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3

지도자의 균형 Sproul Jr.

LNCK 2013. 1. 1. 17:50

www.youtube.com/watch?v=ZQ65OTVOJRU

◈지도자의 균형             벧전5:3              출처보기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벧전5:3

 

by R. C. Sproul Jr. | Oct. 22, 2012  ※출처의 영문을 번역, 편집했습니다.

 

 

◑오늘날, 청교도적으로, 연구에 성실하게 헌신된 목회자들이 필요합니다.

 

한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자는, ‘지금 우리는 교회역사상 가장 반지성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연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은,

<TV 세대>에서 시작해서 <인터넷 세대>로 변천해 가는 중에 있습니다.

거기에 온갖 시간을 다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TV 세대’만 해도, 역사상 가장 신앙생활 하기 어려운 세대인데,

그런데 ‘인터넷 세대’는, 신앙생활 하기가 그보다 더 어려워 졌습니다.

인터넷은, 가진 이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TV보다 더 큰 강적입니다.

 

그래서 온갖 영상들이 우리 눈앞에 쉴 새 없이 어른거리고,

온갖 ‘한 줄 뉴스, 정보’들이 우리의 뇌를 자극합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그 영상을 안 볼 수 없게 만들고,

그 한 줄 뉴스를 클릭해서, 결국은 보게 만들도록.. 우리를 쉴 새 없이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청교도 조상들과 비교해 볼 때,

점점 더 너무 양떼들에게 무관심한 목자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양떼들은 더욱 감각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목자들은, 아무 손도 못 쓰고, 양떼들이 메마르고 황량한 땅으로 나아가고 있어도,

이제는 그런 현실에, 목회자들이, 문제의식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청교도 목회자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큰 차이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의 청교도 조상 목회자들은, 양떼들을 잘 먹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서, 성경과 경건 서적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조상들을 본받아서,

더 깊이 사색하고, 더 폭넓게 성경을 연구하며,

오랜 시간 책상 앞에서, 진지하게 말씀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래야 양떼를 풍성하게 먹일 수 있습니다.

양떼들이 먹을 풀이 없는 황량한 들판을 배회하지 않게 하고,

그들에게 풍성한 꼴을 먹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청교도 목회자들보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더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TV 세대’를 지나서, ‘인터넷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청교도 시대보다 더 힘든 시대가 되었으므로,

목회자들은, 과거보다 몇 배의 진지한 말씀 연구가 필요합니다. 제 말이 맞지요?

 

그런데 까딱 정신을 못 차리면,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지도자 포함)

대개가 다 세속적인 크리스천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엔터테인먼트(재미, 오락) 중심의 삶을 살 때

그렇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도, 늙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엔터테인먼트 중심적 삶을 살다가,

그렇게 세속적 크리스천으로 일평생 자기 인생을 허비하며 살면, 결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들을 거부하고,

우리의 대중문화(팝 컬처)에 대해 거품을 물고 거절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우리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세속적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지적인 문제’로만 보고,

‘연구를 더 많이 하는 것’을 그 해결책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청교도 조상들을 본받아, 연구를 더 깊이 해야 하지만,

연구를 더 깊이 하는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더욱 복음에 충실한 삶과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연구가 필요하지만, 그것의 목적은 <더욱 복음에 충실한 삶>을 위한 것이지,

어떠한 더 고차원적이고, 발전된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연구는, 반드시, 양떼들을 복음으로 잘 먹이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교 교육도, 더욱 목회 중심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신학교들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기보다는,

영적인 의사들을 양성하는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교는 어떤 지식을 마스터하는 곳이 아니며,

성경은, 뭘 지식적으로 쪼개서 학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신학의 학문적 연구의 무용론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면밀히 연구해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입니다.

 

▶신학은, 무슨 석사 박사 등 학위를 취득하는 식으로, 학문적 업적을 쌓아가는 학문이 아닙니다.

