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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부활

LNCK 2012. 4. 7. 19:49

www.youtube.com/watch?v=RQO9kf39dq8&feature=youtu.be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부활        민17:8, 사11:1     설교일부녹취, 정리

   

주제요약 :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은.

1. 제사장을 통해서 새로운 (부활의) 생명을 주시겠다는 뜻이 담겨 있고,

2.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여시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새로운 부활 생명>을 주시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민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아몬드) 열매가 열렸더라.'

 

고대 주석가들은,

아론의 죽은 나뭇가지 지팡이에서, 생명의 싹이 움튼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론의 죽은 지팡이에, 하나님의 생명이 부어져서, 싹이 난 것처럼

예수의 생명이 내 속에 부어지면,

내 속에서, 그 생명이 움이 돋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즉,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역사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율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형벌을 주는 방식으로

즉 (겁을 줘서) 결코 율법을 어기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이

사람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넣어주시는 방법이었다. 주1)

 

죽은 나무(십자가)에서 생명이 움돋다.

아론의 죽은(마른) 나무막대기에서 움이 돋고 싹이 난다는 본문은,

비슷하게 아래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사11:1 이새의 줄기(그루터기, 밑둥)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죽어있는 것 같은 그루터기에서,

거의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새의 뿌리에서..

싹이 나고,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서로 다른 시대에 기록된 말씀이지만, (민수기, 이사야서)

민17:8, 사11:1 두 구절은, 놀랍게도 비슷한 모티브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모티브가 신약에 한 번 더 나온다.  ↙

 

▲예수님의 십자가도 <죽은 나무>였다.

십자가는.. 죽은 나무요, 죽음의 나무요, 저주의 나무요, 생명이 없는 나무였다.

그러나 거기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의 열매가 맺어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죽은 나무를 통해서, 만인에게 생명의 역사를 나눠주었듯이,

아론의 죽은 나무,

이새의 죽은 그루터기,

 

이렇게 시대마다.. 죽은 나무에서.. 생명이 피어나는 역사는 계속되어 왔다.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결코, 여러분 스스로를 ‘죽은 나무’라 여기지 마시라.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모실 때,

-나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되어, 움이 돋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고

-나는 이새의 줄기가 되어, 싹이 나고, 가지가 나와서, 열매를 맺게 되고  사11:1

-나도,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로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생명의 역사를, 오늘날에, 계속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확실히 죽어야 한다.

-만약에 아론의 지팡이가, 싱싱한 가지였다면.. 거기서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이새의 그루터기가 생생했다면..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부활은.. 확실한 죽음을 전제로 한다.

 

오늘날 내게 부활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내 속에 품고 있는 예수님의 생명(씨앗)이 문제가 있는 것일까?’ - Absolutely not!

 

그 이유는, 내 가지가 너무 ‘싱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안 좋은 뜻)

내가 확실히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속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지 못하고,

자꾸 내 생명이 내게서 드러난다.

그래서 부활의 생명이 내게서 희귀한 것이다.

 

오늘날 당신이 ‘문제’라고 여기는 많은 장애물들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확실히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생명, 그 부활의 역사가.. 내게서 거의 안 나타난다...

 

▲불평과 원망을 잠재우는 길

오늘날 광야와 같은 험한 인생길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불평과 원망이 생산되고 있는데,

 

그것을 잠재울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다.

즉, 그 생명이 <내 속에서 움이 돋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마른 막대기와 같이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불평하지 마시라. 원망하지 마시라’ ... 이건 다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율법으론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의 안에 있으면,

마른 막대기에서..

도저히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생명이 피어나는 것이다. 움이 돋고,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힌다.

그래서 .. 불평과 원망대신 .. 감사와 찬송하는 삶이 된다.

 

신약적 표현으로, 십자가를 자기 마음속에 붙잡고 사는 성도는,

그 부활의 생명이 자기 속에서 피어오르므로,

그래서 .. 불평과 원망대신 .. 감사와 찬송하는 삶이 된다.

 

 

◑2.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새로운 시대를 여신다’는 의미

 

민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아몬드) 열매가 열렸더라.

 

※우리에게 보통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나무는 ‘아몬드 나무’다. 그래서 아몬드 움, 아몬드 순, 아몬드 열매가 열렸다.

 

한국은 매화나 개나리꽃(또는 지방에 따라 산수유, 동백꽃)이 봄을 알리는 신호라면,

이스라엘은, 아몬드 꽃이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첫 신호이다.

 

‘아몬드’는, 히브리어로 ‘샤카드’인데, ‘흔들어 깨운다 to wake’란 의미이다.  주2)

그러니까 이스라엘 문화에서, 아몬드 나무는

‘겨울을 흔들어 깨워서 봄을 알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해석하면

과거의 시대를 흔들어 깨워서, 새 시대를 여시겠다는 뜻이다.

