉
아비아달까지.. 그 제사장 직분이 3대로 계속 내려갔다.
비록 솔로몬 왕 때, 제사장 직이
아비아달로서 끝나고.. 대신에 사독 계보가 시작되는데
비느하스 이후 3대까지라도, 계속 제사장 계보가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비느하스 대로 끝나지 않고)
순전히 ‘비느하스의 아내’의 믿음 때문이라고 본다.
며느리가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기 집안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간구한 것이다.
그것마저 인정 안 했으면, 자기 세대에서
정말로 ‘저주의 이가봇’ 으로, 완전히 끝날, 즉 멸문지화 당할 뻔했다.
◑적용하면
▲우리도, 살다보면, 곤란한 환경에 처할 수 있다.
‘너 장가도 못간 노총각이야!’,
‘너 나이 30이 넘어서도, 시집도 못간 노처녀야!’
‘너 직장도 없는 백수, 비정규직이야!’
이것들이 다 ‘이가봇 방식’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네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식의 말이다.
그렇지만 그걸 겸허히 인정하고, (그 산부가 ‘이가봇’이라 외쳤던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를 겸허히 구하면
즉 ‘그래 네 말이 맞다. 나는 이가봇이다.’라고 인정하면, 진짜 맞는 말이 아니더라도
정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내게 다시/계속 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어려움에 처했다 하더라도, 나의 겸비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다시 입게 된다는 것이다.
※엘리가 사망한 후로는,
이스라엘의 영적 주도권은, 사무엘 (제사장이 아니라 선지자)에게로 넘어간다.
사무엘은 (실로가 아니라) 라마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오늘날의 ‘이가봇’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릴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외적인 영광’을 추구할 때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그것을 못 볼 뿐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랑, 섬김, 겸손, 은혜에 있는데,
우리가 그런 신앙적 자원을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외적인 영광, 세상적 영광을 구할 때.. 영광이 사라진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값비싼 외제 승용차
명품 시계, 명품 가방 등에 집착할 때
나도 모르게..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림)이 된다.
▲이스라엘 역사는.. 늘 ‘이가봇’을 반복했다.
엘리 가문에 일어난 비극은,
엘리 시대에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반복되었다.
즉 신앙의 본질/ 내면적 신앙 /인격적 하나님과 관계를 추구하지 않고
다시 말해서 자기 죄 관리하지 않고, 자기 경건 생활 관심 갖지 않고
겉으로 교회 생활 꼬박꼬박 하는 것..
이거 ‘문화적인 종교생활’이 되기 쉽다.
이게 오래 지속되면.. 결국 ‘이가봇’이 된다.
이것이 얼마나 <지독한 만성질환>인가 하면
그 ‘문화적 종교생활, 외적인/외식적 신앙생활’ 때문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이나 연단을 받았다.
70년 후에 귀환해서, 일정 기간 잘 믿는 듯 하더니,
결국 또 ‘외적인/외식적 신앙’으로 치우치고 말았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유대교, 사두개인, 바리새인’이며,
그 유대교는 신약시대까지 계속되었고,
예수님의 신랄한 공격과 비판을 받았다.
▲그 가운데 참 신앙인도 있었다.
여러분, 역사책에 보면 (신)바벨론의 세속적 부유함과 영광은 넘쳐났다.
요즘도 ‘공중정원’이란 말이 세간에 오르내리는데,
성경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갖고 있었던, 사치스런 정원을 뜻한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역사의 주인공은
세속적 영광과 부유함이 넘쳤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거기서 환관으로 섬겼던 다니엘이.. 그 주인공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바벨론의 (외적) 영광’을 추구하려 하다가는
영적으로 ‘이가봇’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바벨론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했던 다니엘은.. ‘영원히’ 영광스런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신약에도 ‘힘과 부유함’이 영광이 아니라,
주를 위해 받은 고난, 핍박이 ‘복이요, 영광’이라고 설명한다.
다니엘이 그런 복과 영광을 누렸던(?) 신앙인이었다.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했지만...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신앙으로 인한 환란은 멀리하고,
세상 영광, 세상 부유함만 추구하는데.. 그러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
▲어쨌거나
살다보면, 늘 승리만 있지 않고.. 때로는 언약궤가 뺏길 때가 있다.
즉 ‘이가봇’ .. 영광이 내게서 떠나갈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빼앗기면 빼앗기는 대로
겸손히 주님의 처분과, 주님의 긍휼을 간구하면.. 다시 회복된다.
그 증거를.. 엘리 가문의 후손을 통해서, 위에서 살펴보았다.
혹자는 ‘회개’를.. ‘오직 주님은 옳소이다. 주님의 처분만 기다립니다’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겸허히 시인하는 것이며, 저는 변명 일절 안 하겠습니다.
어떤 처분을 받든지, 주님의 처분이 옳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저는 불평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심이 떨어지면.. 법궤가 빼앗길 때.. 오히려 더 빗나간다.
자포자기 해 버리든지..
하나님을 원망하든지..
사람(원수)을 원망하든지..
어쨌거나 자신이 회개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나빠진 것이,
다른 사람의 탓이요,
하나님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내 잘못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이 내게서 떠나갔을 때는
겸허히 나의 잘못을 시인하며, 나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그 영광이 다시 되돌아오게 만드는.. 지름길인 것이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래서 영광이 다시 돌아왔다.)
.....................
주1) ‘엘리와 비느하스 이후의 계보’
삼상14: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위 구절에 의하면, 엘리 제사장의 후손이 이렇게 나온다.
엘리→ 비느하스 →아히둡 →아히야
→아히멜렉 →아비아달
삼상22:11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삼상22: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위 구절에 의하면,
아히둡의 가문이.. 놉 땅의 제사장들이었다.
이 가문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 나오는데, ‘아비아달’이다.
그는 사울이 놉 땅의 제사장들을 다 죽일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자로서,
다윗 왕 때에..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나 솔로몬 편에 서지 않았다가, 솔로몬에 의해서 낙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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