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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성도의 5특징 약1:2~4 11.01.16.설교스크랩
◑성숙해야.. 풍성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성숙'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에 '성숙'이라는 단어가 의외로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개역성경에, '성숙'에 해당되는 단어를, 주로 '온전함'으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NIV 영어성경을 보면, ‘성숙 머추어 mature’가 7번 사용됩니다.
약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영어성경에는 '머추어 앤 컴플릿 mature and complete',
즉 우리가 성숙하고 완전하도록 머추어 앤 컴플릿 mature and complete,
하나님께서 시험(괴로운 일)을 허락하신다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여러 가지 괴로운 일을 당하시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아셨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성숙해져가는 과정을 살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성화'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전보다 나아지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새롭게 경험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기를 원합니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는 풍성한 삶을, 절반이라도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주님이 약속하신 풍성함을 받고 누리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가, 그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성숙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성숙해져야 합니다.
예수 믿고 ‘부자로 잘 살자!’에서 목표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부자 되는 것이 꼭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요10:10
반드시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성숙은.. <반드시 여러 가지 시험을, 인내하며 통과할 때 옵니다.> ↓
그저 생기는 법은, 없습니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위 구절을 한글이나 영어로, 암송해 보십시오. 시시때때로 묵상해 보세요.
그러면 제가 설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씀이 여러분께 큰 힘이 되며,
여러분이 성숙하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용서를 확신하고,
우리 안에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우리가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어떻게 성숙함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1. 나이가 성숙의 척도는 아닙니다.
딤전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2. 많이 배웠다고 자동적으로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인생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전부 잘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고전1:24-25,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3. 외모가 성숙함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삼상 16: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4. 세상의 업적이 성숙함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빌4: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렇게 바울처럼, 신앙의 성숙을 위해 달려가지 않고,
그저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한다고 해서 그게 비록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신앙의 성숙을, 출세와 비례해서, 내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숙함은.. 삶의 자세와 인격에 따라 결정됩니다.
단지 기독교인이 된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숙하다는 것은
-신앙이 계속 자란다는 것이요, ☞ 구도 제자의 길
-주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져야 하고,
이웃과의 관계가 화목해져야 합니다.
◑야고보서의 5주제
▲야고보서는 매 장마다 다른 주제를 제시합니다.
약1장의 주제는 '시험을 당할 때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입니다.
시험(trials, 괴로운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지라도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합니다.
시험을 감당하면서 믿음이 견고하게 되고 인내가 생기고 마침내
성숙한 신앙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뻐하면서 시험을 잘 감당할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시험을 당하면, 불평과 원망이 마구 튀어 나옵니다.)
약2장의 주제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입니다.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겁니다.
출신, 외모, 나이, 능력, 업적, 재산으로 판단하거나
나와 코드가 맞는지 동질성 여부 등을 따지며
편견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를 버리라고 합니다.
약3장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것인가?"입니다.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약4장의 주제는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입니다.
사람들 사는 곳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싸움, 다툼, 살인, 시기 등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 trouble maker가 아니라
피스메이커 peacemaker가 되어야 합니다.
약5장의 주제는 '어려움 가운데 어떻게 소망을 가질 것인가?'입니다.
약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인내를 4번, 기도를 7번 언급하면서, 인내와 기도가 소망의 근거라고 제시합니다.
◑야고보서에서 언급된 5가지 성숙함의 특징을 살펴봅니다.
▲1. 성숙은.. 시험을 당하는 자세 (즉, 기쁘게 당함) 에서 나타납니다.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생은 갖가지 다양한 문제들로 가득 차 있기에
문제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평소에 육체적으로 잘 단련된 사람이
육체적인 시험이 올 때(이사, 집수리) 끄떡하지 않고, 잘 견딥니다.
마찬가지로 역경(시험)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시련을 당해본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하여 인내를 배워서
온전한 신앙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험이 달갑지는 않지만
이것을 기쁘게 여기라고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게 분을 내거나 낙심합니다.
인내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열심을 낼지 모르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둡니다.
시련을 잘 통과한 성도들은, 놀라운 인내 perseverance를 가지게 되고,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기둥과 같은 일꾼’이 됩니다.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고, 타이틀을 얻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시험을 통과해서, 인내를 배운 자만’ ..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기둥’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과거에 ‘여러 가지 시험을 인내로 견뎌냈다는 증거’입니다.
그저 되는 법은 없습니다. ‘낙하산’도 안 통합니다.
반드시 ‘여러 가지 시험을 기쁘게 여긴 자’만이..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2. 성숙은.. 사람들을 존경하는 자세에서 나타납니다.
약2: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형제요 자매요 한 몸의 지체입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돈이 있고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은 인정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무시를 당하는 것이, 세속화된 사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이 자칫하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야고보 사도는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반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람을 외적인 요소로 구별하고 판단하는 그것이 악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나 자신과의 이해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은
성도로서 덕스러운 행동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죄악이 됩니다. 그는 ‘성숙하지 못한’ 신자입니다.
▲3. 성숙은.. 건설적인 대화에서 나타납니다.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특별히 선생은 더 말에 더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선생은 말을 많이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말에 더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실수할 가능성이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이 언어의 실수는 선생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불씨 하나가 커다란 숲을 태울 수 있는 것처럼
혀는 한 사람의 인격을 바로 세울 수도 있고, 파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자질을 드러냅니다.
말은 듣는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도 하고, 영광을 가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말에 실수가 적으면 온전한/성숙한 사람입니다.
나는 온전한 사람입니까?
그리고 온전함을 날마다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온전함을 사모해야 되는 이유는,
그래야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10:10
▲4. 성숙은 갈등을 해결하려는 자세에서 나타납니다.
약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박해와 고난을 서로 사랑함으로 이겨 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이 식어질 때 교회는 위기에 직면합니다.
사랑은 서로 허물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을 망각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약화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실수를 파헤치는 것은, 결코 덕스럽지 못합니다.
그런 싸움의 영성을 가지고는..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시기와 다툼이.. 기도를 막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회개기도 뿐입니다.
형제들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고,
성령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5. 성숙은.. 확신에 찬 소망에서 나타납니다.
약5:7, 11,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미래를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참는 것’입니다.
대인 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도 ‘참는 것’입니다.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도 역시 ‘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고, 사람들 사이에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으며,
복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들의 경우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칭찬을 받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일이 잘 안 된다고 금방 흥분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습니까?
힘들다고 서로 원망하여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욥의 고난과 승리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자비와 긍휼이 많으시다는 것을 기억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