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을 이기는 성도의 능력 행1:8, 계12:11 계시록52강 20'~40' 녹취
☞용의 핍박과 성도의 승리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성도의 권능 (‘권세’와 같은 말)
▲본문 계12:11절을, 행1:8절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계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행1:8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증인이 된다’는 점에서는, 두 구절이 같다.
그래서 두 구절이 연관성이 있다.
그럼 행1:8절이 말하는 <권능>은 과연 무엇일까?
행1:8에서는, ‘오직 성령이 임하심으로 받게 되는 권능’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를, 행1:8절의 ‘권능 power’이란..
성령을 받게 되면, 마치 구름위의 산책처럼,
내가 슈퍼인간이 되어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그런 ‘권능’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내 손을 대기만 하면, 병자가 척척 낫고,
내 손을 얹어 기도해 주기만 하면, 그의 문제가 척척 해결되는.. 그런 권능!
그런 ‘초자연적 권능’을 깡그리 부정할 수는 없지만,
행1:8절을, 본문 계12:11절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행1:8절의 권능이란.. ‘나가서 증거하다가 죽는 권능’이다.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로 인하여.. 핍박을 당해 죽고..
그 결과로 1백배의 열매가 나타나는.. 그런 승리, 그런 권능이다.
복음을 증거하다가.. 세속적 관점으론 비참하게/ 영적 관점으론 영광스럽게 죽는 일은
‘권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순교를 하시는 분들의 간증집 중에 공통적인 내용은
‘순교를 어느 정도 예감한다’는 것이다.
아우카 부족을 향해 (한 두 번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면.. 순교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감했다.
그러나 그 길을 향해, 짐 엘리엇이 계속 나아간 것은,
‘권능’이 그를 감쌌기 때문이었다.
▲사도요한도 ‘증거’했던 분이었다.
계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그 ‘증거’ 때문에,
그는 존경받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였다.
밧모 섬에서, 모진 고난 가운데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승리했다’고 평가한다.
‘패배했다. 지지리 고생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지금 증거를 가진 성도의 인생,
성도의 승리,
성도의 권능이 무엇인지.. 설명 드리는 중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뒤따르는 것이다.
(복 받고, 존경 받고, 부자 되는.. 그런 길은 아니다.)
▲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믿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
이기는 권세가 있는 성도들이 갖고 있는 ‘권능’이란..
다 이기고, 올 킬 시키고, 승승장구하고,
손대는 일마다 다 성공하는.. 그런 세상적 권능이 아니다.
그럼 어떤 권능인가 하면,
-고난을 참고 인내하는 권능
-(풍요하고 배부를 때 절제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배고플 때 감사하며 지낼 수 있는 능력,
-내 상황이 안 좋아져도, 주님의 섭리를 바라보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예수 믿고.. 삶이 더 팍팍해졌다는 성도들이 많다.
현실적으로.. 예수 열심히 믿을수록.. 일이 더 꼬인다고 하소연을 많이 한다.
믿고 기도하는데, 병 나은 사람이 1명이라면, 안 낫는 사람은 30명이 넘는다.
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도,
자녀들이 그렇게 부모 속을 썩이는가..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권능’은
내 삶의 만사형통을 가져다주는 ‘권능’이 결코 아니다.
만약 그런 ‘권능’을 강조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뱀이 성도를 삼키려고 토해내는 홍수’이다. 계12:15
정리하면,
행1:8절이 말씀하는 ‘권능’
또 다른 성경구절이 말씀하는 ‘권능’(능력)은.. <증인으로서 살게 하는 능력>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는’ 능력이다.
◑사탄이 토해내는 세속의 물에, 떠내려가는 신자들
▲제가 <정말 성도가 성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젊은 시절,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성경에는 ‘하나님처럼 완전하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라’ 그러는데..
사람의 육신과 죄성은.. 정말 뿌리 뽑기 어려운, 그런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서,
저는 ‘신자가 과연 죄성을 어느 정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까?’ 하고
늘 개인적인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이게 완전한 정답은 아니지만,
제가 군대생활 할 때,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하던 1970년대 말은, 군대생활이 아직 많이 힘들 때였다.
