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열정, 그리고 사랑 요21:18, 왕하 13:14~19 11.03.20.설교스크랩
◑1. 자유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세 가지인데 자유, 열정 그리고 사랑에 관해서입니다.
먼저 자유에 관한 말씀인데, 요21:18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
오늘 이 말씀은 부활 후 베드로를 만난 예수님께서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를 잘라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쉽게 풀면, “젊어서는 네 맘대로 살았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붙잡힌바 된 지금부터,
너는 내가 이끄는 데로 남을 위해 사는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그 말씀일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자유로움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는 몹시 저항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린 제 모습이 있었는데,
그 첫째가 바로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에게든 구속되지 않고, 어떤 일에든 매여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너무나 낭만적이고 진취적인 꿈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루어 질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그만큼 얽매일 줄 알아야 됐습니다.
즉 자유하고 싶은 만큼 구속되고, 자유하고 싶은 만큼
속박된 삶을 견딜 줄 알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오지 여행가 한비야 씨’ 같은 모습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아무 일에도 매이지 않으면서
가고 싶은 곳은 아무 때든, 어떤 곳이든 갈 수 있는 것을 자유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비야 씨 같은 경우는 그 자유를 위해
거의 15년 이상 지독한 속박 속에 자신을 스스로 얽어맸습니다.
공부했고, 돈을 벌었고, 때가 되자 모든 안정된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저에겐 그런 시간들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유의 참된 의미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의 정신적 유년기를 떨치게 한 책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이스인 조르바>였는데, 그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조르바가 제 자유의 모델이었습니다.
그 역시 맨 몸으로 세계를 떠도는 자유인이었지만
그는 저처럼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사상으로 든든히 무장되어 있었고,
어떤 방식의 삶에도 쉽게 동화되는 유연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란 속박과 구속과 사상과 경험의 산물인데,
제 젊은 시절 그것들 중에 제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또한 그것을 갖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질 않았습니다.
자유란 속박입니다.
자유란 구속입니다.
자유란 자기를 엄격한 통제 아래 두는 것입니다.
한용운은 ‘복종’이란 시에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하고 노래했는데
그 시인이야말로 자유의 참된 의미를 진작에 알아차린 겁니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한 끝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인 것입니다.
제가 자유인이 되고자 자유롭게 산 세월들은,
알고 보니 모두 무분별한 시간들이었고 방종의 세월이었습니다.
▶신학교에 가서야 진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는데,
그것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거대한 속박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라는 말씀은 그렇게 저를 찾아왔고
그 진리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추구한 자유란, 생각 속에서만 자유였고
겉모습은 게으름과 무능력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 여러분은, 자유를 위한 초석(礎石)을 잘 놓고 있는 셈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10대와 20대를
감당하기 어려운 통제 속에 가두어 놓고 있으니까요.
자신을 구속시키는 시간과 자유를 누리는 시간은 언제나 정비례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를 속박 속에 가두는 시간만큼
여러분은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유는 진리 안에서만, 큰 구속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자유의 안전판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지만
대부분 헛심만 쓰고 있습니다.
자유는 돈이나 명예나 지위로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자유는 오직 절대적 존재를 의식하고 그것을 인정할 때에야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물고기가 자유로운 것은 어항 안이지 어항 밖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제게 찾아 온 자유의 의미도 그랬습니다.
자유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자유지, 그 외에 진정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모른 채 획득하는 자유는 사실은 방종에 다름 아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곱씹어 보십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
이 말씀은, “네가 젊어서는 네 맘대로 자유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 의도 따라 지독한 속박과 부자유 속에 살 줄 알아라!” 그 말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네가 내 속에 있으므로 지금부터 네가 사는 삶은
그게 어떤 모양이든지 영원히 자유로운 삶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주님은 베드로를 완전히 속박하심으로써
그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하셔야 될 일은
여러분을 더욱 엄격한 속박 안에 스스로 가둬두는 일입니다.
연습실 안에, 도서관 안에, 책 안에, 그리고 무엇보다
말씀과 교회 공동체 안에 여러분을 꽁꽁 묶어두고 구속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어 단어를 꼼꼼히 외우셔야 합니다.
성경과 신학서적을, 메모하면서 읽어나가야 합니다.
나이가 지나면, 기억력이 없어서,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공부는 젊을 때, 기억력이 왕성할 때, 저수지처럼, 지식을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저는, 30세 때 외운, 미국 친척 전화번호는.. 20년이 지나도록 아직 외우고 있는데,
지금은, 우리 집 전화번호 말고는, 아무 것도 외우지 못합니다.
단어나 성경도, 젊어서 외운 것은 기억에 남는데,
늙어서 외운 것은.. 아예 외워지지가 않습니다.. 늘 새로 외워야 합니다.
