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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은 숨으셨는가? 3570

LNCK 2012. 4. 26. 14:56

◈왜 예수님은 숨으셨는가?            요12:35~43          요한복음78강. 출처

 

요12: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숨으신 예수님

 

본문 요12:35~43을 보면,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제자(무리)들에게

뭔가 비밀스러운 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40


마치 엄마가 자기 자식에게

다른 아이들 몰래 맛난 것을 먹이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유대인들 몰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마13장에 보면 ‘천국의 비밀’을 제자들에게만 알려주잖아요.

제자들에게 알려주면서 ‘쉿! 너희들에게만 알려주는 것이야!

저기 저 바리새인들에겐 비밀이다!’ 라고 말씀하는 것과 같아요.


위 본문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얘들아! 나는 빛이고 세상은 어둠이란다!

그래서 세상이 나를 몰라본 단다!’


여기서 세상이란.. 유대인을 말하고 광의적으로는 온 인류를 말합니다.

본문에선 유대인을 말합니다.

그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너희들은 나와 다녔으니 내가 빛인지 알겠지?

이제 내가 곧 떠나가야 하거든!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하거든!


내가 떠나면. 너희도 저들과 똑같이, 어둠에 빠질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을 때, 내 말을 단단히 들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새겨들어야 한다!

귀담아 들어 놓아라!


그래야 너희가 빛의 아들이 된단다!

빛의 아들이 되어야 내가 가는 곳에 너희도 올수가 있단다!

그러니 내가 너희와 같이 있을 동안에, 내 말을 잘 듣고 믿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무슨 선문답(禪問答)하는 것 같지요.

맞아요.

빛과 어둠의 선문답(禪問答)이에요.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몰라요.

알 수가 없어요.

나중에 성령이 오시자,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선문답하듯이 말씀하시고선

예수님이 저희들을 떠나 ‘숨어버리신다’는 겁니다.


요12: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헬라어에는 미완료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지 무지하게 중요해요.

정신 바짝 차리고 들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숨으셨다는 말은

죄인들이 예수를 믿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엄청난 비밀이 담겨져 있어요.


우린 흔히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이상해집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숨으실 필요가 없지요.

더 예수님을 드러내서 믿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믿을까봐 숨어 버렸어요.

‘너희들 예수 믿으면 안 돼!’ 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뭔가 이상하지요.


우리는 주님께서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을 몰라요.

‘믿게’ 한다고만 생각해요.


왜 예수님이 스스로 숨으셨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허구로 흘러요. 헛다리 짚게 되어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신앙생활을 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영광 영광 하면서 말이에요.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숨으셨어요.

죄인들과 격리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엔 “죄인”들이 예수를 믿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숨겨 버린 겁니다.

물론 죄인이 예수께 와서, 믿고 구원 받아야 하지만,

죄인이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계속 예수를 믿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인듯.. 더 읽어봅시다. 


그 이유를, 본문에,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겁니다.


요12:38~40,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 선지자가 뭐라고 했나요?

‘하나님께서 저희 눈을 멀게 하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소경을 만들고, 마음을 어둡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사야의 말을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주님을 믿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니! 이 무슨 황당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도 똑같이 말씀했어요.

 

행28장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자.. 똑같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했어요.


행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이렇게 되면 누가 복음을 말해도,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닙니다.

예수 안 믿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상식으로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보낸 것은 자기 백성들을 예수를 믿게 해서 구원시키기 위함이에요.


그럼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서, 예수를 믿게 해 주어야지요.

예수님을 보면 첫 눈에 ‘아! 저 분은 메시야구나’ 알아보게 해 주어야지요.


그래서 영적인 소경들도, 척 알아듣고 예수를 영접하게 하여야지요.

가는 곳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나타나야 해요.

이게 우리 생각이고, 상식이에요.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믿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 상식과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말씀합니다.



◑그럼 왜 그런가 그 원인을 추적해 봅시다.


하나님이, 죄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한 이유를 찾아봅시다.

분명히 ‘죄인’이 예수를 믿으면 안 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숨우신 것이니까요.


