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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왕의 꿈의 역리

LNCK 2013. 1. 10. 18:51

◈바로 왕의 꿈의 역리                 창41:1~36               출처보기

 

 

 

 


◑바로 왕의 꿈의 역리

 

창세기 41장에 보면, 바로 왕이 역리(逆理)의 꿈을 꿉니다.

바로 왕이 두 가지로 꿈을 꾸는데 그 내용은 동일합니다.

 

어떤 꿈인가 하면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서는

아름답고 살진 소를 잡아먹어 버립니다.


원래는, 살진 소가 더 힘이 세잖아요?

그런데 파리한 소가, 살진 소를 잡아 먹어버립니다. 이것은 역리입니다. 

 

바로가 깜작 놀라서 꿈을 깹니다.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서는 다시 잠을 청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앞서 있던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립니다.

 

바로가 또 놀라서 그만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가 그 꿈을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러던 중에 예전에 감옥에 있다가 복직이 된 술 맡은 관원장이

자기가 감옥에 있을 때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요셉이라는 죄수가 해몽을 해 주었는데, 그대로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바로가 요셉을 왕궁으로 부릅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꾼 꿈을 해몽해 달라고 합니다.

 

이에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하기를

일곱 해 풍년이 들다가, 일곱 해 흉년이 들 것이니

<일곱 해 풍년 기간 동안에, 장차 닥칠 흉년을 대비하여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바로가 요셉의 총명을 보고서

애굽의 총리로 임명해서, 장차 닥칠 기근으로부터 지켜내게 하였습니다.

 

이건 단순히 기근에서 해결하는 꿈이 아니에요.

이 세상의 영적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살진 암소가 갈밭에서 풀을 뜯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있다는 말입니다.

 

갈밭은 갈대밭을 말하는데

그 당시에 갈대 껍질은 성경을 필사하는데 사용을 하였어요.

이걸 파피루스라고 합니다.

 

그러니 일곱 암소가 갈밭에서 풀을 뜯는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풍성히 먹고 있다는 말입니다.


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지요.

이 ‘갈대’도 말씀을 상징해요. 같은 파피루스지요.

그러니까 갈밭에서 풀을 뜯는 일곱 암소는, 언약 백성을 상징해요.


그런데 언약 백성들이 죽음을 당해요.

누구에게 죽임을 당합니까?

 

말씀을 먹지 못한 육적 신자들에게 죽임 당해요.

육적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여서 패역하고 흉악해요.

 

그래서 광포하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자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의 꿈을 보면 역리적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살찐 소는 힘이 있고, 파리한 소는 힘이 없습니다.

 

힘 있는 소와 힘 없는 소가 싸우면, 당연히 힘 있는 소가 이깁니다.

그런데 실상은 힘 없는 소가, 힘 있는 소를 잡아먹고 맙니다.

 

구약 내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었어요.

언약을 받은 자들이, 언약을 받지 못한 자들로부터 핍박을 당하였어요.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언약으로 난 자에요.

그런데 형제들에게 버려짐을 당하잖아요.

 

이러한 맥(흐름)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그대로 이스라엘에게 나타났어요.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바로의 꿈과 같은 역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본문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어요.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먹은 살진 일곱 암소와 같아요.

 

그리고 예수님을 재판하고 죽이는 바리새인들은, 파리한 일곱 암소와 같아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먹지 못하여서, 파리하고 패역한 포악 자들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 세상의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바로의 꿈은, 이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꿈이에요.

 

세상이 어떤 곳인가 하면 역리적인 곳입니다.

 

진리에 속한 자들이, 비 진리에 속한 자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곳이에요.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곳입니다.

 

의인이, 악인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죽임당하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이 모두가.. 이 세상은, 죄 아래 가두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주장하면 순리 대신 역리로 살게 하고!

진리 대신 비진리로 살게 하고!

생명의 원리 대신, 죽음의 원리로 살게 해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파리한 소처럼 복음을 방해하는 자가 되어요.

예수를 죽이는 일을 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은 남에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유대인들처럼, 밤에, 예수님을 재판할 수가 있어져요.

 

그러니 선 줄로 착각하지 말고

항상 넘어 질까 조심하면서 경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 아래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죄 아래서 태어납니다.

그리고는 죄가 주는 사고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역리 현상으로 다스려져 가는 곳이란 말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가요?

네, 그러합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세요.

수많은 역리 현상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재판을 받는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판단을 받아야 하는데

도리어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판단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틀렸다고 하면서 죽임을 당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이 모두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주객을 전도 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주제를 모르니까 피조물이 창조주를 재판하여서

이단이라고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몰라보는 자들을 독사새끼라고 하지요.

독사라는 말은 원래 살모사 라는 말이에요.

 

살모사(殺母蛇)가 뭔 줄 아세요.

어미를 잡아먹은 놈이란 뜻이에요.

 

어미란? 자신을 낳아준 분을 말해요.

인간들의 어미는 누구인가요? 우리를 낳아준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낳아 주었어요.

그런데 세상이 주님을 알아봅니까?

몰라보지요.

 

이는 자기를 낳아준 어미를 몰라보는 것이에요.

몰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도리어 자기를 낳아준 어미를 죽여 버렸어요.

