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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의 구원

LNCK 2012. 7. 18. 09:53

◈누가복음의 구원                눅1:1~4             출처보기



◑데오빌로는 우리 각자


누가복음의 수신자 ‘데오빌로’는

어떤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별명일 수도 있고

또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과 친한 자’(데오빌로의 뜻)라는 뜻의

불특정인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데오스+필레오, 필레아는 친구사이의 사랑, 즉 ‘친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데오빌로는.. ‘하나님과 친한 사람’의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데오빌로는,

2천년 교회사 속에서 이 누가복음이 편지형식으로 전해져오고 있는데,

결국 그 수신자인 데오빌로가 우리 각자라는 얘기에요.


그런데 이 데오빌로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가

누가복음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 하나님과 친한(데오빌로) 사람이 되는 것


마태, 마가복음에서는,

십자가복음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을 말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구원이라는 게 무엇이냐?

그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데오빌로)라고 설명합니다.

보통 서두는, 그 편지 전체의 주제입니다.


왜 구원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믿음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과 내가 연합하는 것인데,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연합하게 될 경우에는

무덤에 내려가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고,

부활하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고,

승천하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이야기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우편에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에,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친한 관계가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하나님 우편에 있는 것과 같이 되어서

하나님과 가장 친한 상태가 되었고,

그것이 구원 받은 자인데,


‘데오빌로’라는 말이, 바로 구원 받은 자의 별명이요,

신자의 그런 상태를, 한 마디로 함축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이 단락 삽글)

제가 목사가 된 지 30년 가까이 되는데,

처음에 설교하고 가르칠 때에는 ‘구원’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배우기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구원이 무엇인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공식화시켜서 전도하고, 또 가르치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성경을 더 깊이 보게 되고,

과거에 발견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도전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구원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자꾸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볼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공식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

엄청난 차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좀 더 학문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또 <예수님을 닮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구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서 실현되는 어떤 현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서부터 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점점 변해가는 것 자체를

하나님께서는 구원이라고 해석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자꾸 깨닫자 한편으로는 굉장한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우리)를 이처럼 대단하게 보시는구나.’


저를 향해서 자기처럼 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면

‘야, 내(우리)가 그렇게 대단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보면 그것이 어떤 때는 기쁨도 되고 하나님 앞에 감사도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기대치에는 너무나 미치지 못하는 우리 각자는,

형편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꾸 느끼면서

얼마나 그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이 단락, 옥목사님 설교에서 펀글

 

그래서 본문 눅1:4절에 보면,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라’


복음을 믿게 하려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얘기에요.

즉 ‘하나님과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을.. 누가가 더 확실하게 설명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 받은 자 모두가 다 각각 그 별명을 말하자면

데오빌로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친한 자, 데오빌로, 이게 바로 구원 받은 자라는 것이에요.


누가복음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과 친해진 자들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데오빌로에게 전달되는 예수님의 공생애 이야기,

즉 누가복음은 어떤 면에서 특이한 점을 띠게 될까요?


마태나 마가는 다 아시는 대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일성(一聲)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런 말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한 독특한 관점이 있다는 것이에요.

이미 그 천국으로 마음이 들어간 자들입니다.

천국으로 마음이 들어간 자들에게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이런 말이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누가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마가가 말하는 천국과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거예요.


마가가 말하는 천국은.. 가까이 온 천국으로서

우리가 우리 마음으로 거기로 들어가야 될 천국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누가의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내려와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의 내용이 된다는 얘기에요.


다시 말해서, 마가는

‘너희 마음을 하늘로 보내라, 천국으로 보내라!’ 마가의 요청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거꾸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 이 땅에 내려와서 움직이고 계시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제는 하나님 차례가 되었다는 얘기에요.  


마태복음은 아브라함부터 시작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완성되는 것이고,

계속 약속되었던 메시아가 옴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사건은, 수천 년 동안 되어온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완성이고

구원의 약속의 성취라는 것을 보여주고,


마가복음은 그렇게 이루어진 구원사건이 나 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되고, 어떻게 응답해야 되느냐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이렇게 우리가 복음사건에 대해서 반응을 보여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 세상을 등지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다 보냈을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세상 인간의 삶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관심을 갖고 배려하시고 이끌어 가시느냐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기록해나가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차례가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께로 보내서 하나님과 친한 자, 데오빌로 ‘데오스 필레오’,

하나님과 제일 친한 자가 되었어요.


하나님이 내게 제일 친한 분이 된 그런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삶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 가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누가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연합해서

이 세상을 우리 마음으로 떠나버립니다.


그게 십자가에서 죽는 거죠.

그럼 ‘기독교는, 불교처럼 탈속세 하는 거냐?’ .. 라는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세상의 삶이 무가치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고 탄성을 내뱉으시면서 만들어내신 세상의 일입니다.

직업이, 가족이 무가치한 게 아닙니다.


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이지마는

우리가 버리고 갔던 이유는

하나님이 더 소중하고, 하나님이 더 우선적이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디테일한 (세부적인) 삶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나가신다는 얘기에요. 이게 누가복음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서, 누가복음에 성령에 대한 강조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여러분, 사도행전도 누가가 쓴 거예요.

사도행전을 우리가 성령행전이라고까지 말하지 않습니까?


그 성령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헤아려서

이 땅에서 그것을 성취하고 이루어 가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특별히 1장부터 성령에 관한 얘기가 쏟아 붓듯이 나옵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 삶에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하게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의 관심이에요.


그래서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탈 유대적인 특징이 있어요.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룬 모든 일들은

몇 천 년 동안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언하셨던 일의 성취에 초점을,


마가복음은 그 예수님의 사건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야 된다는 요청에 초점을,


누가복음은 그렇게 마음이 올라간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이 땅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어져 나갈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으로 말하듯이, 누가복음도 성령행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단지 누가복음은 ‘성령행전 예수편(篇)’이고

사도행전은 ‘성령행전 사도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모든 대상들을 다 버리고 떠날 때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너무 섬세하게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관심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얘기에요.


그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땅에 대한 관심의 표현

누가복음에서 어떻게 나타나느냐?


그 사회에서 약자로 있던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다른 복음서에서보다 많이 나타납니다.

여인이라든지 어린아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차례가 돼서, 하나님의 활동이 제대로 일어나려면

내 차례가 먼저 제대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내 차례는 데오빌로가 되는 겁니다. 데오빌로, 

하나님이 내게 가장 친한 존재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이 세상에 내 마음에 친해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내 차례를 내가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 차례가 주어진다는 겁니다.  마6:33


하나님 차례가 주어질 때,

이 세상은 무가치한 것도, 무의미한 것도, 공허도 아닙니다.


전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의미를 부여하시고

그 의미를 깨달으신 성령께서 이 땅에서 활동해나가십니다.


그 이야기를, 누가는,

하나님과 친해서 마음을 하나님께로 보낸 모든 세상에 사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세상 위에 존재하는 데오빌로들에게

이 누가복음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직장, 취직문제, 건강, 자식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시급한 문제로 믿고 여겨서

내 마음을 십자가 붙잡고 하나님께 다 보내버리고 이 세상에 대해 죽어버렸습니다.


그때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계획하시고, 그것들을 수행해나가신다는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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