그것이 아론의 지팡이에, 아몬드 싹이 나고, 열매가 생긴 의미였다. ↙

 

▲그 새로운 시대란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서,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시대(구약의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그 이전에는 제사장도 없었고, 율법도, 규례로 없었지만,

이제 하나님은 ‘새로운 대제사장 시대를 여시겠다’는 뜻이다.

그게 다른 싹이 아니라, 특별히 ‘아몬드 싹, 아몬드 열매’가 맺힌 의미이다.

    ‘아몬드(샤카드)’가 ‘흔들어 깨워서 새 시대를 연다’는 뜻이 있으니까.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단순히 아론의 권위만 높여주신 것이 아니라, 12개지팡이 중에서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났다.

이런 하나님의 어떤 메시지(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담고 있는 것이다.

 

‘대제사장 아론’은, 장차 오실 ‘대제사장 예수님’을 예표 한다.

그러므로 더 멀리 내다보면,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흔들어 깨우신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새로운 대제사장 시대를 예표하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나무에서,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난 것은, 생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생명은, (아몬드) 열매가 맺혀질 정도로.. 확실한 생명이었다.

 

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대제사장 아론 직분을 통해서 나타날 것과 

-장차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날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오늘 나는 ‘죽은 생명’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 역동하는 생명’으로 살고 있는가?

 

부활이란.. 생명을 의미하는데.. 살아 역동하는 생명이다.

 죽은 나뭇가지 지팡이가 아니라, 살아 역사하는 지팡이이다.  주3)

 

......................

 

◑그때 제자들은 부활을 기다리지 않았고

   지금 우리들은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다

 

금요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고,

12 제자들의 그 때 토요일을 한 번 상상해 보시라!

   

십자가에서 허무하게 죽은 예수님을 슬퍼하며

실의와 낙심에 빠진 제자들...

부활은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모든 현실을 절망으로 여겼을 그들!

 

실낱같은 부활의 약속이 있었지만

현실의 짓누르는 무게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런 현실적 위로가 되지 못했다.

 

3년 동안 메시야를 따라다는 것이 헛수고였고,

자신의 신변 역시 위험에 처해 있었고,

자기들이 느끼는 미래는 암담함, 그 자체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지금 토요일을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십자가(금요일)와 재림(주일) 사이의 토요일을 살아가고 있다.

 

12 제자들이 부활을 거의 기대하지 않고 절망했던 것처럼,

오늘의 제자들도, 재림을 거의 기대하지 않고 낙심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부활이 없는 사람들,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없는 사람들은

2천년 전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토요일을 살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삐걱거리며, 비틀거리며, 종종 절망까지 느낀다.

마치 약속이 완성될 그 시간이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내 몸의 구속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양자됨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간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우리 몸의 구속(병들어 있는 몸이 완전한 육체가 되는 것)과

-우리 신분의 상승 (예수님의 동생이 되는, 하나님의 양자로 입적 됨)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건 예수님의 재림때 일어날 미래의 사건임과 동시에

오늘 나의 현실의 삶속에 일어나야 되는 부활이자, 아론의 지팡이에서 돋아난 새 순이다!

신자는 오늘 부활의 생명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already not yet!  

     

신앙의 본질을 깨달았던 할머니

루이지애나 전원의 한 교회 공동묘지에

어떤 할머니 성도가 150년 된 참나무 숲 아래에 고이 잠들어 있다.

묘지 비석에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단 한마디만 새겨져 있을 뿐이다.

.

.

.

ㄱ ㅣ ㄷ ㅏ ㄹ ㅣ ㅁ

 

 

..........................

 

주1)

과거에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는, 소매치기가 너무 성행해서

소매치기 범인을, 광장에서, 공개 체벌을 가하는 형벌을 주었다.

 

그런데 그날 그 광장에, 구경하러 모인 인파들 가운데서,

소매치기 범죄가 아주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형벌로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뜻)

 

주2) 히브리어 ‘샤카드’는

1) 아몬드(나무)라는 뜻도 있고,

2) 흔들어 깨운다는 의미도 있고, to wake

3) 지켜본다는 뜻도 있다.  to watch 

 

아래는 1)과 3)이 쓰인 용례

 

렘1: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아몬드(살구)나무 샤카드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바로 보았다.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가 지켜보고 샤카드 있다.’

 

주3)

지팡이는 히브리어로 ‘맛태’인데, 이것은 또한 동시에 ‘지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12지팡이(맛태 rod)를 모아서 가져온 것은,

12지파(맛태 tribe)를 모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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