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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으로 승부를

LNCK 2012. 6. 26. 21:32

 

◈'단순함'으로 승부를        마20:29~34        11.02.20.설교스크랩

 

단순한 게 힘입니다. 

현대사회는 대단히 복잡해졌고,

한때 그 복잡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의 성공 키워드는 ‘단순함’이다”

라는 얘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는 것은 능력 중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우리 믿음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 주님이 가장 원하셨던 것도 바로 이 ‘단순함’이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복잡한 과정들은 이미 우리 주님께서 다 거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마저 그걸 반복할 필요는 없다 하는 주님의 자신감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하신 말씀은 그냥 나온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이 진리가 되기 위한 모든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치를

이미 주님께서 취해 놓으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할 일은 그대로 믿고 행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역사는 다 이런 식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것으로가 아닌, 바로 단순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단순하다’라는 말이 말처럼 단순하지 않아서 오해하기 쉽다는 겁니다.

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할 일은 진짜 단순하다는 게 뭔가를 찾는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뜻을 제대로 알고 그대로만 행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힘은 없을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 참된 단순함을 찾고, 그것으로 승부를 걸어

인생의 승리를 거두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단순함을 이루는 세 가지 요건들을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 단순하다는.. ‘순수한 것’을 말합니다.

 

복음의 열정에 불타오르면.. 사람이 단순하게, 순수 복음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전에도 제가 드린 말씀이긴 하지만, 저는 이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전도사 때 딱 한 번 <어린이 부흥회>의 강사로 초청돼서

어느 교회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로마서를 읽고 있었는데

정말 매일 복음의 능력과 감격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당연히 어린이들에게도 원색적인 복음을 전했지요.

 

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왜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지,

그리고 십자가의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런 것들을 저 나름대로 아주 열정적으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모두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지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대상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코흘리개들이었고,

그런 철딱서니들 앞에서 저는 이런 식의 얘기를 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하지 마세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거예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만 바라보고 죽으면 죽으리다 하세요.

예수님은 여러분의 순교의 피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아이들 태반이 딴짓하고, 심지어는 자는 아이들까지 있었습니다.

 

부흥회는 완전 실패했고, 저를 초청했던 친구 전도사 얼굴을 보니까

‘이제 다시는 너를 부르나 봐라!’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실패로 끝난 줄 알았는데,

그 기간 동안 딱 한 명, 은혜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냐 하면, 당시에 신학대학을 갓 입학해서

주일학교 총무를 맡고 있던 신학생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부흥회가 끝나고 나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매일 교회 와서 살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전도를 하는데

얼마 안 가서 주일학교가 배가가 됐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그때처럼 이것저것 안 따지고

복음에 대해서 뜨겁게 전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 교회 주일학교를 부흥시켜야 되겠다든가,

설교자로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겠다든가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복음만 제대로 전하자 하는 그런 마음이었지요.   

 

하나님이 혹시 그때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신 게 아닐까요?

그래서 한 친구를 변화시켜, 나름대로 열매를 맺게 해 주신 게 아닐까요?

 

저는 지금도.. 그때는 제가 어려서, 뭐가 뭔지 한참 몰랐지만,

나름대로 순수했던 그때의 제 모습이 참 그립습니다.

 

 

로마서 서문을 쓰던 사도 바울에게도, 이런 모습이 발견됩니다.

원래 유대인의 편지는 딱 형식이 갖춰져 있어서

그대로 쓰지 않으면 결례가 되기 때문에, 절대로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먼저는 발신자인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고,

-그리고 수신자를 거명해서 정중한 인사를 하고

-그 다음에 축복 기원을 한 후,

-왜 이 편지를 쓰는지 목적을 밝힙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내용에 들어가는 건데,

 한 번 여러분이 로마서 1장을 읽어 보시지요.

 

첫 절에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다가

우연히 복음이란 말이 나오니까, 인사고 뭐고 다 까먹고

무려 6절을 복음이 뭔지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다가 “아! 참! 인사를 잊었네” 하면서

7절에 가서야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고 인사를 합니다.      

순수함에서 우러나오는.. 바울의 단순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성경의 위인들을 보면 거의가 이런 식입니다.

그들에게는 누구랄 것 없이 다들 계산도 없고

앞뒤도 가리지 않는, 복음의 열정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 같은 겁니다.

