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다에 대한 마지막 심판의 말씀 렘44장 출처보기
※짧게 큐티 식으로 읽으실 분은, 17절과 18절만 보시기 바랍니다.
▶렘44장은, 예레미야 예언의 막바지
지난 주에, 렘43장에서, “말씀 정지”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남유다에 대해,
마지막으로 심판의 말씀을 선포케 하신 후, 예레미야의 사명을 끝내게 하셨는데
그는, 애굽에서, 동족에게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유다에 관한 예언은, 예레미야서에서, 사실상 44장에서 끝납니다.
45장에는, 대필자 바룩에 관한 예언,
46장부터~마지막 52장까지는 애굽, 모압, 암몬부터 바벨론까지
열방에 관한 심판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44장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말씀입니다.
렘1장부터 시작했던 그 말씀이, 44장에 이르러 끝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정지>된 국가나 개인은 ☞ 렘43장 말씀 정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작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정지>가, 인간을 얼마나 악하게 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그 악함을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하지 아니하시고
분명하게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심판의 원인 렘44:1~10
▶1절,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44장 본문에서 선포한 심판의 말씀은 새로운 말씀이 아닙니다.
그 동안 수 없이 선포된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애굽 땅 곳곳에는 요하난을 따라 온 남유다 백성들 외에도
상당수의 이스라엘 민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들의 나라가 멸망당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방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여전히 가증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악한 백성들에게 예레미야 선지자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지만
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예레미야를 죽이는 악한 짓을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나라가 멸망하는 심판을 당해야 했는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2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사는 사람이 없나니
하나님은 2절에서 먼저 그토록 번성했고 아름다웠던 예루살렘이
황무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셨습니다.
특히 요하난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불살라져 황무지가 된 모습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아름다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심판하신 원인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3-10절까지 보면 2가지로 말씀하셨는데..
▶3~6절,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음이라
(4절)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5절)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6절) 나의 분과 나의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느니라.
첫째는 우상 숭배에 대해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까지 보면 “다른 신들” 이라는 말씀이 3절, 5절, 8절에 3번 언급하고 있고
이러한 악행을 범했다는 말씀이 8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 숭배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것입니다.
“나의 노여움” 이라는 말씀이 3절, 6절, 8절에 3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이 어느 정도 무서운지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7절,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우상 숭배는 자기 영혼을 해하는 큰 악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또한 우상 숭배는 자신 뿐만 아니라
죄 없는 아이와 젖 먹는 자까지도 심판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민14:18)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당하는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십계명 중에서 1-4계명 까지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21세기에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오직 예수 신앙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이 세상에 외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오직 예수 신앙이 아니면, 어떤 믿음도 어떤 능력도 어떤 가르침도
모두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신앙이 되지 아니 하면 나도 모르게 세상 것을
아니 나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안 드렸습니까?
그들이 말씀을 듣거나 보지 안 했습니까? 기도를 안 했습니까?
그들은 조상들이 가르쳐준 하나님의 섬기는 법을 그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몸만 그렇게 하였지,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사29:13)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진실로 예수를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십니까? 하나님은 100%까지는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몸을 볼 때 수분이 60%이므로 우리가 건강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도 내가 오직 예수 생각으로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야
영적인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병원에 실려가면, 맨 먼저 주는 주사약이 링거입니다.
그 링거의 주성분은 소금물입니다. 이것은 곧 그 사람의 몸을 수분부터
충족시켜주고 치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왜 영적인 환자처럼 힘이 없이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까?
“오직 예수”의 생각이 20% 30% 정도 뿐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인 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최소한도 “오직 예수”의 생각이
최소 60% 이상 되어야 영적인자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분명코 우리는
그 어떤 다른 것에 내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신앙을 끝까지 가지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심판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내 자손 삼사대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8절,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이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너희가 가서 머물러 사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 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8절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7절의 저주에 이어서 8절에서 다시 한 번 저주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곧 “오직 예수”를 가지지 아니한 그 심판과 저주가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지 깨달으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22:37-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이 말씀은 곧 “오직 예수” 신앙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신앙이 첫째 계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오직 예수” 외에
그 어떤 다른 것을 섬기고 사랑하는 자들이 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심판의 원인에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4-5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4~5절,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5절)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5절에 보면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돌이키지 않았다” 는
삼중적인 표현으로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도적으로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9~10절,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조상들의 악행과
유다 왕들의 악행과 왕비들의 악행과 너희의 악행과 너희 아내들의 악행을 잊었느냐
(10절)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 앞에 세운 나의 율법과 나의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0절도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며 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기록한 선지자들은 16명입니다. 이 외에도 더 있었지만
하나님은 16명의 선지자들을 통해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말씀에 순종한 자들도 있었지만,
이스라엘 왕들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대부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 악한 백성들에게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더 이상 말씀을 주지 아니하시고, 정지시켜버렸습니다.
