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 지식인으로 삽시다 욥26:1~14, 28:20~28 12.05.27.설교스크랩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단순한 육체노동자(manual worker)에서
전문적인 지식근로자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전문성을 갖추어야합니다.
불과 얼마 전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어떤 나라도 예외 없이
노동인구 100명당 90명에서 95명은 육체노동자(manual worker)였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진입하자마자 글로벌 사회는
지식 혁명을 통한, 지식근로자가 주축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가는 기업일수록, 전문적인 지식경영을 기초로 합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시절만 하더라도 전형적인 농업사회 국가였는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산업화의 추세에 빨리 발을 맞추어, 산업사회로 변신했고,
최근에는 세계화의 추세에 빨리 적응하고 있습니다.
곧바로 우리나라는 기업들이 앞장서서 지식경영을 도입하므로
세계 수준의 지식사회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과 전문분야별 지식수준은 대단합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영국이 250년,
미국, 독일, 프랑스가 80∼100년 만에 지식사회를 이루어낸 것을,
우리 대한민국은 단 40년 만에 이루어냈다고 합니다.
요즘은 중국과 인도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중국은 생산력에서,
인도는 지식력(knowledge power)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도의 지식 성장은
미래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나라의 문화와 지성 수준을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대화와 목소리의 크기입니다.
저급한 국민일수록 대화의 내용이 없고, 말소리가 시끄럽습니다.
금세기 최고의 학자였던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읽는 힘」이라는 그의 책에서
“21세기 지성인 리더”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가 가장 강조하는 사항은 「교양인(educated person)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성과 아울러 지성의 균형을 이루는
신앙적 지식인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설교제목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준일수록 함부로 지껄입니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경박하게 말합니다.
욥의 친구 빌닷은 어떻게 해서라도 욥을 꺾어 누르고,
이겨먹으려고 우격다짐의 말을 합니다.
그것이 욥25장 내용입니다.(빌닷의 3차 공박)
재미있는 점은, 욥기 42장 가운데서, 가장 짧은 장이 25장입니다.
빌닷은 지식적으로 수준이 낮은데도, 욥을 짓누르려고 매우 유식한 체 해봅니다.
그런데 그의 지식수준이 저급하여
더 이상 할 말이 없기에 짧은 내용으로 끝납니다.
욥의 신앙적 기개를 꺾어보려고 오기를 부리며 떠들어보았지만
그의 지식은 바닥이 나서, 여섯 마디 말(단 6절)을 하고는 끝내버립니다.
그래서 욥기에서 25장이 가장 짧습니다.
한마디로 빌닷의 신앙적 지성은 율법적 지식수준입니다.
사람을 세워주는 지혜가 아닌,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정죄하는 지식입니다.
25장 6절을 보면 그의 경박함이 여실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그는 친구 욥을 ‘구더기 같은 존재, 벌레 같은 자’로 비하시킵니다.
▶반면에 욥의 신앙적 지식은 그 수준이 대단합니다.
특히 그의 과학적 지식은 당시에, 역사이래로 최고 수준입니다.
아니 지금까지도 자연과학과 우주과학에서는,
성경 66권중에 <욥기>가 최고의 텍스트입니다.
빌닷이 지극히 초보적인 기초지식으로 욥을 깔아뭉개려고 하자,
욥은 그동안 축척해 놓았던 그의 심오한 지식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경이로우심을 설명해줍니다.
우리가 다음 기회에 욥기 38장 이하에서 한 번 더 살펴보겠지만,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우리는 감탄스런 경외심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26장의 내용만 보더라도 욥의 신앙적 지식수준 대단합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신비로울 정도입니다.
욥은 빌닷의 경박한 지식에 응수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며 경탄합니다.
하나님은 지상과 지하를 통치하시고,
하늘 우주공간뿐만 아니라, 물속까지도 직접 다스리십니다.
즉 지하세상, 지상세계, 그리고 천상과 수중까지 통솔하시는 하나님을
욥은 우러러 감탄합니다.
▶그 내용을 세분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땅 아래 죽음의 세계까지 통치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온 우주를 통솔하십니다.
즉 수많은 은하계를 허공에 펼쳐놓으시고,
그리고 그 우주공간에 땅을 매달아 놓으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하늘의 구름을 활용하여 바다의 물길까지 다스리십니다.
하늘의 구름으로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시고,
땅에 물을 공급하고자 비가 내리게 합니다.
때로는 천둥과 번개를 쳐도 루트를 따라가게 하시고,
바다에 파도를 일으켜 물길의 방향을 조종하십니다.