특별히 힘든 부대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말도 안 되는 ‘타작’이 매일 같이 있었다.
그래서 다들 ‘사고’를 치고 싶은 유혹이 불끈불끈 치솟곤 했는데,
우리 부대 근처에 ‘영창 jail’이 있었는데,
군인들이 ‘사고’를 치고, 거기에 수감된 모습을 보면서..
부대원 모두가 가까스로 자기 혈기를 자제하는 것 같아보였다. (거기는 더 괴롭히니까)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병사들이 너무 억울하고, 너무 억지스런 폭행을 당해도..
영창가기 싫어서, 군대생활을 참아내는구나!
그런데 신자들은,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더 무서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신자들은, 지옥이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여러분, 지옥을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해 보시는가?
혹시 범죄하기 전에 ‘지옥의 고통’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
제가 주일날이 되면, 새벽에 보통 2시간 정도,
그날 설교를 읽기도 하고, 기도도 하는데,
오늘 새벽은, 특별히 기도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는, 주로 우리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만 했는데,
제가 두 시간이 넘도록 계속 기도한 내용은
‘제발 우리 성도님들이, 그 지옥을 좀 실감하게 해 주소서!’ .. 그 기도를 드렸다.
늘 실감할 필요는 없더라도,
일생에 한 때라도 지옥을 내가 실감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좀 더 신실하게 살게 될 것 같아서.. 이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는데.. 나중에 막 눈물이 났다.
왜냐하면, 지옥이 정말 있는데,
마치 지옥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 일부 교인들이 너무 불쌍해서
제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이라 하더라도, ‘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나는 예수 믿으니까, 당연히 천국 갈 거야!’ 라고 착각한다.
여러분, 천만의 말씀이다.
사탄이 토해내는 세속의 강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은.. 천국 가기 힘들다.
▲여자들이 보석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막상 무인도나, 사막 한 가운데 처했다고 가정할 때,
보석은.. 배고플 때, 식량으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 아플 때, 약으로 요긴하게 쓰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자들이(사람들이)보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희소가치 때문이다.
내가 이만큼 비싼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희소가치 밖에는 별로 용도가 없는 보석을.. 치장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것으로 나의 강함, 나의 힘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렇다.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나서, 세상에 있는 모든 개똥이 다 없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개똥이, 단 몇 개만 남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이 세상에 단 몇 개 밖에 남지 않은 개똥에,
굉장한 희소가치를 부여할 것이다.
그러면 개똥은 굉장히 비싼 값에 팔리게 된다.
아마 그러면 개똥을 달고 다닐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분명히 그것을 비싼 값에 사서, 달고 다니려고 난리를 칠 것이다.
그게 단순히 비싸고, 희소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똥은 아니더라도)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성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왜 사람들이 수천 불짜리 빽을 들고 다녀야 하는가?
빽의 원래 용도는, 이것 저것들을 한 군데 모아서, 간편하게 들고 다니는 가방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비싼 빽이, 자기의 가치를 증명해 줄 것이라고 착각한다.
가진 물질의 힘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세상의 속임수에 속으면.. 신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용이 물을 토하여, 사람들을 다 떠내려가게 한다는 계12:15
본문을 살피고 있는데,
값비싼 보석, 또한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심리는,
그야말로 ‘용이 물을 토하여 사람들을 떠내려가게 하는데’
사람들이 다 미혹되어, 그 세속의 물결에 다 떠내려가는 것이다.
신자만큼은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지옥에 안 가고, 천국에 간다.
물론 주님이 은혜로, 땅이 입을 벌려서, 그 용이 토한 물을 삼켜서
신자가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도와주시겠지만,
동시에 또한 신자가
‘어린양의 보혈’과 ‘자기 입술의 증거하는 복음전도’로
열심히 싸울 필요성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싸우는 신자는..
보석이나, 명품 가방, 값비싼 자동차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성화 되지 못할까?
혹시 영원히 안 되는 것(성화)을.. 내가 쓸데없이 몸부림치는 것은 아닐까?’
제가, 그런 분께 처방을 한 가지 드린다면,
‘매일 지옥을 묵상해 보시라!’는 것이다.
