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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씨름하는 신자

LNCK 2012. 5. 9. 10:08

◈하나님과 씨름하는 신자          창32:24~31         11.07.24.설교일부녹취


신앙생활의 본질 중 한 가지는.. 하나님과의 씨름이다.

이 씨름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예수님의 겟세마네 씨름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막9:23

하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떠나게 해 주소서’ 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끙끙거리며, 신음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씨름’이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결국 아버지의 뜻에 승복하셨다.


언뜻 보면, 그 ‘씨름’에서

예수님이 패하시고, 하나님이 이기신 것 같지만,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수난 이후에,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바꾸어 말하면,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씨름에 이기셔서,

‘그 잔이 지나가 버렸다면’ .. 그건 결국 예수님이 패하신 게 된다.


하나님은 잠깐 예수님의 기도를 무시하신 것 같았지만,

결국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고, 영원한 보좌 우편에 앉히셨다.


그래서 결국은 윈윈하셨다.

하나님도 승리하셨고, 예수님도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잠시 아버지께 지신 것 같지만, 더 큰 승리를 거두셨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힘들었던 것뿐이다.


이 설교의 주제는,

신앙생활에는.. 하나님과 싸움이 있고, 다툼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하다.

만약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과 부딪히는 때가 없다면,

여러분은 인격이 아니라, 기계가 된다.

그러나 인격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 부딪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뜻에 승복하면,

잠시 잠깐은 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온전한 승리를 얻게 된다.

그걸 위에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씨름’에서 살펴보았다.


◑야곱의 얍복강 씨름


야곱이 어떤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다고 했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신비로운 장면 중 하나이다.


야곱과 밤새 씨름한 ‘그 사람’은,

나중에 야곱이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라고 했고,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라고 말한다.


또 그 장소를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그냥 ‘사람’이 아닌,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사건이다.

<야곱의 씨름>의 경험을 통하여,

믿음 생활이란..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말씀해 준다.


▲1.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씨름과 같은 요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러분, 누가 신앙을 씨름에 비유하겠는가?

불교도, 이슬람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 씨름이 있다고 말한다.

<신앙은 씨름이다.>


이 씨름은.. 의지의 대결, 뜻의 대결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다들 일평생 경험해 봐서.. 잘 안다.


▲2. 씨름은 친밀함의 표시일 수 있다.

(여자끼리는 서로 손을 잡거나, 허그를 하거나, 같이 울면서

서로의 친밀함을 표현하지만)

그런데 남자들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친밀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야곱의 씨름(레슬링)이.. 친밀함의 표시일수도 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아빠와 어린아이들이 (주로 사내아이와)

같이 함께 노는 방식이.. 레슬링을 한다.


때로는 그 레슬링이 과격해 질 때도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밀함의 표현이지, 진짜 싸움이 아니다.

하나님과 야곱의 씨름도.. 형식은 씨름이지만, 친밀함의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자녀가 티격태격 서로 싸운다.


이렇게 싸우는 것이, 서로 등을 돌리거나, 말을 안 하거나,

아니면 집을 멀리 떠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나다’ .. 그래서 토라지고, 서로 등 돌리기 보다는

힘겹게 씨름을 하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더 낫다.


▲3. 하나님은, 사람을 항복시키신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서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고 했다.

그래서 위골되었다. 그 결과로 야곱은 일평생 다리를 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씨름하는 사람을 제재하기 위하여,

환도뼈를 치신다.

그 뜻은, ‘하나님께 대드는 사람의 기를 꺾으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하나님께 대들 것 같기 때문에,

하나님께 일찍 항복할수록 좋으니까.. 하나님이 그를 깨트리시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육신의 가시가 있었던 것처럼,

또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하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환도뼈를 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온유하게 만드신다.


신앙인의 온유함은, 즉 하나님께 대들지 않고 순복하는 것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씨름이 다 나쁜 게 아니다.


온유한 사람은, 그냥 온유한 게 아니다.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그 과정에서 바삭 깨어져서 broken

자신이 함부로 덤비고, 쉽게 반항하고 삐지던 그의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해진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고 겸손하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과거에 그만큼 하나님과 씨름했다는 전력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깨어진 자에게는 복이 따른다. ↓


▲4. 결국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셨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임이요

라고 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신앙인이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대들다가)

바삭 깨어진 다음에.. 온유해져서.. 복을 받는다는 뜻이 된다.


이때 야곱의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

26절에,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야곱의 모습이, 신앙인의 모습이다.

즉, 하나님께 한 대 얻어맞으면.. 그래도 울면서 다리 붙들고 매달리는 사람!

(반대로 한 대 얻어맞으면, 시험들어서 집나가는 신앙인도 꽤 있다.)


왜 하나님이 에서대신에 야곱을 선택하셨느냐 하면, 바로 이런 면 때문이라고 본다.

‘당신이 나를 축복하기 전에는,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에게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하나님과도 씨름을 할 정도였다.


하나님이 그를 제재하기 위해서, 환도뼈를 위골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울며 하나님 다시 붙들고 매달리는 모습!

야곱의 이러한 면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셔서,

야곱이 밤새 하나님과 씨름한 결과로.. 복을 얻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뿐만 아니라,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앞으로 네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이는 네가 사람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그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이후에 모든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이 되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일평생 하나님과 다투기만 하고, 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처럼 큰 손해는 없다. 세상에 하나님과 다투는 사람들 많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탓하고

그래서 하나님과 교회를 멀리하고,

심지어는 기독교를 욕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일평생 씨름을 하는데도, 아무런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대단히 불행한 것이다.


야곱이 허물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와 같은 면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다.


여러분, 모든 좋은 선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씨름을 하더라도,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첫째는 영생의 복이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뭔가 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단정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된다.


씨름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결과로, 우리는 환도뼈가 위골된 뒤에 온유함을 배우게 되고

결국은 복을 얻는다. 그것이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자녀가 되는 복이다. 


성경을 보시면, 떨어져 나간 사람들 많다.

가인, 에서가 떨어져 나갔고,

그 이후에도 가룟 유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예수님도 승리하신 비결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은데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고난을 경험했지만, 떨어져 나가지 않고,

하나님 안에 거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승리의 비결이고, 그것이 믿음의 승리이다.


그러므로 찬송가 <옛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그 믿음을 주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붙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