지난 주(렘43장)에도 말씀드렸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살면, 하나님이 말씀을 정지시켜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정지당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씀이 정지 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씀을 아는 자들은 많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알았다면,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수시로 나 자신을 비추어
내가 지금 “오직 예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살펴보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등이, 빛이” 곧 “오직 예수”를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심판 렘44:11~14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우상 숭배하는 그들 남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11절,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1절에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라고 하였는데
심판을 행하기 위해 그들을 주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외면한 자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온 유다를 끓어버릴 것이며”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애굽 땅에 도피해서 살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다 죽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2절,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내가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끝까지 자신들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처단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처단하리니”
앞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렘42:7-17에서,
애굽으로 도피하지 말고, 남유다에 눌러 붙어 살아라고 하셨습니다.
바벨론에 의한 심판이라면, 남유다가 그것을 당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일단은 칼을 피하고 보자는 심리로,
바벨론이 무서워서, 애굽으로 피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로 통해 주어진 예언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으로 처단됩니까?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낮은 자부터 높은 자까지 죽이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심판하셨던 것처럼
애굽 땅에 도피해서 사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 왔지만
하나님은 애굽 땅까지 쫓아와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는 B.C. 568년에 이루어졌는데
바벨론에 의해 애굽이 망할 때, 그들도 같이 철저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13절~14절,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14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 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개역)
*난을 피하여 돌아갈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공동번역)
14절에 보면 “살아 남아 남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도망 치는 자” 는 늦게라도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여
남유다 땅으로 돌아오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애굽으로 도피했지만, 그곳에서 화를 당하고, 결국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아주 미약하다는 예언입니다. ‘거의 없으리라’
애굽에서 다 진멸되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70년 후에 이스라엘을 새롭게 회복시키실 때
바벨론에 있는 자들을 통해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즉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살길을 찾아서, 애굽 땅으로 도망간 자들은
철저하게 심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에도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도망하라고 하였습니다.
도망 하는 것도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도망하는 자가 있는 가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도망하는 자가 있습니다.
(마24: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24:20)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지막 때는 말씀에 순종하여 도망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애굽 같은 세상 속에 깊이 빠져있는 자들은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붙잡을 때, 허리 춤을 잡으면 꼼짝 못한다고 합니다.
악한 마귀에게 발목 정도 잡히면 도망갈 수가 있지만
허리 춤을 잡히면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가지 못합니다.
애굽에서 이미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 같은 것은 귀에도 들어오지 아니했습니다.
이러한 악한 자들에게 더 이상 무슨 은혜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무서운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들도 도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라고 했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산이 아니라
모세가 말씀을 받았던 호렙산처럼 우리들도 말씀의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러 산에 가셨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기도의 산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또한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고 하였는데
겨울에는 사람들 거동이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모두 다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든지 도망 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게으르고 나태한 믿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항상 말씀으로, 성령으로, 오직 예수 신앙으로 깨어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한 자들 렘44:15~30
▶15절,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16-19절에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주목할 것은 “우리” 라는 말인데 무려 12번이나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는 7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어느 소수의 무리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애굽에 있는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6절,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겠다고 정면으로 도전하였습니다.
▶17절,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 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겠다” 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절대로 굽히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본래 하던 것” 즉 우상 숭배를 그대로 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선조” “우리 왕들” “우리 고관들” 이 행하던 짓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던 우상은 “하늘의 여왕” 이었습니다.
“하늘의 여왕” 은 아스다롯을 가리키는데 아스다롯은 바알 신의 아내였습니다.
가나안의 3대 여신 중에 하나였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우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미 오래 전에 아스다롯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미 그들은 사사 시대와 사무엘 선지자 시대부터 아스다롯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주1)
그런데 남유다가 ‘하늘의 여왕’을 섬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상을 섬기면, 망할 줄 알면서도.. 간 크게 섬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17절)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그 ‘하늘의 여왕’ 아스다롯이, 풍부의 복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믿을 만 했던 것이, 가만히 보니까,
우상을 섬기는 주변 국가들이, 풍부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은 버리고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따라간 결과,
캔디를 먹으면 당장은 달콤하지만,
나중에 그 징계를 다 받았던 것입니다. 남유다가 지금 다 받고 있습니다.
