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계3:1~6 설교일부녹취, 편집, 출처
<지난 회 생명책에서 내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14'~
현대 교회에서, 죄의 권능에 대해서, 대체로 많이 강조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에 오래 다니지만, 회개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많을 수 있다.
그것은 현재와 나중에, 주님 앞에서 책망 받을 일이며,
어쩌면 신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관계로, 우려하게 된다.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된 자들도,
지워질 수 있음을 우리가 명심하고, 경각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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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라
2절, 너는 일깨워 Wake up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게 ‘깨어나라’고 하셨다. ‘일깨워..’
세상 풍랑에, 세상 근심 걱정에 끌려가지 말고,
세상 풍조에 말려 들어가지 말고.. 세상을 살되, 세상에서 깨어있어야 한다.
Wake up/깨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웠는데도, ‘졸며 잘새’ 하게 된다. 마25:5
여기서 ‘깨어난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세상적인 것에 함몰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세상 부귀, 세상 명예, 바쁜 세상 사, 세상 유행, 세상 관심에 휩쓸려
오늘날 신자들은,
마치 풍랑 이는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는 제자들처럼, ☞Take Courage! It is I
예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게 바로 ‘잠자는 것’이다.
▲저는 믿음과, 공로에 대해
시계추의 비유를 들어서 곧잘 이해한다.
시계추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데, (젊은이들은, 이거 못 보신 분도 있을 것이다)
가톨릭은 믿음으로 인한 ‘공로’(행위)를 강조한다.
이것도 성경에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 ‘믿음’ 만큼 많이 나올 것이다.
개신교는 참된 ‘믿음’을 강조한다.
물론 이것은 성경적이다.
그런데 믿음과 공로를, 좌우로 흔들리는 시계추처럼
너무 한쪽 극단으로 쏠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성경이 기준인데, 성경은, 그 시계추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고 본다.
우리 신앙이 밸런스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는 개혁주의 신학이 강해서,
모든 성경을 ‘개혁주의’라는 안경을 통과해서 보게 되는데,
물론 모든 신학 중에 개혁주의가 그래도 가장 성경적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지만,
언제나 우리는 ‘성령의 감화와 조명’으로 성경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냐, 행위냐’의 좌우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성경처럼, 믿음과 행위에 있어서, 시계추의 정중앙에 위치할 것이다.
사실 둘은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어떤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본문 사데 교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행위’라는 단어가 2번, 1, 2절
‘옷’이라는 단어가 2번 나온다. 4, 5절
‘옷’은 성도의 의로운 행실을 뜻한다. 계19:8
계시록 전체가 그렇지만,
사데 교회만을 놓고 보더라도,
‘믿음’이란 표현은, 예수님이 거의 말씀하지 않으시고,
‘믿음’의 동전 반대편인 ‘행위’와 ‘옷’에 대해 도합 4번이나 말씀하신다.
속으로, 자기 마음에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겉으로, 자기 삶에, 그 행위에 거룩한 흰 옷을 입게 되어 있다.
예수님은 그들 사데 교회의 행위(믿음과 동전의 양면)를 보셨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2
그런데 사데 교회는 그 행위가 온전하지 못했다고.. 책망을 받았다. ↖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의 속에, 진정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1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행위)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책망하셨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죽어가는 교회였고, :2
생명책에서 그들의 이름이 지워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많았던 교회였다. :5
▲여러분, 사데 교회에 관한 본문을 대하시면서,
이제 예수님이, 나의 믿음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위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말로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치라’ 하셨듯이,
주님의 양을 치는 (먹이는) 그 사람이,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행위와 헌신이 많다고 자랑하는데,
예수님은 ‘잎만 무성하다’며, 그의 행위 속에 감춰진 ‘마음의 믿음’을 보신다.
예수님은 시계추의 양극단을 둘 다 보시는데 비해,
오늘날 개신교인들은, 특히 개혁주의는, 너무 믿음 쪽으로만 시계추가 기울어져
있다는 현실을, 우리가 정직하게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
안 그러면, 우리가 사데 교인들처럼, 예수님께 책망을 받을 것이다.
◑굳게 하라
2절,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Strengthen!
여기서 ‘굳게 하라’는 말씀은,
그 어원을 살펴보면, ‘깁스를 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남은 바 죽게 된 것’이란, 거의 다 죽었다는 뜻인데,
식물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꽃의 줄기가 곧게 자라다가, 어떤 실수에 의해서, 그것이 꺾여질 수 있다.
그러면, 줄기가 꺾였기 때문에, 잘려 나가지 않고, 아직 달려 있다.
아래로부터 수분이 약간 공급되긴 하지만, 거의 공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빈사상태가 되었다가.. 결국 죽는다.
그 줄기가 꺾인 꽃을, 다시 살리는 길은,
그 꺾어진 가지를 바로 세우고
테이프를 감든지, 부목(지지대)을 대든지, 깁스를 하든지 하면,
그것이 곧게 세워진다.
그러면 아래로부터 수분과 영양분이 공급되면서,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사람이 팔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손가락이 잘려졌을 때도,
깁스를 해서 연결해 놓으면, 뼈가 다시 붙는 경우가 많다.
본문의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가 그런 뜻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꺾어진 꽃의 예를 들어서, 설명 드렸다.
