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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작은 기도로부터다

LNCK 2012. 7. 4. 21:12

◈모든 시작은 기도로부터다         느1:1~5            출처보기


 

▲도입 일화

미국야구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던 박찬호 선수가 처음 훈련에 임하게 됐을 때,

팀 코치는 그를 홈 플레이트에 불러 놓고

타자들이 공을 친 후엔, 1루 쪽으로 뛰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야구 선수 치고 그런 기본적인 규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다시 확인시키는 코치의 가르침에, 박 선수는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코치는 기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친 것이라 생각합니다.


믿음 생활에도 가장 기본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도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우리 일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나야 합니다.

신앙에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규칙은 없습니다.


느헤미야서도 시작부터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바로 주인공인 느헤미야가 울고 슬퍼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1.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었던 느헤미야

사실 그에 대한 신상명세를 알게 되면

어쩐지 그의 이런 모습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는 지금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왕의 신뢰를 받고 있는 관료로서

아무 부족한(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인데다,

또 지금 일어난 일은, 제국으로부터 무려 1800 km나 떨어진

제국의 변방에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관계 지을 일은, 별로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의 크기란, 자신을 제외한 이웃의 일에, 얼마나 마음 쓰고 있느냐에 비례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자기 일에 함몰 될수록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느헤미야는 이미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그는 바사(페르시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 3세였습니다.

할아버지 대에 포로로 잡혀와 아버지 세대를 거쳐 자기 대에 이르는 동안

모국의 존재란 흐릿한 그림자로만 남았을 텐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조국의 모습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이 자신의 진짜 고향처럼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다짐과 기도의 시간이 있었는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 그에게 고국의 소식은 참담했습니다.

먼저 귀환한 동포들의 노고로, 조국의 형편은 나아졌으리라 믿었는데,

그들은 지금 환란과 능욕 가운데, 성곽도 없는 황폐한 예루살렘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고 하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던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원통해서

느헤미야는 울며 금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 귀가 열린 느헤미야

무엇보다 느헤미야가 신실한 사람이란 것은

그에겐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면, 누구나 두 귀가 있고, 또 모든 소리를 잘 듣겠다 싶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듣지 못하는 까닭이고

반대로 기도하는 사람은.. 들은 것 때문에 가슴이 아려오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웬만큼 됐다 싶으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게 됩니다.

즉 가진 게 너무 많거나 마음이 높아져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면

더 이상 남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현직은 바사 왕의 술 관원입니다.

술 관원이라면 왕이 마실 술을 먼저 먹어보는 사람이고

그것은 왕과 그의 목숨이 결탁되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왕의 형제나 자식보다도 더 신뢰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분명 영화와 부귀를 누리는 가운데, 외국인으로서는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음에 틀림없습니다.


한 마디로 아무 것도 아쉬울 게 없고 왕 외엔

그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들을 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귀는 열려 있었고, 형제에게 소식을 듣는 동안 아픔이 몰려왔고,

어쩌면 제3자의 일처럼 보이는 사건을.. 자기 일로 간주하고 기도에 돌입한 것입니다.


▲3. 기도는.. 내 운명을 바꿔놓습니다.

그렇고 보면 확실히 기도는 습관입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운명을 바꿔 놓습니다.

결국 평소에 쌓는 기도가, 운명을 가름하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평신도로서 선지자요, 예언자며, 총독이 된 것은

그가 100%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지금 모습도 다른 요소 때문이 아니라

이제까지 드려졌던 나의 기도가.. 오늘날 내 모습을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생각이나 환경을 바꿀 게 아니라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기도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뿐 아니라 환경과 운명까지 몽땅 바꾸는 힘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란 전능의 통로를 활짝 여는 대문이고, 하나님의 손을 잡는 행위고

그 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단입니다.

그 모두가 기도의 습관으로부터 비롯됩니다.


