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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비밀

LNCK 2012. 9. 3. 09:28

◈영적인 비밀          약5:17            08/12/14설교스크랩, 편집

 

‘그 힘의 근본은 여전히 알지 못하니라.’ 삿16:9

 

※각론에 argue(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도입 

     

신학자 자크 엘룰은 <하나님이냐 돈이냐> 라는 책을 썼습니다.

철학자 에릭 프롬은 <소유와 존재>라는 책을 썼고

또 국내의 유명한 종교인은 <무소유>에 대한 책을 써 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한 것은 소유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신앙과 소유의 관계에 대하여, 또 인생과 소유의 관계에 대하여 이들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들이 좀 더 정직했더라면

적어도 남자들의 세상에서의 소유란 남자의 명예와 직결된 것이라는 사실과

남자의 가치를 정해준다는 사실,

 

그리고 적어도 여자들 앞에서

남자의 매력을 결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여자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다만 여성은 외모만으로 매력을 결정할 수 있지만

남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 프란시스는, 자기의 소유를 전부 다 가난한 자들에게 줘 버리고 수도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 프란시스가 평범한 남자의 꿈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 가정, 자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성 프란시스처럼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최소한의 소유가 있어야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중세 유럽과 근대 유럽에서 젠틀맨 신사라는 말은,

땅을 가진 남자를 부를 때 쓰는 말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소유가 있어야 젠틀맨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남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다른 모습을 사셨던 신약의 인물들

 

예수님이 모든 소유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결혼에 대한 꿈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일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종말론적인 삶을 사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 삼십 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부터, 시한부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오메가 포인트가 언제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알고 올라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론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 말은, 끝이 온다는 것을 알고, 끝을 예측하고 각오하는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셨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행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적어도 예수님처럼 종말론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면..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말을 하기를 좋아하지만

우리처럼 가정이 있고, 처자식이 있고, 직장이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그대로 흉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을 흉내 내려면.. 가족도 버려야 되고, 직장도 그만두어야 되고,

학교도 그만두어야 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책임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오메가 포인트(최후의 날)를 알고 있지 못합니다.

언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지, 내일일지, 오십년 후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의 오메가 포인트를 알면서 사는 것이 아니고, 모르면서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편으로는 내일이라도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십년, 백년 후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히려 알고 싶은 것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이전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이전에는 평범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때에는 예수님이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부양하고, 또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부모님에게 공경하고,

형제를 돌보는 평범한 삶을 사시고

 

그러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또 율법을 지키시고, 당신의 때를 기다리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본받고자 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있다면, 공생애를 시작하기 이전의,

우리와 같이 평범하게 사셨을 때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다만 성경은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언급한 사건은 예수님이 열 두 살 되었을 때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일 외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됩니다.

 

◑구약의 인물들은.. 우리와 비슷합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예를 보려면

신약보다는 구약에서 더 많은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전반적으로 임박한 종말에 대한 믿음 때문에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은 것처럼,

또 요한과 야고보가 자기 아버지를 일꾼과 함께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은 것처럼,

바울이 자신의 모든 명예와 학벌과 기득권을 분토처럼 버리고 예수님을 좇은 것처럼

 

이들에게는 한결 같이, 당장이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믿고,

현재에 대한 모든 연연하는 것들을 끊어버리는 그런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직업이든, 가정에 대한 충성이든, 이런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순교할 각오를 가지고 예수님을 좇지 않으면

이와 같은 삶을 살기가 불가능했는데...

 

구약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산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정이 있었고, 결혼을 했고, 자녀를 낳았고,

소유가 있었고, 돈을 벌어야 했고,

 

그리고 그들은 배반을 경험하고

가정의 갈등을 경험하고 부부간의 갈등이 있었고

죽음을 경험했고, 이별의 아픔을 알고,

슬픔과 고민과 고독을 알고 그런 중에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구약 성도들)의 경험은 우리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됩니다.

만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면

우리는 그들을 존경할 수는 있지만 본받을 수는 없습니다.

 

같기 때문에 본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기 때문에 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와 같은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었다면

우리도 같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기도한즉 하늘이 문을 열고 비를 내렸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약5:17

의인의 기도가 역사하는 능력이 많다는 것을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아니고 엘리야가 본질적으로 우리와 다른 우리가 전혀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면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엘리야를 존경할 수는 있지만.. 엘리야처럼 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위대함, 훌륭함, 의리, 믿음,

용기, 인격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욕망, 거짓, 위선, 연약함, 이런 것을 그대로 가감 없이 기록한 목적은

그들을 숭상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환경에 살면서

그 가운데에서 뭔가 스패셜한 믿음의 능력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인물중심으로 성경을 읽더라도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고,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구원)의지인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 사람의 위대함, 사람의 능력이 성경의 주된 메시지가 아니고

오히려 사람은 거짓되고 약하고 사람은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붙드시고,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사람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또 하나님의 의지, 섭리, 신실함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우리와 수준이 비슷하지만, 그러나 우리와는 다른, 그 어떤 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삼손에게 비밀이 있었지요. 삼손의 비밀이 뭡니까?

그의 능력이 머리카락에 있다는 사실이에요.

들릴라가 그것을 알고자 했습니다. 들릴라는 그 힘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성경 인물들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플러스알파가 있었어요.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움,

하나님과 그들만이 아는 플러스알파가 있어서

그것이 그들이 삶에 우리와는 다른,

 

그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그들의 삶에 그들만이 갖고 있는 플러스알파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우기를 원하고 그것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골리앗에 대한 언급을 보면,

골리앗의 투구와 갑옷과 방패와 또 그의 창과 그의 신장

이런 모든 것의 공통점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만 언급했다는 것입니다.

 

골리앗에 대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 신장, 무기, 투구, 갑옷

이런 것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다윗에 대해서는 그의 키가 얼마나 컸는지, 그가 얼마나 힘이 센지

이런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다른 면을 서술했는데,

그것을 세 가지로 본다면

 

첫째는 다윗의 경험입니다.

그가 과거에 아버지의 양떼를 지키면서 곰과 사자가 양을 공격할 때

자기가 가서 양들을 지키고 곰과 싸워 이겨본 경험이 있었고

 

둘째는 그  경험에서 실력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력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빈들에서 혼자 양을 지키면서 쌓은 실력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순간적인 기분으로 골리앗과 싸운 것이 아니고

그에게는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쌓아놓은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골리앗과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다윗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이 살면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과

자기를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했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이 힘이 되어서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실 것을 믿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다윗만이 아는 비밀이고

결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사람에게는,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어떤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영적인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골리앗의 신장이든 갑옷이든 투구든 베틀 채 같은 창보다도

더 큰 힘이 되고, 밑천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비밀스러운 면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는 힘의 원천은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처럼 보여도)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는데

부모님 집이 좁답니다.

그래서 따로 잘 방이 없어서 부엌에 요를 깔고 자는데

새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까

자기 어머님이 새벽에 거실에 나와서 새벽기도를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님도 목사님인데, 그 아들이

‘아, 우리 어머니의 영적인 능력의 비결이 저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님께 신학도 있고, 영력도 있을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저것이구나!

반대로 나는 신학은 있는데, 영력이 없는 이유가 바로 저것이구나!

이렇게 깨달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