그러니 예수님이 너희는 살모사(殺母蛇) 새끼들이라는 말이 맞지요.

 

이건 자식들을 키워보면 대번에 알 수가 있어요.

자식들이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한 부모를 가장 우습게 여기잖아요.

 

만만한 게 부모잖아요.

이게 모두가 그 속에 살모사(殺母蛇)가 들어 있어서 그래요.

 

우리도 우리 부모에게 그랬어요.

우리가 우리 부모에게 한 것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 자식을 야속하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에게 하던 짓을, 지금 우리 자식들이 그대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의 가정에서 죄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한 밤 중에 잡아서 재판을 합니까?

그것도 피조물이 창조주를 판단하고 죽이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까?

 

이건 불법이에요.

재판은 낮에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뭐가 그리 급해서인지

증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하고 있는가요.

 

이는 예수를 빨리 처단을 하여야

자기들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있으면 자기들에게 해(害)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리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이 모두가 자기가 어떤 자인지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한마디로 자기 주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주제인줄을 모르면 겁이 없어져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죽이는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이란? 죽음을 상징해요.

죽음은 마귀가 장악하는 세계에요.

 

예수님이 밤에 자기 백성들 손에 붙잡혀서 재판을 받고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들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어둠의 세력인 뱀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예수님을 통하여서

자기 백성들을 장악하고 있는 ‘뱀의 세력을 깨트리는 일’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뱀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미끼로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불 뱀을 죽이기 위해서,

불 뱀에 물리는 사건을 일으킨 것과 같아요.

 

창세기 3장을 보면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깨트린다고 하였지요.

뱀의 머리를 깨트린다는 말은 뱀의 권세를 깨트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뱀의 머리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뱀은 죄와 사망 권세를 가지고 인간들을 죄의 종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도, 뱀의 사주를 받고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궤계를 다 읽고 있어요.

예수님은 지금 그 마귀의 궤계를 역(逆)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귀의 힘이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틀린 것으로 드러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귀의 지혜가 악의 지혜임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안에 숨겨져 있어요.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가는 성도는, 반드시 이 길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때부터 계시되어 있는데,

살진 암소가, 파리한 소에게 잡혀 먹히는 것과,

충실한 이삭이, 메마른 이삭에게 도리어 잡혀 먹히는 사건으로

이미 예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마귀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이 세상에 생명을 나누어주시는 일을, 오늘도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뱀은, 예수님을 죽이면, 다 이기는 줄 알았어요.

힘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어요.

 

그래서 세상 힘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죽이도록 한 것입니다.

 

이게 뱀의 지혜에요.

그런데 이 지혜가 바로 어둠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예수를 죽게 하는 것인 줄

뱀은 꿈에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십자가의 길)를 가질 수도 있고,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뱀의 지혜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나를 부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뱀의 지혜를 따라서, 행할 수 있거든요.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보십시오. 야곱 가문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7년 풍년 때가 아니라, 7년 흉년 때에 일어났습니다.

흉년 때에 요셉을 만나게 되고, 애굽에 내려가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마귀는, 흉년을 통해서, 주의 백성들을, 또한 세상을 괴롭게 하지만,

하나님은, 흉년을 통해서, 그 마귀의 역사를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뒤집기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 전략된 부분 .................... 


◑예수님이 잡히신 ‘밤’ - 그 영적인 의미


성경은 이 세상을 일컬어 어둠이라고 합니다.

어둠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어둠에 의미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를 죄라고 합니다.

죄인이란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므로

인간들이 하는 일들은, 곧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다른 말로 인간들이 하는 모든 일이 죄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이 죄인지를 모릅니다.

인간 입장에서는 옳은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짓을 하고서도 회개치 않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둠 속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재판 사건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밤에 붙잡혀서 재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 하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통상적으로는 밤에는 재판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밤에 재판을 받았어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밤에 붙잡히고 밤에 재판을 받느냐 입니다.

이는 밤을 통하여서 뭔가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가룟 유다에게 떡을 주시면서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시잖아요.

 

그러자 마귀가 가룟 유다 속으로 쏙 들어가서

예수를 팔아 버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 일이 밤에 일어났어요.


예수님을 왜 밤에 붙잡히게 하고, 밤에 재판을 받게 하셨을까요?

그것도 자기 백성들에게 말이에요.

 

하나님을 섬기는 최고의 수장인 대제사장에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단이라고 정죄를 당하고 죽음에 넘기어지게 됩니다.

 

밤에 말이에요.

이 모두는 밤이 갖는 영적 상태를 고발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은, 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가지고서

이 세상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니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재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어떤 곳인가 하면 밤이에요.

어둠이에요.

 

하나님을 몰라요.

하나님을 모르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역리(逆理)라고 합니다.

역리(逆理)란.. 순리(順理)가 아니란 말입니다.

 

즉 도리(道理)가 아니란 말입니다.

인간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순리(順理)대로 라고 한다면, 예수님으로부터 판단을 받아야 할 자들이에요.

예수님으로부터 판단을 받아야 할 자들이, 도리어 예수님을 판단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으로부터 판단을 받아야 할 자들이, 도리어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어요.

이게 세상이에요.