그러면 마귀가 토하는 세속의 물결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나오고자 할 것이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군대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이, 영창에 가기 싫어서라도, 자기를 절제하는데..
영창보다 억만 배로 더 무서운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자기가 어떻게 자행자지 할 수 있겠는가!
▲테니스를 치면서 얻은 교훈
여러분, 테니스를 칠 때, 나보다 약한 상대방을 골려주려면,
상대가 전진하면, 공을 코트 뒤쪽으로 넘기고..
상대가 뒤쪽으로 빠지면, 공을 코트 앞쪽에 떨어뜨리면 된다.
상대가 코트 왼쪽에 서 있으면, 공을 오른쪽 코너로 넘기고,
상대가 코트 오른쪽에 서 있으면, 공을 왼쪽 코너로 넘기면..
테니스에 숙맥인 상대는, 헐레벌떡 사방으로 공을 쫓아다니면서
헉헉 거리면서 혼이 나게 된다.
그런데 진짜 재미없는 테니스 시합이 있다.
잘 치는 내가, 아무리 코너로 공을 찔러도
상대방이 코트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공이 오른쪽 코너로 가도.. 자기는 한 번 헛스윙하는 척 하고 말아버린다.
(자기 앞에 오는 공 말고는 치지 않겠다는 자세다. 초보자 여자분이 보통 잘 그런다.)
그러면 괜히 사방 코너로 공을 넘기려는, 나만 힘들어지게 된다.
우리가 사탄과 대적해서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신자를 골려주고, 핍박하려는 사탄 마귀를
미치고 펄쩍 뛰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사탄이 나에게 분노의 공을 날리고, 질투의 공을 날릴 때
험담의 공으로 찌르고, 시기의 공으로 강 스매싱을 해 올 때
그게 날아올 때,
내가 백핸드로 받아치고, 슬라이딩으로 어렵사리 받아넘기고.. 하지 마시라.
‘그냥 자기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이 지쳐버린다.
사탄이 힘이 쭉 빠질 것이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그러면 씩 한 번 웃으시면 된다. 예수님이 그렇게 살다가 가셨다.
예수님은 엉터리 재판, 억지 판결을 받으셨다.
그런데 씩 한 번 웃으시고 마셨다.
가만히 계셨다. 사탄이 더욱 약이 올랐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 그런데도 가만히 계셨다.
사탄이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올라가 계신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거기서 내려와 봐라’고 또 약을 올렸다.
그런데도 안 내려오시고, 예수님은 거기에서도 가만히 계셨다.
거기서 사탄이 진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성령의 능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능력이란.. 세속의 물결을 이기는 능력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 엉터리 세상 힘을 좇아가지 마시라,
오늘날 신자들은, 너무 겁도 없이, 절박함도 없이.. 제 나름대로 신앙생활 하고 있다.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라.
여러분은 기도를 하루에 몇 초 하시는가? 몇 분도 아니다.
그렇다고 성품과 인격이 변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독설 퍼붓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
그러면 <달마사寺> 다니는 신자와, 교회의 신자가 뭐가 다른가?
단지 일주일에 한 시간 교회에 나오는 것.. 그것 한 가지만 다르고, 나머지는 다 똑같다.
그러고도 과연,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가는 곳’에, 자기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처하시는가?
아니 거의 똑같은데..!
물론 믿음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삶으로 증명되어져야 하고,
본문의 성도들처럼 ‘자기의 증거하는 말’이 있는 믿음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진지해지고, 더 절박함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엉뚱한 것(세속적 가치와 힘)으로 자기를 치장하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 이용해서 힘(복)얻어서,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지 마시라.
여러분, 인도에 가면, 박물관에 간디가 타고 다니던
볼 품 없는 자전거가 아주 귀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 고물 자전거는, 고물상에 내다팔면, 5불도 안 쳐 준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귀하게 취급하는가?
왜냐하면, 가치 있는 사람, 마하트마 간디가 탔던 자전거이기 때문이다.
그 박물관에 값비싼 롤스로이스, 벤츠가 전시되어 있지 않다.
