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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묵시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

LNCK 2012. 5. 16. 20:00

◈구원은.. 묵시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         막11:1~10          출처보기


*묵시: 문자적으로 '감춰졌다'는 뜻인데, 창세전 언약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시공을 초월했다'는 의미로 주로 쓰였습니다.       교정 예정

 

◑예수님의 묵시적 삶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난 이후의

예수님이 살았던 역사적인 세월

큰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3년을 살아도 하루이고.. 십년을 살아도 하루에요.

왜냐하면, 묵시의 세계는 영생의 세계라서 시간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 이해하세요. 성도도 마찬가집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잖아요.


    이는 묵시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영생 안에 들어와 있어요.


    나중에 죽어서 하늘에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사람으로 이미 거듭났어요.


    오늘 죽어도 천당에 가고, 20년 후에 죽어도 천당에 가요.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담 안에서 태어난 역사에 속한 육신은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몸을 아무렇게나 쓰면서 살아라는 말은 아니에요.)


바울이 삼층 천에 올라가서 자기를 보았지요.

이미 자신은 천국에 가 있어요.

그러니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 안이기 때문에.. 묵시적인 존재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올라오실 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서, 묵시적인 존재가 되었어요.

묵시적 존재에겐 시간이 진행되지 않고 항상 '오늘/현재' 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3년 공생애 기간은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3년이나, 3천년이나..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이미 역사적으로 죽었어요.

‘세례’란 죽음을 말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예수님의 요단강 세례 속에는, 이미 십자가의 죽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3년 후에 일어나는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요단강에서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마치 죄수가 사형 언도를 받으면 이미 죽은 목숨인 것과 같아요.

집행만 남아 있을 뿐이에요.


이와 같아요.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이미 사형 언도를 받았고!

동시에 물에서 올라오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이미 왕이 된 것입니다.


묵시적 존재가 되면, 역사에 의미는 사라져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이미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70년을 살다가 죽든지.. 지금 죽든지.. 상관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순간

예수님은 역사에 속한 생애는 끝이 나고

역사와 상관없는 묵시적 생애(영원의 생애)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는, 시간적인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3년만 사역하셨어도, 3백년 사역한 것과 마찬가지에요) 

              ☞ 시간에 관한 글 모음

 

그러니 예수님이 ‘공생애 3년 후에 예루살렘 성(城)에 입성’하는 것은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시간’과 한 묶음 속에 있는 것이 되는 겁니다.

묵시 속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 됨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루살렘 입성은

백성들로부터 메시야 됨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보면 되어요.

동일한 의미로 보아도 되어요.

 


◑묵시 속 성도의 현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것과 같아요.

이렇게 되면 우리 심령이.. 곧 예루살렘인 셈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영접하면.. 그 사람은 자기 역사가 사라져요.

역사적 존재에서 → 묵시적 존재로 바뀌어요.

그 때부터 나는.. 예수님 역사로 편입이 되어요.


마치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완전히 달라졌지요.

사울은 다메섹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어요.


사울에서 바울로!

율법에서 은혜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옛 사람은 역사에 속하였지만 새 사람은 묵시에 속하였어요.


모든 성도는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이런 변화의 사건이 일어나요.

자기 족보는 날아가고 예수님 족보(族譜)로 편입이 되는 겁니다.


이걸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부인이 안 되어도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하세요.


넌 이제 아담의 족보에 있지 않고 예수의 족보에 있다고 해요.

한마디로 조상(祖上)이 바뀐 겁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죽으면 전부 열조(烈祖)로 돌아간다고 하지요.

열조로 돌아간다는 말은 ‘조상이 있는 곳’으로 간단 말이에요.

(문자적으로는 ‘조상의 유해가 안치된 가족묘로 자기도 간다’는 뜻)


그럼 우리 조상이 예수님이 되었으니

성도는 죽으면 전부 예수님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이 나요.


이게 깨달아지고 믿어지면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바울은 이게 믿어졌기 때문에 눈만 뜨면

하나님에게 ‘언제 데려 갈 겁니까?’ 라고 물었던 겁니다.

(묵시 안에서 사는 사람은, 시간의 제약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됩니다.)

 

저도 이게 믿어지니 ‘주여 언제 오시렵니까?’

‘늦게 오시려면.. 저를 빨리 데려가면 안 됩니까?’ 라고 물어요.


그러니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를 믿게 되면,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나 로 살게 되는 겁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나는, 나를 위한 내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나로 살게 되어요.

역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묵시적 영향 아래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묵시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역사의 영역이 아니고, 묵시의 영역이에요.

죽음에서 벗어난 영생의 세계에요.    시공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영적인 존재라고 하고

영생하는 자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죽음이잖아요.

세상 쪽에서 보면 십자가에 달리면 죽은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십자가 저쪽에서 보면 영생이에요.

그러니 십자가 안은 영생의 세계에요.


우리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어요.

그러니 세상에서 보면 성도는 죽은 자이니, 세상 역사가 없는 겁니다.

세상적으로는 성도는 죽은 자에요.


성도의 소속은 하늘이에요.

하늘에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요.

하늘에 시민이기 때문에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겁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지.. 이미 여러분은 now 천국에 가 있어요.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육신으로 있으면서 몸 밖으로 나가서 보았잖아요.

삼층 천에 가니 자신이 거기 있잖아요.


물론 세상에는 바울이 육신으로 정한 때까지 살고 있지만

실체는 이미 천국에서 예수님 품에서 안식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죽음을 겁내지 않고.. 세상을 세피하게 look down 여기고 산 것입니다.


이게 깨달아져야 세상을 담대하게 이길 수가 있어요.

‘야~ 인생 별거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인생살이가 가벼워져요.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서 이미 영생을 받았어요.

성도는 이미 영생하는 자에요.


그러나 현실은 죽어야 할 육신이라는 몸을 가지고, 정한 때까지 살고 있어요.


하지만 이미 영생을 품고 있기 때문에, 죽어도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우린 이미 영생 안에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 세례를 받으면.. 그 때부터 묵시적인 존재가 되어요.

묵시적 존재란 ‘역사 밖에 있는 존재’란 말입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잖아요.

이는 ‘묵시적인 존재’란 말입니다. 새로운 관점이군요. 계속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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