넷째, 하나님은 낮과 밤이라는 시스템으로 시간세계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지평선 너머에서 해가 뜨고 지게 함으로 낮에는 빛으로 밝게 하시고,
밤에는 어둠으로 고요하게 하십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지금도 온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리고자 성령으로 운행하십니다.
창1:2에서 설명하듯이 엄청난 은하계로 조직되어 있는 우주가 충돌하지 않고
질서에 따라 움직이도록 성령님이 직접 운행하여 주십니다.
▶이처럼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기초적으로 말하다가
욥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 모든 현상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경탄합니다. 26:14
즉 우리가 아는 지식은,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겸비한 신앙고백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는 지식수준은
아주 희미한 것에 불과하다는 경이로움의 노래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전13장에서
우리의 지식 상태를 아주 적나라하게 규명해줍니다.
우리는 부분적인 단편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어린아이 수준입니다. 희미하게 아는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괜히 아는 체 하지 말고, 함부로 까불지 말자는 것입니다.
잠언 3장 7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인류역사상 최고의 천재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은 겸손한 자기고백을 이렇게 합니다.
“그는 강단의 마룻바닥에 둥근 원을 그리면서 감동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차지하는 부분을 원이라고 하면, 원 밖은 모르는 부분이 됩니다.
원이 커지면 원의 둘레도 점점 늘어나, 접촉할 수 있는 미지의 부분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지금 저의 원은 여러분들 것보다 커서
제가 접촉한 미지의 부분이 여러분보다 훨씬 더 많아요.
모르는 게 그만큼 더 많아요. 이 모습이 제 지식수준입니다.”
과연 아인슈타인다운 자기 고백입니다.
우리는 조금씩 알아갈수록,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아져가는 것입니다.
서로 고백합시다. ‘저는 잘 몰라요.’
▶사도 바울은 롬11:33절에서 하나님의 광대 웅려하심에 대하여 이렇게 경탄합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훌륭한 신학자였던 어거스틴이 어느 날 해변 가를 걷다가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삼위일체 교리의 불가사의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삼위로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며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난제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어린아이들이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떠서 옆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광경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경이로움에 관해서
갑론을박한다는 것이
마치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내는 어린아이의 수준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28장에서 우리는 피조물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광대무변하신 지혜를 알 수 없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아가자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묘하고 영묘한 지혜를 터득할 수도 없고,
돈으로 살 수도 없으니
더욱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신앙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은근히 교만하여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욥은, 욥기26장에서 설명했던 하나님의 광대무변하신 지혜에
경탄을 느껴보자고.. 다시 한 번 더 호소합니다.
욥28:23절부터의 내용입니다.
「하나님만이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땅 끝까지 살피실 수 있으며,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께서 저울로 바람의 강약을 달아보시며,
물의 분량을 측량하셔서 비가 내리는 규칙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때에 맞게 천둥번개가 지나가는 길목까지 지시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지혜입니다.」
▶David Jeremiah는 교만한 인간을 향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자신의 수준으로 내려뜨리는 것이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게 되고, 결국 신성을 모독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적 이해를 뛰어넘는 분이심을
경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이로우심에 머리를 숙이고,
오직 믿음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기 28장 28절의 멋진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
즉 지식이 먼저가 아니라, 신앙이 먼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더욱 가득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부분적인 현상에 대하여
섣부른 지식으로 갑론을박하지 말고,
더욱 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경외하며 살자는 지혜자의 신앙고백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크고 작은 것들을 깨달아갈수록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게 됩니다.
최근 2천년대 들어서서 게놈 프로젝트의 총책을 맡은 프란시스 콜린스라는 과학자는
실험실에서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연구하다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고 거듭났습니다.
인간의 세포조직을 신비롭게 만드신 하나님의 경이로우심에 감탄하여
펑펑 울면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명쾌한 해답을 줍니다.
우리가 지혜의 성령으로 충만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사는 신앙적 지식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11:2~3↓)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성과 영성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것이 욥기의 수준 높은 메시지입니다.
욥기의 메시지는, 우리를 또 다른 영적 성장의 정상으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우리를 더 행복한 신앙의 봉우리로 올라서게 합니다.
우리가 지혜의 성령으로 충만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도 혼돈 속에 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즐거움으로 살아갑니다.
(위에서 두 과학자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식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수록
우리는 미지의 현실에서도, 행복한 신앙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어차피 일부분이요, 단편적이며, 희미한 것이라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탄하는 신앙적 지식인으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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