숨었다! 감춰졌다! 라고 하면,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마치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상황을 보는 것과 같아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인이 되어 죽은 자가 되자

급히 ‘생명나무 과실’을 따 먹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는 것과 같지요.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과실’을 먹으면 큰일 나기 때문에.. 급히 숨기고 쫓아낸 것입니다.

죄인이 생명나무 근처에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숨겨 버렸어요.

 

여기에 오늘 본문의 정답이 숨겨져 있어요.

 

생명나무 실과 속에 뭐가 있나요? 영생이 있지요.

‘생명나무 과실’을 먹으면 영생한다고 하였잖아요.


이렇게 되면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죄인은

‘생명나무 과실’을 먹고 영생하는 자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이 되지요.


그러니 부랴부랴 천사들을 동원해서. 생명나무와 그 과실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곧 죄인은.. 생명나무 과실을 먹으면 큰일 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에게 불 칼을 들고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설명해 봅니다.

‘생명나무 과실’를 먹으면 영생한다고 했지요.


이걸 예수님에게 적용해 봅시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했어요.

‘누구든지 자기 살과 피를 먹으면 영생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되면 ‘예수님 또는 그 말씀 속에 영생이 있다’는 말이 되지요.

이러면 ‘생명나무 과실’을 먹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은 같은 뜻이 됩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이니..

그럼 구약의 ‘생명나무 과실’은, 신약의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 되겠지요.


그럼 구약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감추신 것은

신약 에선 하나님이 죄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같은 뜻이 됩니다.

그래서 본문에, 예수님이 스스로 숨으신 것입니다. 요12:36


구약에.. 죄인에게 ‘생명나무 실과’를 감추었다는 것은

신약에.. 죄인이 예수 믿고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죄인이 예수를 믿고자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말과 같아요.

즉, 죄인이 회개하고 회개하고자 하는 자세로 예수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인인 상태 그대로, 예수를 믿으려 하면.. 절단 나는 것입니다.

 

죄인은.. 세례 받고, 즉 세상에 대해서 죽고 난 다음에, (형식적 세례를 뜻하는 것은 아님)

비로소 생명의 떡을 먹고, 생명나무 실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왜 죄인이 예수를 못 믿게 하실까요?

그건 죄인이 예수 믿으면.. 죄인으로서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뱀이 선악과를 소개할 때 뭐라고 했나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했지요.


하나님도,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을 내어 쫓을 때 하신 말씀이

‘저들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같이 되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에게

‘생명과’를 감춘 이유를 알 수가 있어집니다.

 

피조물이 선악을 아는 일로.. 영생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안다는 말은.. 심판 한다는 말입니다.

 

      ‘심판’은 창조주만이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더러 심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만 뜨면 누구를 심판하고 있어요.


누군 옳고 누군 그르고 판단하잖아요.

이게 모두가 선악과를 먹어서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처럼 심판하려 하는 겁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인이 되었어요.

죄가 뭐냐!

하나님과 다른 눈을 가진 겁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좋다고 하는 것을, 좋다고 하고

하나님이 싫다고 하는 것을, 싫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罪)라고 하면.. 죄이고

하나님이 의(義)라고 하면.. 의라고 하는 것이 신앙이에요.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인간은 독자적인 눈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독자적인 눈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하는데도, 자기가 싫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싫다고 하는데도, 자기는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치장을 하는 겁니다.


좋고 나쁨의 기준을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반(反)하는 일을 하게 되어 있어요.


이런 자를 그대로 두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되어요.

이런 자가 '생명과'를 먹고 영생을 한다면 이건 재앙이에요.


그래서 죄인이 ‘생명나무 과실’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떼 놔야 해요.

그래서 예수를 못 믿게 (예수님이 숨으신) 하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과 다른 눈을 가졌어요.

죄인의 눈이에요.


죄인의 눈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는 겁니다.

자기들 눈으로 판단해서.. 예수를 믿고자 합니다.


죄인의 눈에 비친 예수는.. 자기 소원을 들어주는 예수에요.

