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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크리라

LNCK 2012. 10. 15. 14:23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크리라     학개2:6~9    12.09.23.설교일부녹취

 

                                                       

오늘날, 일부 성도들은,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말세에 나타날 교회는, 회복된 교회, 승리하는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호 ☞ 말세에 준비된 교회가 반드시 있습니다  에 이어서,

그 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포로귀환 당시의 성전보다, 신약(초대)교회의 영광이 더 클 것이다.

 

본문 학개서는, 바벨론 포로귀환 후에, 허물어진 성전을 새로 지을 당시 쓰여진 성경이다.

 

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구절은,

그 당시 포로귀환 당시 성취된 약속만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위 학개의 예언은, 장차 되어질 <신약교회의 영광>을 예언한 것이다.

 

앞서 학개서2:1~4절을 살펴보면,

그 당시 성전을 짓는 것을 두고, 귀환한 유대인들이 낙심하니까,

학개가 그들을 격려하는 예언을 시작하는데..

 

이 학개서의 예언의 말씀은,

(그 당시 스룹바벨 성전의 건축에 관한 예언이라 하더라도, 이중예언으로 볼 때)

결국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영광스런 주님의 교회에 관한 예언이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유대인들은,

제일 먼저 성전 건축부터 시작했는데,

그들이 무너진 터 위에, 새로 지은 성전은,  소위 스룹바벨 성전

이전 시대, 솔로몬 성전의 영광과 비교해 보면, 정말 초라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늙은 노인들은,

실망하거나,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규모가 과거보다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학2:3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에스라3:12

 

이런 실망한 상황에서, 학개는,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예언한다.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일부 사람들은, 학개의 이 예언이,

예수님 시대의 헤롯 성전 때를 예언하는 것으로 본다.

스룹바벨 성전의 연장선상에 헤롯 성전이 지어지는데,

그 영광이,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더 휘황찬란 할 것을.. 예언한다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그 (헤롯)성전의 규모가 사실 어마어마했다.

예수님이 계실 때 예루살렘 성전은, 바로 포로귀환 후 스룹바벨 때 지어진 성전을

당시 건축광이었던 헤롯 왕이, 게다가 그는 이방인 이두매 사람인데,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성전을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지성소가 있고, 성소가 있고.. 그 건물은 그대로 놔두고, 이건 건드릴 수 없으니까

그 밖에 외부 건물을 크게 세웠다.

 

그래서 성전을 짓기 위해서, 산꼭대기를 깎았다.

그래도 터가 부족하니까 (산꼭대기는 넓지 않으니까)

엄청난 기둥들을 아래에서 지지대로 받쳤다.

그래서 산꼭대기의 터를 넓힌 것이다.

 

그래서 만든 (헤롯)성전 뜰은, 가로1.6km x`세로1.6km이었다.

그 성전 뜰에는, 사람이 빼곡히 들어가면, 50만명 이상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성전을 크게 지은 것이다.

(과거에 서울 여의도 광장의 약 3배 규모 이상이라 보시면 되겠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을 보시고,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겠다고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대로 실제로 그 성전이 파괴되었는데, AD70년 로마 침공시

예수님 생존 당시까지도, 그 성전의 증축 공사가 계속 진행 중이었다.

그만큼 화려했다는 뜻이다.      *BC20년 경에 성전 증축공사 시작 ~ AD63 완성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 처음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학2:9

라는 예언이, 헤롯 성전에서 성취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

이 학개 2:9의 예언은, 신약교회의 영광을 의미한다.. 는 것이 설교의 논지이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그 외적 규모로 보면, 크고 화려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께 자랑하고 놀라워했지만,

예수님은 정반대로 말씀하셨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그럼 학2:9절은 뭘 말씀하느냐?

일단 신약시대의 교회의 영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말세시대의 교회의 영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이 내용은 아래 단락에서 살핌

 

학개서와 동시대에 활동했고, 동시대에 쓰여진 스가랴서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슥5장만 하더라도, 메시야를 ‘순bud’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메시야를 통해서 세워질 진정한 의미의 성전에 대해서, 스가랴서가 예언하고 있다.

