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시는 예수님 눅22:54-62 11.04.10.설교스크랩
공관복음서들은 베드로의 엄청난 실수를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고 회복시키셨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어떻게 깨우십니까?
▲1. 예수님의 기도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더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22:31-32)
베드로가 비록 크게 넘어졌지만 그의 믿음이 완전히 상실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중보기도 덕분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족할 것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회복될 것도 아셨습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덕분에 회복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도 떨어지지 않도록 간구하십니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한편 성령께서는 지상에 오셔서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십니다.
롬8:26,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도 베드로처럼 넘어집니다.
때로는 크게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일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간구가, 날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드려집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2. 닭 우는 소리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막14:72)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들어가서 하인들과 같이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한 여종의 지적에, 베드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함께 있던 주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뗍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영적인 잠에서 덜 깨어났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깨우기 위해 주님이 사용하신 것이 닭의 울음 소리였습니다.
베드로는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새벽을 알리는 닭 우는 소리가 육신의 잠을 깨우지만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던 밤에는, 그의 잠든 영혼을 깨우는 자명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실족한 제자를 회복시키기 위해 닭까지 동원하십니다.
아마 베드로는 남은 생애 동안,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부끄러운 허물을 기억하며 주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여
우리 영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시고, 닫혔던 영혼의 눈과 귀를 여십니다.
▲3. 주님의 시선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 22:61, 62)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베드로에게 확실히 기억나게 한 것은
한 마리의 닭이 우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더 결정적으로 베드로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고
그로 하여금 대제사장의 안 뜰에서 바깥뜰로 나가 통곡하게 한 것은
주님의 시선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날 밤, 대제사장의 뜰에서 베드로는
두 종류의 시선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시선이고
또 하나는 여종을 비롯한 무리들의 시선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바라보는 두 시선은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바라본 여종의 시선은,
빤히 노려보는 미움과 경멸의 차가운 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곁에 있던 무리들도, 하나같이 베드로를 의심하는 시선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시선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 배반자!"하며 노려보는 시선이 아니었습니다. 말없는 눈길이었습니다.
정죄도 원망도 담겨있지 않은, 따뜻한 시선이었습니다.
실패한 제자를 향한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그 어떤 말씀보다도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베드로가 평생 잊지 못할 예수님의 그 시선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함으로써
회개의 눈물과 통곡을 통해, 회복으로의 첫걸음을 내딛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뜰 안에서 베드로를 바라보실 때,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14:65)
공회원들은 예수님이 죽어 마땅하다는 정죄를 한 때였습니다.
갖은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이제는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을 받으러 가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한 제자의 회복을 위하여
침 뱉음을 당하고, 주먹질 당한 얼굴을 들어서.. 베드로를 바라보셨습니다.
고통스런 부인을 하는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그가 과거에 보여준 충성과 헌신을 떠올리셨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았습니다.
그는 또한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대제사장의 안뜰까지 들어가서
멀찍이서나마 예수님의 동정을 살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죄 많은 최악의 순간들을 눈여겨보십니다.
주님은 결코 죄를 미화시키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들의 최선의 순간들도 잊지 않으십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도 안 되는 마음속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들여다보시는 분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17:9,10)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겉에 드러나는 인간의 언행만을 보시고, 판단의 기준을 삼지 않으십니다.
만일 그렇다면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끝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제자들의 고난의 순간을
깊은 이해와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자기 죄 때문에 자초해서 겪는 고난일지라도.. 여전히 자비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원수들은 우리들을 노려보고, 오늘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손가락질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선은 초라한 오늘의 우리 모습 속에서
신실했던 과거의 모습을 기억해내십니다.
회개하고 변화하여 주님을 위하여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로서 떨어질 수 있는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나
그래도 주님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부족함,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은 오히려 죄악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베드로에게
사랑의 눈길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문제를 지적하며 우리를 몰아세웁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붙드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소명을 주기 위하여
죄 중에 빠진 우리를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주님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드리운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꽃 피우기 원하십니다.