▶18절,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8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들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7)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아스다롯 여신은 다산과 풍요를 주는 신으로 섬겼는데
그러한 우상을 섬길 때는 복을 받고 잘 살았는데
우상을 제대로 섬기지 않자, 나라가 망하고 어려움이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점을 치거나, 번영신학(성공주의)에 빠지는 이유는,
그래야 현실적으로, 풍부하게 잘 산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궁핍하고 가난하게 살게 될까봐.. 걱정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고백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오늘날도 많은 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목적은 단 한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목적을 삼고 예수를 믿고 있다면
분명코 잘못된 신앙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2) 하십니다.
이 땅에서 복을 받으며 사는 것은
‘내 육신을 위해 살아가라’고 주신 복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 즉 영적인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 주신 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세상의 물질의 복이 아니어도, 혹시 가난하다 하더라도
온전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8:5-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여러분은 진실로 왜 교회를 다니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분명한 답을 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고 있다면
우리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아스다롯 여신을 섬기고 있는 자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19절,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이러한 우상 숭배를 하는데는 여자들이 앞장을 섰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남편의 허락을 받고 이 일을 행하였기에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고,
남편의 말에는 순종하였기에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더 중요합니까? 남편/부모/자녀의 말이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법이 더 중요합니까? 세상 법이 더 중요합니까?
우리의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우상숭배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렘7장에서 이미 밝혔습니다.
(렘 7:17-18)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그런데 이러한 우상 숭배에 여자들이 더욱 극성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의 신자들은 거의 여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영적으로 무지한 우상 숭배자들에게서
도저히 회개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최종적으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심판을 선포하시는데 그 원인을 다시 또 3가지로 지적하셨습니다.
첫째는 21절에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20~21절, 예레미야가 남녀 모든 무리 곧 이 말로 대답하는 모든 백성에게 일러 이르되
(21) 너희가 너희 선조와 너희 왕들과 고관들과 유다 땅 백성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분향한 일을 여호와께서 기억하셨고 그의 마음에 떠오른 것이 아닌가.
둘째는 22절에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22절,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셋째는 23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며 살았기 때문에
심판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3절,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
그 심판은 물론 바벨론의 칼에 심판을 당하는 것이었지만
25절에 보면 특이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서원을 성취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고 하셨습니다.
▶24~25절,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말하되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 사람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이루려 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은즉
너희 서원을 성취하며 너희 서원을 이행하라 하시느니라.
너의 마음먹은 대로 한 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내버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롬1:24-28절에 보면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 는 말씀을 3번 언급하십니다.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자기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는데 보고만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남의 자식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떤 죄를 지어도 잠간 양심에 가책만 느끼고 회개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 내버림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6절,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 사람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사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부르며
주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으리라
26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그들 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못 부르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도 이제는 주시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27절, 보라 내가 깨어 있어 그들에게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들이, 14절에서 도망치던 소수가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증인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28~30절, 그런즉 (애굽에서)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사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과 그들의 말 가운데서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알리라
(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를 벌할 표징이 이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재난을 내리리라 한 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그것으로 알게 하리라
(30)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9~30절도 주목해 보세요.
너희를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는 표징을 보고 깨달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표징은 애굽 왕 호브라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남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셨던 것처럼
애굽 왕 호브라를 바벨론의 왕의 손에 붙이겠다는 것입니다.
애굽 왕 호브라의 죽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표징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내 생각을 앞세우고, 내 고집을 앞세운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내 생각과 고집을 접으시기 바랍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오직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마지막 때의 심판을 계시록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였던 심판보다도 몇 천배, 몇 만배 무서운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이 심판을 (마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심판을 당할 때
그들이 하나님께 선지자께 정면으로 대적하였던 것처럼
세상 끝 날에도 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정면으로 말씀을 대적하며
배도하는 짓들을 서슴지 않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조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 많이 극성을 부릴 것입니다.
애굽에서 당하는 심판 속에서도
‘아주 소수의 무리’가 피난 나와서, 남유다에 돌아온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그대로 되며,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사명은 44장에서 끝이 납니다.
애굽에서 순교하므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사명이 끝나듯이
우리의 믿음도, 사명도 마지막 심판을 외치고,
다시 오실 예수를 외치다가 오직 예수 신앙으로 생을 마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주1)
(삿2:11-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삼상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사 시대가 언제입니까? 사무엘이 언제 시대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500년 동안 이러한 우상 숭배를 버리지 못하고,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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