 

학개서와 스가랴서가 ‘스룹바벨 성전 재건을 통해’ 예언하는

메시야로 통해서 세우질 진정한 의미의 성전은.. 바로 신약(초대)교회를 가리키며,

더 나아가 그것은.. 종말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

 

그래서 이 구절만 하더라도,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는 말씀은

보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세워질, 신약 교회의 영광에 대해서 말씀한다.

*종말시대의 교회도, 결국은 신약교회에 포함된다. 신약교회는 종말시대의 교회인 것이다.

 

이 설교의 주제는, 오늘날 일부 성도들은,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말세에 나타날 교회는, 회복된 교회, 승리하는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본문 학2:9절이 그렇다는 것이다.

 

◑2. 초대교회의 영광보다, 말세 교회의 영광이 더 클 것이다.

 

지금 학개2:9절의 예언 ‘성전의 영광이 이전보다 크리라’를 살피면서,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위 구절의 논지에 근거해서

지금 종말교회의 영광만 하더라도,

이전 초대교회, 사도행전적 교회의 영광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말세의 교회가, 계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초대교회/사도행전의 교회보다 더 타락하는 면도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말세의 교회가 더 회복되어지고, 그 영광이 초대교회보다 더 크게 되는 면도 있다.

둘 다 고려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롬11장을 근거로 그렇게 볼 수 있다.

롬11장에는, 사도바울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기록하고 있다.

 

롬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래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물론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 중심으로 먼저 세워졌지만,

안디옥 교회를 통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점 이방인 중심으로.. 교회가 확산되어나가기 시작했다. 사도행전을 보시라.

 

유대인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핍박해서 죽였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유대인을 향한 계획은 끝났는가?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다 끝났느냐고, 바울은 묻는다.

바울은 자문자답하는데, ‘절대로 그럴 수 없느니라’이다. 롬11:1, 11

 

롬11:11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그러면서 저들의 넘어짐이 이방인의 충만함이 되었다면,

저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은, 얼마나 더욱 더 충만하게 되겠느냐?

이렇게 말씀한다.

 

롬11: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여기 보시면, 초대교회의 역사보다,

나중에 되어질 말세 교회의 역사가,

더 영광스러울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말세에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뿐만 아니라,

즉, 겨자씨 비유의 나무가 점점 더 커질 뿐만 아니라

더욱이 유대인까지 돌아오게 되니까..

말세지말 교회의 영광이, 초대 사도행전적 교회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이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 일이 말세지말에 일어날 것이다.

 

지금 현재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에는, 복음주의 교회가 적어도 1개 이상씩 세워져 있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때,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도 회복될 터인데,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표현된 것처럼, 롬11:26

대규모의 유대인의 회심이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즉, 이렇게 나중 교회(말세 교회)의 영광이,

초대교회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는 논지를.. 설명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교회의 상태, 또는 미래 교회의 상태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시고 (그건 일면만 보는 것임)

현재도 그렇고, 미래가 되어갈수록,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예비해 나가실 것이다.

 

그 미래 교회의 회복은, 아마 이럴 것이다.

    1. 전례 없이 주를 깊이 아는 교회

    2. 전례 없이 주를 사랑하는 교회

    3. 전례 없이 거룩한 교회

    4. 전례 없이 하나되는 교회

    5. 전례 없이 강한 능력의 교회

 

우리 각자가, 그 대열에 초청 받고,

그 구속사에 동참하는, 깨어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란다.

 

..............................................

 

◑절별 해석

학2: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칠 월 그달 이십 일 일'은 학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날이었다.

이것은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시작하기로 한 날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난 때였다(1:15).

 

'칠 월 이십 일 일'은 추수를 마치고 지키는 절기인 장막절의 마지막 날이다.

(출 23:16,  레 23:33-36) 그날은 추수를 마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인 날이었다.

바로 그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학2: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는...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 본절은 학개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대상

들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남은 백성'은 1:12, 14에 나타난 '남은 바 모든 백성'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학2: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백성들 중에는 아주 어렸을 적에 그 웅장하고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이 극히 

드물었다. B.C.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귀환한 유다 백성들 가운데 

노인들 중 몇몇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학개의 독려로 한 달 동안 세운 성전은 솔로몬성전과 비교할 때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재건한 성전을 보면서 실망하였던 듯하다.

