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8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 3670

LNCK 2012. 6. 26. 11:06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       계3:7~12          계시록25강 녹취, 정리 



◑7절,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거룩하고 진실하사  주1)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이 구절은, 이사야서 22장에서 인용된 구절이다.


신약성경에는, 약 1600구절 정도가 구약에서 인용되었다.

그 외에도 약 3500구절 정도가, 구약의 내용을 손질(짜깁기) 한 것이다.

그래서 구약을 알지 못하면, 신약을 제대로 풀지 못하게 된다.


사22:15,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20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21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히스기야 왕 때, 셉나 라는 대신이 있었다.

그는 남유다의 국고를 맡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자기의 묘실을 부유하게 꾸미다가, 하나님께 호되게 꾸중과 책망을 듣는다.

그리고 셉나가 갖고 있던 모든 권력을, 엘리야김에게 넘겨주겠다고.. 이사야가 예언한다.


그런데 사22:21절에 보면, 엘리야김에 주겠다고 하신 권세가

다 메시아에 관한 것들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구약을 줄줄이 꿰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그 구성원의 주류였을 것이다.


그 엘리야김이 ‘다윗의 열쇠’를 받는다.

사22: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문자적으로는, <왕궁의 보고의 열쇠를 맡았다>는 뜻이다.


본문 계3:7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요,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고 묘사하신 것은,


엘리야김 처럼, 예수님은

하늘의 보고를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권세를 가지셨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늘의 모든 보화를, 주신다는 뜻이다.


    (적용) 지금 빌라델비아 교회의 현실은 작고 가난하다.

    그런데 하늘 창고의 보화를 가지신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편지하시고, 그들을 알아주고 계신다.


    <그 작은 빌라델비아 교회>와

    <하늘 창고의 풍성함과 그 열쇠를 가지신 주님>이 대비된다.


    쉽게 말하면, 열쇠(권한)를 가지신 주님이, 명령하시면,

    모든 게 다 부여되고, 주어진다.

    물론 ‘영적인 보화’가 주로 우선이고, ‘물질적 보화’는 따라올 수도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위로가 된다.

성경의 수신자는 교회이다.


그런데 만약 자기들에게 안 주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만약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주님은 아낌없이 반드시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 창고의 열쇠를 갖고서, 열면 닫을 자가 없는 분이시기에!



◑8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문을 열어 놓았다’는 이사야서의 아래 구절에서 인용된 구절이다.


사60:11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하나님께서 열방이 돌아올 것에 대해서

즉 메시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계21장에도, 같은 내용의 말씀을 이렇게 증거한다.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성으로) 들어오리라

*성: 새 예루살렘 성, 성도를 가리킴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이 내려왔다.

그런데 그 성문들이 모두 열려있다.

왜냐하면 낮이라서 열려있다. 즉, 다시는 밤이 없기 때문에 항상 열려있다. :25

 

‘낮’이라는 단어는, 예수님도 자주 쓰셨던 표현이다.


요9:4 때가 아직 낮이매 (내가 아직 이 땅에 있을 때이니)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성경에 낮(또는 빛)은

주님이 계신 곳이 낮이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밤이 없다.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문을 열어두었다는 뜻이고,

이는 곧 낮이라는 뜻이며, (낮에 성문을 열어두니까)

이는 곧 주님이 빛이 되시고,

천국은 항상 낮(빛이 비친다)이며, 항상 열린 문이라는 뜻이다.


그 열린 문으로,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성으로) 들어온다.


즉, 주님께서

가난하고 작고 비천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장차 너희가 만국과 열방을 구원하는, 귀한 <열린 문>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적용) 혹시 여러분 중에도 ‘나는 늘 작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다’고 느끼는 분이 계신가?

그러나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면, 여러분 앞에는 ‘열린 문’이 있다.

여러분은 항상 ‘낮’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 작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내가 지금 너희와 함께 한다’

‘영원히 닫히지 않는 그 문이, 지금 너희들 앞에 열려 있다.

그 문을 통해, 만국과 열방이 천국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얼마나 용기와 위로가 되었겠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이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는

아시아에서 아주 큰 도시들이다.


이에 반해, 본문의 빌라델비아 도시는,

유명한 것이라곤, 지진이 많다는 것뿐이었다.

뭐하나 뚜렷하게 내세울 게 없는, 아주 작고 가난한 도시였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도, 당연히 가난했고, 그 숫자도 적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8


또한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도시에 사는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따돌림과 핍박을 당하고 있던, 그런 교회였다.


그런데 예수님께, 칭찬만 받았다.

라오디게아 교회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사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주 부자였고, 큰 교회였는데,

예수님께 책망만 바가지로 받았다. 규모는 컸지만, 사실은 ‘죽은 교회’였기 때문이다.


    (적용) 계시록의 7교회를 볼 때,

    교회가 크고/작고..