아브라함, 다윗, 다니엘이 그랬고, 스데반, 베드로, 바울이 그랬습니다.

 

정말 지금처럼 지식이 범람하고 넘쳐나는 이런 세계에서는

더 그런 순수함이 요구됩니다.

 

정말 보태거나 빼는 것 없는 원색의 복음이 그리워지고,

투명해서 속이 다 보이는 순수한 인격이 그리워지는 겁니다.   

 

 

알고 보면, 사람들 속엔 누구든 그 순수함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어떤 교회나 교단에 가면,

축도나 축복기도를.. 가급적 가장 어리고, 젊은 성직자를 시킵니다.

 

어리고 젊을수록 (유치할 수도 있지만) 순수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 순수함을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어떤 가수가 되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심사위원들이 그 부분을 요구하고 있더라고요.

 

타고난 재능과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가장 점수를 많이 준 부분은

출연자들이 얼마나 음악에 몰입해서 그 음악을 즐기느냐.. 이었습니다.

 

무슨 얘길까요?

순수함으로 돌아가서, 음악 그 자체를 사랑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순수해지려고 노력하면

제일 먼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런 부분에 무딜 것 같고 별 영향 받지 않을 것 같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순수함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어간에, 저는 미국계 한 생명보험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입사 직후 다른 신입사원들과 호텔에서 꼬박 한 달간 교육을 받았는데,

그 전까지 저는, 보험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받고 보니까, 정말 보험은 어느 가정이든 꼭 필요하다 싶은 겁니다.

그 수습 기간 동안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보험영업을 실제로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계약이 되든 안 되든 현장경험은 필수라, 회사의 지시에 따라서 저도 field로 나갔지요. 

그때 처음 만난 사람은, 친한 선배한테 소개받은 신한은행의 김모 대리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배운 대로 생명보험이 왜 필요한가를 열심히 그 분에게 말씀 드렸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 내용은 나 혼자 숙지해야 될 것이지,

그걸 직접 화법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경험 부족으로, 원색적인 내용을 마구 쏟아내었습니다.

 

“김 대리님! 생명보험은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김 대리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

김 대리님이야 본인의 사망으로 끝나는 거지만,

가족의 입장에서는 남편의 사망이요, 아빠의 사망뿐만이 아니라,

수입의 사망이기도 합니다.

 

유족들이 가장을 잃고, 돈 없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아마 미망인이 되신 부인께서는 장례식 때 몹시 우시게 될 텐데,

그건 남편을 잃은 슬픔도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절망 때문일 겁니다.

 

그럴 때 보험금이라도 타게 되면 얼마나 위안이 되겠습니까!

죽은 사람이야 죽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생명보험에 가입하시는 일은, 유족한테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겁니다.

지금 바로 가입하셔야 됩니다.

오늘 퇴근길에도 사망 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 분의 얼굴이 왜 그렇게 붉으락푸르락 했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그 분께, 정말 그 분이 꼭 알고 있어야 될 사실을, 알려주고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그 분께 ‘계약하자!’는 전화를 받을 때도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제가 얼마나 그 분께 몹쓸 얘기를 했나를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 김 대리라는 분의 얘기는 이랬습니다.

제가 가고 나니까, 화가 나고 분이 나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도 그게 풀리질 않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계속 생각이 나더라는 거예요.

 

‘정말 지금 내가 죽는다면,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갑자기 두려워지더라는 거지요.

 

그 생각에 밤을 꼴딱 세웠답니다.

그리고는 출근하자마자 제게 전화를 했다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그때 이후로 제 주변 사람들이

제가 신한은행 직원인 줄 알았다는 겁니다. (거기에 자주 들락거렸다는 뜻)

 

그 김 대리라는 분의 소개로, 신한은행 직원들을 몇 명 만났는데,

그게 새끼를 쳐서, 반년 동안 신한은행 수도권 지점들을, 내 집 드나들 듯 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타겟 마케팅의 귀재’ 라는 별명까지 붙고

나중엔 사례발표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하든 그 김 대리에게 생명보험을 가입하게 해서

안정을 줘야 되겠다는 마음이.. 순수하게 전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은.. 그래도 순수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그 회사가 잘 나가다가 2년쯤 지난 후에 망해서 본국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제가 다시 실업자가 되고.. 그때 비로소 신학교에 들어갈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마 그때 잘 나갔다면, 지금 목사가 안 됐겠지요?)     

