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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의 새 하늘과 새 땅

LNCK 2012. 9. 27. 14:56

◈이사야서의 새 하늘과 새 땅          사65:17~66:24         11.02.27.설교스크랩

 

※이사야서 60장, 62장은 ‘새 예루살렘 성’

본문 이사야서 65장 17절 이하와,  66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60~66장 전체가, 계시록처럼, 종말론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사65:17~이하만 다룹니다)

 

계시록 21~22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 성’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잘 이해하려면,

이사야서 60~66장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쓴 것은,

-그가 본 미래적 환상도 분명히 있겠지만,

-대부분 구약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편집’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짜깁기’

 

정리하면,

오늘날 우리는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 성’이나, ‘새 하늘과 새 땅’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이루어질 <미래 종말론적 환상>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예언은, 2중, 3중적 성취가 있으므로,

우리는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 성’과 ‘새 하늘과 새 땅’을

<21세기 현재, 오늘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환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 성’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새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물론 종말에, 그리스도의 재림 때,

‘새 예루살렘 성’이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전히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 현실에 ‘새 예루살렘 성’과, ‘새 하늘과 새 땅’이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래 설교문은, 현재 지금 내 현실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새 예루살렘 성’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것이 중요한 것은,

지금 현실에서 이게 이루어져야.. 나중에 종말에도, 이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지금 현실에서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종말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서의 ‘성벽 재건’도, ‘새 예루살렘 성’과 같은 관점입니다.

느헤미야서의 주제는, 토목공사보다는, <무너진 성도>들을 새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서=사60장 새예루살렘 성=계21장 새예루살렘 성>.. 모두 일관된 관점입니다.

 

 

▲설교 시작/ 도입 예화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잘 살아 보고자 한참 몸부림치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소득이 2천불로서 필리핀이나 북한보다 못 살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새마을 운동을 벌이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서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아침마다 동사무소에서 “새마을 노래” “잘 살아 보세” 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우리도 잘 사는 나라, 마이카 시대, 사회복지와 보장이 잘 되는 시대를 꿈꾸었습니다.

그렇게 선진국이 되면, 새 하늘과 새 땅, 전혀 새로운 세계(신천신지)가 열릴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일인당 국민소득 3만불에 육박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림픽도 개최하고, 월드컵도 치루고, G20 의장국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새 하늘과 새 땅, 신천신지에 도달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걱정근심이 가득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는 세계 10권에 육박하지만, 행복지수는 103위라고 합니다.

이를 볼 때에 우리가 꿈꾸어야 할 진정한 신세계는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의 메시지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나라입니까?

 

 

◑1. 새 하늘과 새 땅은, 죄 문제가 해결되어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새 창조를 의미합니다.  (사65장17절 이하)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65:17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힘든 포로생활을 했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물질과 쾌락을 사랑했던 죄 때문에

이방 땅에 가서 비참한 포로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죄는 이처럼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제 복역의 기간이 끝났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새롭게 새 역사를 시작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들이 새 예루살렘을 건설하여라”

“너희들이 너희들의 힘으로 새 역사를 창조해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내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되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65:17~18절에 ‘창조’란 단어가 3번이나 나옵니다.      <17~18절>

창조는 무엇입니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새 것을,

이전 것을 다 무시하고 새롭게,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건물마다 리모델링 remodeling 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원래 영어는 renovation

디자인을 바꾸고 새로 인테리어를 하면, 전혀 새로운 건물인 것처럼 새로워 보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성형수술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얼굴을 리모델링 하는 것입니다.

얼른 보면 예뻐 보이고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remodeling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속은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건물내부, 속사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창조’는 creation입니다. 새 창조, new creation,

속이 다른 사람,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 근본이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이사야서를 공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많은 문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죄 문제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종교적 위선과 우상숭배, 성적 타락과 부정부패,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이기심과 탐심, 처녀들은 아기죽거리며 형제들을 유혹하죠.

형제들은 대낮부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고 흥청거립니다.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하고 병들고 터지고 멍들어서 성한 데가 없습니다.