    교회가 부유하고/가난하고 .. 이런 면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크든지/작든지..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진짜 참된 교회인 것이다.


    큰 교회는, 크기 때문에, 사명을 잘 감당할 수도 있고,

    크기 때문에, 동시에, 사명을 잘 감당 못 할 수도 있다.


    작은 교회는, 작기 때문에, 사명을 잘 감당할 수도 있고,

    작기 때문에, 동시에, 사명을 잘 감당 못 할 수도 있다.


    ‘작아서 사명 감당 못한다’는.. 핑계에 불과하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시라!


작은 교회, 큰 목회



◑9절, 저희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리라.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외적으로 목숨 걸고 지키던 사람들이다.

십계명 중 9계명에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유대인들을 ‘거짓말 하는 자’라고 지적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짓의 아비(사탄)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거짓말은, 어떤 일상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참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그들이 그 참 메시야를 ‘거짓’이라고 하였다. 믿지 않았다.


그런 유대인들을 총칭해서 ‘거짓말 하는 자’, ‘사단의 회(당)synagogue of Satan’으로 말씀하신다.


한 마디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은,

전부 ‘거짓말 하는 자들, 사단의 회’인 것이다.


진짜 유대인, 즉 진짜 하나님의 친 백성들은,

그 거짓말 하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있는, 여러분, 빌라델비아 교인들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 중)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아래 구절에서 인용된 부분이다.

사60:14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던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발 앞에 엎드린다는 구절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성도들을 핍박하지만,

결국에는 성도를 발 앞에 엎드려, 절 하게 되어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인정하지 않는 자들, 거짓말 하는 자들,

사단의 회, 유대인들을 네 발 앞에 절하게 만드시겠다는 것은,

‘빌라델비아 교회야, 너희야 말로, 진짜 이스라엘(유대인)이고,

너희야 말로 진짜 하나님의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라는 하나님의 인정이다.


    오늘날 교회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가라지가 득세 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가라지가, 알곡 앞에, 무릎 꿇고 절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가 하나님의 참 백성인지’ 가려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신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작았지만.. 그런 <영적 권위>가 있었던 것이다.


    (적용)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영적 권위>가 있으면 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원수들을, 내 발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하실 것이라는

    그 믿음만 갖고 있으면.. 환란의 길을 이길 수 있다.



◑10절, 인내하라는 말씀을 지킨 교회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이 말씀의 뜻은,

‘환란 가운데 인내하라’는 말씀을, 네가 잘 지켰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성도에게 ‘환란 가운데 인내하라’는 말씀이 종종 나온다. 약1:3등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계명을 잘 지켰던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과 인내를 본받아서

빌라델비아 교인들도, 그 수난과 인내의 길을 갔던 것이다.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죄인들이 온갖 못 된 짓을 할 때,

그것을 다 참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명하신다.

그래야 피곤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서, 죄인들의 만행을 참으신 예수를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때

성도는 피곤하게 되고 grow weary, 낙심하게 된다 lose heart. 히12:2~3


▲그렇게 인내한 자들은, 내가 지켜 장차 올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시험의 때로부터 지켜주겠다. 너희들이 잘 통과하도록 지켜주겠다는 뜻이다. 

아예 시험(고난)을 없애주겠다는 뜻은 아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out of the trial이 아니라, from the trial  주2)


요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지금이 바로, 인의 재앙, 나팔 재앙의 시기이다.

하나님은 지금 인을 떼고 계시고, 나팔을 불고 계신다.


여러분은 지금 환란기를 통과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하심, 지키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안전한 것이다.

그 환란의 시기, 그 재앙의 시기를.. 신자라고 면제되지는 않는다.


이 재앙의 시기에, 성도들은 하나님을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증거 중 하나이다.


(적용) ‘뭐라고요? 지금 성도가 환란을 통과하고 있다고요? 나는 전혀 괴롭지 않은데..’

‘지금 나는 아무 환란이 없는데요? 여기는 회교국가가 아니잖아요!’

라는 신자가 있다.


그건 자신이 너무 세상과 친화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실의 삶이, ‘환란’인 줄 모르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착각하는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진짜로 성도가, 성도답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

경제적으로.. 손해 보게 되어 있다. 딴 사람들이 성도를 무시하게 되어 있다.


성도가 왼 뺨을 맞았을 때, 오른 뺨을 갖다 대주면

‘야 착하다!’ 그러지 않고, 오히려 병신인 줄 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살라고 하셨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가 한 대 때리면, 내가 두 대 때리기 때문에,

세상이 환란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정말 계명에 순종해서 살려고 한다면,

지금 환란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마귀가, 성도가 천국 가도록, 그냥 순순히 놔두지도 않는다.


