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시계탑 눅6:1~5 출처보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라이브 생생한 만남>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라이브 만남’이란,
그저 하나님과 만남이, 말뿐만 아니라
실제 살아계신 하나님과, 내 마음이, 직접 만나는 그런 생생한 만남이,
진정한 ‘안식일 준수’의 key가 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조차도
자기가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잘 지킴으로써
‘자신의 경건성을 외식적으로 남에게 드러내고,
4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예쁘다고 봐주셔서,
내가 세상의 복과 형통을 받게 되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고 있었고,
그래서 본문에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는 제자들을 꾸짖고 있지만,
정작 ‘안코 없는 찐빵’ 식으로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라이브(생생한) 만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논쟁의 발단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하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게 됩니다.
제자들이 시장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다 익은 이삭을 손으로 훑어서, 그 껍질을 까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안식일 규정에는,
‘추수를 하지 말아야 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물론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
안식일에 추수를 하지 말라는 말은 맞아요.
그런데 ‘밀 이삭을 비벼서 먹는 것’도 추수의 한 행위라고 여겨서
그것도 금지되어 있었던 겁니다.
제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비판이지요.
제자들이 그렇게 안식일 규정을 어겼으면,
예수님이 무난한 지도자라면 ‘아, 너희들이 배가 몹시 고팠나보구나!’ 라는
이해의 말과 아울러,
규정이 규정인 만큼 ‘그래, 알았다, 이번에는 우리 제자들이 좀 잘못했네!
내가 주의를 주겠네!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네!’
이렇게 말씀하시면 될 텐데.. 이게 무난히 넘어가는 거예요.
안식일 논쟁이 계속되는 눅6:11절을 보면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이렇게까지 그들을 격노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너희들의 안식일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다.’
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정한 안식일 준수>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려고, 단단히 마음먹으신 것입니다.
※본문 눅6:3에 ‘다윗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해석은 마태복음에서 해석한 부분을 참조하시고, ☞ 진정한 안식일 의미...
오늘은 곧바로 <안식일 준수>의 본질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이 안식일 준수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로서
<서울역 시계탑>이라는 예화를 들어서 설명해 봅니다.
서울역 시계탑은, 과거에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그 아래에 한 청년이 시계를 보며, 애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에 핸드폰이 아직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만나, 교외선을 타고, 데이트를 하기로 한 애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자가 오지 않아요.
화장실을 가고 싶습니다, 갈 수가 없어요,
그 사이에 애인이 왔다가, 못 만나고 되돌아갈까봐.
목이 마릅니다, 서울역사 안의 매점에 들어가 물을 사 마시면 좋겠는데,
애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자리를 뜰 수가 없습니다.
광장 저쪽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며 모이고, 난리가 났습니다.
굉장히 궁금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서울역 광장 앞에서
시계탑을 벗어나 그곳으로 가 볼 수가 없습니다. 시계탑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유를 모른 채, 약속한 애인이 오지를 않습니다.
할 수 없이 꼼짝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저쪽에서 애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부랴부랴 뛰어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에서 기쁨이 확 번져나기 시작합니다.
애인이 가까이 왔을 때, 처음에는 화를 내는 듯하지만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하면서, 금방 웃는 얼굴로 변합니다.
하여간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는,
먼저 온 사람은, 꼼짝 말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중에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더 만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시계탑에서 만나자고 했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시계탑 앞에서 꼼짝 말고 있어야 되요.
그런데 애인을 만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화장실에도 같이 가고,
목마르니까, 같이 매점에 가서 물도 사먹지요,
아까 궁금해 죽겠는데, 가지 못했던 웅성거리던 그곳에 가서 궁금증을 풀지요.
애인과 다 함께 움직입니다.
이게 <안식일 준수>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하면, 성경 십계명에 ‘너나 네 가족이나 손님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일을 그만 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그냥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유가 뭐였는가 하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위 예화처럼,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 꼼짝 안 하고, 물도 안 사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궁금증이 나는 곳도 안 찾아가보고..
꼼짝 안 하는 이유가, 애인을 만나려고 꼼짝 안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논밭에 가서 일하지 말고,
남종이나 여종이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시계탑 밑에서 나를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나와의 라이브만남을 위하여 기다리라’라는 말씀이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라이브로 생생하게 만나기 위해서>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애인을 만난 후에는 어떻게 합니까?
애인과 함께.. 화장실도 가고, 구경도 가고, 물도 사마시고 합니다.
‘애인과 라이브(생생한) 만남’이 중요하니까,
그 만남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애인과 함께.. 화장실도 가고, 구경도 가고, 물도 사마시는 것은,
‘일’이 아닙니다.
▲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이 일, 저 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일에 마음을 뺏기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수 없다는 이유이지요.