모두들 자유로운 사람이 되시되, 그리스도 안에 깊이 거하고,
그 분에게 강하게 속박됨으로써 진정한 자유인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열정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읽은 열왕기하 13장의 본문은
엘리사와 당시 이스라엘의 왕인 요아스 사이에 벌어진 대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사 시대에 얼마나 많은 기적으로
국가적 위기를 모면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엘리사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그날 밤이 될지 다음 날 아침이 될 지
아람의 침공을 눈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요아스 왕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왕은 이 위기를 벗어날 길을 알려 달라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간곡히 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요아스에게 엘리사는 한 가지 지시를 합니다.
그것은, 자기는 하늘나라로 떠나지만 자기가 없더라도
나라를 지킬 방도를 가르쳐 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왕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쪽 창을 열고 쏘라고 합니다.
왕이 그대로 했고, 그 다음 엘리사는 그에게 중요한 명령을 합니다.
‘그 화살로 아람이 멸망할 때까지 치라’고 그럽니다.
엘리사의 생각은 어땠냐 하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잘 들었다면
왕은 충분히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얘기를 들은 왕은, 화살로 땅을 톡톡톡 세 번 치고 말았습니다.
요아스의 이런 모습에 엘리사가 노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리칩니다.
“적어도 대 여섯 번은 쳤어야지요. 왜 세 번만 치고 맙니까?
이제 왕은 아람을 단지 세 번 정도만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놓고 이 이야기는 서둘러 끝납니다.
결과는 엘리사가 말한 그대로 됐습니다.
그는 아람 왕 벤하닷을 맞아, 겨우 세 번만 승리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본문을 <열정의 문제>로 해석합니다.
화살로 땅을 치라고 했을 때 왕은 세 번만 칠 게 아니라
화살이 부러질 때까지 쳤어야 합니다.
왕의 행동은 열정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화살로 땅을 치는 것 같은 행동은
사실 우스꽝스러운 행동입니다.
왕으로서 위엄이 서질 않는 겁니다.
그의 속 마음은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이보시오, 엘리사! 내가 지금 여기 선지자를 만나러 온 거지
화살 갖고 놀라고 온 게 아니잖소. 나는 당신에게 기적을 구하러 왔소.
그런데 당신은 이상한 일만 하는구료.
동쪽으로 활을 쏘는 거야 어떻게 했지만 이제는 화살로 땅을 치라니오?
여보시오 엘리사! 그런 이상한 짓은 그만두고 나에게 기적을 보여 주시오!’
왕은 당혹감을 감추고 선지자의 명령에 순종했지만
그의 순종에는 믿음이 담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까, 제 젊은 시절 저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이 열정이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할 게 있습니다!
일은 지혜나 능력이나 재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일을 되게 하는 것은 열정입니다.
흔히 천재의 요건은 재능과 운과 열정, 이 3가지 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앞의 두 가지, 즉 재능과 운은 사람이 어떻게 해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뒤의 한 가지, ‘열정’만이 사람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앞의 두 가지가 다 없어도, 열정만 있으면, 재능과 운은 살아난답니다.
이 얘긴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만큼 세상 사람들도 열정을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열정은 지금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느냐 말입니다.
▶오늘 요아스 왕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쉽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마치 하늘나라에 주무시고 있는 하나님을 깨울까 봐 걱정하는
모습으로 행동합니다.
골프장에서 갤러리들이 조용히 박수치는 골프 갈채와 비슷한 영적 수위를 가지고
소곤소곤 하나님께 말한다는 겁니다.
찬양이나 기도의 표현도 상당히 절제하고 누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아스 왕이 얻은 것과 비슷한 결과를 얻을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열정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 정도 수위의 열정으로도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중에 혹시 오늘 이 왕처럼 대충 화살을 톡톡 치는 사람은 없습니까?
열정 없이 혹 기적을 바라는 것은 아닌가요?
여러분은 그 동안 이런 얘기를 무수히 들었을 텐데,
그것을 생각의 서랍에 정리를 해 놨냐는 겁니다.
그래서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서랍이 열리면서
그 기억들이 열정을 일으키냐 말입니다.
그런 것 없이 혹 여러분은 기적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동편 쪽을 향해서 활은 쏘지만,
즉 믿는 자로서 교회는 나오고 기도라는 것도 하기는 하고
찬양이라는 것도 하긴 하지만,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할 때, 즉 여러분의 열정을 불태워야 할 때
여러분은 오늘의 요아스왕처럼 선지자의 얘기를 흘려듣고,
맹목적인 기적만 바라지는 않느냐 그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의 열정이 잠자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갈망하는 게 없냐면 그것도 아니잖습니까?
여러분들은 다들 꼭 이루고 싶은 게 있고
그것을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열정은 이상한 모습이 아닙니다.
저는 젊은 시절 열정을 이상한 모습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김동인의 소설 중에 <광염 소나타> 란 단편이 있습니다.
