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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도 응답이다 3691

LNCK 2012. 7. 8. 21:12

◈내가 기도 응답이다               느1:11                스크랩 글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1:11


어린 시절 ‘리빙스턴의 헌금통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헌금을 하는 시간에, 뭔가 드리고 싶지만

가진 게 없어서 드릴 수 없게 되자 어린 리빙스턴은

자기 앞에 돌아온 헌금통에 자기 몸을 실어 넣었습니다.


비록 헌금통이 작아 겉으로는 철없는 아이가 헌금통을 깔고 앉게 된 모습이었지만,

그래서 어른들께 돌아가며 야단을 맞았지만, 그것을 받으신 주님께서는

훗날 그를 아프리카를 구원하는 선교사로 사용하셨습니다.


리빙스턴 자신은, 그날 모든 사람의 기도 응답이, 자기일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고 기도를 하지만

실제 본인이 응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잘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에 비해 응답이 적은지도 모릅니다.


이미 주셨음에도 받지 않은 것처럼 사는 바에는

응답 받을 길은 영영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직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내 자신이 응답이 되기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즉 기도한 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그 기도는 단지 기도로만 끝나고 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끝났습니다.

짧지만 전 생애를 걸고 벼랑 끝에서 드린 듯한 기도였습니다.


그래 놓고 그는 이 기도를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것과

한 묶음으로 드렸습니다. 느1:11


자기 뿐 아니라, 같은 제목으로 함께 구하던 이들의 기도를 함께 모은 것입니다.


유다 사람들 중 누가 과연 그 같은 기도를 드렸을까 싶지만

어쩌면 그것은 곧 이어 벌어질 대역사에 뜻을 같이하기를 바라는

동족에 대한 희망사항일수도 있었습니다.

그의 겸손은 언뜻 트인 구름 사이를 뚫고 내비치는 햇살처럼 빛납니다.


그런 기도에 대한 선물이었을까요?

그가 세워 두었던 영혼의 안테나에 어떤 영적 전파가 잡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위해 직접 나서기로 다짐합니다.. 


기도는 사람을 통해 응답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결의 당사자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그러면 그 일은 한 순간에 모두 끝나고 맙니다.


기도는 거의 그렇게 응답되지

하나님이 직접 당신의 큰 손을 직접 드시는 경우는 좀처럼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고국의 형편을 듣고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주님은 이미 그에게 아닥사스다 왕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성벽재건을 위해서는 그의 허락이 떨어져야 될 뿐 아니라

그의 원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가 할 일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순차적으로 그 일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우선 왕과 그 계획에 관한 일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이 잘못되면 그에겐

오히려 이 일이 인생 최대의 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중하고도 섬세하게 접근해야 될 일이었습니다.

그의 지혜가 가장 돋보여야 할 시점이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그 사람이, 응답에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은 사람에겐, 해답도 없는 법입니다.


성벽의 재건은 느헤미야 자신의 신상과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부담을 느꼈고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방법을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모든 정황을 볼 때, 느헤미야만큼 이 일에 적합한 사람도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그를, 미리 왕궁에 심어 놓으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즉 일을 성사시킬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과 부담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하면

응답은 바로 기도하는 그 사람을 통해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게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입니다.


관심이 가고 부담이 가는 기도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본인의 사명입니다.

언제까지나 제쳐 놓고 미룰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의 복과 은혜의 통로가 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릴 기회입니다.


아울러 그것은 사명자로 나서는 계기가 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영광의 길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과정 전체가 본인에게 복이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자꾸 눈이 가고 관심이 가는 일이 있다면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일에 당신을 필요로 하십니다.

게다가 부담감까지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기 쉽습니다.


자꾸 도망가기보다는 그 일을 감당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괜히 기도시키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기도든 응답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곧 기도의 응답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우리가 행한 것’에 대해 심판 받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 하나님이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따라 하라   느2:11~15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내 마음에 주신 것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14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와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느헤미야는 지금 자서전을 쓰듯이 자기 얘기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본인이 겪었던 일들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과의 담판 후,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군대의 보호 아래,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에 안착했습니다.


사료를 보면, 이때 함께 돌아온 동포는 42,000 명 정도로서,

이들 역시 고향으로의 귀환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마침내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며,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느헤미야의 대외적 직분은 총독이었지만

그는 성벽을 중건하는데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습니다.


