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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9:97~104 말씀 묵상과, 지키기

LNCK 2012. 5. 26. 17:30

 

◈말씀 묵상과, 지키기                시119:97~104         13.12.04.설교스크랩, 녹취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인터뷰 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들에게도 스승이 있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폴만의 얘기를 들어보면,

‘과거에 자기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라고 말씀하셨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또 첼리스트 장한나의 얘기를 들어보면, 연주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그에게 선생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가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스승은 더 훌륭한 연주가라는 얘깁니까? 그건 아니지요.

 

제자의 실력이 스승의 실력을 능가한 것입니다.

스승이 스승의 역할을 잘 했다는 말입니다.

 

자기보다 훌륭한 연주자를 만들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훌륭한 스승은 자기보다 뛰어난 제자를 키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목회자들을 보면,

자신의 수준과 맞먹는 목회자들 제자를 많이 키우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본인은 매우 우수한데, 자기와 같은 제자를 한명도 키우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미국에 갈보리 체플을 시작한 척 스미스 목사님의 위대한 면 중 하나가

자기와 같은, 또는 자기보다 뛰어난 젊은 목회자들을 많이 키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척 스미스 목사님에게 배웠던 많은 제자들이

스승과 같은 큰 훌륭한 교회들을 세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만한 제자, 자기보다 뛰어난 제자를 키우지 못하는 사람은

두 종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럴 뜻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은 스타의식이 강하고 솔리스트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자기와 필적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고, 그것을 위협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마음이 착하냐/ 착하지 않으냐 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그냥 본인의 성격이 그런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럴만한 노하우가 없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제자 훈련이라는 것이 그냥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1980~90 년대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이 유행해서

교회마다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그저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또 하나 만든 것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제자 훈련은 상당한 노하우와 은사를 필요로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엘리사를 만든 것이 제자 훈련이고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을 만든 것이 제자 훈련입니다.

 

그래서 제자가 스승보다도 뛰어나려면

스승에게도 그럴만한 의지와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에게도 그런 뜻과 실력이 필요합니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하는데

제자는 스승을 늘 존경하고 높이고 모셔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제자가 스승보다도 나아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아져야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당신보다 났습니다.’ 하며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제자가 스승보다 나아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나아야지요,

자식이 부모보다 못하다면 어떻게 나라가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영적인 차원에서 사람은

어떻게 발전을 이룰 수 있느냐..

오늘 그것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시119:99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00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내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뛰어나다”

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까?

 

일단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상당히 늦은 중년의 나이에 신앙생활을 한 분들이 있는데

남들은 그들을 초신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장족의 발전을 이룬 분들을 가끔 봅니다.

 

그러니까 5년 10년 이라는 세월이 신앙의 발전을 이루기에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아마 여러분은 믿은 지 5년 믿은 사람을 초신자로 여길지 모르지만

그 5년의 충실한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것은 결코 신앙성장을 위하여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 반 동안만 가르치셨는데, 그들이 사도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20년 30년 이 지났는데도 발전을 못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1980년도에 대학 입학했을 때 나름대로 신앙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기독교 서클에 들어가 보니

그곳에 활동하는 선배님들이 저보다도 사교성도 뛰어나고 리더십도 뛰어나고

성경지식도 많고, 그리고 그중에는

제가 전혀 따라갈 수 없는 영적인 은사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명함조차도 내밀기도 어렵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제 옛날 일이고, 이후에 저도

영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얘깁니다.

여러분도 영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이것이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점진적으로 주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그럼 무엇이 신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느냐.. ←문제 제기

이것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인생 고난의 경험

-교회 생활의 경륜

-영적 체험

-가르침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합력해서 신앙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지만

가장 지배적이고 필수불가결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 묵상입니다.

 

▲말씀 묵상

오늘 본문 99절에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함으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다”라고 했습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제자가 스승보다도 뛰어난 명철을 소유할 수 있단 얘깁니다.

말씀 묵상의 위력을 우리가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말씀 묵상이라고 했지, 읽기라고는 안했어요. 말씀 쓰기라고도 안했습니다.

물론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서, 말씀 묵상을 하겠지만요.

 

저는 성도님들이 성경을 쓰는 것을 환영하고 좋게 봅니다.

그러나 성경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쓰는 것이지, 묵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말씀을 읽은 것은 며칠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깨달은 것은, 20년 30년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묵상 중에 깨달았던 그 상황을 기억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그때 언제 어디에 있었는데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 묵상이 그만큼 위력이 있습니다.

 

저는 말씀 묵상의 비결을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닙니다.

