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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8장 5 네 눈물을 보았노라

LNCK 2012. 8. 31. 18:38

 

◈네 눈물을 보았노라            사38:5             스크랩, 출처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위에 올라서,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한 훌륭한 왕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뿌리 깊은 죄의 온상이 되어온 산당과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아세라 목상을 찍고, 성전을 정결케 하고, 유월절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왕하18:1~4

 

열왕기하18 :5~6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더라.

 

그는 여호와와 연합한 자요,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다 지켰더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훌륭하고 충성스러운 왕이라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모든 환난과 시련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히스기야는 민족적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시련과 환란을 겪은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사37:장에 나온 것처럼, 앗수르 군대에 포위 당해서 나라가 멸망 직전까지 갔습니다.

사38:장은 히스기야가 병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직 중년의 젊은 나이입니다. 약39세 때입니다. (25세에 왕이 되어, 14년 즈음에 위기 만남)

인생에 벼랑 끝에 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진실되게 충성스럽게 산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벼랑 끝에서 만나 주십니다.

 

히스기야는 인생의 큰 위기, 벼랑 끝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까?

 

◑1. 그것은 바로 <눈물의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5절,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우리도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 무조건 두려워 떨거나 낙심하지 말고

‘눈물 어린’ 기도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눈물이, 아무 때나 내가 원한다고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간절히 하나님을 찾을 때, 또는 환란을 당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은 나에게 ‘눈물의 기도’의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배워서

저희들도 눈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적같은 은혜를 체험하면 좋겠습니다.

 

3절,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되, 형식적으로 적당히 기도하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한 나라의 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라고 체면 차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격식을 차리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배고프면 칭얼대는 어린아이처럼,

몸이 아파서 고통스러울 때에 눈치 보지 않고 울어대는 갓난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선을 행하고자 몸부림치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들을 파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대하30:1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했던 것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제 나이 삼십대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이 나라에 할 일이 태산같이 많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엉엉”

 

히스기야는 지금 자기의 의와 공적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고

이스라엘 나라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보고자 애를 썼는가

하나님께 진심을 토로하며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히스기야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눈이 퉁퉁 부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14

 

제비나 학, 비둘기가 우는 것 보셨습니까?

저는 어려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그렇게 구슬프게 들렸습니다.

소쩍새가 한번 울기 시작하면 그치지도 않습니다. 계속해서 구슬프게 울어 댑니다.

 

히스기야는 이처럼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5), 통곡하며(:3) 기도한 것입니다.

통곡하며 부르짖는 기도는 이 세상에 모든 소망이 끊어진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모든 생각과 힘을 집중해서 매달리는 기도입니다.

 

저도 아들이 2살 때에 열경기를 할 때에 119 구급차를 불러서 타고 가는데

얼마나 다급하게 울면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때는 누가 옆에 있건 없건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체면이고 뭐고 없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 체면이고, 격식이고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저 살려 달라고, 치료해 달라고 매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16b절을 보십시오.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그의 기도제목은 단순하고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미사여구를 써가며 멋있게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무슨 격식이나, 말 재주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문장력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기도에 담긴 진심을 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을 잘 못해도, 기도가 고상하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해도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며 기도할 때에

우리의 진심을 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다시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눈물을 못 본체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 들으시고 다 보고 계십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받으시고 당신의 계획을 수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웬만해서는 그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자가 눈물로 기도할 때에, 그 마음이 녹으십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은 해 그림자가 뒤로 십도나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태양계에 변화를 일으키시면서까지, 히스기야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감화력이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자연의 법칙까지 거스르는 초월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눈물은 그냥 수분 몇 %, 염분 몇 %의 액체가 아닙니다.

눈물은 그 영혼에 순수함의 표현입니다. 눈물은 진심의 발로요, 회개의 증거입니다.

눈물은 우리 영혼에 끼어 있는 모든 때를 녹이고 씻어내는 정화제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눈물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잘 응답해 주십니다.

스펄전은 말하기를 “성도의 눈물은 천국 가는 고속도로”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금요 기도회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어떤 분들은, 옆에 화장지가 수북히 쌓일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제가 보기에도 감동이 되고 도와주고 싶고 짠한데

우리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얼마나 마음이 짠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겠습니까?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가 잘못할 때, 매를 때릴 때가 있습니다.

