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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십 세겔과 옷 한 벌 P2 / 패리스 라이드헤드

LNCK 2012. 7. 5. 09:19

 

◈십 세겔과 옷 한 벌 P2               삿17:13                            출처보기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전통 위에 세워진 오늘날의 기독교


설교자는, 자유주의의 폐해는 물론이고,

알게 모르게, 근본주의 신앙도 기독교에 폐해를 끼쳤다는 것입니다. (장점도 있겠지만)


그 19~20세기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신앙의 기초/전통/폐해 위에,

지금 우리 시대의 기독교가 서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 이후, 교회는 자유주의, 근본주의로 분리

1850년대에 이르러 교회는, 두 부류로 나눠졌습니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입니다.


한 부류는, 자유주의자 liberals들로서, 인본주의 철학을 받아 들였으며,

인본주의 humanism을 그 바탕에 깔고 있는 이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조금이라도 자신의 시대에 부합하는 의미를 찾으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의 존재는 확신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이 평균 70~80년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학적인 시와, 고도의 이성적 사고는 큰 가치가 있기에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은 중요합니다.


교회를 다니십시오.

교회에서 시를 읽어주고

살아가는데 유용한 격언, 교훈을 말해주겠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영원한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매주일 당신이 교회에 나와서, 돈을 내고, 봉사하고, 우리와 교제한다면,

우리들은 당신의 삶을 이끌어 주어

당신의 삶의 여행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지 못하니까) 사후의 일은, 어떤 확신도 줄 수 없습니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은, 교회에 다닌다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자들의 근본 입장입니다.

고등 비평을 통해, 성경의 절대성을 비판하고 믿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인간의 이성을 최대한 활용해서, 종교 활동(신앙생활)을 합니다.


이것은, 쓰고 괴로운 인생 여정에,

설탕물을 조금 주어서, 잠시 달콤하게 만들어 주는 것인데,

그것이 자유주의자들이 해 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150년 전 당시에는, 이런 생각이 통했습니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당시에는 ‘인간의 이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 당시 분위기나 철학은, 인간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인본주의가 휩쓸고 있었습니다.


인본주의,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구원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삶에서 가장 많은 행복을 취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근본주의>도 뭉쳐졌습니다.

이렇게 자유주의자들이 세력을 확장해 나가자,

이들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 근본주의자들이 자연히 궐기하게 되었습니다.


근본주의는 fundamentalism

성경의 축자영감설과, 그리스도의 신성, 천국과 지옥,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설교문은, 근본주의의 약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시대 (다윈의 진화론 이후 19세기 중엽~20세기 초) 의 분위기는

인본주의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본주의는, 모든 것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라고 주장합니다.


인본주의는 (휴머니즘, 얼마나 고상한 말입니까? 다 꺼뻑 넘어갑니다.)

지옥에서 올라오는 독가스와 같아서, 모든 것 속으로 스며들어 갑니다.

이것은 전염병이나 유행성 질병과 같아서, 어디든지 전염시킵니다.

휴머니즘을 반대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신본주의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근본주의자들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인본주의에 감염되어 버린 것입니다. 


▲근본주의의 과오1, 생명이 빠진 교리적/이성적 믿음

근본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경을 아주 보수적으로 믿습니다.

그들은 자유주의가 일어나던 시절에, 하나님의 강력한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근본주의자들의 공로입니다.)


2세대 근본주의자들도, 성경의 영감설과, 예수님의 신성,

그분의 죽음, 장사됨, 부활을 믿고 있다면서.. 하는 사이에

점점 ‘교리적 믿음’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자유주의가 아니라

올바른 근본주의 신앙 교리만 알고 믿으면..

내 믿음이 좋은 것처럼.. 그런 이성적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세대는

<구원이란.. 그저 몇 개의 교리적 진술에 지적인 동의를 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4~5개의 교리적 질문에

‘네, 믿습니다’라고 대답만 한다면,

누구나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간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 예’라고 대답하고 나면,

기존 신자들은, 그의 등을 두드려주고, 악수를 하고 크게 웃으면서

‘형제님, 당신은 이제 구원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축하해 줍니다.

그래서 구원은, 공식이나 개요(교리)에, 동의하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무오성과, 기독교의 주요 진리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에 대항해서,

근본주의가 보수적 교리를 수호한 것까지는 잘했지만,


이성을 주무기로 하는 자유주의에

근본주의도, 똑같이 이성으로 대처한 것입니다.