떡을 주는 예수이고!

병을 고쳐주는 예수이고!

기적을 베푸는 예수입니다.


모두가 자기 육신에게 유익을 주는 예수입니다.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예수라면 얼른 믿어야지요.


얼른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성공자로 살아야지요.

이게 죄인들이 예수를 믿고자하는 믿음이에요.

이런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을 평생 이용하게 되어요.


원래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인간을 창조 했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을 창조 했어요.


애당초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어요.

오로지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만 있어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어 있어요.

이게 피조물이에요.


그런데 죄가.. 하나님을 거역하게 만들었어요.

자기 뜻대로 살게 하였어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 자가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가 되고 말았다고요.


이런 몸을 어찌 에덴동산에서 살게 할 수가 있나요?

쫓아내야지요.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인간 지음을 한탄하셨다’고 하지요.

왜 한탄 합니까?


하나님 말을 안 들으니.. 한탄하는 겁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보고 언제 한탄합니까?

말 안 들을 때잖아요.


(그러니 말을 안 듣는 자식은

곧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말 안 듣는 죄인임을 알게 하려고

그런 자식을 주신 것입니다.

자식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런 종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으로서 영생하는 것을 막는 일을 하세요.


죄인 그대로 예수를 믿으면

죄인이.. 자기 시각으로 아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 숨겨 버린 것입니다.


본문은 일차적으로 바리새인들을 향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숨으신 것은,

이는 죄인(자연인)으로서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류역사는 죄인(자연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겼어요.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인간의 자기 가능성으로 섬기게 되어요.


이게 대표적으로 잘 나타난 것이 바벨탑이에요.

이는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에 도달하겠다는 발상입니다.


이게 신앙으로 나타난 것이 바리새인들이었어요.

바리새인들은 인간의 자기 의(義)로 구원을 받고자 했어요.


이게 결국엔 예수님을 죽이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식 신앙은, 하나님을 죽이는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자기 의(義)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기 의(義) 때문에 하나님의 의(義)를 거부하였다고 말하고 있어요.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의는 율법을 지켰다는 행함이에요.

율법을 지켰다는 행함이 바로 바벨탑 사상이에요.

인간의 능력으로 천국에 가겠다는 악(惡)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을 잘라 냈어요.

그리곤 천국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방인을 긍휼로 구원을 해 주셨어요.


세리와 창기들은 이방인을 상징하는 자들이에요.

이방인은 구원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관심조차 없었어요.

아니 모르고 살았어요,

하나님에 대하여 소경이란 말입니다.


이걸 믿음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선 예수를 믿고자 하는 자들에겐 예수를 감추어 버리고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겐 믿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에게 그러지요.

너희가 소경이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그져 죄가 있다고!


이 말은 너희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였다면 구원의 은혜가 덮쳐 올 텐데

안다고 하니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주여 우리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하면

구원의 은혜가 임할 터인데

주여 우리는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천국에 갑니다! 라고 하니

(나약한 구세주..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자력 구원할 것입니다.)

죄가 그대로 있다고 하는 겁니다.


안다고 하는 자는.. 모른다고 하고

모른다고 하는 자에겐.. 예수를 알도록 눈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소경을 눈 뜨게 하고 본다고 하는 눈뜬 자들은 소경을 만들어 버린 겁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했다는 것은 예수를 믿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본다고 하는 자들을 소경을 만들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려 버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못 믿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본다고 하는 자에겐.. 예수님은 감추어져 있고

소경이라고 하는 자에겐.. 열려져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은 감추어져 계신다’고 하는 겁니다.

‘비밀’(무스테리온)이라고도 하지요.

죄인(자칭 의인)이 예수님을 만날 수 없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빛이라 하고, 세상은 어둠이라고 합니다.

어둠이란.. 빛에 대하여서는 소경이란 말입니다.


빛을 예수라고 했으니.. 세상은 예수에 대하여 소경이에요.

세상은 예수님에 대하여 소경입니다.