▲4. 기도로 시작한 일은,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느헤미야서를 읽으며 은혜 받는 일도

기도로 시작한 일이므로.. 분명 성공으로 끝날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기도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이든 기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기도 가운데, 내 이름이 점점 사라지고

형제의 이름과 공동체의 일로 부르짖는 일이 잦아질 때

그 기도는 위력 있는 기도가 되어.. 역사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은 기도로부터 시작되고, 기도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가 내 신앙 수준입니다


▲일화/ 믿음이 있었던 신하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 전쟁을 마치고 난 후

부하들과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에서의 일입니다.


필요대로 모두 주겠다는 왕에게 어떤 사람은 큰 집을, 어떤 사람은 많은 재물을,

어떤 사람은 긴 휴가를 달라 해서.. 모두 그대로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부하만큼은, 대왕이 정복한 나라 중 하나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잠시 후 대왕은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네 요구대로 해 주마! 너는 나를, 나라 하나라도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는

큰 인물로 보았으니.. 나도 너를 그런 사람으로 대우해 주마!”


신하들 중 단 한 사람만 알렉산더를 큰 인물로 보고, 나라라도 줄 것을 믿었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느헤미야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때

자기의 마음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 상(像)은 더 없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가 믿는 신관 이상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에 따라.. 내 신앙의 수준은 결정됩니다.


즉 하나님 스스로는 언제나 똑같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들에 의해 하나님은 우주 같아지실 수도 있고

'인간'만큼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자기 야망을 크게 가져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되면서,

올바른 하나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하나님의 크기가 내 생각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그 얼마나 불경(不敬)한 일입니까?


아무리 다른 우선순위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보다 앞서는 일은 없습니다.   


장차 제국의 서쪽 끝으로 가 52일 동안 동포들과 대역사를 이룰 느헤미야에겐

그 하나님의 상이 왜곡되지도 축소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기도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느헤미야는,

아울러 사전에 품은 믿음에 따라

일은 이미 결정되는 법이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해서 그렇게 고국과 동포를 생각하며 시작했던 그의 기도는

그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 것과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 불러 외친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느1: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1.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을 더 정확하게 풀자면

‘하늘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 Lord God of heaven’이란 뜻입니다. 주1)


그의 기도의 첫 마디는, 바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불렀던 것이고

그것은 그대로 찬양과 경배가 되었습니다.


상대방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태도는 달라지게 되는데,

하나님을 그렇게 부른 느헤미야의 첫 마디는 강렬했고

그의 부르짖음에 대해, 하나님은 그를 향해 주목하셨던 것입니다.        


▲2.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그렇게 찬양으로 시작한 그의 기도는 곧 바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신앙고백이 되는 이유는,

크다는 것은.. 그 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간증하는 것이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란.. 그 분이 심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당신을 불신하는 자에겐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3.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이어서 느헤미야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1:5b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하나님과 영적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이름을 간직하며

그의 영 안에 머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천국을 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그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4.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또 그의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즉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포로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성문은 불 타 버리고, 성벽은 무너져 내린 채

여전히 환란을 당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을 보시고 측은히 여겨 주실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런 긍휼을 베풀어 주실 주님이심을 믿고,

느헤미야는 지금 그 분께 SOS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막 시작하는 초입에 벌써

그의 하나님은 창조주요 사랑과 공의의 주이심을 인정한 모습이 되었으니

이 후에 계속될 기도에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기도로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기도의 면면에 흐르는 느헤미야의 신실함은

우리가 보기에도 될 성 싶은 나무인데,

하나님께는 더 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러웠을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우리의 하나님을 축소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도록 인정해야 합니다.


내 수준의 하나님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그만 중지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느헤미야가 믿고 불렀던 그 하나님을 우리도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또한 느헤미야처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그 분께로 나아가십시다!


그 분은 우리가 믿는 크기대로 역사하실 것이고,

그것이 바로 나의 현재 신앙 수준이고, 내 미래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


주1)  느1:5 ‘하늘의 하나님’

(야웨 엘로힘 샤마임 Lord God of heaven )

하늘의 주, 하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란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