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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계시는 하나님 사45:14~17 인터넷에서 스크랩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께서는 참으로 숨어 계신 하나님 이십니다.” 사 45:15
숨어계시는 하나님은 자신을 숨으심으로 더 놀랍고
더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
도움이 절실할 때 하나님이 외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때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은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17세기 일본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엄청난 박해가 있었습니다.
당시를 배경으로 쓴 <침묵>이라는 소설을 보면, 숨어계시는 하나님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소설 속에, 당시 일본 정부는,
선교를 못하게 하기 위해, 예수 믿는 사람들만 핍박한 것이 아니라
전도한 가톨릭 선교사들까지 핍박했고, 그들이 배교해야만 풀어주었습니다.
포르투갈 예수회의 신실한 한 선교사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후배 선교사들이 배교한 것이 사실인지를 조사하면서, 책이 시작됩니다.
당시에 핍박이 얼마나 심했냐면 농부들을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그 사람을 전도한 선교사가 배교할 때까지
농민들이 고통스러워 신음하는 소리를 듣게 했습니다.
배교한 선교사는 조사하러 나온 후배 선교사들에게
자신이 배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죽어가는 농부들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배교한 선교사는 하나님을 오해 하고 있습니다.
이 선교사는,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버린 것 같은 생각을 했고
그런 하나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어 배교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 생기면
우리도 배교한 선교사처럼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문학가 C.S.루이스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결혼할 여자가
인간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결혼을 했습니다.
C.S. 루이스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내의 병을 고쳐주실 거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결혼 후에 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C.S.루이스는 시험이 들었습니다.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한탄하며 쓴 <헤아려 본 슬픔>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에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번성할 때는 우리를 사령관처럼 다스리다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왜 하나님은 인색하십니까?”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께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주님과 신실하게 동행하는 성도들이 <숨어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당황합니다.
선교 현장에 가보면 놀라운 간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간증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녀가 병들어 죽어갈 때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자녀를 잃은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선교사들도 있습니다.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
하나님이 외면하는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사역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내 문제를 아시는 것일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지켜보신다면, 왜 침묵하고 계시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편에서도 “하나님, 왜 숨어계십니까?”라며
하나님께 부르짖은 기자들의 고백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 계시며 어찌하여 내가 어려울 때 숨어 계십니까?”시10:1
“오 여호와여, 얼마나 더 나를 잊고 계시겠습니까? 영원히 그리 하시렵니까?
주의 얼굴을 얼마나 더 내게서 감추시겠습니까?” 시13:1
“오 여호와여, 깨어나소서. 왜 주무시고 계십니까? 일어나 우리를 영영 외면하지 마소서.
왜 그렇게 주의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처참함과 억압당하는 것을 잊고 계십니까?” 시44:23~24
시편 곳곳에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 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편 기자들은 왜 이런 호소를 했을까요.
▲“그러나 내가 앞으로 가도 그분이 계시지 않고 뒤로 가도 그분을 찾을 수 없구나.
그분이 왼쪽에서 일하고 계실 때도 그분을 뵙지 못하고
그분이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니 도무지 만나 뵐 수 없구나” 욥23: 8~9
엄청난 상실과 고난을 경험했던 욥은, 하나님이 계신 것이 맞는지 따지고 싶었습니다.
욥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욥만큼 하나님이 자랑하실만한 의인이 없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으로 뽑힌 사람이 욥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험에 내놓은 사람이 욥입니다. 욥처럼 의롭게 산 사람이 없습니다.
또 욥만큼 고난당한 사람이 없기에, 그 고난을 겪어보지 않고,
그렇게 의롭게 살아보지 않고, 오늘날 욥처럼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요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실망했습니다. 시편 기자들도 하나님께 실망했습니다...
▲필립 얀시의 책 중에 <하나님께 실망했습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은 사람은 무신론자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실망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신실하게 동행해보려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신실하게 동행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
바로 ‘숨어계신 하나님’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역사하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응답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만,
그와 동시에 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가장 친밀하게 지내신 예수님도, 숨어계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은 숨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라고 부르짖는 아들의 외침을 하나님은 못들은 척 했습니다.
◑숨겨져 있는 놀라운 계획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숨어계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숨기신 것이 무능력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감추신 것은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는 것으로 일하는 분입니다.
