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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 컨닝 3780

LNCK 2012. 8. 30. 19:46

◈오답 컨닝             눅5:1~11             출처보기



여러분, 혹시 학생 시절에, 목숨 걸고 커닝을 했는데, 오답이라서

낭패를 당하신 적 있으시나요? 물론 정답이라도, 커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거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아담이 범죄 한 후에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인간에게 정말 씻을 수 없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죄의 체질’이 생겼습니다.

그 체질이 두 가지 속성을 띠게 되는데,


첫 번째 ‘죄 체질’의 속성은

하나님 한분으로만이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내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 안에서 내 허전한 마음을 채울 것들을 정해놓고

그것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내 마음을,

돈/ 권력/ 건강/ 승진/ 결혼/ 자식의 성공, 이런 것들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

체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부분은 지금 논의하지 않고, 아래 두 번째 내용을 지금 논의 합니다.


두 번째 ‘죄 체질’의 속성은, 

하나님을 등지고, 이 세상 안에서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책을 읽는다든지,

무슨 위인의 삶을 본받아, 뒤 따라 간다든지..


이게 바로 커닝이라는 거예요.

(내게는 답이 없을 때,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는 게 커닝 아닙니까?)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오답 커닝>이라는 것입니다.

정답도 아닌 것을, 정답인줄 알고, 괜히 베낀다는 것이지요!


오직 내 인생과, 내 삶에 대한 해답은

내가 하나님을 친밀히 모셔 들일 때, 그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데,

하나님과 결별하면서.. 나는 해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커닝하려고 합니다.

그 커닝하는 것이 어떻게 나타난다고요?


대표적으로 책을 읽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독을 권합니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고 얘기합니다.

아니에요, 책은 어떤 의미에서 ‘커닝페이퍼’입니다.


책이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적 지식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어떤 책의 내용이 <진리의 말씀>에 反하는 내용일 때

그것은 ‘오답 커닝페이퍼’입니다.


공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무슨 뜻입니까?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거기에 나의 스승이 있게 마련이라는 뜻이죠.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나에게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내 행동의 답을 얻으려는 것은 커닝입니다.

그것도 오답을 커닝하는 것입니다.


그 말(삼인행~)이 의미하는 바가 있고, 그것은 일면 맞는 말이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도 뜸해서, 어쩌면 다행이기도 합니다만,

한 20년 전에, 한국에 ‘성장 세미나’가 유행했습니다.


진리를 찾고, 하나님을 닮기보다는,

그저 신도시에서 급성장한 몇몇 교회를 모델로 삼아서,

그 교회를 ‘따라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제를 다룬 책들을 많이 사서 읽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급성장한 교회의 책은,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 움직임들이, 긍정적 기여를 한 측면도 있겠지만,

어떤 각도로 보면, 다 커닝입니다. 그것도 ‘오답 커닝’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죄 체질’의 one 속성은, 

하나님을 등지고, 이 세상 안에서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될 것인가는,

어떤 전문가도 대답해줄 수 없고,

동종 업종에 종사하는 어떤 사람들도 대답해줄 수 없고,


지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의 답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내 전문성’입니다.

‘내 과거의 경험’에서부터 답을 얻으려는 것도, 커닝입니다.

그 경험이 진리의 말씀과 反할 때.. 그렇습니다.


절대로 과거의 내 경험에서부터

지금 내가 여기서 해야 될 행동의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건 오답을 커닝하는 것입니다.


전문성도 마찬가지에요.

아마 어느 한 분야에 전문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전문가는 느낄 것입니다,

나의 전문성에 엄청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피라미 전문가들이, ‘내가 전문가다’ 하고 다니지,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가 쌓아놓은 경험에서부터의 답들이, 정답이 아니란 걸 알게 될 것이에요.


이것은 수준 있는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는 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커닝을 합니다.

다 오답입니다.


책, 읽으시되, 절대로 의존하지는 마세요!