죄인(아담의 후손)으로서, 자기 지식으로 예수를 믿으면,

‘예수 믿으면 세상 복 받고, 세상에서 잘 살아야 된다’는 사상으로 교인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세상) 복 주는 예수!

이것은 소경으로서, 예수를 믿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숨어버리십니다.

차라리 그게 그들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주제가 뭡니까?

‘예수님은 빛이고, 세상은 어둠’이라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세상은 자신들이 ‘어둠’인줄 몰라요.

그러므로 ‘자신이 (자기 힘/지식/판단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접근을 하는 겁니다.


이게 유대교 신앙이고 구약이에요.

모든 인간은 다 여기에 속하였어요.

인간의 열심과 충성으로 구원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은

인간 쪽에서 예수님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식으로 일을 하시는 겁니다.


인간들이 자신이 ‘어둠’인줄도 모르고,

‘어둠의 방식’(육적 방식)으로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것을

하나님이 막아 버리는 겁니다.

 

◑적용


예수는 ‘소경’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소경입니다!’ 고백하면,

예수님이 그의 영안을 뜨게 해 주셔서, 구세주와 영생을 보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나는 잘 봅니다. 소경이 아닙니다!’ 하면..

그들이 보는 하나님, 그들이 보는 예수님은

-죄인에게 복 주는 예수!

-자기 소원을 들어주는 예수!

-죄인으로서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그런 예수가 보이는 겁니다.

예수님이 ‘감추어져지지 않은’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들과 정 반대의 모습으로 사도됨을 증명하고 있어요.


나는 예수 때문에 매 맞고!

옥에 갇히고!

굶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고!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때문에 겉 사람이 후패 할대로 후패했는데!

거짓 종들은 예수 때문에 겉 사람이 돼지처럼 살이 포동 포동 찌고 있어요.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예수 때문에 겉 사람이 후패한 것인데!

그러나 거짓 종들의 자랑은 예수 때문에 겉 사람이 살찌운 것이에요.


그래서 바울이 화를 내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어찌 그렇게 분별력이 없느냐’고 책망하는 겁니다.


내가 언제 세상에서 호의호식하고 왕 노릇하는 예수를 가르쳐 주었느냐?

내가 언제 죄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예수를 증거했느냐?


‘그런데 너희들은 어째서 그런 가짜 예수를 전하는 자들의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잘 믿고 있느냐?’고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래요.

교인들이 죄인의 소원을 빼앗아가는 예수를 믿지 않고

죄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예수를 믿고 있어요.


교회마다 기적을 행하는 예수!

내 가정을 행복하게 해 주는 예수를 믿고 있어요.

예수를 이용해서 육신을 배불리고 살찌우고 있어요.


그러니 교인들이 겉 사람의 후패함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 때문에 쇠하고 약해지는 아픔은 없고!

예수 때문에 흥하고 강해지는 화려함만 있는 겁니다.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생명이 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판을 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을 내게서 감추어 진 것’에 대하여 감사하여야 합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감춰지는지를 우리 신앙에 적용해 봅시다.


우린 강한 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영웅이 되고 싶어해요.

우리 본성이 늘 이런 삶을 추구해요.


그래서 어디서든지 난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겁니다.

남에게 알려져야 하고!

남보다 잘 살아야 하고!

남들이 나를 알아주어야 해요.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으면 시기하고 질투해요.


그래서 나보다 강한 자가 있으면 넘어지기를 바라고 사라지기를 바래요.

이게 아담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에요.


지금 우리도 바울처럼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 날 좀 강하게 해 주면 안 됩니까?

잘난 사람으로 만들어 주면 안 됩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어필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종을 만들어 주면 안 됩니까?


그래서 교회마다 성공신학과 번영신학이 난무하잖아요.

교인들마다 기복신앙으로 절어 있잖아요.


그때는.. 예수님이 스스로 숨어버리십니다.

그것이.. 그런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오히려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넜듯이

우리가 <내 육신이 죽는 세례를 통과하고 나서>

세상 등 지고, 십자가 볼 때.. 예수님이 제대로 잘 '보이는' 것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숨지 않으시고,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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