초반부에는 신비적인 경험을 쫒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경험을 할 만한 데를 찾아다녔습니다.

 

이런저런 경험도 하고, 많은 도움 되는 일들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았습니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어떤 분위기에 인한 것이고

심리적인 암시에 의한 경우가 많았어요.

 

남들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뭐가 대단한지 모를 그런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신앙과 영성을 키우는 대에 핵심적인 도움을 주는 것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꾸준한 기도 생활

둘째는 찬양과 경배

셋째는 말씀공부와 묵상 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밥과 김치와 같습니다.

한국 사람이 식사를 할 때 밥과 김치를 빼면 식사가 안 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생활에 티가 나지 않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꾸준한 기도생활/ 찬양과 경배/ 말씀공부와 묵상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지혜를 얻는 데에는 말씀 묵상을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제가 부목사로 있을 때 한 20년 15년 전

그 당시 pc 가 대중화되기 시작할 때

제가 그 pc를 통하여 목회의 도움을 얻고자 했던 것이

바로 설교 예화를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설교 예화 자료를 플로피 디스크에 넣어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플로피 디스크를 pc에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겸손’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겸손이라는 예화가 뜹니다.

마태복음을 검색하면 마태복음에 대한 자료가 뜨고

저에게는 그야말로 노다지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제가 입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좋은 자료가 있다면 입력을 하고

키워드를 넣어서 찾을 수 있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벌써 20년 전 일이지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시작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화집을 필요하지도 않고 수집하지도 않고

설교 중에 그런 예화를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예화 자료는, 할 말이 부실할 때,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설교의 내용이 충실해지면, 예화거리는 굳이 없어도 됩니다.

 

다만 설교 내용이 충실해지려면, 오랜 기간의 말씀 묵상이 필요합니다.

제가 설교원고를 저희 교회를 개척한 이후에 했던 그 원고를

저희 사무실에 오시면 공책을 보여드릴 텐데, 책장에 두 칸을 가득 채웁니다.

 

그 동안에 많은 설교원고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원고를 다시 사용하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모아둘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왜 과거에 했던 설교 원고를 다시 사용하지 않느냐,

일단은 글씨를 읽기가 어렵고, 그리고 어제 만나와도 같아서

어제 만나는 오늘 되면 벌레가 먹어 버린다.. 고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만나는 오늘 거둬야하는 것처럼

옛날 설교는 그때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또 지금의 사정이 있고, 성도들의 지금의 형편과 처지가 있기 때문에

지금 주시는 말씀을 전해야 오늘의 만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1년, 5년, 10년, 전의 이 설교 듣고 정말 좋아하더라..?

 

그게 그때 좋아한 것이지, 지금은 성도들의 상황도 달라졌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말씀도 성격도 달라졌고

그리고 그 때에 생각의 수준과 지금 수준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샘물과 같습니다.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난다는 데, 샘물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셨습니다.

 

이 신약성경의 생수라는 말이 왜 특히 중요하냐면,

중동에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솟아나는 물은 그야말로 제일 귀중한 물입니다.

고여 있는 물을 마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물물은 고여 있는 물이에요. 지하수가 고여 있는 것이지,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반석에서 나오는 물은 솟아나는 물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솟아나서 흐르는 물을 생수라고 불렀습니다.

 

살아있는 물, 물이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있다 해서 생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샘물이 고여 있는 게 아니고

솟아나리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솟아난다는 말은 다이내믹하다, 움직인다는 얘깁니다.

새로운 것이 늘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명철도 마찬가지고, 하나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묵상을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경 속에는 우리가 평생 배워도 다 배울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지혜와 명철과 지식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발굴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명철을 제가 제 것으로 소화해서, 다 실행에 옮겼단 얘기냐,

그건 아닙니다.

 

명철은 사람이 깨닫는 것이고

그것을 다 실행하려면

그럼 뭐 제가 엄마도 되어 봐야하고, 병자도 되어 봐야하고,

그걸 어떻게 다 실행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경험의 폭은 좁지요. 우리가 다 겪어봄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명철이라는 것은 백과사전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의 영혼 속에, 넓은 지혜의 샘물이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다 삶에서 겪어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시119:100절을 같이 읽으십시다.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주의 증거를 묵상함으로 스승보다도 내 명철이 뛰어날 수 있는데

지키게 되면, 그건 더 큰 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지식을 얻기 위하여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탁상공론에 몰입하는 사람이 아니고

 

말씀을 지킴으로, 이것은 정말로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착한 종이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승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하십시다.

 

김영준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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