책은 어떨 때 읽는 거냐 하면, 하나님으로 만족해서 기쁨이 가득할 때,

그 하나님께서 내게 읽으라는 책을 구해서 읽으세요.


그 하나님께서 내게 쓰라고 하는 책을 쓰세요!

아무거나 휴지조각 같은 책들을 쓰지 마시고..

왜냐하면, ‘오답 페이퍼’를, 시중에 마구 돌릴 수도 있습니다.


눅5:1~11 본문은, 바로 이 ‘오답 커닝’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그날 자기가 ‘오답 커닝’을 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으라고 명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깊은 데 가서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혀서, 혼자서는 끌어당길 수 없어서,

옆에 동료들에게 와달라고 해서, 겨우겨우 그물을 끌어올립니다.


자, 이 본문에서 언뜻 보기에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어요.


첫째, 예수님 때문에 고기가 많이 잡혔는데,

평생 고기 잡는 어부로 산 베드로에게

이렇게 고기가 잡혀본 적이 없을 만큼, 고기가 가득 잡혔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사업의 최고의 번성을 이룬 것이고,

사업이 대박을 친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 때문에 대박이 난 이때,

베드로가 왜 예수님보고 ‘나를 떠나소서!’ 라고 말합니까?

오히려 예수님과 전속 계약을 맺어야 하지 않겠어요?

왜 사업이 대박 난 순간에, 예수님을 떠나시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두 번째, 왜 사업이 대박 난 순간에, 자기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겁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잘되고 형통할 때,

내가 의인 됨, 내가 그래도 뭔가 괜찮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신다고 하는

나 자신의 ‘의인 의식’이, 덩달아 증대되는 것이 일반 현상입니다.


일이 안 될 때는, ‘내가 뭔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구나’ 생각하지요..

일이 잘될 때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괜찮구나’ 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

왜 주님께서 이렇게 많은 고기를 잡히게 해서, 축복 해주신 순간에

베드로는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내가 죄인인 걸 알았으면, 왜 또 예수님을 떠나시라고 할까요?

죄인일수록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셋째로, 또 왜 무서워했을까요?

이 말이 기가 막힙니다. 베드로가 왜 무서워했을까요?


눅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베드로가 무서워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 무서워했을까요?


이 본문으로 설교할 때,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했더니 ‘아!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다’

그러니까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 이런 본문이 아닙니다.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5절입니다.


만약에 ‘말씀에 순종했더니..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식으로

본문을 해석한다면, 5절이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5절 빼고, 4절에서 6절로 막바로 건너뛰면 됩니다.)


그러나 5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라는 구절이 들어간 것은,

베드로가 ‘오답을 커닝’한 죄적인 기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고기 많이 잡고, 부자 되게 해 주셨다는데.. 본문의 초점이 있지 않고,

베드로가 오답을 커닝하는 죄의 체질을 드러내고 있다는데.. 그 초점이 있습니다.


▲본문의 핵심구절인 5절을 분석해보면 이렇습니다.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베드로가 말한 내용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들은 이 갈릴리 이 바닷가에서 태어나서 이 바닷가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고기잡이 하는 걸 보고 배웠고

우리도 평생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어부들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목수가 아닙니까?’


‘밤이 새도록 수고해서 잡은 것이 없지만..’

이 얘기는 ‘이 지역에서 우리가 고기를 못 잡았다면,

그 누구도 여기서 고기를 못 잡습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목수 출신의 선생님께서

평생을 여기서 고기잡이를 한 우리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 하십니까? ..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이 표현을 자꾸 오해해요.  :5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말은,

그 반대로, 절반은 반항하는 표현입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 하니까,

아이가 ‘그래요. 공부하지요, 공부한다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베드로가 ‘선생님이 말씀하시니까, 한 번 그물을 내려 보기는 하지요.’

이런 뜻인데,

어투가 절반 이상은 ‘빈정거림’입니다.

뻔한 헛수고를.. 왜 시키느냐는 겁니다. 지금 반신반의 하는 거지요.