 

믿음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우리에게 지금 회복되어야 할 것은 순수함입니다.

순수한 믿음생활이란, 딴 것이 아닙니다.

아무 계산 없이, 전제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순수함은 일상으로까지 이어져서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되게 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순수함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단순한 삶의 첫 번째 조건은 순수함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앞으로도 주님만 생각하는 순수한 믿음과

이웃을 배려하는 그 순수함으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단순함은..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그렇게 ‘순수함’에다, 간결함(=핵심적인 것)을 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 그 의미가 잘 나와 있습니다.

단순해서 고침 받은 맹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여리고 서의 두 맹인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도 필요 없었고, 지위도 필요 없었습니다.

훌륭한 가정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복잡하지도 않았고 여러 가지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단순했습니다. 딱 한가지였습니다.

눈만 뜨면 되는 거였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소문을 들은 모양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은 어떤 병도 다 고쳐 준다더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니까

그 길목에서 소리질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외치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다른 사람들이 꾸짖었다 그랬습니다. :31

그래도 아랑곳없이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맹인들을 부르시곤 물으십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소경들에게 하시는 질문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예수님이 맹인들에게 하신 말씀은 극히 간결하고 단순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권위적이고 뭔가 사람들 앞에서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으면

이렇게 물으셨을 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지금 여리고를 떠나려고 하는데 무척 바쁘다.

너희는 앞을 못 보는 맹인이로구나.

너희들이 많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를 찾은 것은

무슨 곡절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구나.

 

그래 너희들이 하려고 하는 얘기를 차근차근히 해 봐라.

내가 듣고 판단해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노력해 보겠다".

 

사실 어떤 모임에 가서 토론을 하거나 회의를 해보면

간단하게 얘기할 것도 꼭 이렇게 심각하게, 길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묻지 않으셨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그렇게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언제나 간단하고 명료하십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말씀은 언제나 폭발적인 힘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간결하게 물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도 가장 핵심적인 사실을, 간결하게 말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에 소경들도 아주 멋있게 (간결하게) 대답합니다.

"주여! 우리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다른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볼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 외에는 아무 소원도 없습니다." 그겁니다.

 

예수님이 그 대답을 들으시고, 소경들의 눈을 만졌더니 곧 눈이 떠졌습니다.

소원대로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게 바로 가장 아름다운 단순함인 겁니다.

핵심만 말하니까 간결해 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순하게 물으시고, 또 우리로 단순하게 대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뭔가를 물으실 때, 복잡하게 대답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아시다시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지음 받았잖아요?

하나님이 소경이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지금 소경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는데요,

왜 우리는 그것들을 보지 못하는 걸까요?

예수님은 안 당해 봐서 모르시겠지만,

우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불편/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아세요?

 

우리도 하나의 인격체잖아요. 우리도 인간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지 않겠어요?

우리가 볼 수만 있다면, 이 사회는 또 두 사람의 건강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셈이고

우리는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것은

국익이나 공익에 대단히 기여하는 일이 되고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능력을 보여주시는 계기가 될 텐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가만히 두시겠어요? 가만히 계신다면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겁니다.

자! 얼른 어떻게 조치를 취해 보시지요?"

 

뭐 이렇게 맹인들이 얘기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들 같으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래! 너희들은 눈 안 떠도 입으로 먹고 살 수 있겠구나. 그렇게 살다 죽어라!"

그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핵심 되는 게 뭔지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간결하게 만드십시오!

만약 핵심이 뭔지 모르면 길어지고 잡다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게 됩니다.

 

그러나 핵심을 알고 간결하게 만들면,

그때의 에너지는 원자핵이 터질 때처럼 수 만 배로 증폭됩니다.

 

단순함을 추구하십시오!

믿음도 단순하게, 생활도 단순하게, 생각도 단순하게 만드십시오!

순수함과 핵심적인 것과 간결함을 찾으십시오!

 

물론 오래 생각할 수 있고, 여러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다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후에는 잔가지들을 다 쳐 버리고, 단순하게 만드십시오!

