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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LNCK 2012. 11. 21. 11:12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약4:1~17         12.02.05.설교스크랩, 출처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약4:8

 

 

▶1절,

사람이 왜 싸우고 다투고 갈등하는 것입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위 말씀은 인간 세상에 발생하는 싸움과 다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싸움과 다툼이란 <사람들끼리 싸우고 다투는 것>도 말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고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설교는, 주로 후자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4:1의 '지체' 단어의 헬라어를 연구해 보십시오. 재미있습니다.

 

야고보는 갈등의 근본 원인이 정욕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정욕이 나의 선한 양심과 싸운다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 쾌락에 대한 욕구, 명예에 대한 탐심 때문에

내 안에서 싸우고 다투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2~3절,

 

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이것이 심해지면,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시기하고 살인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도 말하기를

“모든 전쟁의 근원은 욕심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약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어디론가 열심히 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르고 무조건 달려갑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거룩한 열망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이후 이 거룩한 열망이 더럽고 추한 육신의 욕망,

이기적인 탐욕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형이 아우를 돌로 쳐 죽이고,

가정이 깨어지고, 사람이 육체가 되는 비극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마저도 욕심 때문에 시기하고, 다투고, 서로 헐뜯고,

비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는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3절 말씀처럼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4절, 야고보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뭐라고 책망합니까?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의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 :4

 

여기서 ‘간음한 여인’이란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세상욕심에 눈이 팔려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의 하나밖에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신부로 맞아 주셨습니다.

 

주님은 아예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 하셔서 우리와 항상 동행하기 원하십니다.

영원토록 동거하기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신랑 되신 하나님을 사랑해야죠.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진심을 드려야 하잖습니까?

 

그런데 신랑 되신 하나님께는 전혀 관심도 없고, 세상의 물질과 쾌락에 한 눈이 팔려서

세상과 벗하여, 팔짱끼고 돌아다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너무나 안타깝고 분이 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 앞에서 누구 탤런트가 예쁘고, 누구 연예인이 예쁘다는 말도 못 꺼냅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큰 일 납니다. “저 여자가 나보다 예뻐?”

시기와 질투가 불일 듯 일어나기 때문에 얼른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야만 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아내는 오매불망 저만 사랑하는데

저도 일편단심 아내만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베푸신 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최고의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저버리고 세상을 벗 삼고,

물질과 쾌락을 애인삼아 마음을 빼앗긴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딴 마음을 품으면 그 시기와 질투가 불같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요, 사랑스런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6절,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6

 

겸손한 사람은,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자리에 대한 욕심, 물질에 대한 욕심, 인정받음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을 내는 것은,

모두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오직 은혜는 겸손한 자만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은 교만으로 인한 모든 욕심을 물리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마음에 헛된 욕망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정결한 신부가 될 수 있을지.. 계속 본문을 읽어봅시다.

 

▶7절,

첫째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7

 

사람이 누구에게 복종하는가에 따라서 그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지만, 마귀에게 복종하면 마귀의 종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싸우는 정욕(4:1)에 져서,

자기의 욕심대로 행하는 사람은..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마귀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만,

마귀에게 복종하면 더럽고 추한 죄의 종이 되어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우리 신자들이 구해야 할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의 얼굴>이요, 또 하나는 <마귀의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고,

도망가는 마귀의 등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 하나님은 우리의 사모의 대상이지만

마귀는 우리의 저주와 대적의 대상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Resist the Devil. ‘대적하라’는 것은

그 대상을 미워하고 적극적으로 싸우라는 것입니다.

온몸으로 거부하고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싸우는 정욕’이 있다고 했습니다. your desires that battle within you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유혹이 위험한지는 알지만, 대적하지는 않습니다.

정욕의 유혹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싸우지는 않습니다.

 

똑같이 정욕의 유혹을 받은 요셉과 다윗의 차이가 어떠합니까?

요셉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큰 시험의 강을 건너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사울에 대한 미움과 살인감정,

빨리 왕좌에 앉고 싶은 명예욕과는 그렇게 잘 싸웠는데,

정욕의 유혹 앞에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엡4:27절에 보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대적해야지, 조금이라도 톰을 주면 안 됩니다.

 

옛날에는 집에서 방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었기 때문에 문에

조금만 틈이 있으면 찬바람이 송송 들어왔습니다. 황소바람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우리 눈에는 틈이 보이지도 않는데 바람이 어떻게 알고

그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지 황소바람이 들어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고 조금만 영적 긴장을 늦추고 있으면,

마귀가 어느새 그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궤계를 힘써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identity를 가지고

오직 주님께만 복종하고 마귀를 온 몸으로 대적해서 승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8a절,

둘째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8a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는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골2:7), 주 안에 거함으로(요15:5),

세상 욕심, 마귀가 침투할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신랑신부가 결혼했으면 서로 항상 가까이 해야 합니다.

김 목자님과 룻 사모님을 보십시오. 항상 함께 다닙니다.

낮에 직장에 갈 때와 주일오후에 축구하러 갈 때만 빼고는 항상 세트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부부란 사실을 이 근방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압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주님과 더불어 영적으로 결혼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주님을 가까이 해야죠.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주님과 자꾸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

 

“주께 가까이 더욱 가까이. 가기 원해요. 내 마음. 주님의 모습.

그 아름다운 모습 닮기 원해요. 나의 소망. 내 맘 다하여 내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워-워-워 나의 평생에 주님만을 섬기며 주와 함께 거하기 원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자꾸 오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동역자들을 자꾸 만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어린 양을 가까이서 돕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임들이 사모가 되고, 예배가 기다려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거룩한 열정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점점 내면이 깨끗해지고, 스피릿이 충만하게 됩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힘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뛰어 다니고 날라 다녀도 피곤한 줄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8a

 

세상에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가까이 오셔서 하나님의 측근이 되고,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벗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겨울이 되어서 우리 지구가 태양과 멀어지니까 얼마나 춥고 힘듭니까?

빨리 봄, 여름이 되어서 태양에게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마음이 춥습니다. 사람이 차가워집니다.

싸늘해지고, 냉랭해지고, 표독스러워지고, 썰렁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열정적이 됩니다.

sun power. 힘이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거룩하고 능력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합시다.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분리가 죄입니다.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멀어지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를 많이 짓고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다시 가까이 왔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버지가 맨발로 달려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송아지도 잡아주고,

   가락지도 끼워지고, 새 옷도 입혀주고, 신발도 새로 신겨주고. 품에 안아 주시고.

   완전히 새 사람 만들어 주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비로소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가까이 하는 것이 이렇게 좋구나.’

   이전에는 아버지를 가까이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를 가까이 하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주님과 가까이 해야 하겠습니다.

 

▶8b~9절,

그러나 또 때로 우리가 연약해져서 죄에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8b,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우리가 죄 때문에 주님과 멀어졌을 때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회개하므로 우리 마음이 성결케 되어야 합니다.

 

엡2:13절에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죄 때문에 멀어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깝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어 버리고 하나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어떤 망나니 같은 죄인도, 간음한 여인 같은 자도, 사마리아 여인도,

삭개오 같은 세리도, 십자가의 강도까지도 성결케 하여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의 은혜를 덧입어서, 주께 가까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리기에 힘쓰므로

주님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주님의 정결한 신부된 축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