마지막 환란의 때에, 많은 배도자가 속출할 것을 성경이 예언하고 있고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예수님이 걱정하셨는데,


승리하는 비결은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인내’임을 알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그런 성도에게, 주님은 ‘생명의 면류관’까지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다시 말해 승리의 면류관이다. 승리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요즘 아래의 말씀을 외우고, 묵상하고 있는데, 여러분도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12 시험을 참는(인내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1절, 네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라고 하셨다.

그들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인내를 배우고, 성도의 인내에 대한 말씀, 복음을 갖고 있었다.

그 정확한 복음을 잘 지키는 것이.. 교회가 사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을 잘 지키고 있는 자들, 즉 이기고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

그 기둥들은 결코 (성전에서) 나가지(떠나지) 않는다. ↙



◑12절, 너를 성전 기둥으로 삼겠다.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성전 기둥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지을 때, 많은 기둥이 나온다.

성전을 지을 때도, 성전 안에 많은 기둥이 있었다.

기둥은 성전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성전 기둥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은,

그들이 빠져 버리면, 하나님의 집은 폭삭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허물어진다.


성도가 빠진 하나님의 성전은 붕괴되고 말 것처럼, 묘사하신다.

우리는 그처럼 하나님께 대우 받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11절 말씀처럼, 그 특권을 빼앗기면 안 된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성전 기둥이, 성전에서 결코 다시 떠나가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성도의 견인’(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끌어주신다는 뜻)을 잘 나타낸다.

하나님은, 그 기둥(성도)이,

‘난 도저히 예수 믿는 게 어려워서 못 하겠다’ 라고 포기하는 꼴을 보시겠는가?

그게 빠지면, 하나님의 집이 무너져 버리니까.. 하나님이 끝까지 끌고 가신다.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야 되니까(이미 영적으로 완성되어져 있다)

우리가 힘들고 괴롭고 절망적이고

때로는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구원받았을까?’ 하는 자책 속에서도,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끌고 가신다. 두들겨 패서라도!

그게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씀 속에 숨은 의미이다.


우리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들이다.

그 위에 찬란하고 영광스런 교회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진 자들이다.


새 예루살렘, 완성된 참 성전, 완성된 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렇다.

우리는 기둥이고, 우리에게 주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계21: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우리가 바로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절대 포기 될 수 없고, 중도에 탈락할 수도 없고,

이미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바로 그런 자들이다.


(적용) 여러분, 건축할 때, 기둥들을 보시라.

나무 기둥이든지, 돌기둥이든지.. 원재료를 깎고 다듬어서.. 기둥을 만든다.


자기가 기둥이 되지 않겠다면 몰라도,

성전 기둥이 되고 싶은 성도들에게는.. 깎고, 다듬고, 부수는 과정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반드시 나를, 이끌고 가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자꾸 지금 망치로 때리시고, 대패로 밀고, 사포로 다듬어서

작품을 만들어 가고 계신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는 환란과 고난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서 자신이 겪는 여러 가지 난관과 어려움들이

나를 괴롭히지만,

결국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까짓 것들 쯤이야 괜찮다.’ 하며 가는 것이다.

 

그래서 환란을 당하실 때, 여러분은 힘차게 외치시라.

‘내가 바로 성전의 기둥이다!’ ‘이게 다 기둥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마치는 말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8


세상 사람들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가리켜,

‘저기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겠는가?

저 보잘 것 없고, 사람도 몇 명 없고, 가난하고..’ 그렇게 무시했지만,

그런데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 칭찬만 해 놓으셨다.


여러분, 세상에 합리적, 효율성.. 이런 것 너무 좇아가지 마시라.

교회에서는 세상의 경영논리가 적용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하늘의 원리와 하늘의 법칙이 이끌어가는 곳이다.


2천 년 전에 그 작고 보잘것없고 초라했던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를 받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그 2천년 전의 감동이, 지금 여러분들께 임하시기 바란다.


..................

 

주1)

구약 이사야서엔, ‘거룩’이란 말이 53회나 많이 나온다.

그 중 30회 이상이, ‘하나님을 묘사하는데’ 쓰였다.


원래 ‘거룩(헬, 하기오스)’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쓰이던 단어였다.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막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하기오스)라고 부른다.

어떻게 하나님께만 쓰이던 단어가, 신자에게 쓰이게 되었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그 의의 옷을 덧입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하기오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진실하사’ 역시 구약에, 하나님께 종종 쓰이던 수식어였다.

    예수님은 진실하시며, 진리이시다. 사65:16, 요14:6


주2)

혹자는, 성도는 7년 대환란 전에 휴거 될 것이고 (환란전 휴거설)

그래서 7년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근거가 본문 같은 구절을 곡해해서 그렇다.)

그렇지 않다. 성도는 7년 대환란을 통과하지만, 주님이 지켜주셔서 승리한다. (환란 통과설)


그리고 7년 대환란도..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마지막 때에는 더욱 심화된 ‘대환란’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