달랑 녹슨 자전거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
그 자전거, 자동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에 누가 탔느냐.. 하는 사실이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어떤 가격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만약 그것을 과도하게 중요시 여긴다면,
여러분은, 사탄이 토해 낸 물에 떠내려가고 있는 상태이다.)
중요한 것은, 그 차 안에, 그 아파트 안에,
누가 살고 있느냐.. 이다.
나는 ‘샤넬 Chanel’ 이 아니라, ‘채널 channel’을 들고 다니면 어떻는가?
그걸 들고 다니는 사람이, 정말 가치 있게 자기 삶을 살았으면,
그 채널 가방도, 박물관에 소중하게 보관될 것이다.
여러분이 아무리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어도,
그것을 탄 사람이, 아무 것도 아니면, 그 차는 결국 폐차되고 말 것이다.
그 차의 가치로, 나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탄의 속임수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능력’이란, 바로 그것이다. 세속의 물결을 이기는 능력이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왜 예수 믿으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샤넬, 구찌’에 목을 매시는가?, 왜 거기에 목말라 하시는가?
어떤 분들은, 주님께 축복을 듬뿍 받아서
‘샤넬, 구찌’로 치장하고 다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영원토록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어쩌고,
금방 목마르는 명품의 복음을 전하는지.. 정말 아찔하다.
오늘 나는, 사탄이 토해내는 세속의 물에, 떠내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것을 이기는 길은 ‘입술의 증거’를 가지는 길이다!
◑‘자기 입술의 증거’로 싸우는 성도들
계12:11a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용(사탄)은 거짓 말씀들로 미혹의 홍수를 토하여,
성도들까지라도 다 삼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땅의 입을 벌리게 하셔서,
성도들을 보호해 주신다.
그런 <하나님의 승리>라는 큰 그림 속에서
<성도들도 싸워야 되는> 작은 그림도 있다.
그 공중에 용과 미가엘의 영적인 전쟁이 벌어질 때,
동시에 지상에서 성도들의 싸움을 보여주는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분명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서, 마귀와 싸우시고 성도를 지키시지만,
성도 역시, 이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되는 면이 있다.
▲죽기까지 싸우는 교회(성도)
분명히 하늘에서 승리했지만,
땅에서는 여전히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계12:7~9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1b
이렇게 성도들의 삶은, 2중적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미 이겼고,
또 우리 신앙의 여정을,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지만,
우리도 생명을 걸고, 죽기까지 싸워야 하는.. 자기 몫이 있다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러한 삶의 진지함과 성실함과 열심이 요구된다.
▲성도들의 무기는,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로써 싸운다.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흘려주셨고,
‘자기의 증거하는 말’은, 그 예수님이 흘려주신 피를.. 전파하는 복음전도이다.
성도가 ‘예수의 복음, 예수의 피’를 증거하면.. 핍박을 받게 되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
예수님은, 양을 이리 떼 속에 보낸다고 하셨는데, 눅10:3
그렇게 가서, 이리 떼에 물려서 죽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본문은, 성도가 이기는 길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복음 전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죽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
예수님도 그 길을 가시지 않았는가!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2:15
◑예수 그리스도가.. 증인이시다.
성경은, 우리 증인들에게
‘증인의 삶을 살아라’고 얘기하기 전에,
어떤 증인을 등장시켜 놓고
‘그 증인처럼 살아라’고 권면한다.
그 증인은 계3:14에 나온다.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위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참된 증인, 충성된 증인’의 삶을 사셨다고 나온다.
▲포괄적인 증인의 삶
행1:8절은, 성도들에게 전도만 명령하는 것은 아니다.
더 포괄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인’의 삶을 사신 것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증인의 삶 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14:9
그래서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그를 보면,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는 고백이 나올 때..
그게 바로 ‘증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이게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이 필요한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의 삶이 가능한 것이다. 행1:8
▲방언하고, 예언하고, 병고치는 권능.. 그런 권능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쉽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것은, ‘증인으로 살아가는 권능’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증인의 삶.. 을 살게 하는 권능’
이것은 진짜로 어렵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런 권능을, 성도에게 주시기 원하신다. 행1:8
또한 주님이 그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행1:8
그 권능을 받은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다시 해산하는 고통>을 기꺼이 치렀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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