기독교도 물론 이성을 필요로 합니다만,

거기에 점점 생명력이 빠져버린 것.. 그것이 근본주의의 과오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보수(근본주의)기독교가.. 자유주의와 비슷하게

교리적/이성적 기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생명력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근본주의의 과오2. 점점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행복’을 추구했습니다.

사회 전반적 분위기와 유행이, 워낙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니까,

이제 보수 근본주의 교회에서도,

인간 구원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본주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스며든 것입니다.


그렇게 대놓고 명시하지는 않지만,

설교의 주제, 또한 신자가 교회 다니는 첫째 목적이 ‘인간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약 1세기 전, 자유주의(또는 근본주의)가 동시에 발전하기 시작할 때

자유주의 사상과 근본주의를 비교 분석해 보면,


자유주의: 종교의 목적은 인간이 살아있을 때,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근본주의: 종교의 목적은 인간이 사후에,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찌 되었건 간에,

종교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변화와 정치의 발전을 통해서

술중독, 약물 중독,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사후에는 어떻게 될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땅에 살 동안에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시도를 했지만, 조금도 진전하지 못하고,

결국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이란, 엄청난 충격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근본주의자들도

그들과 똑같이 인본주의(인간의 행복)에 주파수를 맞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주님의 임재, 풍성한 생명, 주님과 교제 동행.. 등이 약화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1990년대 즈음)의 상태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주 예수를 영접하십시오.

아름다운 천국이 저 위에 있는데,

더럽고 추잡하고 불타는 지옥에 가고 싶지 않으시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예수께 나오십시오.’


이렇게 ‘생명’이 빠져버리고 바짝 말라버린 채,

사후의 인간의 행복/천국을 보장하는 종교로.. 기독교가 점점 탈바꿈 해졌습니다.

 

예를 들면, 마치 두 명의 사람이 커피숍에 앉아서,

투자는 전혀 안 하고, 이득만 얻어낼 방법을 협잡하는 것과 똑같이

인간의 이기심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죄인에게 예수를 영접하라고 하는 것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일하지 않고, 돈을 받는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신앙생활에서 단물만 뽑아먹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인본주의(휴머니즘)가 가장 위험한 철학사조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모든 철학 사조 중 가장 치명적인 철학은, 인본주의 humanism입니다.


이 인간행복중심, 인간이성중심 사조는 (↔하나님영광, 하나님의 뜻 중심)

지옥의 불구덩이로부터 올라와서,

기독교의 많은 부분에 파고들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와 완전히 반대가 되는 사상이지만,

불행하게도, 신자들은, 전혀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휴머니즘..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위한다는 사상.. 얼마나 고상하게 들립니까!



◑사사기의 인본주의 신앙


▲미가의 인본주의

삿17장의 미가는 성전을 좋아해서, 가정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성직자를 좋아해서, 레위인 청년을, 그 제단 제사장으로 청빙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헌신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헌신했던 원래 목적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삿17: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본문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헌신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 행복, 자기 축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人간 행복을 근本 목적으로 추구하는 사상입니다.


▲레위인 제사장의 인본주의

그런 그에게, 마침 레위인 청년이 와서 거래를 요청했습니다.

이 레위인은, 자기 직장과 급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거래는 ‘은 10세겔과, 옷 한 벌, 약간의 음식 제공’으로

성사되었습니다. 삿17:10


서로의 추구하는 목적이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거기에 하나님은 수단으로 이용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비슷합니다.

신자들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으며,

성직자들도, 자기 행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고약한 냄새나는 인본주의와

정반대되는 기독교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지요!


하나님이 어떻게 이 시대의 교회를 살려내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인본주의)은 매우 미묘하게, 어디든지 파고듭니다.


이 휴머니즘의 본질은,

모든 것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라고 가정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우상)인 셈입니다.


이것이 복음주의와, 성경적인 교리에 침투해서

이제 사람들은 이렇게 가르치거나,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목적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이며,

모든 천사도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며,

신앙생활의 목적도,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가르치고, 믿습니다.

이것은 변질된 기독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도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닙니까?’ 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행복은, 기독교 신앙의 부산물 byproduct입니다. 근본목적이 아닙니다.


※한국적 버전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아버지는 자녀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자녀인 신자를 복 주신다. 이게 뭐가 잘못됐느냐?’ 라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게 기독교 신앙의 근본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중심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주님을 자원해서 섬기고, 교제하고, 경배하고, 알아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원래 설교화면에

    휴머니스트 앨버트 슈바이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만,

    중요하지 않아서, 녹취는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