그랬더니 자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자기 잘못을 고백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의 눈물을 보니까, 부모 마음이 짠하고,

그동안 부모로서 제대로 못해준 것이 생각나서

더 잘 돌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고통과 눈물에 무관심하신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때로는 아무리 눈물 뿌려 기도해도,

<내가 원하는 응답>은 오지 않고

<내가 원치 않는 방식의 응답>이 올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5:4절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내가 원치 않는 방식의 응답>이 오더라도,

‘위로’는 반드시 같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나면,

<내가 원치 않는 방식의 응답>이, 정답이었음을 깨닫고,

주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눈물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심령이 메마를 대로 메말라서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많은 목자들이 있지만

양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던 때가 언제인가 까마득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정말 애통하며 눈물로 기도했던 분들입니다.

 

나라가 힘들기 때문에, 집안이 가난하기 때문에,

자식들은 많은데 가르칠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눈물로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눈물> 관련글 모음  

 

저의 어머님은 지금도 새벽 4시면 정확하게 일어나서

아픈 다리를 이끌고 교회 가서 눈물로 기도하십니다.

교회를 위해서 자식 손자들을 위해서.

같이 식사할 때도 기도만 했다하면, 눈물이 주루룩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가족 모임을 하면 어머니는 기도 시키지 말자고 합니다. 분위기 깨니까.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 어머님의 기도 때문에 우리가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눈물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멸망을 앞둔 이스라엘을 바라보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레미야는.. 망해가는 이스라엘을 볼 때에 눈물이 강같이 흘렀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를 개척할 때에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점점 영적으로 침몰해가는 이 시대를 향해서 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는 것이 복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을 수 있는 기도제목이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의사 전도왕으로 유명한 이병욱 박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울어야 삽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분은 주장하기를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오래 사는 이유가

눈물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눈물 속에는 글로불린A라는 성분이 있는데

그 성분 안에 우리 마음속에 모든 독소를 해독하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마음에 분노, 미움, 화, 슬픔, 원망, 불평, 한. 이런 독소들이

눈물과 함께 다 흘러 나와서 마음의 상처가 해소가 된답니다.

 

여자들은 수시로 울어서 내면에 독소를 빼 내는데

남자들은 이런 독소를 술로서 풀기 때문에, 몸에 독이 쌓여서 암이 되고

빨리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은 눈물치료, 울음치료를 강조합니다. 특히 “남자들이여 울어라”

이것이 이분의 표어입니다. 이 분은 “기회만 있으면 울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눈물을 흘립시다. 눈물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눈물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눈물의 기도는 보석보다 귀합니다.

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역설적인 진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웃고 싶지, 울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누구도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물이 없는 곳에 은혜가 없습니다.

눈물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자는 눈물이 없습니다.

내가 통곡하며 눈물로 기도해 줄 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밤을 지새우며,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할 기도제목이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모든 일이 잘 되니까

현실에 안주하며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것은.. 영이 병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사39장에도 보면 히스기야가 병이 나은 후에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신의 보물창고를 다 열어 보이고 자랑했다가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를 받게 됩니다.

나라가 망하고 그 모든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히스기야가 행복에 취해서 기도하지 않았을 때에

무서운 저주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별 어려움이 없고, 간절한 기도제목이 없고, 잘 나가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내가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문제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문제없는 때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조금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펴보면, 눈물로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이 수두룩 합니다.

 

먼저 나의 내면에 죄악된 요소로 인해서 눈물로 회개기도 해야 합니다.

북한에 굶주려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는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취직문제와 연애할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이들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 시대는 죄가 죄인줄 모르고,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서, 히스기야와 같은 심정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여 이 시대에 쾌락주의와 물질주의로 병든 젊은이들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처럼 눈물로 기도할 때,

이 나라와 우리의 캠퍼스를 치료하여 살려 주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눈물로 기도할 때,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주시고

우리 UBF가 다시 한 번 일어나서, 한국의 캠퍼스는 물론이요,

세계의 캠퍼스를 복음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눈물을 주시옵소서. 애통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2. 그것은 바로 <면벽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히스기야는 벽을 마주 대하고 기도했습니다. 