 

특별히 기도하면 그 단순함이 뭔지를 단 시간 내에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단순함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지난 2004~2005년에는, 온 한국에 이순신 장군의 열풍이 불었었습니다.

드라마로도 제작하고 그에 관한 책도 많이 나왔었습니다. 

 

사실, 여기 젊은 세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 세대는 이유도 없이, 무조건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라고 해서 존경한 세대입니다.

 

물론 그의 마지막 모습 하나로만도,

왜구(倭寇)를 무찌르고, 죽으면서까지도 나 죽었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시지요.

그 분을 존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저는 이 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볼 수 있었던, 그 몇 편 안 되는 난중일기를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어봤습니다.

단순하게 기록되어 있었지만, 행간에는 많은 얘기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계속 공을 세우는 이순신을 제거하려고

이런저런 일로 엮어서 결국 관직을 박탈하고 옥에 가둡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전황이 위급해지자 그를 석방합니다.

 

그때가 백의종군하던 1597년 5월 16일의 일인데,

그날 그의 일기는 ‘맑음. 오늘 옥문을 나왔다’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을 가두고 때리면서 사형의 빌미를 찾으려고 했던

정치권력의 정당성 여부와 그 원한에 관해서는

끝끝내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일기 내내 제가 느낀 것은,

그의 내면은 무겁게 짓눌려 있었고 삼엄하게 통제되어 있었습니다.

그 통제된 내면의 힘으로, 그는 무수한 아수라를 돌파한 거였습니다.

 

사가(史家)들에 의하면, 사실 그는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혹시 살았어도

정치적 상황 때문에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의 일기는 그런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상황을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바다의 사실에만 입각해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바다 날씨의 미세한 변화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는 건강하지 못해서 늘 병고에 신음했고,

그 역시 여느 사람처럼 슬픔과 기쁨에 몸을 적시는

그런 감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슬플 때의 일기는 "나는 오늘 슬펐다" 라고 까지만 기록하는

통제된 슬픔이었습니다.

 

그의 슬픔과 기쁨에는 그것들에 대한 무슨 수식하는

전후 얘기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일기는 보니까

"저녁 무렵에 동풍이 잠들고 날이 흐렸다.

부하 아무개가 거듭 군율을 범하기로 베었다"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잠든 것과 부하를 목 벤 것이 동등한 일로 취급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가는 사정을 몰라서였을까요, 아니면 무식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순신 장군의 그 무섭도록 단순함순결함에 놀랍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왜군과의 전쟁에 있었습니다.

꼭 이겨야 됐습니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선량한 백성들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잡다한 것들은 잘라버린 거였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했습니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아니 어쩌면 결과가 어떻든 전쟁을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간단하게,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전쟁에 불필요한 정치인들의 농간엔 관심을 꺼버렸습니다.

전쟁에 불필요한 군사들은 목을 벴습니다.

전쟁에 불필요한 내면의 감정은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오직 전쟁에 필요한 바다의 날씨와 군기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도 잘라 버렸습니다.

 

바로 그 단순함이 무서운 힘으로 나타난 겁니다.

 

이제 제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인생의 치열한 승부를 단순함과 순결성으로 바꾼 그 힘 때문입니다.

23전 23승은 그래서 나왔습니다. 

단순함으로 승부를 걸었던, 인류 최고의 승부사가 바로 우리나라에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성경의 인물 가운데는

단순함을 추구한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어려워서 이 순신 장군의 예를 들었지만

 

한 번 성경을 들춰 보십시오!

모두 단순하게 나아갔던 사람들입니다.

말씀 따라 나갔고 들어갔고, 말씀 따라 일어섰고 앉았고, 말씀 따라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던 것입니다.

지금같이 혼탁하고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힘은,

그것들을 필적할 만한 정보의 축적과 정교함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단순함에 있습니다.

믿음에서도, 생활에서도, 경쟁에서도, 단순함은 최고의 무기입니다.

 

 

▶마치는 말

할 수 있는 대로 순수함을 유지하십시오!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늘 영혼의 안테나를, 생각의 안테나를 곧추 세워 두십시오!  

가능하면 짧고 간결하게 정리하십시오!

 

 

그 단순함이 여러분을 여러분 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다 더한 경쟁력은 없을 것입니다.

이 일에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그 성령님의 함께 하심에 힘 얻어 평생 단순함으로 나아가며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