그런데 물고기가 가득 잡혔습니다.

그것도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할 만큼 대박의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무서워합니다.

왜 무서워합니까?


베드로, 못 배운 사람입니다.

아무리 못 배웠어도, 자기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면

갈릴리 지역에서 고기 잡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요,

자기가 답을 안다고 믿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또한 다른 어부들로부터 배운 경험에서,

또한 내가 직접 체득한 경험으로부터

고기 잡는 것에 대한 답을 자기가 알고 있다고 믿었고,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할 때

그 말씀에 빈정거린 이유는,

(‘말씀에 의지하여’라고 번역했는데, ‘쯧, 말씀을 그렇게 하시니까’ 이런 뜻입니다.)


자기 경험상, 깊은 데는 물고기가 절대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고기가 가득 잡혔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무서워하는 이유는 뭡니까?

자기 인생의 근거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정답이, (자기 인생 경험이)

오답이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이제껏 ‘오답을 커닝’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스스로 두려워졌던 것입니다.   ←위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


본문에는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9

라고 했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나를 떠나세요, 나는 죄인입니다’      


여기서 ‘죄인’이라는 말은, 빗나갔다는 뜻이에요.  *‘죄’ : 표적을 빗나간..

구약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제사적 의미에서, 죄인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여기서 ‘죄인’은

‘나는 인생에 있어서, 답을 알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위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그리고 ‘나를 떠나소서’ 라고 한 것은,

‘이런 내가 예수님께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우리는, ‘예수님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를 묻고 예수님을 찾는데,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예수님에게 아무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나를 떠나소서!’ 라고 말한 겁니다.   ←위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어쩌면 젊은 패기와, 나름대로 자신 만만하게 살아온

베드로가 인생이 휴지가 돼버리는 순간입니다.


왜요?


그나마 고기잡이 영역에서는, 자기가 답을 갖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그 고기잡이조차도, 자기가 내린 답이 없다고 하면

이제껏 평생의 어부의 경험과 인생이, 모두 다 휴지로 돌아가는 판입니다.

자기가 ‘오답을 커닝’한 것이 판명나면서.. 낭패에 빠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를 부르십니다.

이렇게 자기를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없는 휴지와 같은 인생’으로 자각하는 순간에,

주님이 베드로를 필요로 하시며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게 해주리라’ :10


여러분, 예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내게 맡겨진 아이들, 내게 허락하신 직장, 내게 허락하신 전문분야,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내 마음속에 답이 없는 사람을, 주님은 필요로 하십니다.


그 답이 없는 사람을 필요로 하셔서, 끌어당기시고 당신의 측근으로 만드셔서,

하나님이 지금 수직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우리를 쓰시려 하십니다.


누가 예수님의 측근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대해 답이 없는 자,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일지라도 나의 전문성을 믿지 않는 자,


그래서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 전문분야에 대해서 죽고

매일 다시 응애 하고 태어나서

내 전문분야에 대해 갓난아기가 된 상태로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전문성이 다시 시작되는,

나에게 전문지식이 날마다 새로 주어지는 겁니다. 날마다 새롭게!


어제까지 전문가가, 오늘도 여전히 전문가가 아니라,

20년 30년의 과거 내 전문 경험 전체가, 십자가로 죽은 다음에,

오늘 새로 태어나서, 새로 하나님으로부터 영감과 지시를 받고,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과 수직으로 답을 받는 사람이.. 진짜 전문가입니다.


고기잡이에서조차도 답을 낼 수 없어서

자기 인생을 휴지로 자각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베드로가

예수님이 부르셔서 곁에 두시는 예수님의 측근 제자가 되었다는 이 사실,

십자가를 통하여, ‘오답 커닝의 체질’을 오늘도 죽여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오늘도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과거 나의 경험이 다 죽고, 무작정 성공한 사람을 따라 하려고 하는 마음도 다 죽고,

답이 없는 자로 남아있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정답만, 매일 새롭게 따라서 행동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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