어떤 작곡가가 좋은 곡을 쓰기 위해 계속해서 불을 지르는 얘긴데,
그런 게 열정인 줄 알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제게 가장 열정적인 삶은
일본의 가와바다 야스나리나 미시마 유끼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 특유의 깊은 서정과 심미(審美)로
인간의 존재를 탐색했는데,
한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타고서도 자살했고,
또 한 사람도 일본 자위대 청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살했습니다.
열정이 뭔지도 모른 채 그런 퇴폐적이고 극단적인 게
예술이고 열정인 양 생각했었습니다.
열정은 그런 이상한 모습이 아닙니다.
열정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는 겁니다.
지루하고 권태로워서 할 때마다 짜증나는 것들,
그런 것들을 묵묵히 해 내는 겁니다.
보나마나 그 얘기가 그 얘기인 비슷비슷한 문서들을 다 읽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일상의 평범한 것들을 다 통과한 다음에 얻어지는 특수함,
그게 진짜 열정입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다 하는 것 중에 해 보지 않은 게 있으면 그건 열정이 아니고,
그런 열정엔 절대로 여러분의 고유한 것, 특별한 것은 나올 여지가 없습니다.
평범함을 피해 가려면 평범 속에 여러분을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합니다.
그 과정을 싫어하면 열정의 진짜 모습은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베드로도 바울도 그리고 예수님조차
평범함을 다 통과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당연히 거쳐야 될 평범함을 거치지도 않고
특수함을 - 즉 기적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미련하게 하루 10시간씩 연습실에 있기 싫어하면서,
바보같이 책상에서 엉덩이로 승부 보려고 하루 10시간씩 앉아있기 싫어하면서,
바보같이 백 번씩 똑 같은 스케일 연주하는 것을 짜증내 하면서,
따분하게 매일 열 장씩 성경 읽기를 싫어하면서 과연 열정은 생겨날까요?
▶저는 요즘 한 가지 열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3월 들어서면서 느헤미야 이야기를 써서 새벽기도 때 설교하고
그것을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새벽기도 설교라면 한 두 시간 정도면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정 상 새벽기도를 나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묵상 글 수준으로 쓰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목매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에 가수 이소라 씨가 자기가 부르는 노래에 대해서
자기한테 부끄럽기 싫어서 죽어라 연습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는데,
저는 저 자신에 부끄럽기가 싫은 것은 나중 문제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부끄럽기가 싫습니다.
하나님께 “주님! 제가 오늘도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묵상하고 설교했습니다.
잘 했지요?” 하는 마음인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한 음 한 음마다 음악으로 충만하게 연주하려고 애쓰듯이
한 줄 한 줄 혼신을 다해 쓰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매일 매일 기적을 체험합니다.
어느 순간엔가는 내 힘으로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매일 커다란 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그 벽을 무너뜨리려고 가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그 벽을 친히 무너뜨려 주시는 겁니다.
이 기쁨과 즐거움을 저는 정말 놓치기 싫습니다.
제 아내는 제발 건강을 생각해서 중단하라고 하루라도 말리지 않는 날이 없지만
저는 계속 할 겁니다.
그렇게 힘을 쓰면 곧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아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그것을 읽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단은 새벽기도를 나오려고 애쓰십시오!
그게 정 어려우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3분씩만 시간 내서 묵상 글을 읽으십시오!
그거라도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은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열정의 근원은 갈망입니다.
갈망이 있어야 열정은 생기는 법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장 갈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말씀 드리려는 게 결국 무엇인지 여러분은 짐작하실 겁니다.
저는 이곳 비엔나에서 뮌헨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으러 3년을 다녔던
바이올리니스트 한 사람과, 피아니스트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배움의 갈망이 여러분에겐 있으십니까?
물론 제게도 목회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저의 갈망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세계로 나가
여러분의 그 능력을 맘껏 발휘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활동 그 자체를 갈망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그렇게 유명해져서도
그 열정이 올바른 열정이길 바라는 겁니다.
청중들에게 “여러분 보셨지요? 내 실력에 깜빡 죽겠지요?” 그게 아니라
“제 연주를 통해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풍요를 느낀다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기쁨은 없겠습니다.”
그런 겸손한 열정의 사람을 보고 싶은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런 열정을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그런 열정의 사람으로 변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랑
길어서 중략, 대신에 ☞ 사랑, 생명, 계속 을 참고하세요.
▶마치는 말
사랑하는 청년 2부 지체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입니다.
지금부터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 해도 내 나이 때가 되면 세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인재들로 성장해 가시기 바랍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되, 그리스도 예수 안에 붙들려 있음으로 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시기바랍니다.
또한 열정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여러분의 분야에 열심을 내시되,
평범한 것들을 다 관통한 후의 특별함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향해서나 이웃을 향해서나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는 관심을 점점 줄여 나가십시오!
이 모든 일에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제 나이 (50대초)가 될 때,
하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 하셨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훌륭한
주님의 인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환히 열려 있는 시온의 대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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