내 마음으로 하여금
아무 일에도 관심을 두지 말고, 아무것에도 뺏기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되라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거죠.
또 예를 한 번 들어봅니다.
그런데 그 시계탑 밑에 ‘노점상 아주머니’가 한분 계십니다.
이 청년이 한 시간이나 꼼짝 않고 서 있을 때,
노점상 아주머니도 꼼짝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점상 아주머니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 꼼짝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오고가는 행인들에게, 채소를 팔기 위해서,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성경에 나오는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가
바로 이 시계탑 앞에 있는 ‘노점상 아주머니’와 같았습니다.
시계탑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알고
그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서,
꼼짝 안 하고, 자리를 지키는 노점상 아주머니의 마음으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켰다는 얘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생생한 만남’은 뒷전이고,
그저 안식일을 외적으로 철저히 지킴을 통해서,
뭔가 그게 자기에게 명예든지, 복이든지 이익이 되기 원해서, 안식일을 지켰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밀 이삭을 베어 먹은 제자들이, 잘못한 게 없다고 하신 이유가 뭘까요?
안식일은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주님과 만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이 청년이 자기 애인과 함께 물 사먹으러 가고,
궁금증이 나는 웅성거리는 곳에 갔던 것처럼,
하나님을 일단 만나면.. 하나님과 함께..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만남을 풍성하게 돕는 일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제자들은, 안식일의 주인 되신,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데, 안식일을 어겼다는 게 무슨 말이냐?’ 이것이에요.
이미 제자들은 밀 이삭을 먹는 것도, 안식 가운데 있었다는 겁니다.
주님과 함께 안식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신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바리새인들은, 이걸 몰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일부러 이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성경에도 기록해서,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즉, ‘나와 함께 있으면, 안식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게 된다’는 겁니다.
안식 안에 들어와 버린 상태에서
밥을 먹고, 밀 이삭을 비벼먹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뒤로는 안식일이 없어진 겁니다.
그리고 삶 전체의 시간이, 다 안식의 상태 속에서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알고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 전체가
안식의 생애가 되었다는 겁니다, 안식일이 아니라.
왜요?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로, 내주하실 수가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게 바로 안식에 대한 올바른 성경해석 입니다.
▲그러나 ‘제도’와 ‘규정’이 영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속 알맹이인 본질을 잘 지키기 위해서,
겉포장인 제도와 규정도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그 제도와 규정이,
자기의 경건성을 드높이고, 남을 비판하는 어떤 잘못된 도구로서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신앙과 경건을 도와주기 위한
속 알맹이인 본질(하나님과 라이브한 만남)을 더 촉진시키는
제도와 규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바리새인들은,
속 알맹이는 없이, 겉포장만 갖고서, 안식일을 지키려 했던 것이어서,
예수님께 지적을 받은 것입니다.
▲새 언약이 뭐에요?
그 본질이 ‘라이브로 만나자!’ 이겁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나의 신랑으로, 라이브로 만나자는 약속이 십자가사건입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
시계탑에서 기다리고 있는 청년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에서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그 상황을 쫓아가면 안돼요.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 사먹으러 매점에 가면 안돼요.
아무리 화장실이 급해도 좀 참아야 돼요.
그 사이에 애인이 왔다가 가 버리면,
애인이 다시 돌아가 버리는 수가 있어요, 나를 찾느라고.
그래서 십자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내가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과 라이브로 만났을 때, 이제 우리의 삶은, 안식상태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 안식의 상태인 채로 직장에 나가서 일하고,
가정에서 살고, 일도 하고…
그러니까 안식일이 이제는 매순간 매일 아침,
사도바울이 매일 죽는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안식이에요.
안식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안식일이 정해진 게 아니라, 날마다 매순간마다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본질을 잘 살리기 위해서, 주일날을 특별히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으로
떼 놓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십자가에서 기다리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과 라이브로 만나게 되면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게 된다는 이야기, 이게 바로 다음 본문↓에 나옵니다.
여러분, 안식일 또는 십자가는 <서울역 시계탑>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라이브로 만납니까?
시계탑에서 내 마음이 이 세상일에 따라 끌려가지 말고
다 죽었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이게 바로
서울역 시계탑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주님을 꼭 만나세요!
만나셔서 오늘 하루 종일 안식 안에서 아침도 드시고, 점심도 드시고,
직장생활도 하고, 가정생활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이 세상 삶이 다할 때까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로서, 나의 신랑으로서,
나를 만나기 위해 달려오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내가 서울역 시계탑에서 기다리게 하옵소서.
내가 세상에 대해 죽은 사람처럼, 꼼짝없이 시계탑인 십자가 밑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기다려서, 주님을 만나, 참된 안식에 날마다 들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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