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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라 16/16 잭 푸닌

LNCK 2012. 11. 30. 09:21

www.youtube.com/watch?v=XociGOW1MUw&feature=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8LHgdApn2G8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라      요13:35, 요이1:5        영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5

 

Zac Poonen 목사님 설교, 16 of 16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신 사람들을, 모두 다 인정해야 합니다.

We must receive all whom God has received.

 

이 세상에는, 나와 교파와 국적이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되어진 사람들이 무수하게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물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그들을,

다 인정하고, 영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배타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나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단지 교리적인 차이나 /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또는 교단적 차이 때문에.. 서로 담을 쌓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가톨릭교회 안에도, 교파와 교리가 다르지만,

그들 가운데 거듭난 신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예를 든다면, 마더 테레사 같은 분입니다.

 

물론 저는, 가톨릭의 교리에 대해, 많은 부분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를 중보자로 믿는 것, 또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

등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신자들 가운데는,

진정 거듭나고,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고 받으신

신자들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 대해 우호적이며,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교제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단지 교리적인 문제 때문에,

같은 하나님의 형제들이.. 서로 배타적이 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나중에 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터인데,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교리적 문제를 테스트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마음의 진정성과, 우리의 진실한 믿음에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구분될 것이고, 그것은 지금 현실에도 그렇습니다.

 

교리나 신조는, 단지 지식적 문제이고, 머리의 문제입니다.

교리나 신조가 올바르다 하더라도, 마음과 믿음의 진정성 부족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며,

 

반대로 교리나 신조가 약간 달라도,

하나님은 그의 마음과 믿음의 진정성을 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천국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톨릭과 더불어, 또 하나 논란이 되는 그룹은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일 것입니다. 요즘 신사도운동도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거듭난 신자들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을 받아들이고, 서로 담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에 대한 견해 차이, 성령운동에 관한 극단적 태도는

교리의 차이가 다른 것처럼, 각자의 기질의 차이도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그들과 성령론이나 성령운동에 대한 이해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성’으로 인정해야지, 그것 때문에 서로 등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유아세례를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비록 그들과 같이 일하지는 않더라도,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이 받으신 형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가만히 지켜보면 됩니다.

 

괜히 하나님이 받으신 형제를,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거나, 등을 돌리거나, 배타적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서로 ‘이단 정죄’가 많은데,

내가 이단으로 정죄한 분을, 나중에 내가 천국에서 만나게 된다면,

하나님께 상당히 책망을 듣게 되고, 나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에게 교단/교파/신조/교리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각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영역에서

자기의 사명을 감당해 나갑니다.

그들과 공식적으로 함께 일하기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멀찍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신 신자는, 나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신자들이, 꼭 한 장소에 같이 모여서, 함께 예배할 필요는 없습니다.

꼭 서로 다른 교리를, 억지로 합쳐서 하나로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명하신 적은 있습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짝짝짝짝

 

제가 다른 지역에 가면, 저를 낯설게 여기는 분들은, 제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의 교회는, 매주 성찬식을 하십니까?’

저는 속으로, ‘아하, 이들은 형제 교회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교회는, 모두 방언을 하십니까?‘

저는 속으로, ‘아하, 이들은 오순절 교파이구나!’

 

‘당신의 교회에서는, 자매들이 머리에 베일을 씁니까?’

저는 속으로 ‘아하, 이들은 메노나이트 교파이구나.’

 

그런데 이렇게 묻는 분은, 없습니다.

‘당신의 교회에서는, 서로 사랑하십니까?’

 

그저 교파나, 전통적 특징을 묻는 것이지, 기독교의 본질에 관해서 묻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interesting!

 

예수님은, 물론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처럼 교리나 신조를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 가르치신 것이 있다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그 중요한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잊어버리고,

인간이 만든 교단의 차이, 신조의 차이, 전통의 차이로.. 서로 배타적이 되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세상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이 말씀이,

오늘날 어떠한 교리적/신조적/전통적 배타성을 초월하는

예수님의 신조(독트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살전4: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살후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요일3: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이1: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성경에 이렇게 많이,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고 있는데도,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 받으신 소자 한 사람을 영접하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믿음 생활에 있어서, ‘루저’가 될 것입니다. ‘패배자, 뒤떨어진 자’

 

교리, 신조, 전통에 우리가 서로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들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저는 물건을 사기 위해, 이 가게, 저 가게를 둘러봅니다.

둘러보는 것은, 공짜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물건을 살 때는, 제게 필요한 한 두 가지만 삽니다.

제가 그 가게 물건을 다 살 필요가 제게 없습니다.

다만, 그 가게는, 내가 필요한 물건 몇 개를 팔기 때문에, 내가 그 가게에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가게는, 내가 필요치 않은 물건들도 진열해서 팝니다.

여러분도, 마트에서 내게 필요 없는 양고기 (또는 주류)를 판다고 해서,

마트에 가지 않으실 사람은 없으실 것입니다.

 

저는 마더 테레사에게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그의 애정을 봅니다.

저는 빌리 그레함에게서, 복음전파를 위한 그의 열정을 봅니다.

 

제가 그분들의 모든 면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보다,

우리의 신조/교리/전통/견해가 더 상위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약 하나님이 받으신 하나님의 자녀일진대,

내가 그를 용납/존중/인정/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 스스로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잘못이 됩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뒤쪽에서 헤매는 미성숙한 자녀가 되는 셈입니다.

 

자기 신조와 교리를 버리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또한 자기 교파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곳에서, 열심히 섬기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신 다른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배타적이 되거나, 영적 교만에 빠져서 그들을 무시하지 마시고,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개방적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에게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