왜냐하면 학개가 백성들에게 본절에 나타난 세 가지 수사학적 질문,

곧 '이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를 통해서

이전의 솔로몬 성전과 비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의 기록에 따르면 재건된 성전에는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서 5가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1)재단의 거룩한 불, (2)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세키나(Shekinah),

(3)법궤와 그룹, (4)우림과 둠밈, (5)예언의 영이다.

 

탈무드의 기록처럼 이러한 것들이 빠져 있는 성전을 본 유다 노인들은 저으기 실망하였으며

그 동안 재건을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물거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학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학개는 재건한 성전이 형편없이 초라함을 보고

 실의와 좌절에 빠진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 대상은 여전히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그리고 이 땅 모든 백성, 곧 남은 백성들'이다. 

 

위로의 말인 '굳세게 할지어다'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갈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보증이 되심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동일한 권면을 세 번 반복한 이후에 주어진 명령인 '일할지어다'는 이전에 백성들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성전을 재건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열심을 다하지 않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백성들이 굳세어져서 일해야 할 이유이다(신 31:6, 8).

한편 '만군의 여호와의 말'은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할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보증이다.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등을 사용하여

반드시 자신이 백성과 함께할 것임을 강력하게 보증하여 주셨다.

학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두려워 하지 말지어다'는 앞절에서 세 번이나 언급된

 '굳세게 할지어다'와 유사한 명령이다.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두 가지이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 

이 부분은 70인역과 영역 성경 NEB에서도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맛소라 본문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학개와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조상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것을 연상하였을 것이다.

 

한편 '언약한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앞절에서 언급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와 연결된 듯하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시 이스라엘에게 함께할 것을 약속하셨다.

(출 19:5,6,  34:10,11,  신 12, 5,11,21,  14:23,  16:6,11,  26:2)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머물러 있나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메데트'는 분사형으로 과거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함께 있을 것을 뜻한다. 백성들과 함께할 '나의 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은 하나님을 즐겁게 할 계시와 능력의 영으로서 백성들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며 맡겨진 사명을 잘 완수할 수 있도록 하신다.

학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조금 있으면...진동시킬 것이요' '조금 있으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드 아하트 메아트 히'는 

문자적으로 '다시 한번 조금 있으면'이다. 이것은 종말론적 어구로서 짧은 시간을 가리킨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이 역사적으로 곧 임박할 어떤 사건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

역사적으로 그것과 연결될 만한 명확한 사건의 부재로 인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것은 도리어 그리스도의 도래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견해를 반대하는 자들은 '조금 있으면'이 짧은 기간을 가리키기 때문에

수백 년 후에 있을 그리스도의 도래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천 년'도 하루처럼 짧은 기간일 수 있으며

'하루'도 천 년처럼 길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반대 근거는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시 2:12).

 

한편 그때에 온 우주가 진동하게 될 것이다. '진동시킬 것이요'는 지속적인 진동을 나타낸다.

우주적 대진동은 하나님의 역사와 개입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여호와의 날에 우주적인 대변동이 일어날 것이며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온 세계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히 12:26에서도 역시 나타나는 바, 그리스도의 도래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학2: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전에 충만케 하리라' 

'보배'(헴다트)는 문자적으로 '열망' 또는 '사모하는 것' 혹은 '귀중한 것'을 가리킨다. 

이에 대한 해석은 두가지이다.

(1)혹자는 이것이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전에 임하실 때 온전한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2)혹자는 이것이 은과 금과 같은 귀중한 것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70인역).

즉, 만국이 가져오는 재물로 지은 하나님의 성전의 영광이 이전의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울 것임을 시사한다(9절).

 

전자의 견해를 반대하는 후자의 학자들은 '만국의 보배'가 단수인 반면

'이르리니'가 복수라는 점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사실상 '만국의 보배'를 집합 명사로 이해할 때 이것은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자의 견해가 옳고 후자의 견해가 그르다는 것은 아니다.

