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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논문'에 관한 묵상글 3편

LNCK 2012. 4. 30. 22:26

◈'책과 논문'에 관한 묵상글 3편                   모두 인터넷에서 스크랩 글

 


◑단편적 정보는.. 사람을 경박하게 만듭니다.


요즘 저에게는 갈등이 하나 있습니다.

사정을 알고 보면 우려할 만한 사안인데, 문제는 그것을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의 갈등이란, 책을 보기가 옛날만큼 좋아지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이 침침해져서가 아니라, 독서가 땡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웬만한 문제는

인터넷으로 검색한 단편적 정보로 대치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게 효율에 있어서는 장점이 될지 모르겠지만

깊이에 있어서는 점점 경박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 제 스스로 괴롭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의 산물로 살아야 하는데,

요즘 같아서는 그때 그때의 정보에 의지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그 동안 쌓아둔 지적(知的), 경험적 산물로 사십니까,

아니면 저처럼 그때 그때 얻어 들은 정보로 사십니까?


축적된 교훈으로 살지 않고, 순간 취득 정보로 사는 삶의 최대 약점은

사색과 생각을 잃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깊이가 없어지는 것 뿐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황량해진다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믿음생활을 하면서도 똑같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매주 말씀을 들으면서 살지요?

교회에서도 듣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듣고, 책이나 다른 문서를 통해서도 듣습니다. 


하지만 말씀 그 자체인 성경 속에 스스로 빠져 들어가

깊은 사색 (묵상)을 하기는 싫어합니다.

 

     그런데 묵상을 잘 하려면, '기도수첩' 같은 것이 꼭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큐티를 할 때, 설교를 들을 때,

     은혜 받은 구절을 모아서, 따로 적어두는 '기도수첩'이 있어야.. 묵상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한 가지 떠오르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보통 부담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지 않는 한,

우리는 늘 요즘 제가 갈등하는 문제에 빠질 뿐입니다.


즉 삶을.. 진지함이나 묵직함이 아닌

가벼움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 가벼움으로 사는 문제 중에 결정적인 것이

요즘 성도님들.. 성경을 통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초에 성경 일독을 하라고 성경 읽기표를 나누어 드렸는데,

현재까지 다 읽었다고 말한 분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뿐입니다.


교회 전체가 덩치만 커졌지 그다지 힘이 있어 보이질 않는 겁니다.

따라서 제 목회적 근심도 점점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설교도 지나치게 준비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웨슬리가 되고 싶지 휫필드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휫필드는 마음을 움직이는 명 설교를 했지만,

웨슬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천하게 했습니다.


제 아무리 좋은 설교라도.. 행동을 유발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일 뿐입니다.

 


◑책과 나무 한 그루


제가 매주 쓰는 원고는, 월~금까지 새벽기도 설교문과

화요일에 있는 여선교회 성경공부, 금요일의 금요기도회 설교,

그리고 주일의 주일 설교까지, 합해서 매주 A4지 35장 정도입니다.


원고지 분량으로 따지면 매주 140매 정도 됩니다.

양(量)으로만 보면 저의 원고 분량은 전업작가들의 배가 넘습니다.


이렇게 많이 쓰다 보니까 어느 한 때 나도

다른 사람처럼 책을 한 번 내 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우리 큰 애에게 장난 삼아 얘기를 꺼내봤지요.

큰 애와 저의 대화는 이렇게 진행이 됐습니다.


(참고로 저의 큰 애는 NGO 계통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환경보호론자입니다)


“OO아! 아빠가 책을 한 번 내 보면 어떨까?”  

“책을? 아빠!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지?”


“어떻게 만들어지는데?”

“책 종이 말이야. 그 종이가 나무로 만들어지는 건 알지?”


“응!”

“책을 한 권 만들려면 5~6m 정도 되는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야 그 종이가 만들어져!”


“그런데?”

“우선, 아빠가 내려고 하는 책이 서점에 나와 있나 봐봐. 그래서 있으면 그걸로 대신해!”


“만약 없으면?”

“정말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도 인류에 손해가 안 될 만큼

가치 있는 글을 쓸 자신 있으면 써 봐!

그럴 자신 없으면 관두고. 괜한 나무 쓰러뜨리지 말란 얘기야!”