 

2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을 향했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오직 하나님만을 상대로, 도움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한 나라의 왕입니다.

그러면 그가 병이 낫기 위해서, 별의별 수단을 다 쓸 수 있습니다.

그 나라에 용하다는 의원들을 다 불러 모아서 치료법을 강구하라고

어명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각 도의 책임자들을 다 소집해서, 자기병을 낫게 하는 좋은 음식이나,

민간요법, 각종 약초들을 구해 오라고 명할 수도 있습니다.

진시황도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다그쳤지 않습니까?

 

역대하16:12절에, 남유다의 3대왕인 아사왕이, 발에 병이 들어서 매우 위독했습니다.

그때 그는 여호와께 구하지 않고 의원에게만 구하였다가 2년 뒤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아사 왕도 굉장히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우상도 파하고 그의 어머니가 아세라 목상을 섬긴다고 폐위 시켜 버릴 정도로

영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발에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이고 믿음이 좋은 것 같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의원들만 의지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인생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부딪히게 되면, 그 사람의 근본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것을 의지하는 인간적인 사람인가? .. 드러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왕이지만 세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주만 바라볼찌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란 세상을 향한 문을 닫고, 하나님을 향해 난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 사면초가, 벼랑 끝에 서 있을 때에 살 길이 어디 있습니까?

출구가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홍해 바다 밑에, 길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욥23: 8~10절에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랬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누가 아신다고요? 그가 아시나니.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문제해결책을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치료의 길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살 길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서 매달려야 합니다.

면벽하고,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을 끊어 버리고,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 사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온전히 접고,

하나님만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문이 닫힐 때, 또 다른 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바로 그 열린 문으로 가는 통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할 때에, 앞이 캄캄 할 때에,

낙심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면 문이 열립니다. 기도하면 길이 보입니다. 기도하면 살 수 있습니다.

 

저/설교자는 고등학교 1학년때 자꾸 옆구리가 아프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병으로 말미암아, 학교를 쉬고 병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앞날이 걱정이 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UBF로 인도하셔서 말씀공부를 하게 하셨고

새벽기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저는 학력고사 보는 날 아침에도 콩팥 속에 돌이 움직이는 바람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도 1년 쉬었는데

시험도 못 보고, 대학도 못 가고, 인생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온 집안 식구가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신기하게 통증이 사라지고, 시험을 거뜬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신장결석은 저를 괴롭혔지만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에, 돌이 저절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7번 정도 돌이 나왔는데, 꼭 새벽기도 갔다 오면 돌이 나왔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도할 때에 콩팥의 돌도 부서뜨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나중에 렘23:29~30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불 방망이와 같다”는 말씀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어떤 병마도, 어떤 장애물도, 어떤 완악한 사람도

불방망이로 부스러뜨리시는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가

28살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는 너무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심오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후에 말하기를 ‘자신의 작품들은 자신의 피를 찍어서 쓴 글들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하게 하나님은, 우리가 막연히가 아닌,

생생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벼랑 끝으로 내 모십니다.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때 우리가 낙심하고 원망불평하지 말고,

히스기야와 같이 면벽하여 하나님과 독대하여 기도함으로써

우리에게 살 길을 보여 주시고,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본문 사38: 5~6절을 연결해서 보면,

5절에는 ‘히스기야의 개인적 문제 응답’인데

6절에는 ‘남유다 민족의 구원의 응답’을 받습니다.

 

종종 우리 각자 개인적 문제와, 그로 인한 기도의 응답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까지 같이 응답, 해결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일례로, 한나는, 자기 자녀가 없는 문제로 인해,

간절히 기도해서, 사무엘을 응답 받았습니다.

 

그 사무엘의 응답은, 나아가,

당시 사사시대의 혼란을 극복하는 ‘이스라엘 나라의 문제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개인적인 문제>를 주실 때

기도가운데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 개인적인 문제’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내 공동체 적인 문제의 해결’일수도 있습니다.

 

히스기야, 또한 한나처럼

‘내 개인적인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며 응답 받는 것’은

나아가 ‘내 공동체 전체의 문제의 응답’을 가져올 것입니다.

 

히스기야에게 그 죽을 병을 주신 것도,

나라 전체의 구원을 위해서, 그 병을 특별히 주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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