후자는 문맥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다음 절에서 '은과 금'이 언급되고 있으며  사 60:5에서 열방이 재물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서로 병행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나 한 가지 흐름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성취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도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본 구절의 '보배'를 그리스도로 해석하든 재물로 해석하든 간에

그것은 기독론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때가 이르면 열방들은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바라보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 재물을 가지고 오게 될 것이다.

학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이것은 궁핍함과 곤고함에 빠진 유다 백성들에 대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종말에 하나님께서 모든 주권을 행사하실 것임을 시사한다.

학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이곳에'는 성전을 의미한다.

성전에 임할 '평강'은 궁극적으로 내적, 외적인 안녕과 번영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약속하신 평강은 종말에 있을 평강의 왕이신(사 9:6) 메시야의 시대,

메시야의 왕국에 이루어질 것이다.

학2:10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2:1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한 때인 '구월 이십 사 일'은 유다 백성들이 학개의 선포를 듣고

성전 건축을 시작한 지 삼 개월이 지난 때였다(1:15).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해 제사장들에게 물어보도록 명하셨으며

그 질문을 통해서 축복을 받지 못했던 과거 유다 백성들의 정체에 대해 밝히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신의 짐을 더 화려하게 꾸몄으며

하나님보다 자신의 안위와 평안을 더 추구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아무리 수고하여도 열매를 얻지 못하였다.

학2: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학2:13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던진 두 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질문은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의 문제였다.

'거룩한 고기'는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

그것을 옷자락으로 싸거나 혹은 기름이나 다른 식물이 거룩한 고기처럼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시체를 만져 부정해진 자가 기름이나 다른 식물을 만졌을 경우 기름이나

다른 식물들은 부정하게 된다(레 22:4-6,  민 19, 11-16).

다시 말하자면 성물은 거룩한 것을 다른 것에 전달할 수 없으나 부정한 것은

부정을 다른 것에 전달하게 된다. 학개를 통한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제사장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정확한 대답을 하였다.

학2: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본절은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해 제사장들에게 질문했던 목적을 나타낸다.

여기서 '백성'과 '나라'는 히브리어에서 종종 사용되는 반복법이다(습 2:9).

 

유다 백성들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앞에서' 악을 즐겨 행하는 자와 같았다.

그들은 앞서 지적된 바와 같이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꾸미기를 즐겨하였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자세는 결국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에서도 의식적으로는 완벽했을지 모르나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곁을 떠난 상태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의식적인 희생 제사보다 하나님의 윤리가 실행되는 생활이었다(렘7장).

인애와 자비가 동반되지 않은 희생 제사는 희생 제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학2: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 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이제 청컨대...때를 추억하라' '이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에라'는 미래를 의미하기도 하고 

과거를 나타내기도 한다. 전자를 주장하는 자들은 본절의 '마에라'가 18,19절에 언급된 

미래의 축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한편 후자를 주장하는 자들은 그것이 처음에 성전 재건을 중단하였던 때이며

수고하여도 소득을 제대로 얻지 못하던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한편 '추억하라'는 '세심하게 살펴보아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유다 백성들은 과거에 왜 자신들이 수고한 것에 대한 열매를 얻지 못했는가에 대해 살펴보고

상고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평안과 안녕을 추구했던 바로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다.

학2:16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그 때에는'은 유다 백성들의 과거를 의미한다.

그들은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그 결과는 항상 신통치 않았다.

'이십 석'과 '십 석', '오십 그릇'과 '이십 그릇'은 유다 백성들이 자신의 평안과 즐거움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으나 그에 걸맞는 열매를 얻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예증이다.

학2: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너희가 내게로 돌아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은 그들이 열심히 땅을 일군 땅의 열매, 곧 곡식과 포도, 

그리고 각종 과일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들이 수고한 만큼 열매를 얻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징계였다. 

 

하나님의 징계의 수단 중에서 '폭풍'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으로 곡식이나 

나무를 마르게 하는 것이었으며, '곰팡'은 농작물이 누렇게 변하여 죽게 하는 

백분병을 가리킨다. '폭풍'과 '곰팡', 그리고 '우박'은 농작물에게 절대적인 해를 주는 것들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유다 백성들을 징계하셨다. 