저와 큰 아이의 대화는 이렇게 간단히 끝났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를 듣고 책 쓸 용기를 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 동안 그 생각은 접어뒀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봄에 우리 교회에 새신자가 많이 들어오면서,

기도하는 중에 새벽에 <느헤미야서>를 설교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묵상 글을 먼저 쓰고,

그것을 새벽기도 설교 원고로 삼아야겠다.. 마음먹고 시작했지요.


그렇게 해서 석 달 동안 55개의 묵상글이 써졌고

그것으로 느헤미야 설교를 끝냈습니다.


그리곤 그 글들을 얼마간 수정해서 파일로 만들고, 그것을 기독교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제가 보낸 글이 출간할 가치가 있는지 돌아봤습니다.


먼저 적어도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진다 해도

인류에 그렇게 손해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논문심사 때

교수님이 질문하신 세 가지 질문에도 냉정하게 비춰봤습니다.


1. ‘느헤미야’를 쓰는 내내, 느헤미야가 내게 한 얘기가 있었나? 

정말 많았습니다.

매일 느헤미야와 대화를 하면서 환희를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2. 다른 사람의 글과 뭐가 다르냐?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습니다. 


잘 읽히도록 썼고, 전할 내용은 분명히 했고, 쉽게 이해되도록 썼고,

식상한 것은 걸렀습니다.


단어마다 적확한 것을 골랐고, 문장은 끝까지 팽팽하게 잡아당겼으며,

조사 하나라도 다듬었고, 우리 말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노력했고,

문학의 향기까지 의식했습니다.


무엇보다 복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으므로

말씀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3. 마지막으로 그렇게 해서 출판계에 기여한 바는?     

그것은 저로서는 평가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정부분 기여한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논문 심사

 

제가 신학대학원 6학기를 마치고 논문을 쓰게 됐을 때,

저는 <기독교 교육학자 루이스 쉐릴의 신학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담당교수님께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과정으로 세 분의 교수님이 심사를 하시는

구두시험장에 들어갔지요.

자리에 앉자마자 심사위원장 교수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최영식 씨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루이스 쉐릴에 대해 쓰셨는데


첫째, 논문을 쓰는 내내 쉐릴이 최영식씨에게 한 얘기는 뭐였습니까?


둘째, 최영식씨의 논문은 다른 사람의 논문과 뭐가 다릅니까?


마지막으로, 그렇게 해서 최영식씨가 기독교 교육학계에 기여한 바는 뭡니까?”


이 질문을 받은 순간, 저는 머리에 강한 펀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때 보통 ‘아뜩해진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제가 정말 아뜩해지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논문이란 게 으레 그렇찮습니까?  95%의 인용과 나머지 자기 얘기 조금!


-그런데 논문을 쓰는 내내, 루이스 쉐릴이 내게 한 얘기가 뭐였냐고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또 다른 논문과 뭐가 다르냐고요?

다른 게 뭐가 있었겠어요.

비슷한, 아류(蛾類)하나를 더 올려놓은 것 밖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교육학계에 기여한 바는?

기여는커녕 쓰레기더미를 하나 더 올려놓는 해악을 저질렀더라고요.


드릴 말씀이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요.

제가 한 동안 그렇게 있었더니 교수님이 제게 최후통첩을 하셨습니다.


“곧 선교사로 나가야 되는 사정도 있고,

또 논문도 그럭저럭 정리는 돼서 이번엔 통과시켜 주겠지만

다음에 또 논문을 쓸 기회가 생기면 이번 같은 구태의연(舊態依然)은 버리시오!”    

 

저는 너무 창피해서 도망치듯이 그 방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저는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고 소름이 돋습니다... 


.....................

 

*어떤 한국 유학생이, 미국의 신학교에서 유학할 때,

 과제물(소 논문)을 제출했는데, F학점을 받았습니다.

 

 그 한국 유학생은, 담당교수님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교수님 대답은

 '자네의 소 논문은, 모두 표절이네!' (매우 안 좋은 의미로서의 '표절')

 

 그러니까 그의 소 논문에, 자기 논지는 하나도 없고,

 모두 남의 글만 잔뜩 인용(표절)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소 논물을 쓰는 법을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정해진 분량의 책을 다 읽게나.

  그 다음에 책을 다 덮고서, 자기 주장과, 자기 표현과, 자기 글을 쓰게나!'

 

  그리고 인용은,

  자기 논지를 꼭 뒷받침 해야 될 경우에, 필요시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작은 글씨체로!

  글의 인용보다는, 자기 논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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