거의 다 죽게 되었는데,
살아 있는 신자들이, 그의 주위에ㅐ서 깁스가 되어 주어서, 다시 그를 굳세게 해 주어라는 뜻이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뭘 받았다는 것인가?
저는 ‘성령’ 받은 것을 뜻한다고 본다.
저는 30년 목회 경험 가운데, 교인들 가운데,
-성령 체험하지 않고, 신앙생활하는 교인과
-성령 체험하고, 신앙생활 하는 교인을 나눠서 보는 습관이 생겼다.
저는, 장로교이지만, 신자는 성령체험을 해야 한다고 본다.
성령 체험한 신자도, 물론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고린도교회처럼 시끄러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성령체험 해야 한다고 본다.
‘성령을 받으라’고 주님이 명령하셨으니까. 요20:22, 행1:4, 엡5:18, 행2:38
왜냐하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래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장래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 나간다.
하나님 말씀도 그대로 믿어진다.
목회자 가운데도, 뭐 나이스 하고, 친절하고 온유한.. 그런 기준으로 나눌 수도 있겠지만,
저는 <성령 체험한 목회자>와, <성령 체험하지 못한 목회자>로..
그렇게 나누어서 본다.
다 한 성령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래도 충만함을 체험한 사람도 있고, 아직 그것을 체험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다 생수의 강을 경험하였지만,
발목까지 경험한 사람이 있고, 전신이 거기에 빠지는 경험을 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10일간 간절히 기도한 후에,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였다.
물론 성령 받은 사람도, 죄 안 짓는 것 아니다.
똑같이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똑같이 죄를 짓고 넘어지더라도,
성령 충만을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뭔가 다르다.
성령 받은 사람은, 그래도 사명을 따라 살며, 여전히 다시 일어서서 자기 길을 간다.
▲네가 어떻게 들었는지
뭘 들었다는 것인가?
저는 ‘복음을 들은’ 것으로 해석한다.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명령은 ‘깨어나라’는 것이다.
Wake up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네가 받은 것을 생각하고,
내가 들은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즉, 복음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으로 가다가, 성령을 받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성령을 받은 이후에, 말씀이 들려지는 (영적으로 깨달아지는) 경우도 있다.
그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령도 받고, 말씀에 대한 영적인 안목도 열려야 한다.
둘 다 필요한 것이다. 그게 ‘깨어있는’ 상태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먼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웠다.
그런 후에, 사도행전에 오순절을 경험하면서, 배웠던 말씀을 깨닫고, 설교하게 되었다.
그런데 성령부터 받고, 그 이후에 말씀이 깨달아지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초대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 일곱 집사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 우리가 둘 다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3
성령을 꼭 체험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논란이 많은데, 제 개인적 의견은 이렇다.
‘체험하고 나서 토론합시다!’
체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 체험해야 하는 것으로 동의할 것이다. ☞연구 Being Spirit Filled
사모해야 한다.
▲지키어 회개하라
진정한 회개는,
성령의 역사로 -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말씀을 읽을 때 - 네가 무엇을 들었는지
일어난다.
말씀이 좌우의 날선 검처럼, 예리하게 우리의 심령을 찔러 쪼갤 때,
그 성령의 초자연적인 (=신비적인) 역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 우리들 가운데, 너무나 잠자는/깨어나지 못한
성도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세’라는 말만 들으면, 무슨 이단인줄 알고,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러나 깨어있는 성도는 ‘말세’라는 말을 들으면, 더욱 민감해 지실 것이다.
성경에 보면, 늘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뭘 깨어있으라는 것인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깨어있지 못하면,
세상에 빠져서, 세상이 최고인 줄 알고, 세상을 추구하게 되거나,
또는 세상 염려에, 세상 근심걱정에 휩쓸려, 사데 교인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되고 만다.
그런데 ‘깨어있는’ 성도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한다.
현세를 살지만, 현세를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세계를 추구한다.
왜? 깨어 있으니까!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4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몇 명밖에 없다’고 하셨다. 영어로 a few이다.
매 시대에 그랬듯이, 말세의 교회에도,
‘남은 자’ 몇 명이 있어서, 그들만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니는 것이다.
저는 지금까지 30년 목회를 해 왔는데,
주님이 오늘이라도 당장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실제로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더 오래 살다가, 혹은 주님이 더 늦게 오시는 가운데,
내 옷이 혹시 더 더럽혀 질 수도 있을까봐.. 그게 우려되어서 이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옷이 더 희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지만
또 진정 거듭난 사람은, 그렇게 되겠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말세가 되면 너무나 배도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므로,
한편 염려되는 것이, 지금 내가 입은 옷보다, 더 때가 묻을 수도 있다는..
그런 염려를 해 볼 때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이런 염려를 하셔야 한다.
그런 염려를 하는 사람은,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런 염려를 하지 않는 사람은,
완전히 성화되어서, 그런 염려를 하지 않거나, 이런 분은 소수일 것이고
아예, 이런 성경적 가르침에,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 염려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분은, 하루 빨리 주님께 가시든지, 아니면 주님이 빨리 오시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날이 지날수록, 해가 바뀔수록, 자기 옷이 더 더럽혀 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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