 

자기들이 뭔가 새롭게 시작해 보고자 해도 죄문제가 너무나 심각해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새롭게 창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전에 죄와 수치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생각하지도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기록은 완전히 말소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인 은혜로 그들의 과거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씻어 주시고

새 이스라엘을 창조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새 예루살렘, 새롭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인 쳐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허물투성이인데,

우리가 행한 것은 죄 뿐인데 주님은 전혀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과거의 허물과 죄는 다 지워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새 출발을 하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고,

새롭게 창조해 주시고, 새롭게 세워 주십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의 죄와 허물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의 누더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바꿔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In Christ.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 새 창조입니다.

 

요즘 중동지방을 보면,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 있습니다.

부패한 정권만 무너뜨리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오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라는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민주화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30년 전, 이란처럼, 회교근본주의 세상이 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정말 새로운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속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

 

성령으로 거듭나야 새 하늘과 새 땅, 새 창조,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고 성부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 성자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성령 하나님의 폭발적인 능력으로만이 가능합니다.

 

눅19장에 나오는 삭게오를 보십시오.

그는 여리고의 세리장으로서 공인된 죄인이었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소망을 둘 수 없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뒤집고 들어갔지만, 아무도 들은 체 하지 않았습니다.

모른 체하고 뒷발로 그의 무릎을 차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뽕나무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도 소망을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세리장이니까 안 돼, 동족의 피를 빨아 먹은 매국노니까 소망이 없어”

그렇게 잘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게오를 특별히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삭게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예수님은 그의 과거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이전 일들을 기억하거나 생각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일방적인 은혜로 그의 집을 심방해 주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악명 높은 세리장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 쳐 주셨습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창조해 주신 것입니다.

삭게오의 인생에 새 하늘과 새 땅,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납니까?  <18~19절>

65:18~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이 두 절에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6번이나 나옵니다.

주 안에서 거듭난 삶,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며, 새 창조가 이루어진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됩니다.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삭게오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의 인생에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자 너무나 기뻐서 외쳤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로 갚겠나이다(눅19:8)”

 

삭게오는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비밀통장을 깨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피같이 아끼던 재산을 얼마든지 나누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 마음에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외적인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고 성형수술을 해서, 미남 미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내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죄 문제가 해결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합니다.

교회는 그냥 건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죄인들을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새 창조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도 경찰서 100개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한 개 세우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실로암 안과 원장이신 김선태 목사님의 간증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은 『땅을 잃고 하늘을 찾은 사람』입니다.

그는 아홉 살 때 6.25 전쟁와중에 수류탄이 터지면서 부모도 잃고 두 눈을 잃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맹인에 고아,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가 동냥을 다니면서 수많은 욕설을 들었습니다.

“재수 없는 놈, 급살 맞아 죽을 놈, 벼락을 맞아 죽을 놈”

그는 자신의 슬픈 인생을 저주하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 없이 자살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 찾아오시고 용기를 심어 주셨습니다.

“죽지 마라. 네가 자라서 옛 이야기를 하면서 살 날이 올 것이다”

 

그는 눈이 멀어서 땅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만나서 하늘을 찾게 되었습니다.

육의 눈은 닫혔지만 영의 눈,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모든 슬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는 마침내 모진 인생길을 헤치고 나아가 실로암 안과 원장이 되었고,

3만 2천명에게 개안수술을 시켜주는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무엘하 9:8절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그는 정말 전쟁고아, 맹인거지로서 죽은 개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안과병원 원장에, 신학, 철학, 목회학 박사 등

3개의 박사학위까지 받고,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지만, 항상 웃음과 유머와 재치,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목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에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전에 슬프고 고통스러운 과거와 인간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이전에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부끄러움과 수치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새 창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새 창조의 감격과 기쁨은 일회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는 날 동안 계속됩니다.

우리의 내면이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기쁨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날마다 날마다 새롭도다.’ ‘날마다 날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날이 갈수록 내면이 더 성숙해집니다.

날이 갈수록 더 영이 깨끗해지고 맑아지고 순수해집니다.

 

우리 시니어목자님, 사모님들을 보십시오.

해가 갈수록 더 소녀틱해지고 소년같이 되지 않습니까?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됩니다(엡4:13).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되어가는 기쁨입니다.