주님의 시선은 회복의 시선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아무리 떳떳하지 못해도
주님은 화해와 용서의 시선으로 우리를 계속 바라보십니다.
◑영적 전쟁을 벌이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전에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던 베드로.
어두움이 지배하는 이 기간에 자신의 고백과 혈기만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과, 자기의 주관적인 확신을 구별해야 합니다.
겸손은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약점을 알고 달려드는 사단의 공격을 받고 넘어집니다.
사방에서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몰아대니
베드로는 그만 두려움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주님을 배신하였습니다. 배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합니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시험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시험에 들었으나, 그래도 회복된 것은 주님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2.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을 때
분명한 것은 닭이 울 때 예수님이 자기에 대하여 하셨던 예언이 생각났습니다.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장담하던 그였는데
불과 하루도 안 되어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전에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고,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시선이 마주친 후에 닭이 우는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자기의 언행을 비춰보니
자신이 죄를 범한 것이 깨달아지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가 회개하였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보듯이 우리의 신앙 여정은
인간적 결단이나 열정만 가지고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시험은 그것들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죄에 빠졌을지라도 말씀이 생각나면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붙들며, 나를 이기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3. 회개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시선이 마주 치니, 예수님의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뛰어나가 심히 통곡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회개할 기회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회개하지도 않는데 저절로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죄의 유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위협적인 것은 죄악 자체보다
그가 회복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지만 회개를 통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마음에 가책을 느끼기는 하였으나
통렬한 회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은 죄 자체가 아니라
죄에 빠져, 구원을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적용, 마치는 말
▲사단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비방, 거짓말, 분열 조장 등입니다.
사단이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이 우리 교회를 까부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알게 모르게 그런 사단의 계략에 말려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교회를 세우는 자'로 부른 것이지, '허무는 자'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일로 여러 차례 당회를 가졌지만 시원한 결론은 없으니
회의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오곤 했습니다.
이런 난국에서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은
교회를 이끄는 목사에게 있는데, 장로님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밤, 오늘 새벽 하나님은 저를 깨워있게 하셨습니다. 저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이런 아픔의 역사는 더 이상 다른 교회로 옮겨가서는 안 되고
이제 우리 교회에서 그치면 좋겠다는 부담이 왔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을, 과거에 어떤 모습을 보였던 제가
먼저 품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 또한 교회를 지키고, 교회의 평화를 위한다는 마음 때문에
그들을 비판하고 정죄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한 마음이 되어 그런 분들을 진정으로 섬김으로
혹시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그들이 가진 열정과 은사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쓰임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베드로는 자기 나름대로 예수님을 보호하겠다고 칼을 휘둘렀을 때
예수께서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눅 22:51)
한번 이것까지 참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한 베드로를
정죄의 시선이 아닌 연민의 시선으로 보셨습니다.
어렵지만 우리 모두 주님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교회를 허무는 자들이 아닌, 교회를 세우는 자들로 함께 뛰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지만 주님은 베드로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보여주는 신앙의 승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회개와 반성 이후 어떤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지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경험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회심과 변화 그리고 참된 각성이 찾아오기를 소망합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회개의 눈물이 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주님은
동일한 방법으로 지금도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가슴 치며 통곡하고 회개할 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보다 회개의 눈물에 더 관심을 가지십니다.
▲사람들은 문제의 이유를 나에게서 찾지 않고 남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 때문'이 '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지다 보면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긴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순절에 정말로 통회하고 자복하는 심령을 주셔서
우리 교회를 덮고 있는 모든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고
참된 교제가 회복되기 원합니다.
목사로서 제가 교우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품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들이 뽑아져서 서로를 품기 원합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회복을 경험하고
베드로처럼 주님께서 귀하게 사용하는 믿음의 그릇들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면서
주님 앞에 점도 없이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주님 앞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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