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엡5:16~17 설교녹취
▶오래 전에, 중동 지역에 파견된 한 군인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막사 바깥에서,
기도하면서, 매일 이 찬양을 불렀다고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찬양이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고형원>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찬양 듣기, 클릭-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지금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찬양을 계속 부르는데.. 가끔은 눈물을 흘리면서 부른다고 합니다.
▶오늘도 뉴스에, 중동지방의 폭탄 테러의 소식이, 여전히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애석하게도, 아까운 생명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게 남의 일처럼 들려서 그렇지,
정말 내가/내 가족이/ 내 친구가.. 그런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거나
실제로 그런 위험에 처해 있다면..
우리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찬양을 매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를 불러도 됩니다.
실제로 미국 어느 지역교회는,
주일날에 트럼펫과 나팔을 크게 울려 퍼지게 한다고 합니다.
주님이 천사장의 큰 나팔소리와 함께 강림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살전4:16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이렌이 울리면, ‘민방위훈련’을 하듯이
미국의 어느 교회는, 나팔소리와 함께, ‘재림대비 훈련’을 하는 셈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TV 다큐 영상물을 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전선에 투입되는 군인들은, 한결 같이 얼굴이 굳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선에서, 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자기 생명을 걸고, 그 전쟁터에 와 있고,
자기 동료나 부하들인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도
자기들의 생명을 걸고, 그 전쟁터에 나와 봉사하고 있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은, 100% 공의로운 전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쟁의 속성상 어쩔 수 없습니다.
그가 테러범을 사살하고, 테러집단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그 가족, 그 동네에.. 슬픔을 주게 되고, 아픔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평화의 목적’으로, 또는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작은 전쟁’이라 하더라도
세상에 완벽한 평화는 없습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속히 이 세상에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날을,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테러가 없고, 전쟁이 없는,
중동 시민도, 미국 국민도.. 그 누구도 울지 않는
평화의 나라가 온전히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비단 전쟁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정책을 100% 성공적으로 펼친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일부 부작용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여러 문제들은,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회 정의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과 능력을 총동원해도
이 세상을 완벽하게 고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해결책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입니다.
주님이 오셔야지
죄와 죽음과 악이 끝나게 되어있고,
완벽하게 공의로운 세상이 시작되고,
사회 정의는 완벽하게 실현될 것입니다.
그제야 눈물 흘리는 사람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길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
어서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게 하여,
이 세상이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는,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속히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24:14
농담도 아니고, 허무한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이 성숙되었다면,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도로 기다리지 않는 성도,
주님의 재림을.. 찬송하며 열망하지 않는 성도는..
아직 신앙이 미숙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주님의 관심과 코드에..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나의 관심과 코드에.. 주님을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관심과 코드는.. 재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관심과 코드도.. 거기에 맞추어야 합니다.
▶저는 중국에서 기차를 타고 12시간이상 다닐 때가 있습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날 때면, 기차가 몇 시간을 계속 달려도,
바깥에 보이는 풍경은.. 오직 똑같은 풍경뿐입니다. - 그것은 사막입니다.
그런 사막(광야)을, 제가 계속 창밖으로 응시하노라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제 귀에 들립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외로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외치는 전도자의 목소리..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제 체험으로는, 또 다른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어봐서 알 것 같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광야에서.. 외치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데,
그것은 광야 자체가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빨리 가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해 주세요. 그래서 속히 주님이 오시게 하소서.
그래서 바짝 메마른 사막과 광야 같은 우리도, 꽃 한 번 피워보기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선교사역은, 결국은 한 가지 목적을 지향해야 합니다.
사역을 위한 사역도 아니요,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하루라도 속히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서
우리 예수님이 속히 재림하시고,
그래서 눈물 흘리고 고통당하는 영혼들의 구원은 물론이고,
함께 고통당하고 있는 만물을 구속하고, 회복시켜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시대를 분별하고 있다면,
이런 목적성을 가지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주님의 재림의 길을 예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물의 구속
주님이 하루라도 빨리 오셔야, 영혼들이 구속redeem되고, 만물들까지 구속됩니다.
주님이 하루라도 속히 오시려면,
우리들이 하루라도 속히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해야 합니다. 마24:14
▶제가 존경하는 중국의 어느 사역자가 있습니다.
제가 급하게 의논할 일이 있어서, 새벽 3시에 그 분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OOO박사님, 저는 다니엘입니다. 제가 실례지만 지금 좀 댁으로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그 박사님은, 연세가 많으신데, 제게 오직 한 가지 질문만 하십니다.
“형제님,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새벽 3시에 우리 집에 오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의논할 일이, 그 대화 내용이
주님이 이 세상에 하루라도 빨리 오시는 그 일과 어떤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까?”
그 재림을 앞당기는 일과 연관이 있으면, 새벽 3시라도 달려오고,
그 일과 별로 연관이 없으면, 아예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 분은 그 기준을 ‘주님의 재림’과 관련지어, 판단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관점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나도, 주님의 재림과 관련해서,
그 어떤 것은 하게 되고, 그 어떤 것은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분명한 판단기준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선교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정말 이루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내 안에 그 뜻이 공유되었는지.. 점검하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 같이 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재림하시는 주님과 연관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내려놓을 수 있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저와 여러분은, 시대를 분변하고 있지 못하는,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인 것입니다. ☞사40:3~11, 주의 길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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