숨어계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이사야의 고백을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께서는 참으로 숨어 계신 하나님 이십니다.” 사 45:15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회복을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숨어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하나님 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집트가 벌어들인 소득과 에티오피아가 벌어 놓은 재물이 네게로 넘어오고
스바의 거인들이 네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이 네 뒤에서 터벅터벅 걸으며
사슬에 묶인 채 네게로 넘어올 것이다. 그들이 네 앞에서 절하고 빌면서
‘틀림없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그 밖에 다른 누구도 없습니다.
그 밖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45:14
놀라운 말씀입니다. 14절과 15절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께서는 참으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15절).
이렇게 1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당하도록 내버려 두신 하나님이었는데,
14절은, 장차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되고 회복됨으로써
열방이 이집트와 에티오피아가 그 수많은 재물을 갖고 있는 민족들이
이스라엘로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다”라고
고백할 것이라는 예언이 나옵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요.
14절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상황이 가능할까요?
지금은 하나님이 숨어계시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회복시킬 것이고
열방이 “하나님이 네게 계시다”라고 고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자신의 얼굴을 숨깁니다.
자신을 숨기는 것으로 일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숨으심은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무능력한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관심도 아닙니다.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일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실 때는 자신을 숨기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우리에게 전부 나타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뒷모습만 보여주셨습니다.
‘나의 영광을 보고 살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하심을 온전히 나타낼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의 믿음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숨어계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강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지고,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지고 바위에서 물이 나오고, 엄청난 기적의 연속이었지만
그 기적들이 그들의 믿음을 지탱해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나타나심과 응답하심 그리고 살아계심을 끝없이 보여주었지만
그들은 우상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부족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은 바벨론의 심판과 같이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을 통해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숨어계시는 기간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눈으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유대인들이 나치를 피해서 숨어있던
독일 퀼른의 어느 지하실 벽에서 이런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해가 비치지 않았을 때에도 나는 해가 있다고 믿는다.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나는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나를 버린 것 같은 하나님을 믿을 때에 진정한 믿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숨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욥에게 하나님은 왜 숨어계셨을까요.
욥은 시험에 빠져서 자신의 생일를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마지막 폭풍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기초를 놓은 자가 누구냐? 번개를 내는 이가 누구냐?
까마귀가 먹을 것이 없어 오락가락할 때 먹을 것을 주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이 욥을 책망하실 때, 욥이 뭐라 고백한줄 아십니까?
“나는 주께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 이루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뜻을 가린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말하고
너무 기이해서 알 수 없는 일들을 내가 내뱉었습니다.” 욥42:2~3
여러분, 하나님이 고난의 이유를 설명해 주시면, 모두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만큼만 가르쳐주십니다. 깨달을 수 있는 만큼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뜻을 숨기시고 우리에게 조금씩 나타내야만
우리와 하나님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보다 위대하십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왜 자신을 숨기셨겠습니까?
그것을 통해 이루실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언제나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발견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숨어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숨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젠가 자신을 나타내시고 발견되시는 기쁨을 맛보기를 원하십니다.
어린 자녀와 함께 걸어가다가, 부모가 잠깐 숨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어린 자녀가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놀랐을까요.
어렸을 때 숨바꼭질 게임을 합니다.
술래가 눈을 감으면 숨기 시작해서, 모두 숨으면 술래가 찾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술래에게 들켰는데도 기뻐합니다.
들킨 것이 억울할 법도 한데 말입니다. 이것이 숨바꼭질의 묘미입니다.
숨바꼭질 게임에서는 찾을 수 있는 곳에 숨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숨으시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곳에 숨으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찾으면 하나님을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찾지 못하면 위치를 알려 주시고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할 때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난입니다.
때로 고난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신호인 것입니다.
고난을 붙잡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지만 나타나는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숨어계셔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상을 선택하면 부끄러움을 당하고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선택하면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우상들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당하고 모욕을 당할 것입니다.
모두 함께 창피해서 줄행랑을 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영원할 것입니다. 주께서는 영원토록 결코 수치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45:16~17
숨어계시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무관심한 하나님도 아닙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우리에게 발견 되기를 기뻐하고,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원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숨어계시는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심으로써
더 놀랍고 더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때로 숨어계시는 하나님
우리가 죄를 범할 때 자신의 얼굴을 숨기시고,
또 더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가운데 자신의 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믿음을 더욱 강하게 붙잡아 주옵소서.
때론 고난 속에서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은 그 하나님,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찾아 만나기를 원합니다.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나타나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숨어계시는 것처럼 주무시는 것처럼 여겨
우상을 찾아 헤매는 저희들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