해서 귀환의 감격을 느낄 틈 없이 당면한 문제에 착수해야 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이때도 다시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머무른 지 사흘 만에” 활동을 재개했다는 것은

그 시간이 휴식과 함께 모종의 준비 기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관한 전체 청사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한 장 한 장씩 써 갔던 성경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매번 하나님의 지시를 받을 수 있었을까 궁금해 합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매사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고,

곧 기도마다 응답을 받은 후에야 행동에 나섰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에게도 기도할 때 마다 매번 주님의 음성이나 확실한 표적이나

아니면 응답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상 현상을 통해,

그 증거를 보여 주셨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지금 우리에겐 그런 응답은 참으로 드뭅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분명히 “내 마음에 주신 것”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my God had put in my heart to do for Jerusalem 느2:12↑

그렇다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내 마음에 주신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확실히, 기도를 아무리 오래 하고 자주 한다 해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음성이나

기적을 통해 이것이 응답이다 보여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그 점에 있어서는, 우리 믿음의 조상들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어떻게 매번 직접 나타나시거나

음성으로 답하시거나 표적을 보여 주셨겠습니까?


역시 답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생각이나 사안에 따른 그림(계획)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기도를 거듭할수록, 잔가지들은 쳐져 굵은 가지만 남게 되고,

그림은 더 진하고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것이구나 하는 확신이 듭니다.

바로 그게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주신 것은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되는 데는, 분명히 성령님의 개입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께선 우리에게 주신

지(知),정(情),의(意)를 성령님의 개입 하에 작동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속의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아울러 응답은 계속 진화합니다.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을 예로 들자면, 아마도 주님은 그 모든 공정을

한꺼번에 확실하고 완벽하게 보여 주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을 해 나가면서 계속 고쳐 주시고 바꿔 주셨을 것입니다.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항로는 끊임없이 맞춰나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달에 우주선을 쏠 때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해서 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적당히 방향 맞춰 쏘고 나서, 가는 도중에 컴퓨터로 계속 방향을 조절 해 줍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다루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완벽하게 계획된 길을 가기 보다는,

방향만 올바르면, 가는 길에 작은 오차는, 차츰 계속 수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 또 하나 있습니다.

기도도 했고 마음으로 이것이구나 하는 믿음이 들어왔는데도

우리는 실제 행동에 앞서 또 한 번 ‘이게 정말 맞나?’ 주춤거리게 됩니다.


그냥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실제로 우리가 우려한 대로 ‘이게 아닌 것 같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그런 경우엔 성령님이 어떤 모양으로든 막아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또 기도하고, 계속 맞춰 가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기도 자체의 힘과 성령님의 인도와

이마고 데이(하나님의 형상)로 창조된 우리 속의 지정의를 믿으십시오!


즉 기도 끝에 생겨지는 내 속의 생각대로 먼저 부딪쳐 보십시오!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 한다는 전제가 있는 한,

기도 중에 어떤 변수가 생겨도 그것은 막막해 할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사흘 째 되던 밤, 느헤미야는 두어 사람의 보좌관만 데리고 현장을 답사합니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처참했습니다.


손을 덜어주리라 기대했던 주추들은, 골짜기로 무너져 내린데다

다시 쓸 수 있으리라 예상한 바위들마저 산산 조각이 나 흙에 덮여 있었습니다.

성벽을 순회하는 길 또한 수풀에 덮여

왕의 못과 샘문 가는 길 앞에서 끊겨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성벽은 뭐 하나 건질 것 없이 완전히 파괴됐고

성문마저도 불 타 없어졌습니다.


일순 산꼭대기에다 십 리 가까운 성벽을 둘러야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대공사에 난공사였던 것입니다.


그 밤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현장을 다녀 온 느헤미야의 심중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래도 느헤미야는 지금까지의 인도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낙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또 주님 앞에 무릎 꿇었을 것이고

그 기도 끝에는 다시 성벽을 쌓을 열정으로 불 타 올랐을 것입니다.


우리의 느헤미야는 주님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따라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내 마음에 할 일을 주실 것입니다.

그 동안 해 왔던 일들은 더 선명하게 인도하실 것이고

새로이 할 일 또한 흐릿하게나마 보여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믿고 오늘도 그 결대로 기도해 나가십시오!


그렇게 기도한 “내 마음에 주신 것”은 느헤미야의 그것처럼

나의 전후좌우와 사방팔방을 막는 견고한 성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나님이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따라 확고하게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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