 

65:20절에 보면                                             <20절>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살던지

노인이 없게 되고, 백 세에 죽는 자는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노아시대 이전에 사람들은 수 백년은 기본으로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969세, 노아는 950세를 살았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죄 문제가 해결 되기 때문에 에덴이 회복되어서,

죽음의 고통이 없고 다 오래 삽니다.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서 살겠고,           <21절>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대적들로 말미암아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에는, 대적들이 없기 때문에, 평강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셨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과 안식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24절을 봅시다.                                       <24절>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금방금방 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의 장벽이 무너졌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소통이 금방금방 이루어집니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는 마음과 마음이 연락된 친밀한 사이가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만 회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25절을 보십시오.                                <25절>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인간의 타락은 자연세계에도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 뱀에는 독이 없었습니다.

사자도 이리도 전혀 강포하지 않았습니다. 다 초식 동물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생태계가 파괴되고, 서로 물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요즘(2011년 1월) 구제역 파동으로 3백만마리의 가축들이 도축되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얻고자하는 인간의 탐욕의 죄가

동물들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이런 재앙을 가져 오게 한 것입니다.

이런 재앙으로 지하수가 오염된 큰 비극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면 만유가 회복되어서

자연세계에도 평화가 오게 됩니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겸상을 하게 됩니다.

“이리 형제님, 오늘 아침 일용할 양식 드셨어요?”

“어린 양 자매님, 소감을 쓰셨나요?”

 

이리와 어린 양이 서로 일용할 양식, 소감을 발표하며 합심기도를 하게 됩니다.

사자와 소도 으르릉 거리지 않고 사자가 소의 등을 긁어주고,

소는 사자의 갈기를 핥아주는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에서는 기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합력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와 리비아의 가다피같은 독재자가 사라지고

전쟁과 테러와 기근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더 이상 지진이나 쓰나미, 홍수, 폭설이 없는 세상,

해함도 상함도 없는 여호와의 성산에서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새 하늘과 새 땅은 세상 만민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게 됩니다. (사66장)

 

66: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66:18>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죄로 말미암아 바벨탑 사건 이후, 온 세상 만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신을 섬기며 싸우고 분열하였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이

다 나아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66:20절에 보면 뭇 나라에서 여호와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나아와    <66:20>

하나님께 예물을 바친다’고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레위인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성경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66:23절을 봅시다.                                             <66: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모든 혈육.. 이스라엘+이방을 포함한, 모든 세상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생들이

안식일에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지 않고, 헛짓하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하나님의 보살핌 가운데 살았으면

당연히 하나님께 나아와 감사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고 한 주간을 살 수 있는

은혜와 영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잖습니까?

 

주일날 예배드리지 않고, 늦잠 자고 방에 누워서 TV나 보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마음아파 하십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 나라에서는, 한 사람도 예배에 빠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모든 나라, 모든 백성, 모든 민족이 다 하나님 한 분을 예배하며 찬송하며 섬기는

예배공동체가 회복됩니다. 거기에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배를 참으로 소중히 여기고, 한 사람이라도 더 예배에 초청해야 하겠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에 힘쓰는 성도가, 바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고, 하나님과 동역하는 성도입니다.

엇박자가 아니라요.

 

◑3.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악인들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66장)

 

66: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66: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를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이사야서의 마지막은 놀랍게도 심판에 대한 경고를 끝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거저 구원 받고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 교만한 자, 패역한 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66:15,16절도 보십시오.                               <66:15~16>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 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 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을 당할 자가 많으리니”

 

우리는 하나님을 무골호인으로 알고, 함부로 교만을 떨어서는 안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창조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 악인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계시록21:8절에서도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새 하늘과 새 땅은 천국에 가는 사람과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에서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지금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상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셔서 어찌하든지 구원하시고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회복하시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새롭게 창조해 주십니다.

이 새 창조의 역사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4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날에 우리는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느라고 수고하고

애쓴 땀과 눈물을 다 닦아주실 것입니다.

 

해됨도 상함도 사망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을 누리며,

이 기쁨을 모르는 양들에게

이 천국의 기쁨과 감격을 힘써 증거하는, 천국의 전파자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