한편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는 하나님께서 자연 재해를 통해서 

그들을 징계하신 목적을 나타낸다.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멸망시키거나 

고난과 곤고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게 하기 위함이었다.

학2:18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地臺)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以前)을 추억하여 보라...추억하여 보라' 

여호와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세심하게 살펴 생각하라는 의미인 '추억하여 보라'를 

두 번 사용하면서 과거를 돌아볼 것을 반복하여 권면하신다. 

개역 성경은 '구월 이십 사 일'과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을 동격으로 처리하여 

혼란을 주고 있으니 실제로는 '오늘부터'와 '구 월 이십 사 일'이 동격을 이루고 있다.

(From this onward, from the twennty-fourth day of ninth month, RSV,

from this day on, from this twenty-fourth day of the ninth month, NIV).

 

한편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은 성전의 기초를 세우던 날을 가리킨다.

이 날은 개역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학개 당시의 구월 이십 사 일이 아니라

유다 백성이 고레스의 칙령을 따라 귀환하여 처음 성전 재건을 위해 터를 놓았던

B.C.537년을 가리킨다(스 3:6,10,  5:1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과거 18여 년 동안 터만 닦아놓고

재건하지 않았던 때를 돌아보라고 권면하신다.

학2: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종자'는 곡식을 뜻하며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는 나무의 열매를 가리킨다.

여기서 포도나무는 당시 음료인 포도주를 생산하며, 감람나무는 연료, 화장품, 의약품 등에

사용되는 기름을 생산한다.

 

곡식과 포도주, 그리고 감람나무의 기름은 당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재료들이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정했던 그때에는

이러한 기본 생필품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이 학개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하였으며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학2:20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2:21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그 달'은 '다리오 왕 이 년 구 월'을 가리킨다. '그 달 이십 사 일'은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포기했던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한 지 만 삼 개월이 지난 때였으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시고 약속한 날이었다(18,19절).

 

20-23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10-19절에 학개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날에

이루어진 것이나 말씀을 듣는 청중이 다르다.

10-19절은 제사장들에게 던진 질문을 통해 유다 백성들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나

20-23절은 오직 스룹바벨에게만 주어진 것이다(21절).

 

한편 70인역에서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앞에 '스알디엘의 아들'(톤 투 살라디엘)이라는 표현이

삽입되어 있다. 본서 전체에서도 스룹바벨을 언급할 때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아들'이라는 점을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1:1,12,14,  2:2,23).

학2:22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본문은 우주적 종말을 나타낸다.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에서 70인역은

'그 바다와 그 마른 땅'(텐 달랏산 카이 텐크세란)을 첨가하고 있다.

이때는 엄청난 변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열국의 왕들은 모두 폐위당할 것이며

병거를 동반한 전쟁을 통해서 열국이 무너지며 파멸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시사한다.

학2: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니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21절에서 스룹바벨을 '유다 총독'으로 부르신 반면 본절에서는 '내 종'이라고 부르신다. 

'내 종'은 다윗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되었으며(왕상 11:13,32,  시 78:70,  렘 33:21-26) 

 

특별히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를 지칭할 때 

즐겨 사용되었던 호칭이었다(사 41:8,  42:1,  49:5,6,  50:10,  52:13,  53:11,  겔 34:23,24,  37:24,25).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때 스룹바벨은 

단순히 당시의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에 다윗 왕조를 이어갈 메시야를 예표한다고 볼 수 있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으로 인한 멸망과 포로 생활로 말미암아 단절되었던 다윗 왕권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영원한 다윗 왕권,

곧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메시야를 예표한다. 한편 '인'은 왕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는 스룹바벨로 예표된 메시야를 통해서

다윗 왕권, 곧 하나님의 나라가 굳건하게 세워질 것을 뜻한다.

이것은 21b,22절에서 언급된 열국의 멸망과 대조를 이룬다.

 

열국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통해서 완전히 멸망당할 것이나 메시야를 통한 다윗 왕권,

곧 하나님의 나라는 도리어 굳게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