신학은,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성령의 열매가 더 많이 맺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신학과 성경은, 연구하면 할수록,

그가 사람들에게 더 존경을 받고,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가르침을 순종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다보면, 오히려 더 명성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대로, 그가, 십자가의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신학과 성경은,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가 더 존경을 받고,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가르치는 바대로,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 앞에서, 더욱 더 어리석고 미천한 자임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갓 졸업한 사역자일수록, 목회를 할 때,

양떼를 칠 때, 성도들을, 마치 신학교 교육 시키듯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어떤 곳을 가보면, 그들의 양떼들은, 마치 작은 신학교 같습니다.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들, 또한 설교 내용들이

다양한 신학적 지식, 또는 새로운 지식들을 가르쳐서,

듣는 청중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려 합니다.

    *미국은 주일날 예배시간 전에 어른들도 ‘주일 학교’에 참석해서, 성경을 배웁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 사역자들을, 양떼를 먹이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우리의 지혜나, 통찰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배운 학문적 지식들을 전달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먹인다’는 것은, 양떼에게 꼴(좋은 풀)을 먹인다는 뜻인데,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우리의 깨어짐으로.. 그들을 섬기고 먹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씀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 말씀이 나를 깨뜨려, 나를 더 연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약함과 깨어짐에서.. 진정한 복음의 열매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물론 당신의 양떼들은 더 많은 정보나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을 인도해 줄 사람이며,

그들이 나아갈 길을 가르쳐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목자는, 양떼에게, 자신이 먼저 회개의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자기 죄와 싸우는 처절한 모습을, 양떼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경 지식이 필요하지만, 지식보다 더 근본적인 목자의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복음을 설교하고,

목회자가 먼저,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을, 성도들에게 ‘보여주어야’합니다.

지금 제가 양떼를 ‘치고, 먹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이 먼저, 자기의 아직 남은 죄성과 싸우면서,

또한 자기도, 그 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자임을,

성도들에게 먼저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목회자 자신이 먼저,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가운데 이루어진

기쁨과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을, 성도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혹시 패배했을 때는, 죄와 그 열매로 인해서, 슬퍼하고 애통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그것도 반면교사로서, 성도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는, 더 높은 단계의 학위가 필요치 않습니다.

어떤 저명한 박사가 싸인해 준 무슨 수료증 따위도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들을,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당신이 먼저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복음적 삶에, 당신이 먼저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떼들도, 당신을 본받아서, 주님을 신실하게 따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맡은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벧전5:3

 

그렇지 못하고, 여러분이, 단지 성도들의 머리만 기분 좋게 해 주고, 만족시켜 주려 할 때는,

얼마 지나면 성도들은, 당신보다 더 똑똑한 설교자에게로 옮겨갈 것입니다.

 

※참고로, 이것은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비한 기적을 보고 몰려온 성도들은,

더 큰 기적이 나타난 곳으로, 또 빠져나갑니다.

지식도 아니요, 기적도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로 승부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언젠가는 끝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양무리의 본이 되지 못하고, 그저 지식을 전달해 주는 사역으로 일관했다면,

그 날에는, 

우리의 일생의 수고가 먼지가 되듯이, 아무 것도 남지 않거나,

우리의 양떼들이, 마치 먼지처럼,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우리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고, 다운 받았다거나,

우리가 얼마나 많이 우리의 설교와 성경공부 교재를 발간 했던지에 상관없이,

 

그것들이 사람들의 내면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저 지식 전달에 불과했다면,

그 모든 수고가, 결국은 허무하게 썩어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먼지만 남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학문적인 연구일수록 더욱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학문적 연구가 필요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석사, 박사의 가운과 후드, 그들의 논문과 저서들,

만약 그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적인 삶’을 사는데,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면,

그것들은 마치 ‘바람 앞의 겨’와 같이 날려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오늘 하루에, 성실히 양떼를 먹이고, 양떼들을 돌보고,

양무리의 본이 된다면,

그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도록, 우리가 양육한다면,

 

우리의 사역과, 설교와, 모든 목회적 노력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숙시키는데 헌신되어진다면,

그 헌신과 수고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게 되고, 기억될 것입니다. 영원히!

 

▶오늘날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살았다 하지만, 그 영혼이 죽어서,

마치 ‘먼지’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호흡되어져야 합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통해서, 삶의 모범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기가, 그들 가운데 부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들 가운데 호흡되어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학문적으로 너무 박사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박사가 되기보다는,

말씀을 따라서 살다보면,

내가 더 연약해지고, 더 깨어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바보’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