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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타협이 없었던 이삭의 결혼

LNCK 2012. 5. 15. 10:03

 

◈타협이 없었던 이삭의 결혼         창24:1~8         11.07.10.설교일부녹취

 

본문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신부를 구해주기 위해

자기 종 엘리멜렉을, 고향 메소포타미아 땅에 보내는 장면이다.

이때 아브라함은, 자기 종 엘리멜렉에게 몇 가지 조건을 부탁한다.

 

▲1. 이 지방 여인들 가운데서 찾지 말고,

자기 고향, 메소포타미아(갈대아)에 가서 찾으라고 한다.

가나안 여자 중에는, 며느리 감을 택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이 신앙적인 문제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브라함의 고향 사람들이, 여호와 신앙을 가진 것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대아 우르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우상을 만드는 자였고,

하란의 라헬이 남편 야곱을 따라 올 때, 우상(드라빔)을 숨겨 온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고향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만 독특하게 여호와를 믿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적인 이유로, 고향 사람을 고집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고향 처녀가, 가나안 여자보다는, 뭔가 동질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한 것 같다.

 

동질성!

우리가 세계평화를 이룬다거나, 또 국제 스포츠 대회를 한다거나,

세계적인 사업을 할 때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가족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최소한의 동질성이 필요하다.

문화적으로, 비슷한 동질성이 있어야.. 결혼생활이 더욱 안정된다.

동질성이 떨어질수록 리스크 risk가 크다.

 

그럼 한국 사람하고만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꼭 그런 뜻은 아니다.

다만, 문화적/인종적/민족적 동질성이 클수록.. 화합이 쉽다는 뜻이다. 

 

(아래 ▲3. 에 나오지만)

아브라함의 가정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그 가정에 주시는 유업(가나안 땅, 여호와 신앙)을

함께 이어받을 며느리이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 아브라함은 예감하고 있었다.

 

최소한의 동질성, 만약에 그것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에는,

이삭의 가정이 시험에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은 예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고향’ 출신을 고집한 것이다. 동질성이 많을수록 안전하기 때문이다.

 

▲2. 동시에 아브라함은 ‘택한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24:3~4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에 가서 아내를 택하라

 

‘선택한다 choose’ 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하나님께서 배우자를 택정해 주실 줄 믿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선택이라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러분, 하나님이 배우자를 정해 주신다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사람대로 자기의 지혜에 따라서

자기의 믿음을 좇아서,

자신의 판단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선택권을 행사해야 한다.

 

여기서 ‘선택’이란.. 자기 뜻대로 선택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짝을 찾기 위한 ‘선택’이다.

 

이삭의 경우에는, 본인이 선택권을 행사하지 않고,

아버지의 종이 대신 행사했지만, 그럼에도 선택권이 행사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정해주신 배필이라고 하지만,

감나무 밑에서 홍시가 내 입으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동적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배필을 찾기 위하여

-기도도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사람을 살펴보는 자기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보다 앞서, 사방을 찾아 헤매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도와 아울러,

최소한의 자기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 가는 비행기는, 주님이 예비해 주셨더라도,

자기가 공항까지 가는 수고는 해야 한다.

그 비행기가, 자기 집 앞에까지 날아와서, 자기를 태워주지는 않는다.

 

▲3. 이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하다.

 

‘이삭을 그 땅으로 데려가지 말고,

그 신부를 가나안 땅으로 데려오라는 것이다.’  :4~:6

 

만일 그 여자가, 가나안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않거든,

내 아들이 결혼을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삭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아브라함은 분명한 지침을 주었다.

 

결혼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신앙인은.. 타협할 수 있는 게 있고,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분명한 선을 긋고 살아야 한다.

 

‘결혼이 아무리 중요하고, 신부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삭이 거기로 갈 수는 없다.

신부가 여기 가나안으로 와야 한다!’

 

이 원칙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있어서, 

설령 결혼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후손)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에 보낼지니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내 아들을 데리고, 거기로 가지 말지니라.’ :7~:8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이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삭이 결혼하겠다고.. 고향 갈대아로 가버리면, 거기서 눌러앉아버리면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것만큼은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아들을 거기로 데리고 가지 말아라!’

 

여러분, <뼈대 있는 가문>과, <꿈이 있는 가문>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뼈대 있는 가문>은, 뼈대가 있어서 좋지만, 주로 과거지향적이다.

우리 조상이 과거에 무슨 벼슬을 했고, 우리가 과거부터 무슨 전통이 있기 때문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이 있다... 이것이 뼈대 있는 가문의 주장이다.

 

반대로 아브라함의 가문은,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꿈이 있는 가문>이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나와 내 후손에게 주시리라..

그러므로 이 집에 가족이 되려는 사람은, 이 꿈을 공유하고,

이 유산을 함께 받을 사람이어야 된다..’ 이것이 결혼 결정의 분명한 기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이 꿈에 부합하는 여자를 선택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영어표현에 going places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성공가도에 있다. 잘 나간다’는 뜻이다.

He is going places .. 그는 미래가 창창하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의 가문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었다.

우리의 꿈,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있었다.

그것을 기준으로.. 며느리를 선택하고, 결정을 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문제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들을, 남들과 구별시킬 수 있는 면이 본문에 나온다.

 

무엇을 얻기 위하여, 아무 것이나 타협하는 집이 아니고,

설사 얻지 못할지라도, 타협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집이었다.

 

저는, 1975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 시민권을 얻고, 거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10년동안 미국에서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이 제 목회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캐나다 시민권을 아무런 미련 없이 버렸다.

 

정말 중요한 것은, 캐나다 시민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어디로 인도하시고, 어디에서 제게 유업을 주시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기업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와서 목회하는 것이,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만약 제가 캐나다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었더라면,

약간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되돌아갈 길을 항상 모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게 주신 기업에 따라’ 저는 한국시민권을 선택했다.

그래서 두 마음을 먹지 않고, 아예 여기에 남아서, 이제껏 주님을 섬기고 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참 잘한 선택이었다.

 

아브라함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가나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 자신이, 가나안 땅에 와서, 어려운 일이 왜 없었겠는가.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 왜 없었겠는가. 외로운 때가 왜 없었겠는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이전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자기 아들이 결혼이든, 어떤 것을 위해서라도,

이 유업의 땅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했다.

당신이 하나님께 받은 ‘기업’(유산. 사명)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그것에 따라서, 거취를 결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자녀를 결혼시킬 때도.. 그 ‘기업’을 같이 상속 받을만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 좋고,

아무리 사위감, 며느리감이 좋다 하더라도,

자기가 가진 신앙 원칙까지 타협하다가는.. 결국 낭패를 볼 것이다.

 

.......... 중략된 부분 ..........

 

여러분,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은, 미래 지향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유럽은 소위 old world 구세계이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와 전통과 유산에 매여있는 사회이다.

과거에 역사를 팔아먹고 산다.

그들의 전통, 역사를 구경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거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과거의 질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귀족이 있고, 왕족이 있다.

그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과거를 팔아서 먹고 살만한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득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다.

미래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우리의 발전, 우리의 소망, 후손들을 위한 꿈, 이 모든 것은 미래에서 찾아야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축복이다.

이노베이션, 창의력, 이런 것을 계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남보다 앞서게 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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